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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0월 4일 월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 일러두기 :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편집한 것이며 상업적 목적은 일절 없습니다.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본인의 성향과는 무관함을 알려 드립니다.
*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
[한국일보 사설-20101004월] 초고층 건물 화재 예방책 서둘러야
초고층 아파트ㆍ오피스텔ㆍ주상복합ㆍ오피스는 좁은 부지 위에 주거ㆍ사무 공간을 가능한 한 많이 확보하기 위해 짓는 건물이다. 국토는 좁고 인구 밀도는 높으니 초고층 건물 건축은 불가피한 흐름이자 한동안 계속될 수밖에 없는 현상이다. 그러나 기록 경쟁하듯이 초고층 건물이 높게 올라갈 때마다 화재 안전에 대한 불안감이 커진 것도 사실이다. 허술한 방재시스템, 부주의 등이 빚은 과거 대형 참사에 대한 기억 때문이다.
부산 우신골든스위트 아파트 화재 사건은 초고층 건물이 화재 안전지대가 아님을 새삼 일깨웠다. 인명 피해가 없어 그나마 다행이지만 하마터면 대형 참사로 이어질 뻔했다.
무엇보다 초고층 건물의 화재 안전 대책을 강화하는 것이 시급한 문제로 떠올랐다. 초고층 건물 화재에서는 소방 헬기, 고가 사다리차는 무용지물이나 다름 없다는 것이 이번 화재에서도 여실히 증명됐다. 37, 38층으로 불이 옮겨 붙어 소방관들이 다급하게 옆 건물로 올라가 소화전 물을 뿌린 뒤에야 불길이 잡히기 시작했다. 때문에 초고층 건물 화재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화재 발생 가능성이 있는 잠재 요인들을 사전에 제거하고 이중 삼중의 소방설비 및 안전시설을 설치ㆍ가동하고 점검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예방책일 것이다.
인구가 밀집한 초고층 건물은 자칫 작은 화재라도 큰 인명 피해를 낼 수 있다. 화재가 발생했을 경우 다른 층으로 옮겨 붙지 않도록 차단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선진국들은 초고층 건물에 불이 나면 화재 발생 공간만 타고 불이 꺼지게 하는 안전장치를 의무화하고 있다. 또 건물 높이 별로 확보해야 하는 중간 대피층, 대피 공간 등에 대해서도 엄격한 법규를 적용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 소방법, 건축법에는 관련된 규정이 없다. 마침 초고층 건물은 30층마다 대피층을 두도록 하는 관련법 개정안이 국회에 계류 중인 만큼 논의를 서둘러야 한다. 건축 비용 상승과 수요자 부담 증가 등의 우려가 없지 않지만 화재 예방을 위한 규제 강화는 더 미룰 수 없다.
[조선일보 사설-20101004월] 중국, 北 관련한 '현재 국익'과 '미래 국익' 가려야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주석은 2일 지난달 말 끝난 조선노동당 대표자회 결과를 설명하러 온 북 대표단에 "김정일 총비서를 비롯한 조선노동당의 새로운 중앙영도집단 영도하에 조선 노동당과 정부, 인민이 반드시 강성대국 건설사업에서 새로운 성과를 얻을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북 대표단을 이끈 최태복 노동당 비서는 "중국측에 회의 결과를 빨리 통보하는 것은 북한이 북중관계를 매우 중시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이 대표단을 보내 노동당 대표자회의 결과를 설명한 나라는 중국뿐이다. 세계와 담을 쌓고 사는 폐쇄국가, 그것도 핵무기 실험과 천안함 폭파 등으로 UN결의를 통해 경제 봉쇄를 당하고 있는 북한이 숨을 쉴 수 있게 공기를 공급해주는 유일한 파이프가 중국이다. 중국이 북한에 석유와 식량 등 체제 유지의 필수품을 공급해주는 파이프를 완전히 닫으면 북한은 머지않아 주저앉을 수밖에 없다. 이런 그림을 배경으로 후 중국 주석과 북한 대표단이 마주 앉은 모습을 떠올리면 그것은 종주국(宗主國)과 위성국(衛星國) 사이에 이뤄지는 현대판 책봉(冊封) 관계와 다를 바가 없다.
