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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인의 노선과 에노스의 노선
1. 가인과 아벨의 이야기(창 4장)
1) 이브가 가인을낳고 난 뒤 "내가 주께로부터 남자를 얻었다."(창 4:1 흠정역) 라고 말하였다. 여기서 그녀는 이 아기가 창세기 3:15 말씀의 성취임을 느꼈음이 명백하다. 그녀는 곧 잘못 알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뒤를 이어 아벨이 출생했다.(창 4:2).
2) 가인의 의미는 “얻었다”이고, 아벨의 의미는 “공허”하다이다. 아마도 창 3:15절 말씀의 성취로 기쁨에서 아들을 얻어다는 의미로 가인을 나았으나, 그는 부모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아들이었을 것이다. 결코 그가 사탄의 머리를 상하게 할 능력있는 아들로 자랄 자질없음을 보고 인생의 허무함을 아담은 많이 느끼게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가운데 아벨을 낳았었던 것 같다.
3) 이 두 아이의 출생은 하나님이 인간을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하는데 부여한 네 가지 방법 중에서 4번째 방법이다.
(1) 아담 - 부모 없이 탄생
(2) 하와 - 어머니 없이 탄생
(3) 그리스도 - 아버지 없이 탄생
(4) 다른 모든 인간 - 부모에 의해서 탄생
2) 가인은 ‘피없는 헌물(bloodless offering)’을 드렸다가 거절당했다(창 4:5). 그 헌물은 피 없는 제물이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이미 저주한 헌물이었다. 가인은 땅에 피해를 입힌데다가 땅을 모욕하기까지 했다(참조, 창 3:17). 그는 피 있는 짐승의 헌물보다 신선한 과실과 야채가 훨씬 세련되고 좋은 헌물로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어떤 길은 사람의 보기에 옳으나 그 끝은 사망의 들이니라"(잠 14:12 흠정역).
이 말씀 가운데서 피 흘림이 없이는 죄사함이 없다는 위대한 성서적 진리의 첫 선언을 발견하게 된다(참조, 레 17:11;히 9:22).
"율법에 따라 거의 모든 것이 피로써 깨끗하게 되나니 피 흘림이 없은즉 사면이 없느니라"(히 9:22 흠정역).
아벨은 양의 헌물을 드려서 열납되었다(창 4:4). 반 하우스(Barnhouse) 박사는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이제 십자가를 향한 탄탄 대로는 활짝 열렸다. 여기 첫 양이 나타났는데, 그것은 한 사람을 위한 한 마리의 양이다. 그후 유월절에 한 세대를 위한 한 마리의 양이 있게 된다(출 12장). 그리고 속죄일에 한 나라를 위한 한 제물이 있게 되며(레 16), 마지막 하나의 제물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그리스도이다'(요 1:29).
그리하여 이것은 피 흘리는 양의 놀라운 능력을 설명하는 하나님의 방법이 되었다. 한 마리의 양이 한 사람, 한 세대 그리고 한 민족을 구하고, 최종적으로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 온 세상을 구원하게 된다.
3) 하나님께서 가인이 드린 헌물에 관심을 갖지 아니하자 그는 몹시 분하여 침통해하였다(창 4:5) 이러한 가인의 육신적인 반응은 육체의 일의 결과가 분노와 시기임을 가리킨다. 벌써 안색이 변했다는 말은 그 일에 자신의 노력과 열심이 들어간 것이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일은 그분의 인도에 따라 순종하기만 하면 되고 거기에 자신의 욕심이나 기대나 보상이 게재되지 않으나, 여기서 가인은 헌물을 드리는데 있어 아벨처럼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법으로 믿음과 순종에 따라 드린 것이 아닌 자신의 노력과 힘과 열심히 들어간 것이다. 그러므로 거기에는 보상에 대한 기대도 있었을 것이고 자신의 생각대로 결과가 나오지 않자 분이 나고 안색이 변했던 것이다.
