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년 내내 꽃길로 단장되는 섬진강길! 섬진강에서 태어나 섬진강에 기대어 살며 아름다운 글로 노래하는 한 시인에 의해 더 널리 알려진 이 길은 봄에는 매화꽃, 벚꽃, 그리고 배꽃이, 여름에는 밤꽃과 코스모스가, 가을에는 산국과 쑥부쟁이를 포함하는 국화꽃과 단풍꽃이, 겨울에는 차나무꽃과 눈꽃이 피는 아름다운 길이다.
전북 진안군 백운면에서 길을 떠난 섬진강물이 남해바다에 몸을 풀기 까지 212.3킬로미터를 굽이쳐 달리는데 이는 나라 안에서 아홉 번째로 길게 달리는 물길이다. 대체로 강폭이 좁고 강바닥이 많이 노출되어 있어 뱃길로 이용하는 데는 불편하나 화개장터에서 하동읍까지의 강변 고운모래는 전국에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다. 이 금빛의 모래밭에는 금빛의 껍질을 가지는 재첩이라는 조개가 살고 있어 하동하면 재첩으로도 유명하다.
섬진강의 이름에도 이야기가 들어 있어 두꺼비섬(蟾)에, 나루진(津)을 사용하여 ‘나루터에 두꺼비가 나타난 강’이라는 의미이다. 고려 말 하동에 침입한 왜구들이 강을 건너려 하는데, 다압면 섬진마을의 나루터에 수만 마리의 두꺼비들이 모여들어 울부짖자 왜구들이 놀라 도망쳤기에 붙여진 이름이란다.
섬진강물길은 좌우로 산길을 가지는데, 이는 하동에서 구례로 가는 19번국도와 매화마을인 다압에서 구례로 가는 861번지방도로이다. 자연의 아름다움은 어느 길이나 품고 있지만, 그 아름다움 외에도 많은 문화유적과 이야기를 품고 있어 19번국도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라 안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이라고 추천한다. 이 길은 구례 화엄사와 운조루, 연곡사와 피아골, 영호남을 아우르는 화개장터와 화개나루, 화개동계곡의 10리 벚꽃길과 쌍계사 및 칠불사, 차밭과 푸른 섬진강물, 화개장터에서 하동읍까지의 하동포구 80리길, ‘토지’의 무대인 평사리와 동정호 및 악양루, ‘백사청송’으로 불리는 하동 송림과 금빛의 백사장 등을 품고 있다.
섬진강 따라 ‘가장 아름다운 길’ 열려
홍수 시 만들어진 모래와 진흙이 섬진강물에 실려 오다가 물의 흐름이 느려지는 곳에 쌓이면서 자연제방을 만들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자연제방은 섬진강의 물길에서 둑의 안쪽에 고립된 호수를 만들었는데, 이것이 동정호이다. 이 동정호에는 악양천에서 내려온 물이 모여 호수를 일정한 크기로 유지시켰다. 삼한시대에 하동읍을 한다사(韓多沙, 큰 모래밭)로 불렀는데, 이곳에도 넓은 모래밭이 있어 소다사(小多沙)로 불렸다. 그러다가 신라 경덕왕 시절에 지금의 악양으로 불려지게 된다.
동정호가 위치한 악양은 중국의 악양과 지형이 비슷하게 닮았다고 하여 나당연합군의 당나라 장수인 소정방이 이름 붙였다고 한다. 고소성에서 바라본 악양은 지리산의 줄기들이 병풍처럼 감싸고 있고, 넓은 호수가 있어 소정방의 눈에 언뜻 중국의 악양이 보였으리라. 지금은 몸통의 대부분이 악양들(무딤이들)로 변해버린 호수를 동정호라고 부르고, 섬진강변의 금빛 모래밭을 금당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후세 사람들이 동정호와 섬진강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악양루를 세우고, 중국의 소상팔경(소수와 상강의 두 물줄기가 합쳐져 중국의 동정호를 만듬)에 버금가는 악양의 소상팔경(악양팔경)을 만들었다.