중국이 김일성 세습 왕조의 연명(延命)을 도와주고 있는 근본 이유는 북한이라는 완충 지대 없이 미국과 동맹을 맺고 일본과 우호관계를 유지해온 한국과 국경을 접(接)하게 되는 상황이 중국의 전략적 이익에 어긋난다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이 북한의 잦은 탈선과 이번처럼 세계의 비웃음을 받는 봉건적 권력세습을 부담스럽게 느끼면서도 그때마다 추인(追認)해주고 있는 이유는 혈맹(血盟)의 명분보다는 이런 실리 판단에 따른 것이다.
후 주석은 지난 8월 방중(訪中)한 김정일에게 "경제 발전은 자력갱생뿐 아니라 대외협력을 떠날 수 없다"고 충고했으나 북한은 이번에 개혁·개방의 시늉조차 하지 않고 권력 세습 의식(儀式)만 거행하고 끝내고 말았다. 중국도 낭패스럽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중국과 북한 사이에 존재하는 외형적(外形的) 상호 의존관계의 실상이 어떠한가를 냉철하게 꿰뚫어보고 중국에 시한부(時限附) 생명을 살고 있는 북한과 관련한 중국의 '현재 국익(國益)'과 '장래 국익'이 언제까지나 일치할 수는 없으리라는 점을 설득해 가면서 동북아의 큰 구도를 짜나가야 한다.
[서울신문 사설-20101004월] 국가기관 사찰·검열 과도한 것 아닌가
민간인 불법사찰로 물의를 빚었던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현 공직복무관리실)이 경찰청의 차적조회 전산망을 사용하는 것으로 어제 밝혀졌다. 한나라당 이성헌의원이 총리실로부터 받은 국감자료에 따르면 공직윤리관실은 2004년 6월 경찰청 전산망과 연결된 이후 공직윤리관실이 창설된 2008년 23회에서 2009년 382회로 16배 넘게 급증했다. 차적조회가 공직자의 부패·비리 등 공직기강 점검을 위한 것이라면 크게 문제될 것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대폭 증가된 조회 건수를 보면 차적조회도 불법사찰처럼 민간인에 대해서도 무분별하게 남용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게다가 총리실은 지난 7월 공직윤리관실을 환골탈태하겠다고 선언한 이후에도 차적조회를 계속했다고 한다. 이참에 직원이 마음만 먹으면 이름과 주소, 주민번호 등 개인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차적조회가 자칫 개인정보의 악용 남발로 이어지지 않도록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국가기관에 의한 과도한 우편검열도 걱정스러운 대목이다. 한나라당 김태환 의원이 우정사업본부에서 받은 국감자료를 보면 2005년부터 올 7월까지 국정원과 경찰청, 기무사 등 국가기관에 의한 우편검열은 3만 1000여건에 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국가기관이 ‘국가안보’, ‘범죄수사’를 목적으로 우편검열을 하는 것을 뭐라 할 순 없다. 하지만 통신비밀보호법 등에서는 안보 위험과 범죄 가능성이 명확한 경우에 한해 제한적으로 하도록 하고, 절차도 까다롭게 하고 있다. 문제는 이런 내용에 합당하게 우편검열이 이뤄지는가 하는 부분이다. 국감이 본격화되면 늘 도마에 오르는 통신 도·감청 실태도 제기될 것이다. 국가기관이 국민의 우편물을 검열하고 사찰할 때는 목적에 맞게 적법 절차에 따라야 한다. 국민의 인권을 보호해야 할 국가기관이 불법으로 국민들의 뒤를 캐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한국경제신문 사설-20101004월] 산적한 민생현안, 부실 국감 되풀이해선 안된다
국정감사가 오늘부터 3주일간의 일정으로 시작된다. 여당인 한나라당은 정책감사에 주력하겠다고 하고, 야당들은 문제가 있는 국정과제들을 조목조목 따지겠다고 벼르고 있다. 하지만 그동안 국무총리 후보자 인사청문회, 또 제1 야당인 민주당의 대표 선출문제 등으로 여야 모두 정작 국감을 위한 사전준비에 소홀했던 게 아니냐는 지적들이 많고 보면 과연 제대로 된 국정감사가 될지 벌써부터 우려스럽다.