·주 : 만약 여러분의 사역이 십자가를 거친 아벨의 원칙에 속한 일인지, 아니면 가인의 원칙에 입각한 일인지 점검해 보려면, 여러분이 성취하려던 그 일이 누군가의 방해나 걸림돌로 인해 좌절되었을 때 당신 속에 일어나는 느낌과 태도를 보면된다. 그때 여러분의 안색이 변하고 분이 나거나 혹은 낙심하여 물러선다면, 그것은 모두 가인의 원칙에 따라 사역하고 있었던 것임을 증명해 주는 것이다. 진정으로 주와 함께 죽은 자의 위치에서 일하는 자들은 성령 외에 어떤 육신적인 느낌도 일어나지 않는다.
4) 하나님은 말씀에 근거하지 않은 헌물을 기뻐받으실 수 없으셨지만, 여전히 가인의 육신적인 사람의 반응에 대해 긍휼이 가득함을 보게된다.
하나님께서는 가인이 분하여 하는 것과 안색이 변한 것이 잘못된 영성의 표시임을 알기 원하셨다(창 4:6). 그리고 가인의 일이 하나님의 계시와 뜻에 따른 일이 아니었음을 알려주시는 동시에 다시 돌이켜 온전케 되는 길을 알려주신다. “네가 잘 행하면 어찌 너를 받지 아니하겠느냐?” (창 4:7a 흠정역) 즉 이 뜻은 하나님께서 가인에게도 계속 긍휼의 말씀을 주고 계시는 것이며 제대로 행하면 그 또한 받아줄 수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계시는 것이었다.
창 4:7절 말씀에서 이제 “죄”라는 단어가 성경에서 처음 등장한다. 여기서 죄는 히브리어로 ‘카타트’ 즉 ‘카타(빗나가다, 과녁을 맞추지 못하다)’에서 유래하였다. 그런데 카타는 활을 쏜 자가 자기 과녁을 제대로 맞추지 못하고 빗나간 상태나, 가야할 길을 바로 가지 아니하고 정도에서 벗어나 방황하며 넘어지는 상태를 묘사하는 말이다(삿 20:16, 욥 41;7, 잠 19:2 참조).
그런 의미에서 성경이 말하는 죄는 하나님이 설정하신 목표에 이르지 못한 모든 행위, 그리고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나 방황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성경에서의 죄는 인간과 인간 관계에서 빚어지는 부조화를 가리키는 상대적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의 기준이란 잣대로 판단되는 절대적 의미를 지닌다. 우리가 지은 모든 죄를 하나님 앞에 나아가 회개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ㅗ 여기에 있다. 따라서 다윗은 자기의 죄를 하나님 앞에서 철저히 회개하므로써 죄 용서함을 받았다(참조, 시 51:4).
특히 여기서는 “죄가 문에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창 4:7b 흠정역) 는 표현으로 보아 죄의 심각한 영향력을 나타내며, 따라서 매우 조심해야 함을 미리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가인이 돌이켜 선한 마음을 갖지 않고 계속 악한 마음 상태를 고집한다면 죄에게 붙잡히게 된다는 경고이다. 특히 엎드리다는 짐승이 웅크리고 있는 모양을 묘사하여 죄의 본성인 사탄이 사람의 마음 문 앞에 엎드려서 사람의 마음을 주관할 기회를 엿보고 있다. 사람의 마음 속에 선한 성향이 없으며 사탄은 그 사람을 주관하기 위해 역사하기 시작하며, 타락한 사람은 언제나 뱀의 요소인 죄가 마음 문 앞에 웅크리고 앉아서 악한 성향만 띠면 붙잡아 주관하여 죄를 짓게 하려고 기다리고 있다. 그러므로 가인에게 죄의 소원이 있음을 알려주시는 말슴이고 죄를 다스려야 함을 일깨우시는 말씀이다. 인간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그 속에 죄의 욕망을 갖게 되었다. “너는 죄를 다스릴 것이니라.”(창 4:7c 흠정역)
5) 가인이 그의 동생을 살해했다. 가인은 이제 첫 살인자가 되었다(창 4:8). 그리고 또한 그는 인간으로서 첫 거짓말쟁이가 되었다(참조, 창 4:9).