팔경은 소상야우(瀟湘夜雨), 산시청람(山市晴嵐), 원포귀범(遠浦歸帆), 어촌낙조(漁村落照), 동정추월(洞庭秋月), 평사낙안(平沙落雁), 한사모종(寒寺暮鐘), 강천모설(江天暮雪) 등이다. 이 속에 소개된 동정호의 모습은 섬진강과 악양천의 사이에 위치하고, 맑고 아늑한 동정호에 가을 달이 비치며, 섬진강과 동정호 사이에 넓은 백사장이 위치하여 그곳에 많은 기러기가 앉아 있다. 악양루에서 바라보면 식물로 뒤덮인 동정호는 잘 보이지 않고, 더 넓은 악양벌과 금빛 모래 반짝이는 섬진강변을 잘 볼 수 있다.
섬진강 주변에는 작은 규모의 자연늪들이 다수 분포하고 있었으나 하천둑을 만들거나 농경지 개발로 대부분이 사라지고 현재는 유일하게 동정호가 남아 있다. 그렇지만 동정호도 저수지의 기능이 거의 없어 오랫동안 방치되었고 호소의 바닥이 경작지의 높이와 비슷하여 육상화로의 천이가 크게 진행된 상태이다.
평사리 외둔마을 앞쪽에 위치하며, 1990년대 초반에는 물이 찬 부분이 약 2헥타르 정도를 차지하였으나, 지금은 거의 버려져 늪의 전 지역에 키가 큰 정수식물과 왕버들이 자라고 있다. 그래서 이곳은 수생식물의 관찰은 힘들고, 물가에 주로 사는 습생식물을 관찰하기엔 좋은 장소이다.
섬진강이 만든 자연늪 ‘동정호’
동정호 주변에서는 식물 230종류, 수서곤충류 9종류, 척추동물류는 43종류가 나타났다. 식물의 분포를 알아보면, 농수로와 일부 물이 고인 곳에는 개구리밥, 검정말, 통발, 마름, 말즘이 자라고 있었다. 늪에는 줄이 가장 넓게 분포하였고, 그 사이에 갈대, 골풀, 달뿌리풀, 매자기, 물꼬챙이골, 부들, 미나리, 세모고랭이, 소귀나물, 솔방울고랭이, 송이고랭이, 쇠털골, 애기부들, 질경이택사, 큰고랭이, 낙지다리, 고마리, 여뀌류가 나타났다.
물이 거의 말라버린 농수로에는 고마리와 나도미꾸리낚시가 가을이면 분홍색 꽃을 피워 운치를 더한다. 또 논둑과 동정호의 둑에는 봄이면 파릇한 냉이와 쑥이 싹 트고, 여름에는 분홍색의 부처꽃이, 가을에는 흰색의 가새쑥부쟁이가 꽃을 피운다. 또, 일부 고여 있는 물에는 소금쟁이가 헤엄을 치고, 아름드리로 자란 왕버들 숲에는 매미가 구슬프게 울면, 두꺼비와 유혈목이 및 무자치가 가끔씩 모습을 드러낸다. 이처럼 농경지 옆에 위치한 동정호에는 우리 주변에서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생물들이 살고 있다.
그리고 동정호 주변에는 경작을 멈춘 많은 묵논이 있는데, 이 묵논에도 여러 종류의 식물들이 살고 있다. 묵논은 시간이 지나면 점차 개간 전의 모습으로 변한다. 이처럼 일종의 습지인 묵논이 육상화될 때, 가장 먼저 묵힌 논에 들어오는 식물이 부들이다. 부들은 ‘부드럽다’에서 온 말로 식물 전체가 부드러워 예전에는 신발이나 자리를 만드는데 사용하였다. 또 부들의 꽃으로 이불이나 옷을 만들기도 하였다. 20년 전에는 동정호에 부들이 넓게 자라고 있었는데, 지금은 그 자리를 내주고 줄이 가득 자라고 있다.