국정감사는 말 그대로 국회가 정부 정책과 예산을 철저히 점검하고 정책적 대안을 제시하기 위한 장(場 )인데도 불구하고 실제로 벌어지는 국감 행태는 이런 취지와 너무 거리가 멀었던 게 사실이다. 치밀한 자료준비와 조사에 근거하기보다 정략적인 일회성 폭로가 난무하고, 이로 인해 여야가 본연의 국정감사는 제쳐둔 채 정치적 공방으로 시간을 다 허비해 버리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이번에도 그래서는 안된다.
무엇보다 이번 국감의 쟁점들이 너무나 많다. 주된 이슈가 될 것으로 보이는 4대강 사업, 공무원 특채 논란 외에도 서민금융 지원, 재정건전성, LH 등 공기업 부채, 전셋값, 배추값 등 농산물 물가, 대학개혁, 대 · 중기 상생, 저출산 및 복지 문제 등 일일이 열거하기도 어려울 정도다. 특히 민생과 경제, 서민과 직결되는 사안이 대다수인 만큼 이번 국감의 중요성은 그 어느 때보다 클 수밖에 없다.
문제는 국회가 이번 국감을 통해 얼마나 국민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줄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점이다. 우리는 짧은 기간 동안에라도 국감다운 국감이 되기 위해서는 국회의원들이 건수 위주로 접근하기보다 무엇 하나라도 철저히 짚어 반드시 시정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그렇지 않고 과거처럼 부실자료에 의존해 '아니면 그만'이라는 식으로 나가버리면 또다시 하나마나한 국정감사, 무책임한 국정감사만 되풀이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아울러 각 분야에서 쟁점들이 수시로 쏟아지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상시적 국감체제를 모색할 때가 됐다는 의견에도 국회는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그만큼 국민들은 내실있는 국정감사를 원하고 있다.
[서울경제신문 사설-20101004월] 자율경영 역행하는 '서민대출 할당'
은행들이 자의반 타의반으로 저소득 저신용 계층을 위한 새로운 서민대출 상품 출시를 앞두고 자율경영을 침해하는 포퓰리즘적 발상이라는 논란이 거세다. 은행들은 지난해 기준 영업이익의 10% 수준에서 매년 목표액을 설정해 대략 연소득 4,000만원 이하 서민들을 대상으로 햇살론과 같은 금융 서비스를 내놓기로 했다.
문제는 이 같은 서민대출 계획이 한나라당 서민대책특별위원회가 은행 측을 압박해 충분한 논의도 없이 서둘러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지면서 은행의 경영자율성과 시장논리를 무시한 포퓰리즘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는 점이다.
새로운 서민대출은 은행연합회가 최근 여당에 제안한 '은행 영업이익 10% 서민대출 할당방안'에 따른 것으로 조만간 은행장 협의를 거쳐 최종안이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이렇게 되면 1조원 안팎의 자금이 서민대출로 풀릴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은행연합회의 방안은 한나라당 서민특위가 서민대출 지원을 강제하는 법안을 입법화하는 것을 피하기 위한 고육책에서 비롯된 것이어서 사실상 정치권의 압박에 의한 울며 겨자먹기식이라는 지적이다. 은행권은 이미 서민대출 상품인 희망홀씨대출을 통해 현재까지 35만명에게 총 2조3,000억원 이상을 지원하고 있다. 또 미소금융에도 단계적으로 자금지원을 확대해나갈 계획이다.
금융 서비스를 이용하기 어려운 서민들을 위해 은행 등이 대출을 늘리는 것이 나름대로 의미가 없지는 않다. 그러나 주주와 예금주의 이익보호를 우선해야 할 은행에 정치권이 압박을 가해 반강제적으로 서민대출 상품을 만들도록 한 것은 시장논리를 훼손한 관치금융이나 다름없다는 점에서 문제가 많다는 지적이다. 특히 은행연합회가 이번 서민대출방안을 추진하면서 회원 은행들과 충분한 협의를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되고 있다.
