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도 도시농업인과 함께 하는 '새농업인대회'가 백령도에서 개최되었다.
이른 새벽!
아직 걷히지 않는 어둠을 그림자삼아 인천부두로 향한다.
서해 최북단의 섬!
남북 대치의 긴장과 화해의 상징,
두 얼굴이 상존하는 섬인만큼 씩씩한 군인들의 얼굴이
인천부두 대합실에 가득하다.
군 복무의 첫 임지 발령부대인지 해군버스에서 하차하는 수백명의 이등병 해병들이
질서정연하게 백령도행 승선을 대기하고 섰다.
8시 50분.
출발 경적과 함께 백령도행 여객선 '하모니플라워호'는 굵다란 닷을 올리고
시속 70Km의 속력으로 거치른 서해바다를 헤쳐 나간다.
4시간이 소요되는 망망대해에서의 항해!
여객선 내부는 출발과 함께 벌써부터 흥에 겨운 술잔이 새벽의 피로를 덜고 있다.
은평, 서대문, 마포, 용산, 종로 5개구에서 모인 분들의 해후가
풍요로운 가을햇볕 머금은 서해바다위에서 종달새가 되었다.
12시, 소청도와 대청도를 통과하여 12시 50분쯤 목적지인 백령도에 도착된다는
안내원의 선내방송과 함께 '참 좋은 일기'를 선택한 손님들이라고 칭찬을 곁들인다.
시커먼 바다를 이고 있는 그대 서해!
점점이 뿌려진 섬들 이어
서해, 인천대교를 그려내고
그 위를 나는 비행기는
바닷길 배웅삼아
동방국 빛내는 펄럭임
남북 분단아픔이 땅위에서 모자라
하늘 바다에까지 통증이 난무하니
사랑하는 가족을 남겨두고
500리 머언길 한바다 섬 위에서
젊음을 불태우는 해병건아는
아버지로부터 끈을 이어받아
쉼없는 계주를 잇고 있으니
아 ~
분단이여
북이여
그대이름은 누구던가?
서글픈 바다마저 NLL 색깔을 달리하는데
하릴없는 갈매기만 그대와 내 땅을 오고가네
자유로이..,
3시간이 걸려 육지를 잇는 작은 섬 소청도는
한라 백두와 마찬가지로 굵은 노송이 섬을 지키고 섰다.
산 위를 잇는 전주가 저녁불을 밝힐 소청도는
대청도의 고독을 치유하는 장고(長古) 의 벗이리라
촌음을 다녀간 나그네에게도 정 그리워
갈매기는 떠나는 배를 애워싸며
아쉬운 배웅을 하는데
금새 대청도 갈매기가 마중을 나오는..,
여객선 하모니플라워호는 갈매기들의 오작교이듯
지천으로 깔린 대청단풍이 견우직녀 큰 벗일세.
12시 30분
대청도에 닻을 내리고
한무리의 군인과 거주주민이 저마다의 공간속으로 찾아든다.
선착장을 주변으로
길게 드리워진 바다위 양식장이
대청도의 살림살이를 가늠하듯
바다는 푸르른 물 위에 흰 카펫을 사방으로 길게도 깔아 놓았다.
12시 50분!
백령도는 푸르다.
이북과 대치하고 있는 최북단의 섬답게
빨간 복장의 해병대원들이 먼저 눈에 띈다.
북한병사가 귀순해오며 긴장을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백령도는 가을이 주는 풍요속에
여느 육지마을과 같이 하늘엔 한가로운 잠자리떼가 날고
땅 위엔 코스모스 만발한 길섶과
황금들녁이 바다를 향하여 조화를 이루고 있다.
여기저기 검게 그을린 농부들의 얼굴이 추수를 기다린다.
섬 중 여덟번째 크기답게 농민이 80%를 차지하며 자급자족이 가능한 섬!
백령도에서의 점심은 꽃게탕이었다.
아직 살이 덜찬 꽃게지만 국물은 수라상 그대로이다.
점심을 마치고
백령농협 대강당에서 새농업인대회가 개최되었다.
(백령농협 전경)
1년내내 수고하신 농업인들에게 공로패와 감사패가 주어지고
장소를 제공해주신 백령농협 조합장님의 당부가 이어졌다.
서해의 최북단 백령도의 주민은 군복은 입지 않았지만 모두가 군인입니다.
200Km 멀리 섬이라고
그대들의 기억과 관심에서 벗어난다면
저들의 포화는 백령도에서 금새 인천과 서울을 향할 것입니다.
국제법상으로도 주민이 거주하지 않는 섬을 경계로 한 영토소유권은
주민이 근접하게 거주하는 국가에 소유권을 빼앗길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민족은 냄비근성이라 하는데 맞는듯 합니다.
이북의 포격을 금새 잊고 있습니다.
우리를 기억해 주시고
우리를 자주 찾아 주십시오
그대들이 있어 우리가 살아가듯
우리가 있어 그대들이 조금이라도 편안한 것입니다.
백령농협의 조합장은 조합장을 머금어 백령을 지키는 지역사랑관 같았다.
새농업인대회 내부행사가 끝나고
일행 모두는 천안함사건으로 희생한 46명의 위령탑에 경건히 헌화하였다.
어느날 갑자기 아들을 잃은 어머니의 울부짖음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위령탑 아래엔 진분홍 해당화가 가신 님 그리워 꽃잎을 피웠다.