가인이 처음에는 하나님께 제사하는 좋은 일로 시작하였지만, 그것이 육체의 행위에 의한 것인 이상 돌이키지 않을 경우 이렇게 심각한 죄악을 발전될 수 있음을 암시.
여기서 가인은 더 나아가 하나님께서 죽인 아벨이 어디있느냐는 질문에 감히 직접 하나님을 향해 거짓말까지 하게 되었던 것이다.
6) 가인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지 못하게 되었다. 가인은 그의 여동생 중 하나와 결혼했다(창 4:17;5:4). 그리고 놋 땅에 거했다. 그러면 이제 지구의 최초 문명에 관하여 기록된 몇몇 사실들을 관찰하여 보자.
(1) 가인은 첫 성을 쌓고 그의 아들의 이름을 따서 에녹이라 했는데, 그 뜻은 "헌신(dedication)"이다. 이 도시 계획은 의심할 것도 없이 창 4:12에 있는 하나님의 저주에 저항하기 위한 하나의 시도이다.
“네가 땅을 갈아도 이후로는 땅이 그 효력을 네게 내지 아니할 것이요, 네가 땅에서 도망하는 자가 되고 방랑하는 자가 되리라, 하시매”(창 4;12 흠정역)
·주 : 분명 하나님께서는 가인이 이 땅에서 유리하게 될 것이라 하셨지만 가인은 보란 듯이 정착된 삶을 살고자 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놋’은 ‘방황’을 뜻하는데, 그는 육신적으로는 놋 땅에 거하며 성을 쌓고 정착하였지만, 정신적으로는 안식이 없이 끝없이 방황하였다.
(2) 라멕 - 가인의 5대손
① 기록상으로 첫 일부다처 주의자로 되었다(창 4:19).
② 기록상으로 첫 노래 작자가 되었다(창 4:23에 "말"이란 단어는 아마 시나 민요를 일컫는 말일 것이다).
③ 기록상 둘째 살인자가 되었다(창 4:23).
(3) 야발은 장막의 발명자가 되었고, 유목생활을 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는 또한 양 외에 가축 및 상업용으로 동물을 기르는 공식 제도를 고안했다. 그의 이름의 뜻은 "방랑자"이다(창 4:20).
(4) 유발은 수금과 퉁소의 발명자가 되었는데, 그의 이름의 뜻은 "소리"이다(창 4:21).
(5) 두발가인은 구리와 쇠를 다루는 야금사가 되었다(창 4:22).
7) 가인의 후예들에 대한 고찰
(1) 가인의 후예는 에녹, 이랏, 므후야엘, 므드사엘, 라멕, 라멕의 세 아들인 야발, 유발, 두발가인 등이다. 므후야엘이나 므드사엘은 하나님을 의미하는 ‘엘’자를 이름에 갖고 있는데, 이는 가인의 후예들이 비록
하나님의 면전을 떠났지마 여전히 하나님을 그 이름이라도 저버리지 않으려고 한 것 같다.
(2) 그러나 일단 하나님을 떠나며 이름만이라도 붙잡고 있으려 하는 노력은 부질없는 것이 되어 버린다. 이름 자체로는 에녹도 좋은 이름이지만 이 에녹은 하나님과 300년 동안 동행한 에녹과는 다른 에녹으로서 가인의 아들이다.
(3) 가인의 휴예들은 이름은 나무랄 것이 없었지만 그들은 하나님과는 전혀 관계없는 삶을 영위하고 있었다. 그들 가운데 두드러진 인물이 ‘라멕’이다.
그 이름은 ‘능력있는’, ‘정복자’를 의미하며, 가인의 후예 가운데 능력있는 인물로서 두 아내를 취하였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부터 한 남편에 한 아내를 원칙을 삼은 것을 거스르는 것 죄악이었다.