서민대출이 불가피한 경우라도 영업이익 10%에 맞추는 목표할당식으로 이뤄질 것이 아니라 은행들이 자율권을 갖고 운용하도록 돼야 한다. 아울러 서민대출로 은행의 건전성이 악화되지 않도록 대출심사 기준이나 회수계획 등 리스크 관리 강화를 통해 대출자들의 모럴해저드를 최소화하는 장치도 마련돼야 한다. 저소득층 지원을 비롯한 서민대책을 금융기관이나 기업 등 민간 부문에 떠넘길 것이 아니라 정부의 소득정책을 통해 추진해야 한다.
* 오늘의 주요 칼럼 읽기
[한겨레신문 칼럼-권태선 칼럼/권태선(논설위원)-20101004월] 국가주도 시민교육 안 된다
장관의 딸 특혜 채용 논란을 빚은 외교통상부에 대한 특별감사 결과, 요지경 속 같은 특권층 자녀 특채 과정이 드러났습니다. 자격 미달인 사람을 뽑기 위해 면접위원을 자의적으로 선정하는 등 온갖 편법을 동원했고 그렇게 뽑힌 특권층 자녀들이 미국·일본 등 인기 재외공관을 차지했습니다. 이런 그들의 행태에선 우리 사회 주도층으로서 마땅히 가져야 할 책임감은커녕 게임의 규칙을 지켜야 한다는 일반적 시민의식조차 발견할 수 없습니다. 문제는 이것이, 총리 등 고위공직 후보자의 인사청문회에서 거듭 확인되듯이, 우리 사회 기득계층의 공통적인 인식행태라는 점입니다.
이런 상황을 고려할 때 교육과학기술부가 전국 초·중·고생들에게 ‘민주시민교육’을 하겠다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일 수 있습니다. 특히나 학생인권조례와 체벌 금지가 화두가 되는 지금 교육 현장에선 학생들의 민주적 책임감과 배려의 정신이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바로 옆의 친구조차 적으로 인식하게 만드는 경쟁 위주의 교육 탓에 우리 아이들의 공동체에 대한 책임감과 배려심은 아주 낮습니다.
이를 고려해 교과부가 학생 주도의 학교행사와 동아리 활동을 활성화하고, 학칙 제정과 학교운영위원회의 의사결정 과정에 학생들의 참여를 장려하며 토론·참여형 수업을 강화하겠다는 것은 올바른 일입니다. 하지만 교과부의 안에는 우려스런 대목도 없지 않습니다. 범정부 협의체로 시민교육을 독점하면서 애국주의를 강조하고 학칙 준수 서약 캠페인까지 거론하니 말입니다. 국민교육헌장을 강제로 외워야 했던 권위주의 시절이 연상된다면 지나친 피해의식일까요?
미국·독일·프랑스 등 이른바 선진국도 시민교육을 중시합니다. 그러나 정부가 홀로 좌지우지하진 않습니다. 국가가 독점하면 국가이데올로기 교육으로 변질될 위험이 있음을 아는 까닭입니다. 그런 점에서 시민교육으로 정평이 난 독일을 참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나치즘의 국가주의 폐해를 절감했던 독일은 1952년 연방정치교육원을 만들고 시민교육을 시작했습니다. 시민들의 정치·사회 문제에 대한 비판적 사고능력을 키워 민주정치에 능동적으로 참여하게 만들기 위해서였습니다.
교육원은 연방 내무부 산하에 있지만 철저하게 독립적으로 운영됩니다. 교육의 기본 사안은 내무장관이 임명한 전문가들로 구성된 학술고문단이 정하며, 교육원 사업의 정치적 중립성 등을 감독할 감독위원회를 둡니다. 위원회는 각 정당이 추천한 연방의원으로 이뤄지며 감독은 보이텔스바흐협약이란 시민교육의 기본원칙을 기준으로 합니다. 교육과정에서 강압과 교조화를 금지하고, 균형적·대립적 논점을 확보해 피교육자가 비판적 검토를 거쳐 스스로 최종적 결론에 이를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원칙입니다. 이는 서로 다른 견해의 존재를 알고, 거기에 비춰 자신의 생각을 비판적으로 검증하면서 타협의 정신을 가꿔나가는 것이 민주주의의 바탕이 된다는 생각에 터잡은 것입니다. 이런 시민교육 덕에, 독일은 국가주의의 망령을 걷어내고 모범적인 민주국가로 거듭날 수 있었습니다.
