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청명한 가을, 차량이 뜸한 시골의 아스팔트 도로 옆에는 나락 말리는 황금 띠가 한동안 펼쳐진다. 가끔 지나는 이는 나락 말리는 모습에서 흐뭇한 여유를 느끼겠지만 순박한 농부들은 이때를 조심해야 한다. 아스팔트를 따라 들어오는 외지 트럭이 의심스러운 까닭이다. 도와주는 척 수선을 떨다 다 마른 나락을 몽땅 싣고 줄행랑 놓는 사례가 심심치 않다. 한해 고생고생하며 갈무리한 결실이 한 순간 사라지는 순간, 넋을 빼앗긴 농군은 나락 도둑을 잡아 다신 그런 짓 못 하도록 혼찌검을 내고 싶을 것이다.
곶감과 호두가 유명한 영동군. 감 아가씨와 호두 아가씨를 연실 선발하며 특산물을 알리려 애를 쓰는 영동군에서 조심해야 할 도둑이 있다. 청설모다. 수확을 앞둔 작물은 물론, 채 익지 않은 호두까지 건드려 상품가치를 망쳐놓으니, 청설모가 휩쓸고 지난 호두나무를 망연자실 바라보던 농부는 자리를 박차고 총포상을 만나러 나갈 것이 틀림없다. 잘 닦인 아스팔트를 따라 나락을 훔쳐 달아난 도둑은 계획적인데 잡기 어렵고, 총구 앞에 놓인 청설모는 떨어진 호두와 직접 관계없을지 모른다.
잣 수확이 한창인 가을철, 가평군은 청설모와 전쟁이 한바탕 벌어진다. 엽총을 쥔 사내 서너 명이 숨죽여 움직이다 사각사각 소리가 들리는 잣나무의 갈색 물체를 조준해, “꽝!” 검은 꼬리를 늘어뜨린 청설모는 그 순간, 툭! 맥없이 떨어진다. 총구를 거둔 엽사들은 “잣 도둑 한 마리!”를 외치며 자루에 추가한다. 사각거리던 청설모만 희생되는 건 아니다. 꽝 소리에 화들짝 놀라 제 모습을 엽사 앞에 드러낸 녀석도 마음을 놓으면 안 된다. 사정권 안에 놓이면 목숨을 더는 보장받을 수 없다.
청설모와 벌이는 전쟁은 일방적이다. 청설모는 총 쏘는 엽사를 이길 도리가 없다. 사람들은 결과가 뻔한데 전쟁이라 말한다. 하지만 가평군의 잣 농부들은 청설모와 벌이는 전쟁에서 이기지 못한다고 하소연이다. 총을 쏘고 또 쏘아도 청설모가 먹는 잣이 농부의 수확량보다 훨씬 많기 때문이란다. 7만 마리가 먹어치우는 잣은 한해 약 1400톤. 마리 당 20킬로그램에 해당한다. 잣 80킬로그램 한 가마니 당 65만원이라 하니, 청설모 한 마리는 해마다 유기농 현미 반 가마 이상 농가에 피해를 주는 셈이다.
초여름 엄지만한 열매는 이듬해 가을이 돼야 수확이 가능한데 청설모란 놈은 그때까지 기다리지 못한다. 겨울 눈밭에 시퍼렇게 깔린 잣껍질을 보는 농심에는 울화가 치밀고, 참다못한 당국은 포상금을 내걸고 소탕작전에 돌입한다. “마리 당 5000원!” 천적이 사라진 산하에서 오직 사람만이 청설모를 구제할 수 있다며 천안시와 영동군도 가평군처럼 포상금을 걸었는데, 일방적인 공세에도 불구하고 청설모의 수는 만족할 만큼 줄어들지 않는 모양이다. 엽사로 조직된 ‘유해조수기동구제반’은 “지속적인 퇴치사업으로 예전보다 30~40% 정도 줄었지만 덫이 없는 산꼭대기로 몰려 포획이 쉽지 않다”며 아쉬움을 토로한다.
잣과 호두에 밤과 버섯까지 먹어대는 청설모! 동물보호단체도 사냥을 반대하지 않는 ‘유해조수’가 되었지만 청설모는 그 사실을 알지 못할 것이다. 잣나무로 서너 아이를 대학까지 보냈던 주민들은 나무 밑에 올무를 둘러치며 옛 기억을 더듬지만, 청설모가 잣을 지금처럼 먹지 않던 시절의 가격은 기억하지 못한다. 청솔모가 먹어치우는 양이 시장에 쏟아져나오면 잣 값이 떨어지리라는 생각은 아예 하지 않는다. 중국에서 막대하게 수입되면서 잣만으로 자식 대학 등록금 마련하기 어려워진 사실에 주목하지 않는다.
