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오중이 무뚝뚝하면서도 정감있는 연기로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송정헌 기자 songs@>
80년대 후반 영화 '영웅본색' 시리즈가 '대박'을 쳤던 적이 있다. 수많은 명장면이 있었지만 개인적으로 기억나는 것은 주윤발이 성냥개비를 질겅질겅 씹어대는 장면이었다.
벌써 10년도 훨씬 넘어버린 그 옛날의 기억을 되살린 배우가 있다. 두툼한 갑옷에 눈을 부라리며, 탁한 저음으로 툭하면 "우라질", "엿된다", "뒈진다" 등의 비방송용 대사를 서슴없이 내뱉는 인물. 솔잎이건, 풀잎이건 가리지 않고, 질겅질겅 씹어대다 "풋"하고 내뱉는 그는 MBC 미니시리즈 '조선 여형사 다모'에서 부장 포교 이원해 역을 맡은 권오중이다.
무뚝뚝하고, 단순 무식해 보이지만 채옥(하지원)에게 더없이 따뜻한 감정을 갖고 있는 이원해. 시트콤에서 익숙했던 권오중의 코믹 연기를 기대했던 시청자들은 마치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처럼 이원해의 캐릭터에 빠져들고 있다.
"시트콤 전문 배우라는 정형화된 이미지를 깨고 싶었죠. 연기 생활 7년 가운데 4년 동안 시트콤을 했잖아요. 시트콤은 언제고 잘 할 수 있는 장르이니까 이젠 악역도 해보고 싶고 그래요."
권오중의 연기 변신이 쉬웠던 것은 아니다. 처음으로 경험하는 사극연기, 게다가 전통적인 사극 캐릭터가 아닌 독특한 인물을 표현하기 위해 무뚝뚝한 말투를 썼다. 처음엔 "국어책을 읽는 것 같다"며 비판하는 시청자들도 있었지만 지금은 '다모 폐인'들 사이에서 가장 유행하는 말투가 됐다.
인터넷에 올린 권오중의 글은 15만여명이 클릭을 했을 정도로 인기가 높다. 네티즌들은 '풋,풋' 풀잎을 씹어 내뱉는 권오중에게 솔잎음료 CF를 찍게 해줘야 한다며 난리다.
"이렇게 팬들이 호응해 줄 준 몰랐어요. 조금은 후회도 됩니다. 좀 더 신경써서 캐릭터를 확실하게 잡았어야 하는데…."
드라마에선 무식하게 칼을 휘둘러 대는 권오중이지만 현실에선 더없이 가슴이 따뜻한 남자가 된다. 유치원에 다니는 아들 혁준이와 함께 매달 한번씩 봉사활동을 떠난다. 봉사단체인 '천사를 돕는 사람들의 모임'에 후원금도 내며 여기저기 덕을 쌓고 있다.
여하튼 '다모'에서 권오중이 나오는 장면을 지나치면 안된다. 우직한 그의 연기를 놓치면 이원해 부장의 표현대로 '엿되는 수'가 있다.
< 한준규 기자 manb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