일류 선진국가에 걸맞은 시민 양성이 민주시민교육의 진정한 목표라면 정부가 교육과정과 내용을 모두 통제하겠다는 생각부터 버려야 합니다. 교과부와 함께 우리 교육을 이끌고 있는 시·도교육청은 물론 시민사회와 민간 전문가까지 망라하는 협치의 틀을 만들고 독일의 보이텔스바흐협약과 같은 기준을 마련해 시민교육의 내용과 방법을 함께 만들어가야 합니다. 그렇게 한다면 그 과정 자체가 우리 사회 전반의 민주주의와 시민의식을 한 단계 끌어올리기 위한 학습의 과정이 될 것입니다. 근현대사 교과서 파동처럼, 정부나 기득계층의 견해와 조금이라도 다른 의견은 용납하지 않는 편협함을 고집하면서 정부가 모든 것을 다 하겠다고 해서는 대화와 타협을 통해 사회적 분열과 갈등을 치유해 나가는 민주시민을 키울 수 없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동아일보 칼럼-김순덕 칼럼/김순덕(논설위원)-20101004월] 똥돼지와 천민
짐작은 했지만 해도 너무했다. 지난 주말 행정안전부가 발표한 외교통상부의 고위층 자녀 특채 진상은 청년 백수뿐 아니라 자식 가진 부모까지 절망하게 했다. 딸에 이어 사위까지 챙긴 전직 외교관은 21세기적 ‘장한 어버이’상을 새롭게 구현한 모습이다. 바야흐로 엄친아(엄마 친구의 아들)를 들먹이며 자녀 닦달하는 시대는 갔다. 명절 때도 부모 볼 낯이 없어 고향에 못 온다던 무권무직(無權無職) 자식에게 이젠 ‘부모 잘못 만나게 해준 죄’를 빌게 생겼다.
* 공직자 도덕성이 의심스러운 나라
‘족벌주의(nepotism) 스캔들이 남한에 출몰했다’는 지난주 중국의 신화통신 영문판 기사를 보면 우리끼리는 다 아는 얘기여도 낯이 뜨거워진다.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의 딸 특채로 워낙 공직자의 도덕성에 대한 의구심이 뿌리 깊은 이 나라에 파문이 계속 번지고 있고, 여론조사마다 사회 공정성을 믿는다는 사람이 거의 없다. 이명박 대통령이 천명한 '공정한 사회’의 허구성을 드러냈다는 지적도 나온다. 외교 수장이 결국 나라를 망신시키는 아이러니를 빚은 셈이다. 꼭 한 달 전 ‘부정 특채’ 사실이 밝혀진 그의 딸은 전국에 ‘똥돼지’ 스캔들을 퍼뜨린 주인공이 됐다.
똥돼지란 부모 ‘빽’으로 정부기관이나 공기업, 대기업에 특혜 채용된 고위공직자 자녀를 말한다. 이런 특채가 너무 많아서 전담팀까지 둔 한 기업 인사팀에서 쓰는 은어라고 한다. ‘낙하산’ 같은 말은 차라리 소박하게 느껴질 만큼 노골적 경멸과 반감이 배어난다.
이번 특채 감사는 외교부만 대상이었지만 지난 10년간 정부가 특채한 공무원 수가 같은 기간 전체 공무원 채용의 40%다. 2005년 말 부처별 자율 특채가 가능해지면서 ‘관계자’가 아니면 언제 특채 공고가 난 줄도 모르고 지나가는 판에, 온 나라를 들쑤신 똥돼지가 달랑 외교부에만 열 십(十)이라는 건 믿기 어렵다.
행안부가 지난 5년간 중앙부처 5급 특채에서 적발한 부적절 사례가 11건이라는 것도 정부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린다. 외교부에서만 열 건이 뒤늦게 드러났는데 그동안 감사를 어떻게 했기에 고작 11건인지 의문이 생긴다. 김황식 총리가 한 달 전 감사원장 시절에 밝힌 중앙정부와 지자체 인사비리 특별 감사 계획은 지금도 진행 중인지도 걱정스럽다.