사실 청설모가 늘어난 이후 생태계는 전과 많이 달라졌다. 다람쥐를 몰아내었을 뿐 아니라 야생조류도 많이 줄었다. 둥지에서 알과 어미까지 잡아먹기 때문이다. 이를 전적으로 청설모 탓으로 몰아붙일 수 없다. 다람쥐는 청설모보다 사람들 성화 때문에 사라졌다. 집 나간 고양이가 근교를 석권했을 뿐 아니라 관광버스 타고 몰려오는 사람들이 도토리를 몽땅 털어가지 않았던가. 주민에게 사랑받던 때까지가 드물어진 이유는 무엇이던가. 산에 벌레 사라지게 하는 항공방제와 논에 개구리 몰아내는 농약은 누가 살포하나.
목도리나 조끼로 변한 여우와 담비는 이 땅을 떠난 지 이미 오래되었다. 족제비도 희귀해진 산하에서 매와 올빼미마저 자취를 감추자 청설모는 두려울 게 없어졌다. 하지만 그것은 잠시, 비탈진 산을 잣나무로 절도 있게 심어 놓은 사람들이 까치와 함께 청설모를 유해조수로 규정한 것이다. 유럽과 아시아에 걸쳐 분포하는 청설모를 1970년대에 들어온 외래동물로 오해하더니 까치와 달리 측은하게 생각하지도 않는다. 혼찌검 정도가 아니다. 당장 퇴치해야 대상으로 취급하면서, 청설모 덕분에 숲이 건강해진다는 점을 염두에 두지 않는다. 나중에 먹으려 파묻은 열매가 잣나무와 호두나무를 참나무처럼 자생하게 한다는 것을 알려하지 않는다.
한 농부는 청설모를 손쉽게 잡는 방법을 소개한다. 농약 담는 500리터 고무 통을 잣나무나 호두나무 숲 가장자리에 놓고 물을 살짝 부어 놓으면 된단다. 잣을 포식한 뒤 목이 타는 녀석들을 노리는데, 총포와 덫을 피해 산꼭대기로 달아난 청설모는 그 사실을 미처 깨닫지 못한 모양이다. 한꺼번에 스무 마리 이상이 농약 섞인 물에 허우적거리다 죽는다는 것이다. 맹금류가 두려워 산꼭대기를 싫어하는 청설모는 잣나무와 호두나무가 획일적으로 심어지지 않았다면 절대 총구 주위를 기웃거리지 않을 것이다. 한 겨울에 임신해 이른 봄에 낳은 대여섯 마리의 새끼를 살려야 하니 어쩔 수 없건만, 천적을 몰아내줄 땐 언제고 이제 퇴치 대상이라니.
숲에서 사람을 만나면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멈칫거리다 긴 꼬리를 수평으로 늘이며 껑충, 나뭇가지 사이를 뛰어넘는 청설모는 보는 이에게 자연의 생명력을 선사한다. 다람쥐와 때까치가 사라진 주변에서 청설모마저 볼 수 없다면 회색도시에 지친 사람들이 더욱 삭막해지는 건 아닐까. 유해조수를 지정하기 전에 사람들은 청설모가 농작물을 집중 탐하는 원인을 먼저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나락 훔친 사람처럼 멀리 달아나지 못하는 청설모는 억울할 것이다. 이제와 누가 누구를 퇴치하겠다는 것인가.
첫댓글 작년 말, '생태보전시민모임'이라는 환경단체, 그 단체에서 발간하는 소식지 <물푸레골>에 회비 대신 기고한 글입니다. 회의에 거의 참석하지 못해는 무늬만 창단맴버이자 운영위원이거든요. '살처분' 시대에 유해조수로 규정된 청설모를 청설모의 처지에서 바라보려고 했습니다.
맞습니다. 농작물을 집중 탐하는 원인을 알아보면 분명 거기에는 이렇게 밖에 될 수 없는 원인이 있습니다. 숲의 생태가 망가져 거리의 한복판을 헤매다 죽어가는 동물들을 보면 마음이 아픕니다. 제 살 도리를 위하여 남의 살 도리를 해하는 행동은 없어져야 할텐데 사람들은 늘 제 중심적이라 탈입니다. 유해조수의 기준 또한 인간의 입장에서 내려진 거겠지요. 풀 한포기에도 나무 한 그루에도 곤충 한 마리에도 '더불어'라는 말이 함께 했으면 하네요.
판교에서 안양으로 넘어가는 길에 가끔씩 창설모가 도로를 넘나 드는 걸 본 적이있습니다.다람쥐를 본 것처럼 반가웠는데요.안타까운 마음입니다.참 다람쥐도 도토리를 먹어 치울테니 ..생각하면 남아 날 자연 동물들이 없을 것 같습니다.
황소개구리 구제처럼 생태계 교란종을 인위적으로 구제하는 일은 어떨까요? 며칠 전에 붉은 귀 거북을 집안에 기르는 아저씨가 텔레비젼에 나오던데, 그냥 두기도 껄쩍지근 하고, 잡아 없애자니 불쌍한 붉은 귀 거북은 어떻게 해야 하나요?
다음 글로 제 생각을 전해보도록 하겠습니다. 파괴된 생태계를 파고든 외래종은 생태계 복원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의미의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