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고선
제13회 산행일지 : 경북 문경시 동로면 황장산(황장목을 볼까요?)
일시 : 2003년 9월 27(토)
날씨 : 맑음
9월 27일 마지막 토요일을 정기산행일로 정한 것은 한 달 전 오대산을 다녀올 때였었는데 총무 김생곤 직장의 감사와 모친 생신일로 참석이 여의치 않게 되자 등고선 회장으로서 다소간의 갈등이 있었다. 결국 금도현과 상의하여 지금까지 계속된 정기산행을 건너뛸 수 없다는 결론을 얻고 산행을 예정대로 정한 날에 하기로 하고 식사준비는 금도현, 산을 정하는 일과 지도 및 코스준비는 내가 맡기로 하였다. 원래는 치악산을 계획하였었는데 시간을 다소 줄일 필요가 있어 황악산과 황장산, 대야산 등을 두고 고민 끝에 황장산으로 정하였다. 이번 등반에는 그동안 교회의 등반행사에서 자주 참석하였던 김이돌 집사가 동행하기로 하였다. 일들이 많았는데 마침 토요일 시간이 생기더라면서 남은 일들을 부인에게 맡기고 밝은 모습으로 집에 도착한 김이돌 집사는 새로 산 등산용 셔츠와 바지를 말끔하게 준비해 입고 왔다. 금도현은 안하던 식사준비를 하는데 신경이 많이 쓰이더라면서 총무없는 산행의 서운함을 묻혀내고 있었다.
9시 20분경, 다른 산행 때 보다는 다소 늦은 시간에 출발을 했다. 금도현은 새차인 산타페를 스튜디오 실장에게 빼앗긴 채 9인승 스타렉스를 가져왔다. 차 크기에 비하면 3명은 좀 단출하다. 구미, 상주를 거쳐 문경읍을 바로 앞두고 우측의 예천방향으로 길을 잡았다가 다시 곧 단양방향으로 신호를 받아 좌회전을 한 후 10여분 들어가면 우측으로 경천호가 있고 다시 5분여를 더 가면 적성리를 만난다. 지나는 길가 사과밭에서 일하시던 어른께 사과 몇 알을 구할까 했지만 후지품종이어서 아직은 먹을 수 없다며 주시지 않자 익은 것으로 보이는 두어 알을 따서는 배낭에 넣었다. 적성리에서 좌측의 동로방향으로 다시 5분여 들어가면 생달리를 지나 더 이상은 차로 갈 수 없는 버스종점인 안산다리 마을을 만난다. 여기가 안생달, 생달리의 안쪽이란 의미인 것 같다. 황장산의 등반은 대체로 이곳에서부터 시작된다. 코펠과 라이터를 금도현에게 확인하자 차로 뒤돌아가서 코펠을 다시 가져온다. 입구엔 거리표시도 없이 대뜸 황장산 1시간 50분, 해발 548m라고 적힌 녹색의 이정표가 나온다. 그 옆엔 백두대간에 해당하는 마패봉, 하늘재, 대미산, 황장산, 벌재 구간은 허락없이 출입 시 과태료 50,000원이란 표시가 붙어있다. 도대체 누구에게, 언제 출입 허가를 받으라는 것인지...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황장산을 등반할 때에는 이곳 입구 이정표에서 시작 방향을 잘 잡아야한다. 수해로 구분이 잘 안되지만 좌측의 작은 계곡을 건너서 큰길 방향으로 등반을 시작하는 것이 좋다. 우리는 우측의 또 다른 큰길로 진입하고 말았으니 오늘 우리의 방황은 처음부터 잉태되었던 것이다.
경운기가 다닐 정도의 너른 길은 곧바로 산길로 이어졌다. 좌측의 계곡은 건천으로 물이 돌들 속으로 흐르고 있는 듯 하였다. 10여분쯤 지나도 물이 나타날 기미가 없자 금도현은 물통을 내게서 받아 오던 길을 거꾸로 내려갔다. 곧 물소리가 우렁차게 들렸는데 이미 금도현은 시야에서 사라진 뒤다. 길가에 뿌려놓은 듯 많은 도토리를 줍기도 하며 10분여를 지나니 금도현은 땀을 쏟으며 PET병에 물을 가득 담아 돌아왔다. 내가 출력한 인터넷 자료에는 10여분을 지나면 폐광터를 만난다는데 폐광터는 보이지 않고 암괴류가 흘러내린 길처럼 돌들로 이루어진 지루하고 가파른 경사가 끊임없이 이어진다. 20여분이 더 지나면 만난다던 작은 차갓재 헬기장도 나타나지 않고 계속 힘들고 지리한 돌길이다. 금도현은 지난 한달간의 삶이 지치고 피곤하였던지 배낭을 김이돌 집사에게 맡기고도 힘들어한다. 마치 지난 해 황석산 정상 부근에서처럼 말이다. 김이돌 집사는 숨소리는 거칠지만 잘 오르고 있었다. 결국 쉬어가기를 두어 번 하자 앞쪽에서 거대한 바위가 나타난다. 배바위인가보다 했으나 확신할 수는 없었다. 높이가 족히 100여미터는 됨직한 이 거대한 바위를 왼쪽에 두고 우측으로 돌아 가쁜 숨을 몰아쉬며 안부에 오르니 12시 45분이다. 새콤하고 단맛의 밀감으로 새 힘을 내어 30여분 거리로 보이는 황장산을 향하여 다시 일어섰다.