해당화-
잡혀간 누이 울며 그리다
내가 죽어 태어난 꽃
한시라도 떨어질 수 없어
치마폭에 감춘 동생은
죽어서도 꽃 속에 숨었다네
보이는 것은 모래섬 뿐
거치른 파도위
멀리에서도 날 찾아 달라
진분홍 입술 다물지 못하고
비내려 점점이 피를 토하네
아름다워
아름다워 오히려 슬픈 너!
살랑이는 추풍에도
쉴 새없이 제 몸 태워 꽃을 피우는
해당화
해당화여!
장산곶 마루에서도 하염없이
진분홍으로 울고 있을
너
해당화여!
고향바다 해당화는 그리 곱기만 한데
46인을 지키는 해당화를 보고 있으니
힘없는 시대 중국으로 잡혀간 누이생각에 꽃이 된 해당화가 구슬피기만 하다.
명승 8호라 일컫는 두무진!
마치 장군들이 머리를 맞대고 회의를 하는 것 같다고 하여 붙여진 두무진은
서해의 해금강 그대로였다.
코끼리를 닮은 바위가 있는가 하면
선대암은 웅장함을 자랑하며 노신(老臣)의 충정을 그대로 바다위에 토로한다.
대한민국 수역을 방위하는 해군함정이 NLL선상에서
무구잡이 쌍끌이를 일삼는 중국어선을 통제하는듯 하다.
지척에 보이는 18Km밖 장산곶을 두고
국가와 국가가 다르다는 이유로
인당수 공해상을 중국어선에 빼앗겨야하다니
심청이가 노할 일이었다.
일행 모두의 가슴이 한동안 찢겨짐을 어찌할 수 없었다.
(두무진 기암절벽) (물건너 장산곶 공해상<인당수>에 검정점 중국조업선이 보인다)
억울하고 서글픈 마음을 헤아렸는지 저녁식사를 잠시 미루고
가이드는 천연기념물 392호로 지정된 콩돌해변으로 안내하였다.
콩알을 뿌려놓은듯한 2Km에 걸친 해변은 백령의 진주인 듯
돌마다 빼어난 자태가 영락없는 양귀비구나.
고향바다 검은 돌 '옥석'은 방문객의 호주머니에 보쌈되어
기어이 자취를 감추고 말았는데...,
콩돌이여
수천년을 이어왔듯 앞으로 수억년도 그 자리에 그대로 빛나시어
우리들의 자손 자손에게 그 아름다움을 선물하시이다.
(콩을 닮아 콩돌과 석양 콩돌해변)
저녁은 만찬이었다.
백령도에서 나는 회와 매운탕이 저마다 허기진 배를 다스린다.
본 음식전 상다리가 휘어져 나오는 육지와 같은 간식은 없지만
백령도의 회는 모두가 자연산이란다.
양식장이 없어 오히려 양식횟거리가 더 비쌀거라는 주인장은
어부임에 틀림없었다.
시커먼 얼굴과 제멋대로 자란 수염이 바다해적 같았다.
식당을 나선 백령도의 밤하늘은 금새 은하수가, 별이 쏟아지고 있었다.
촘촘이 박힌 별 사이를 징검다리 삼아
금새 마음먹은 대로 뛰어 다닐 것만 같다.
백령도의 밤은 그렇게 평온함속에 아침 해를 기다린다.
아침 7시
기상과 함께 소박한 아침을 먹고
천연기념물 391호로 지정된 '사곶해변'을 찾았다.
전 세계에서 두 곳 밖에 없다는 규조토 모래해변으로
성질이 부드러우면서도 단단하여
한때는 군비행장으로 씌였다 한다.
여름 한철 해수욕장으로 이용된다는 사곶해변을 보며 일행 모두 탄복연발이다.
백령도의 아픔을 상경하는 날까지 상기할 요량인지 가이드는 심청각으로 안내한다.
심청전의 배경무대인 공해상 인당수가 앞에 자리하고
판소리와 연화, 고서 등을 전시하고 있는 '심청각' 주인 심청은
지금의 분단을 아는지 모르는지..,
용왕살던 제 집이 유폐된 것도 모르고
치마폭을 부여잡고 금방이라도 인당수로 뛰어 들 것 같은 모습으로
움직임없이 동상 위에 서 있었다.
그리하여도 제 집에 오신 손님인지를 아는지 위령탑에 핀 해당화를
제 집 난간에도 흐드러지게 피워 놓았다.
심청의 배웅을 받으며
농업인과 우리 일행 모두는 상경을 위한 백령도 선착장에서
'하모니플라워호'를 기다린다.
백령도의 인심은 참으로 후하다.
그리고 외로워서 서러운가 보다.
1시간여의 기다림마저도 서러웠음인지 방파제 저편에
사자(까멜레온)와 해안절경이 금방 다시 오라며 손스레를 친다.
1박 2일의 새농업인대회가 그렇게 무탈하게 종료되었다.
8시가 다되어 돌아온 서울과 내 직장, 내 집이 오늘따라 참으로 감사하다.
백령도의 밤하늘엔 이내 은하수와 그리고 점점이 이어진 별과
46인의 용사와 해병건아와
효녀 심청이 우리의 흔적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때를 같이하여 서울 밤하늘엔 무수한 네온사인이 백령의 별빛과 조율하며
한가지로
익어가는 가을 밤을 태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