강릉에서 슬픈 여인을 만나다. - 허난설헌생가
오늘 새벽, 우연히 강릉 경포호수쪽으로 가다가 만난
허난설헌의 생가터를 설명하자면
외부에서 올 경우에는
오죽헌에서 선교장을 지나 경포호수로 가다가 경포대쪽으로 가는
큰 길과 다리건너 위쪽으로 가는 삼거리가 나오더라다.
경포대쪽이 아닌 다리를 끼고 농로을 따라 경포천 뚝방을 한 삼십 분만 걷다보면
소나무숲 우거진 마을이 나오는데 그 곳이 초당이다.
이처럼 강릉은 좁다.
초당이란 명칭은 많이 들었을 것이다. 초당두부를, 이곳에는 진짜 두부집 많다.
그 동네 두부집 것만 돌아다니며 먹어도 족히 한 달은 걸릴 것이다.
초당두부는 해수 즉, 바닷물이 들어간 짭짭한 물로 간을 맞추기 때문에 맛이 특이하다.
이 초당이란 마을에는 허난설헌의 생가가 있다.
허균과 허난설헌의 아버지 허엽의 호가 초당이다. 그래서
그의 아버지 호를 따서 초당이라 부르는 것이다.
이제 오죽헌에서 경포호수를 따라 초당으로 가면서 우리는
강릉이 배출한 조선시대 두 명의 여시인을 만났다.
그 이름하여 신사임당(1504-1551)과 허난설헌(1563-1589)이다.
여기서는 이들에 대해 길게 논하지 말고 그들의 시를 감상하는 것으로 하자.
여기에 인용된 시는 시는 김달진선생께서 해석하신 글을
신사임당의 글은 모두가 잘 알고있기에 생략하고
허난설헌의 주옥 같은 시들을 모아
虛乭이 편집하여 올립니다.
허난설헌의 詩* 죽지의 노래.*
십리긴 언덕에 휘늘어진 버들가지 물건너 연꽃향기 사람 옷에 스미네
밤들자 남쪽 호수에 달이 밝은데 계집애들 다투어 죽지사를 부르네
집은 강릉땅 적석강가에 있어 문앞을 흐르는 물에 비단 옷을 빠네
아침이면 한가히 배매어 두고 짝을 지어 날으는 원앙새 바라보네.
영안궁밖은 바로 거센 여울목 그 여울로 배다니기 다소 힘드네
조수는 기약있어 제시간에 오건만 한 번 떠난 임의 배는 언제 올는고
공령여울 어구에 비가 막개어 무협은 안개속에 이득하여라.
한스럽다, 그이 마음 조수와 같았으면 아침에 물러갔다 저녁이면 오련마는...
* 막수악幕愁樂 *
우리 집은 석성 아래에 있어 석성 머리에서 나고 자랐네.
석성 사내에게 시집을 가서 석성을 오가면서 거기 놀았네.
나는 백옥당에서 살고 님은 오화마를 타고
석성 위에 아침해 속에서 우리는 쌍배타고 봄강에서 놀았네.
* 서릉의 노래 *
소소소의 문밖에는 꽃들이 한창피고 버들 향기 술에 섞여 금술잔을 스치네
밤깊도록 님 붙들고 술에 거나히 취해 가벼운 유백차타고 달속에 돌아오네
전당강위에 내 집이 있어 오월에 처음으로 연꽃이 피네
반쯤드리운 먹구름에 잠이 막깨어 난간에 기대 한가히 낭도사를 부르네.
* 가난한 여자 *
내 얼굴을 왜 못났다고 하는고 바느질도 잘하고 베도 잘짜는 것을
어려서 부터 늘 가난하여 좋은 중매장이가 알지 못했네.
차가운 밤에 바느질하나니 열 손가락이 다 굳어지네.
남의 시집갈 옷 지으면서도 도리어 해마다 나 혼자사네.
헐벗고 굶주리는 내색안하고 하루 종일 창 앞에서 베를 짜노니
부모만은 가엾이 여기지만 이웃들이야 이런 줄 어찌 알리.