(4) 이처럼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사람이 하나님을 떠난 후에 사람은 하나님이 정하신 법칙 안에 머물 수 없게 되었는데, 하나님을 떠난 가인의 후예들이 한 첫 번째 일은 결혼의 원칙을 깨뜨린 것이다. 오늘날에도 하나님을 모시지 않는 사회와 나라에는 이혼이 많고 일부다처의 행습들이 존재한다. 특히 돈 많고 역량있는 하나님이 없는 남자들은 둘 이상의 아내들 두는 일이 허다하다.
(5) 라멕의 두 아내의 이름은 아다와 실라인대, 아다는 치장을 의미하고, 실라는 각양색생을 의미한다.
우리는 이름들만으로도 그녀들의 됨됨이를 알 수 있다. 가인의 후예들은 여인도 문제가 있었다. 그녀들의 치장과 요란한 옷차림은 정욕적인 남자들을 자극하는데, 한 남편이 두 아내를 소유하는 것은 무절제한 정욕을 포함하여 부도덕한 일을 나타낸다. 그래서 교회 안에서 성도들을 섬기는 목사나 집사을 선출할 때에 이러한 일을 주의하는 것이다.
(6) 아다는 양발과 유발을 낳았는데, 야발은 그 이름의 뜻이 방랑자이며 육축 치는 자의 조상이 되어, 아벨과 같이 정상적으로 양을 치고 가축을 기르는 것이 아니라, 아마도 야발은 소나 양뿐 아니라 약대나 나귀 등을 상업적인 목적으로 쳤을 것이다. 야발의 동생은 유발이며, 소리를 뜻한다. 그는 형과 달리 음악에 재능이 있었다. 수금과 퉁소를 만들고 그 악기들을 사용하여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었을 것이다. 원래 사람에게 하나님이 부요 음악이요 즐거움인데,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스스로 자신을 위해 부와 즐거움을 찾아야 했다. 즉 하나님이 없는 사람들이 외로움과 슬픔을 달래기 위해 음악을 고안한 것이다.
(7) 실라의 아들, 즉 그들의 이복 형제인 두발가인은 동철로 기계를 만드는 기술자였다.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무기를 만들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하나님이 사람의 보호이신데, 하나님이 없는 사람들은 불안한 나머지 각종 날카로운 무기들을 만들어 스스로 보호하고자 했다. 두발가인의 누이는 나아마(기쁨과 사랑스러움)이었는데, 그녀는 다른 사람들의 눈에 기쁘고 사랑스럽게 보이는 것을 주의했다. 나아마는 자신을 치장하고 꾸며서 사람들에게 매력적이고 사랑스럽게 보이고자 하여 많은 사치품과 장신구들을 만들었을 것이다.
(8) 이처럼 가인의 후예들은 하나님을 떠나 에덴 동편 놋 땅에 거하면서 하나님 없는 문화를 일으켰다. 인류문화는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에 의해 생겨난 것이다. 사실 예술도 하나님 없는 사람들이 인생의 낙과 누림을 위해 만들어낸 것이다. 또 각종 무기와 상업은 하나님 없는 사람들이 이 땅에서 생존하기 위해 발명해낸 것이다.
(9) 우리는 인류문화의 기원이 이미 창세기에 있다는 것을 볼 때 놀라움을 금할 수 없으며, 어째튼 인간의 문화는 죄와 관계가 있으며, 일부다처제를 실행한 라멕의 가정을 통해 생겨나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2. 셋과 에노스의 이야기
1) 성경 기록상으로 가인이 아벨을 죽이고, 가인이 도망하는 자가 된 뒤 한참후에 하나님께서는 다시 아담에게 아들을 주셨는데 그의 이름은 “셋”이었다.