이제부터는 비교적 편안한 능선 길이다. 간간이 바위 길을 만나기도 하고 우측의 능선들이 아름다우며 빼어난 모습의 소나무도 간간이 보인다. 황장산 정상 바로 못가서는 많은 시그널이 붙은 비교적 너른 길을 만난다. 이곳부터 좌우측으로는 백두대간이다. 황장산 정상은 좌측으로 3-4분 거리에 있다. 13시20분, 해발 1077미터의 황장산 정상에 닿았다. 정상에는 우측 벌재 3시간 10분, 좌측 대미산 3시간 10분, 안생달 1시간 30분이란 초록색 이정표와 대리석의 정상표지석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러나 정상 주위는 잡목들에게 시야를 가려서 주위 조망을 볼 수 없다. 물론 도락산 정상보다는 주변이 넓어 답답하지는 않다. 잠자리가 떼를 지어 정상 위를 높이 날고 있고 쑥부쟁이의 연보랏빛이 가을 하늘을 닮아 있다. 오늘은 백두대간 한가운데서 자리를 폈다. 금도현은 식사를 준비하였다. 김치는 마트에서 사왔고 밥은 아침에 직접 해서 가져온 모양이다. 식후엔 벌재방향으로 잠시 가서 사진을 찍고는 돌아와 하산 길에 오른다. 오후 2시 30분.
다소 답답하던 정상에서의 모습은 곧 가시고 바위와 시원한 조망이 좌우로 나타난다. 그리고는 곧 암릉을 만난다. 절경이다. 지금까지 별 말이 없던 김이돌 집사는 비로소 경치가 좋다고 한다. 황장봉산 봉산표석과 황장목을 기대하고 이곳으로 정했으나 사실, 정상까지만 하더라도 나 자신도 그리 만족할 만큼 마음에 차지는 않은 그런 저런 산으로 여겨져 일종의 작은 후회는 물론 특히 김이돌 집사에게 내심 미안한 마음이 슬그머니 들려고 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러한 우려와 작은 후회들은 이곳에서 눈 녹듯 하였다. 바위도 좋고, 소나무도 좋고, 좌우로 펼쳐진 능선의 봉우리 모습도 좋고, 노란 빛으로 물들기 시작한 발아래 펼쳐놓은 듯 산기슭들도 좋았다. 사진도 찍고 잠시 모습에 취했다. 가파른 바윗길에는 밧줄이 메어져 있으나 내려오기가 쉽지는 않은 듯 하였다. 암릉지대를 내려서면 약 5분여를 진행한 후 곧 좌측의 백두대간 길을 계속 따라야 했으나 앞서가던 금도현은 물론 맨 뒤의 나까지 갈림길을 놓치고 말았다. 마치 주흘산에서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10여분 이상을 하산하고 보니 좌측에 새로운 능선이 보이는 것이 아닌가. 분명 암릉지대에서 내려간 후 좌측 능선으로 내려서야 한다고 되뇌었지만 이미 길은 좁아져 있었고 많아서 발에 밟히기까지 하던 시그널들은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금도현에게 되돌아 올라가자고 했다. 오늘은 일몰시간도 빠르고 깊은 골짜기여서 지난 번 주흘산에서처럼 히치하이크를 할 형편도 안되는 것으로 보였다. 되돌아오며 우측방향으로 앞서 가던 금도현이 쓰레기를 발견한 모양이다. 아닌게 아니라 그 옆에는 우리가 가려던 주능선 길이 있었다. 30여분을 고생한 셈이다. 역시 이 길엔 시그널들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왜 우리가 이 길을 놓쳤는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암튼 이제 다시 제 길로 돌아오게 된 것은 다행한 일이었다. 반대편 길로 오던 중년의 단독 등반가를 만난 것은 4시 경이었다. 벌재까지 갈 예정이라 하였다. 여기서 벌재는 약 4시간 가량이 소요될 터인데 그러면 두 시간 이상은 야간 산행이 되는 셈이다. 물론 야간산행 준비는 갖추었다고는 하나 혼자로서는 쉬운 일은 결코 아니다.
10여분 후 도착한 곳은 작은 차갓재 헬기장이었다. 계속 직진을 하면 백두대간을 따라 대미산으로 가는 길이다. 여기서 좌측의 하산 길로 방향을 잡았다. 낙엽송, 잣나무가 좋고 조용한 분위기의 그런 등산로였다. 10여분 후 계곡을 만나자 김이돌은 거푸 두 잔의 물을 마셔댔다. 사실 오늘 여유있는 물의 준비가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다. 탁족. 곧이어 폐석들이 쌓여있는 폐광산을 만나고 다시 우리가 출발했던 지점으로 회귀하였다. 4시 50분. 배바위의 모습이 웅장하게 보였다. 그러니까 오늘 산행은 계획했던 등산로를 거꾸로 한 것이었다. 이런 예는 오늘이 처음이다. 돌아오는 길은 경천호에 이르기 전 좌측의 용문사(예천)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들판의 황금색이 해질녘의 햇살을 받아 눈이 부시도록 아름답다. 이제 갓 뿔이 나기 시작하는 정도의 송아지가 무거운 트럭용 타이어를 끌며 고삐를 잡은 촌부에게 싫은 듯 고개를 지켜들며 저항하는 모습이 보인다. 아마 싸움소로 키울 요량으로 어릴 때부터 훈련을 시키는가 보다 하고 생각했지만 어쩐지 그 송아지의 모습이 안쓰러워 오랫동안 망막에 아른거린다. 예천읍에서 열심히 찾아 군청앞 순두부찌게를 들었으나 전반적으로 식당선택과 메뉴선택은 실패. 사위어가는 중앙고속도로를 거쳐 대구에 안착하니 7시 30분경.
등고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