팔이 안으로 굽는 것처럼 족벌주의는 인간 본성일 수 있다. 이지서베이가 최근 직장인 681명에게 물은 조사에서 직장인 넷 중 하나가 “낙하산과 근무 경험이 있다”고 밝혔듯 사람 사는 세상 어디에나 빽으로 입성한 사람은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 공직에 족벌 특채는 부패행위다
그러나 국민세금으로 봉급 받는 공직은 달라야 한다. 국가기관을 사유물로 여기고 제 자식을 통해 세금을 빼돌리는 일종의 부패행위다. 규정을 멋대로 어기고 자녀를 집어넣은 공직자 때문에 더 유능한 공복(公僕)이 될 수 있는 사람이 밀려났으니 국리민복에 해를 끼친 국정농단이 아닐 수 없다. 구글 영문판으로 최근 족벌주의 기사를 검색하면 우리나라를 빼곤 거의 아프리카 파키스탄 이라크 같은 후진국 기사니 나라 위신을 추락시킨 죄도 면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용서하기 힘든 대목은 신분제를 부활시켜 이 땅의 보통 부모들에게 죄책감을 안긴 것이다. 헌법은 ‘사회적 특수 계급의 제도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어떠한 형태로도 이를 창설할 수 없다’고 했다. 유 전 장관처럼 딸이 받은 특혜가 특혜라는 개념도 없이 단지 능력이 있어 뽑혔다고 믿고, 심지어 잘못을 안 지금도 국정감사 불출석을 고집하는 건 전형적 특권층의 모습이다.
부모들이 낙담하면 젊은 세대라도 낙관적이면 좋으련만, 매사에 비판적인 그들은 한술 더 뜬다. 지방대 의대에 다니는 한 여대생은 “우리 학교에선 부모가 의사이면 성골, 친척이 의사이면 진골, 아는 사람 중 의사가 있으면 육두품, 비빌 언덕 없이 의대에 간 자기 같은 사람은 천민”이라고 말해 자식 의대 보내놓고 뿌듯해하던 부모의 억장을 무너뜨렸다. 이젠 부모가 고위공직자이면 성골, 사회적 배려대상자이면 진골, 여야가 앞 다퉈 마련한 혜택을 받게 된 서민이면 육두품, 이도저도 아니면 천민으로 살아야 할 모양이다.
행안부의 특채 일괄처리 방침에 따라 최소한 현 정부내 중앙부처에선 공직자 자녀 특채 비리가 사라진다면 다행이다. 하지만 중앙정부의 감독이 미치지 못하는 사각지대에선 계속될 수 있다.
실제로 가능하든 가능하지 않든, 능력과 노력에 따라 개천에서 용 날 수 있다는 희망이 ‘코리안 드림’이었다. 성골부터 천민까지 사교육에 매달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공교육이 획기적으로 달라진대도 공직자만 대대로 부귀영화를 누리는 한, 성골 아닌 국민은 희망을 갖기 힘들다. 진짜 실력이 있어 공직에 들어온 공직자 2세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서라도 똥돼지 여러분은 자진해서 떠나주었으면 좋겠다.