“아담이 다시 자기 아내를 알매 그녀가 아들을 낳아 그의 이름을 셋이라 하였으니 이는 그녀가 이르기를, 가인이 죽인 아벨 대신 하나님께서 내게 다른 씨를 정해 주셨다, 하였음이라.”(창 4:25 흠정역)
2) 셋도 아들을 낳았는데 그 이름을 “에노스”였으며, 그때부터 사람들이 주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
“셋에게도 아들이 태어나매 셋이 그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때에 사람들이 주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하였더라.”(창 4:26 흠정역)
3) 아담에게 있어서 가인이 뉘우침 없는 태도로 하나님을 멀리 떠나가서 하나님이 부재하는 인간 문화를 일으키며 부도덕한 삶을 영위하는 것을 보는 것은 매우 가슴 아픈 일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아벨을잃은 슬픔도 컸을 것이다. 그때 하나님은 아담에게 아벨대신 새로운 아들 ‘셋’을 주셨으며, 그 아들이 나은 아들이 ‘에노스’로써 이는 ‘연약하고 부서지기 쉽다’는 뜻으로 그 때 사람들이 주의 이름을 불렀었다는 것으로 볼 때, 그때에 이르러서야 사람들이 자신들은 연약한 존재이며 부서지기 쉽다는 것을 알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신뢰하며 경배하기 시작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주 : 그러나
3. 가인의 노선 vs 에노스의 노선
1) 결국 가인으로부터 시작하여 그의 후예들은 육체의 길을 걸어갔고, 그 길을 따라 발람의 어그러짐과 고라의 패역이 나오게 되었다. 그 결과는 영원히 예비된 캄캄한 흑암에 갇히게 되는 것이다(참조, 유 13).
2) 그런데 이처럼 악하고 비참한 결과가 하나님께 헌물을 드리는 종교적인 행위에서 시작되었음을 보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3) 갈라디아서는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육체로 마치는 경우를 보여준다. 그들이 육체에 떨어져 물고 먹는 지경에 이른 것은 악한 일로 시작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하나님을 잘 섬겨보려는 것이 그 시작이었다.
4) 가인이 자신의 타락을 인정하지 않은 채 양의 피를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지 않은 것처럼 갈라디아 성도들은 십자가의 죽음을 인정하지 않는 율법과 할례의 가르침을 듣고서 미혹된 것이었다.
5) 오늘날의 교회도 깨어서 비성경적이고 잘못되고 이단적인 가르침만 주의할 것이 아니라, 성경적이라 하더라도 거기에 십자가가 없고 보혈이 없고 구주의 은혜가 없는, 인간의 노력과 방법과 행위만 가져오는 그러한 가르침은 주의하고 받지 말아야 한다.
6) 그러한 가르침은 조만간에 가인의 육체의 일들을 가져올 것이며 발람의 어그러진 길로 몰려가게 될 것이며 고라의 패역을 낳게 될 것이다. 이러한 비참한 결과의 시초는 매우 사소해 보이는 종교적인 행위에 있었다는 것을 보는 것이 중요하다.
7) 결국 창세기 4장은 예배로 끝난다. 에노스는 아벨의 노선을 이은 사람이다. 그는 라멕과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라멕은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신뢰하여 인간의 번영과 문화를 이룩한 사람이지만 그 열매는 쓰디 쓴 것이다. 거기에는 전쟁과 살인 등의 참혹한 비극의 씨앗이 들어 있다.
8) 그러나 하나님께 감사드는 것은 하나님이 아벨 대신에 하나님 눈에 사랑스러운 씨를 하나 주셨다는 것이며, 그가 바로 에노스이다.
9) 그는 인간의 공허함과 무익함을 알고 전능하신 주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하나님을 찾았다. 여기서 인류의 타락에서 벗어나는 길을 엿보게 된다. 그것은 곧 인간의 무익함과 공허함을 깨닫고 주께로 돌아가 그분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다.
[참고문헌]
< 1> H. L. Willmington, Willmington’s GUIDE to the BIBLE (Wheaton, Illinois: Tyndale House Publishers, INC, 1981), pp. 9-10.
< 2> 유동근, 창세기 강해(서울: 벧엘, 1994)
< 3> 제자원, 옥스퍼드 원어성경대전: 창세기 1-11장(서울: 성서교재, 1998) pp. 285-3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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