밤이 깊도록 쉬지않고 베를 짜네 달가닥 거리는 베틀 소리
베틀에서 짜낸 이 한필의 비단이여 밤을 새우나니 이 누구의 옷인고.
* 여자 친구들에게*
오랜 길가에 오막살이를 지어 흐르는 강물을 날마다 바라보네
경대의 난새는 늙으려는데 꽃동산의 나비는 어느새 가을이네
모래밭에는 기러기가 막내리고 저녁비 속에 조각배 돌아오네
오늘 저녁에 창을 열고 보나니 옛놀이의 그리움을 못견디겠네.
* 그네의 노래 *
이웃집 계집애들 그네 뛰는데 띠를 매고 걸터앉아 신선처럼 노니네
바람이 그네줄을 하늘로 불어 올려 패옥소리 때때로 버들숲에 떨어지네
그네를 다 뛰고 신을 바로 신고는 내려 선 말없이 뜰에 서네
얇은 땀에 고운 적삼이 살짝 적었네 떨어뜨린 비녀는 누구더라 집으란 말인가.
* 장간행長干行 *
우리 집은 장간 마을에 있어 장간의 길을 오가며 놀았네.
꽃가지 꺾어 님에게 물어보네. "이내 얼굴과 어느 것이 예쁜고?"
* 강남의노래 *
강남의 날씨는 하도 좋아서 비단에 비취 꼬리같기도 하네
그이와 마름 캐러 갈 때는 함께 목란노 저었네
사람들은 강남이 즐겁다하나 나는 강남이 슬프기만 하더라.
해마다 이 포구에서 떠나는 배 보내기 애가 끊기네.
강남마을에 나고 자라서 어릴때는 이별이 없었는데
비로소 알았나니 열 다섯살에 뱃사공에게 시집간 뒤에서야.
호수속에 달이 막 뜨는데 연밥을 따다 밤중에 돌아오네
고이 배저어 기슭에 두지말라 잠든 원앙새 놀라 날을까 두렵구나.
붉은 연꽃을 치마 비녀로 삼고 흰마름 꽃으로 온갖 패물 삼았네
배를 대고 물가에 내려 그이와 함께 썰물을 기다리네.
* 최국보의 체를 본받아 *
저에게 있어 이 하나의 금비녀 이것이 시집올 때 찌른 것이네.
이제 떠나는 당신에게 드리노니 천리 멀리서도 늘 생각하리라.
못가에는 버드나무 성기고 우물위에는 오동잎 떨어진다.
발 밖에 귀뚜라미 소리 들으니 찬 날씨에 비단 이불이 얇다.
보슬 보슬 봄비는 못에 어둡고 싸늘한 찬 기운은 휘장에 스며드네.
시름에 겨워 병풍에 기대나니 담장 머리에 살구꽃 떨어지네.
* 느낀대로 *
아름다와라 창밑에 난초 잎과 가지는 어찌 그리 향기로운고
갈 바람에 한 번 흔들리니 떨어지면서 서리를 슬퍼한다.
빼어난 그 모습은 아무리 파리해도 맑은 향기는 끝끝내 안가신다.
이런 모든 것에 내 마음이 슬퍼져 흐르는 눈물에 옷깃 적신다.
오랜 낡은 집에 낮에도 사람 없어 뽕나무에서 부엉이 운다.
섬돌의 이끼는 덩굴을 뻗고 빈 다락에는 참새들이 깃들었다.
그 옛날 수레와 말의 땅이 지금은 여우 토끼굴이 되었다.
이제야 알겠구나, 달인의 말은 '저 부귀는 나의 구할바 아니다'
동쪽 집의 세도는 불길과 같아 드 높은 누각에서 풍악소리 울렸었네
북쪽 집은 가난해 입을 옷없고 거적 문 안에서 배를 곯았다.
하루 아침에 누각이 무너지자 도리어 북쪽 집을 부러워한다.