[중앙일보 칼럼-분수대/신예리(논설위원)-20101004월] 믿음의 이유
사람의 믿음만큼 믿을 수 없는 게 또 있을까. 마음 가는 이는 그저 무턱대고 믿어버리니 말이다. 양귀비와 안록산을 무한 신뢰한 당 현종이 그랬다. 명백한 불륜의 증거 앞에서도 둘에 대한 사랑이 눈과 귀를 가렸다. 어느 날 밤 술을 마시다 양귀비의 옷이 흘러내려 가슴이 얼핏 드러나자 현종이 어루만지며 말했다. “부드럽고 따뜻한 것이 막 나온 육계(肉鷄) 같구나.” 그러자 곁에 있던 안록산이 냉큼 토를 달았다. “매끄러운 것이 마치 연유(煉乳)가 응어리진 것 같습니다.” 직접 만져보지 않았다면 절대 할 수 없는 소리 아닌가. 하지만 현종은 개의치 않고 웃어넘겼다. “과연 오랑캐 출신답구나. 그저 연유밖에 모르다니.” (샤오춘레이, 『욕망과 지혜의 문화사전, 몸』)
로마의 다섯 현제(賢帝) 중 한 사람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역시 사랑하는 아내를 무조건 믿었던 순정파로 호가 났다. 아름다운 황후 파우스티나가 여러 사내와 바람 피우고 다니는 걸 온 나라에 모르는 이가 없을 지경인데도 결코 의심치 않았다. 외려 황후의 연인들에게 고위 관직을 하사했는가 하면 30년에 걸친 결혼 생활 내내 흔들림 없는 애정을 과시했다. 그 유명한 그의 『명상록』에도 정숙한 반려자를 주신 신들에게 감사한다고 썼을 정도다. 황후가 세상을 뜬 뒤엔 원로원에 간청해 여신의 반열로 올려 신전에 모시기까지 했다.
다들 상대가 믿을 만해서 믿은 게 아니라 믿고 싶으니까 믿어버린 거다. 이처럼 얼토당토않은 사람의 심사를 버트런드 러셀은 예리하게 간파했었다. “인간은 경솔한 신념의 동물이다. 신념에 대한 토대가 없어도 일단 믿고 만족한다. 그러곤 믿음에 따라 움직이려 한다.” 자신의 믿음에 반하는 증거는 철저히 무시해버리고 믿음을 확인해줄 수 있는 증거를 찾아 헤매는 이른바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이다.
반대로 마음에 들지 않으면 덮어놓고 믿지 않는 게 사람이다. 검찰 수사로까지 번진 힙합가수 타블로의 학력 위조 논란도 그렇다. 최근 한 방송 프로그램이 미국 스탠퍼드대 관계자들을 만나 그의 재학 사실을 증명하는 근거들을 제시했다. 그럼에도 인터넷엔 짜깁기 설 등 의혹의 목소리가 여전하다. 타블로 스스로 예견했듯 “못 믿는 게 아니라 믿기 싫어서” 그럴 테니 의혹이 쉬이 잦아들 것 같지 않다. 믿음과 믿지 않음의 분란 가운데 끼인 진실이 딱할 뿐이다.
[경향신문 칼럼-여적/김태관(논설위원)-20101004월] 음향 대포
강에 수류탄 같은 폭탄이 터지면 물고기들이 허옇게 떠오른다. 이때 물고기들은 파편에 맞아 죽은 것이 아니다. 엄청난 폭음의 충격으로 고막이 터져 떼죽음한 것이다. 그러면 인간은 어떨까. 대포소리와 같은 굉음이 바로 옆에서 터지면 물고기처럼 죽게 될까.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 그 답을 엿볼 수 있다.
영화 초반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참가한 밀러 대위(톰 행크스)는 갑자기 멍한 모습을 보인다. 요란한 총격전의 현장에서 그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듯 정지화면처럼 꿈쩍을 않는다. 이는 영화의 표현 기법이기도 하지만, 의학적으로는 감각 공동(空洞)현상이다. 강력한 폭발음에 의해 청각 및 신체가 일시적으로 마비된 것이다. 귀를 찢는 굉음은 인간의 행동까지도 마비시킬 정도로 그 위력이 엄청나다.
소리는 때로 흉기이자 무기이다. 옛날부터 소리는 창칼 못잖은 또 하나의 보이지 않는 병기였다. 사면초가(四面楚歌)라는 고사성어는 적군의 함성에 항우 같은 장수도 사기가 꺾였음을 알려준다. 구약성서를 보면 여호수아의 군사들이 뿔피리를 일제히 불자 여리고성이 무너졌다고 한다. 성서에는 더 희한한 이야기도 나온다. 이스라엘 여호람왕 시절 아람 군대가 사마리아성을 포위했을 때다. 성문 밖에 있던 나병환자 넷이 먹을 것을 찾아 아람군의 진지에 갔다. 그런데 가보니 진지가 텅 비어 있었다. ‘병거 소리와 말 소리와 큰 군대의 소리(열왕기하 7장)’를 환청으로 들은 아람군사들이 겁을 먹고 모두 도망가버렸던 것이다.