흥망성쇠는 때를 따라 바뀌거늘 하늘 이치는 어기기 어려워라.
* 견흥遣興 *
단혈에서 나온 저 봉황새 깃털의 무늬가 찬란하도다.
덕을 살펴보아 천길 하늘을 날고 환히 밝아오는 아침 햇볕에 운다.
벼도 조도 그의 구함아니요 오직 죽실만을 그는 먹는다.
어찌하여 저 오동나무 가지에 올빼미 소리개가 깃들었는가.
내게 한 필의 비단이 있어 털고 닦아 그 빛이 어지러워라.
두마리 봉황새를 마주 수 놓아 그 무늬는 어찌 그리 찬란한고.
여러해 상자속에 간직했다가 오늘 아침에야 님에게 바치나니
당신 옷짓는데는 아깝잖으나 부디 다른 여인의 치마감으로 쓰지마소.
* 안방의 설움 *
달 다락에 가을 깊은데 병풍은 비고 서리찬 갈밭에는 저녁 기러기 내리네
비파타고 있으나 님은 보이지않고 연꽃만이 부질없이 들못에 떨어지네
치마 비단폭에는 눈물이 얼룩졌으니 금년에도 풀은 꽃다와 왕손이 한스럽네
거물고로 강남곡을 타다가 한 낮에 문을 닫네
* 밤에 앉아 *
상자안의 비단을 가위로 잘라 겨울 옷을 지으면서 손끝을 자주 부네
비녀를뽑아들고 등잔가에서 불꽃을 돋우면서 부나비를 구하네.
* 가을밤의 노래 *
매미소리 애절하고 바람소리 소소한데 연꽃향기 가시고 달은 높이 떠있네
아름다운 사람은 손에 가위를 들고 긴 밤에 등불 돋우며 님의 옷을 만드네
물시계 소리는 낮아지고 등불은 반짝이니 비단 휘장은 차고 가을밤은 길어라
변방 옷을 다 지워 가위는 차가운데 창에 가득 파초그림자 바람에 흔들리네.
* 한스러운 마음 *
봄바람이 화창하여 온갖 꽃이 다 피고 절물이 번성하여 온갖 느낌 일어나네
깊은 안방살이에 생각이 끊어질 듯, 그 사람 그리움에 심장이 찢어지네
밤새껏 그리움에 잠 못 이룰제 새벽닭 울음소리 멀리서 들려오네
비단휘장은 빈 방에 드리웠고 구름 섬돌에는 이끼 자라네
새벽등불 깜빡거려 벽을 등지니 비단이불 쓸쓸하고 찬 기운만 감도네
베틀을 울려도는 무늬 짜려는데 무늬 이루지 못하니 마음만 어지럽네
인생의 운명에는 두터움과 엷음 있나니 남의 즐거움에 맡기려니 내몸이 적막하네.
* 아들을 곡하며 *
지난 해에는 사랑하는 딸을 잃고 올 해에는 사랑하는 아들을 잃었네.
슬프고 슬픈 광릉廣陵땅이여 두 무덤이 마주 보고 섰구나
황철나무에는 으스스 바람이 일고 도깨비 불은 숲속에서 번쩍이네.
지전에서 너의 혼을 부르고 너희 무덤에 술잔을 붓네.
아아 너희들 남매의 혼은 밤마다 정답게 어울려 놀으리
비록 뱃속에 아이가 있다 한들 어찌 그것이 자라기를 바라리
황대노래를 부질없이 부르며 피눈물로 울다가 목이 메이네.
허난설헌은 누구인가?
허난설헌은 양천 허씨 집안에서 정승을 역임한 허성의 두번째 부인의 소생으로
1563년 태어났습니다. 허난설헌의 본명은 초희이고 허균은 그녀의 친동생입니다.
그녀와 허균은 전실 소생의 형과 누나들 틈에서
소외된 어린시절을 보냈다고 합니다.
또한 어린 시절 그들의 스승이었던 이달이 첩의 소생이었기 때문에
허난설헌과 허균은 적자들이면서도 서출들의 처지를 잘 이해할 수 있었다고 하네요.