적군의 소리만이 공포를 자극하는 것은 아니다. 과도한 소음 또한 인간의 심리를 극도로 예민하게 만든다. 심리학자들에 따르면 칠판을 긁는 날카로운 소음은 사람에 따라서는 살의(殺意)까지 불러일으킨다고 한다. 실제로 학교폭력과 교실의 소음 수치는 비례한다는 연구논문이 나와 있기도 하다.
경찰이 ‘음향 대포’를 시연했다고 한다. “날카로운 물체가 고막에 꽂히는 듯해 두통에 시달렸다”는 게 한 참석자의 말이다. 실제로 이 장비는 자칫하면 귀가 멀 정도로 위험하다. 그러나 더 위험한 게 있다. 시위진압을 위해서라면 안전성 논란쯤은 깔아뭉갤 수 있다는 경찰의 막무가내이다. 시민의 걱정 소리를 못 듣는 걸 보니 경찰의 귀는 이미 음향 대포에 멀었는가.
[매일경제신문 칼럼-매경춘추/한영실(숙명여대 총장)-20101004월] 소중한 `정신의 그릇`
`찬바람은 어느 서슬엔가 사람들 마음에 부딪쳐 와서 서러운 추억의 현(鉉)을 건드려 주는 가을이다.` `얼마 되지 않아 달은 솟을 것이다. 낙엽이 날아 내린 별당 연못에, 박이 드러누운 초가지붕에, 하얀 가리마 같은 소나무 사이 오솔길에 달이 비칠 것이다….` `토지`에서 마을을 보는 구천의 마음을 묘사한 글이다.
주말이나 시간이 날 때면 옛 소설을 읽는다. 꼬까옷, 잠방이(짧은 홑바지), 몽당비(닳아버린 빗자루), 나비잠(갓난아이가 두 팔을 머리 위로 벌리고 자는 잠)…. 가슴이 저려올 만큼 아름다운 우리말을 보면 어릴 적 외가에서 할머니 무릎을 베고 누워 한껏 사랑을 받을 때와 같은 충만감이 든다. 박경리 선생님도 돌아가시고 이제 누가 이렇게 아름다운 우리말로 얘기를 써줄까. 우리 아이들이 이런 글을 읽을까. `꿍디꿍디, 아틸리싸이 치카타, 삐리빠빠 빼르빠빠, 파이야….` 해독 불가인 요즘 인기 가요 가사를 들으며 걱정은 더욱 깊어진다.
하긴 우리 세대도 부모님께 `혼 빠진 노래`를 듣는다고 꾸중을 들으며 컸다. 하지만 `가나다라마바사아자차카타파하~~에해 으해 으해 으허허…` `자아~~떠~나자 고래 잡으러어~` 그 노랫말은 얼마나 순진하고 건전했는지 모른다.
올해로 세종께서 우리 글을 만드신 지 564년, 조선어연구회가 `가갸날(한글날)`을 정한 지 84주년이 됐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말 6800여 종 가운데 한글과 같은 고유문자는 겨우 300여 종에 불과하다. 말을 종이에 옮겨 기록하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귀한 일인지 알 수 있다. `훈민정음`은 1997년 유네스코로부터 세계적 가치가 있는 기록유산으로 지정됐다. 외국 언어학자들은 우리 한글에 대해 `위대한 지적 유산` `최고의 알파벳`이라고 극찬하는데 막상 우리는 이유 없이 줄이고, 비틀고, 바꾸어 외계인 암호처럼 만들어 쓰고 있다.
언어는 `정신의 그릇`이다. 영국 철학자 토머스 홉스는 `언어가 없었다면 사람들 세계는 사자나 곰이나 이리의 세계와 다를 바 없는 상태가 됐을 것`이라고 했다.
언어를 훼손하는 것은 인간 특권을 버리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영화, 소설 등과 같이 언어가 주체가 되는 작품이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떠오르는 이 시대에 언어는 다이아몬드 광산보다도 더 귀하게 관리해야 할 재산이다. 한글날 하루만이라도 오염된 우리말을 대청소하고 잊힌 아름다운 우리말 찾기 운동을 벌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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