허난설헌은 8세에 《광한전백옥루상량문(廣寒殿白玉樓上樑文)》을 짓는 등
신동으로 일컬어졌습니다. 15세에 김성립과 혼인하였는데
부부 사이는 그렇게 좋지 않았다고 합니다.
김성립도 나중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켜 왜군과 싸워 공신에 책봉되는 등
능력이 있는 사람이었으나 뛰어난 시재(詩材)를 자랑하는
부인을 용납하기에는 어려웠다고 합니다.
실제로 난설헌은 살림살이보다는 시 짓기에 골몰하였고
그것이 시어머니와 남편에게 곱게 보이지 않았다고 하는군요.
허난설헌은 1남 1녀를 낳았으나 자녀들 역시 일찍 죽는 바람에
불우한 삶을 보내다가 27세에 죽었습니다. 그때가 1589년이었습니다.
그녀는 임종시에 "다시는 이 땅에 여자로 태어나지 않겠다."라며 숨을 거두었다네요.
자신의 능력을 펼 수 없었던 조선사회의 현실이 싫었겠죠.
그녀의 시 213수 가운데 128수는 속세를 떠나고 싶은
심정을 읊은 신선시(神仙詩)이며,
애상적 시풍의 독특한 시세계를 이루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현실이 자신에게는 괴로웠으니 신선계를 동경했던 것이죠.
작품의 일부는 친동생 허균이 명(明)나라 시인 주지번(朱之蕃)에게 주어
중국에서 《난설헌집》으로 간행되어 격찬을 받았습니다.
그 작품집이 조선으로 역수입 되었다고 합니다.
일본에서도 1711년 분다이야 지로에 의해 간행되어 애송되었습니다.
작품에 《유선시(遊仙詩)》 《빈녀음(貧女吟)》 《곡자(哭子)》 등이 있습니다.
후일 난설헌의 동생인 허균이 역적으로 몰리면서
그녀의 친정은 완전히 몰락합니다.
그녀의 아버지인 허성의 송덕비가 두 동강으로 잘려질 정도로
그녀의 친정이 몰락하는 바람에 동생 허균의 작품은 물론이고
허난설헌의 시집까지도 조선사회 내내
음지에서 유통되었다고 합니다.
너무 이른 시간이라 허난설헌이 태어난 집에 들어가지는 못하고
담장을 따라 한 바퀴 돌고 돌아와
이 글을 정리하면서 오늘 처음 읽어 보았다.
이것 완전히 슬픈 여인의 일기장이라는 기분이 든다.
남편과 아이 때문에 자기 가슴을 태워버려 일찍 죽을 수밖에 없었던 여인,
이런 슬픈 여인이 당시에 허난설헌 밖에 없었겠는가,
내 생각에는 다만 그 때를 살았던 여인들의 마음을
시로써 대변한 시인이라는 것이다.
강릉이나 서울이나 조선팔도 그 어디나 다
이와 같았을 것이다.
오죽헌은 신사임당이 조선의 멋진 여인이 태어난 것을 기념하는 곳이라면,
허난설헌 생가는 조선의 슬픈 여인을 애도하는 곳이라
나는 지금 그대로의 모습에 찬사를 보낸다.
있는 그대로 봐주기를
그런데 나는 그 곳에서 조선시대의 여인인 허난설헌의 모습을 보았다.
그것은 바로
큰 대문 옆에 여인네들이 드나드는 작은 문이었다.
그 문을 통해 조선여인을 본 것이다.
이 문이 그때 당시의 그 문이겠느냐 만은 그래도 나는 그 곳에서
제일 아름다운 격이 있는 그를 본 것이다.
부디 그 곳에 가면
잘난 아들을 키워 낸 신사임당 생가인 오죽헌은 물론
슬프고도 아름다운, 비운의 허씨 여인을
한 번쯤 만나 보시기 바랍니다.
*
휴~
나도 에제는
詩 좀
사세히 읽오 보자,
虛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