동정호 옆 묵논 세월 따라 대부분 농경지로 변해
사람이 태어나서 자라다가 젊음을 뽐내고, 다시 세월이 흘러 죽어서 흙의 일부분이 되듯이 늪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모양이 변한다. 땅이나 강에서 어떤 요인에 의해 만들어진 호수는 시간이 흐르면서 적당한 조건이 되면 늪으로 변한다. 늪이 다시 땅으로 되는 과정에서 잘 자랄 수 있는 식물 무리도 달라지는데 이런 식물 무리의 변화를 통해 일어나는 호수의 변화 과정을 호수 생태계의 천이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호수는 파도 작용에 의해 암석이 깎이면서 호수 넓이를 넓히면서도 동시에 물이 가져온 퇴적물이 쌓여 점차 호수는 얕아져 유년기 호수에서 장년기 호수로 변한다. 계속적인 퇴적과 주변 영양분이 호수로 들어와서 영양이 적은 빈영양호에서 영양이 풍부한 부영양호로 바뀌면서 많은 생물들이 살 수 있는 노년기 호수로 바뀌게 된다. 호수의 깊이가 얕아짐에 따라 예전에 살 수 없었던 물 속에 잠겨 살아가는 식물들이 자라게 되고, 다시 계속 얕아져 잎이 물위에 떠서 살아가는 식물이 자라면서 또 이곳에 늪 주변에 서서 살아가는 식물이 자랄 수 있게 되어 늪으로 변한다.
늪은 수심이 얕으므로 대부분의 지역에서 물에서 살아가는 식물들이 많이 자라게 된다. 늪의 기슭과 중심부에 식물이 더욱 많이 자라게 되면 늪 전체가 식물의 찌꺼기로 쌓이게 되고, 식물의 찌기는 물 속에서 세균에 의해 어느 정도까지 분해되지만 독성이 있는 물질이 생겨나서 결국 세균 자신도 살 수 없게 된다. 그 후 계속 쌓여진 식물들은 썩지 않고 오랜 시간이 흘러 모여서 이탄을 형성하게 되고, 늪의 수위가 주변의 높이와 같아지고 사초류, 골풀 등이 밭을 이루게 된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곳에 초원이나 습지산림이 형성되고, 결국에는 육상식물이 가득 자라는 산림으로 변하게 된다.
섬진강의 물길에 의해 만들어진 동정호는 그동안 사람들의 간섭에 의해 그 몸의 대부분을 농경지로 바꾸게 되었다. 일부 남아있던 부분도 저수지의 기능을 잃게 되어 현재는 손바닥 만하게 남아 있는데, 앞으로의 운명이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다. 즉 동정호는 자연적인 힘에 의해 천이가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힘에 의해 늪이 변하고 있어, 앞으로 늪의 운명이 어찌될 것인지 예측할 수가 없다.
동정호 주변의 문화와 문학 그리고 역사
악양천과 동정호의 맑은 물로 몸을 적시던 악양벌은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의 배경이 된 곳이다. 소설은 동학농민혁명에서부터 광복까지의 우리나라 근대사를 최참판댁의 변화 과정을 통해 그리면서 민족애를 담고 있는 대서사시이다.
만석꾼인 최참판댁의 힘은 악양벌에서 나왔고, 또 악양벌의 풍요로움은 동정호에 의해 살찌워졌다. 평사리에 위치한 최참판댁의 한옥에 서면 더 넓은 악양벌과 한 구석으로 밀려난 동정호가 아스라이 바라다 보인다.
최 참판댁에서 본 악양벌 이처럼 문학이든 문명이든 풍요로움 속에서 발전하는 것이다. 평사리에는 3헥타르의 부지에 최참판댁 한옥 10동과 초가집 29동을 복원하여 두었다. 이곳에 가면 그 당시 생활모습을 일부나마 담은 유물들을 만날 수 있다. 또 평사리문학관에는 하동과 관련된 문학 작품인 박경리의 ‘토지’, 김동리의 ‘역마’를 비롯하여 다수의 하동 문학인을 소개하고 있다.
통영에서 출생해 진주에서 학교를 다닌 작가가 1960년대 화개마을의 친척집을 방문하는 길에 만난 악양벌은 바로 소설의 무대가 되게 하였다. 지리산의 품에 안긴 악양벌과 더 넓은 산자락, 동정호의 푸른 물결, 금빛 모래로 뒤덮인 섬진강변, 지리산에 안겨 살아온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는 작가의 손놀림을 더욱 쉽게 하였을 것이다.
사국시대 가야의 땅이었던 이곳에 가락국의 시조인 김수로왕의 아들들이 와서 처음으로 불국정토를 연 섬진강은 여러 고찰들을 품고 있다. 화개동계곡이 끝나는 곳에 위치한 칠불사는 김수로왕의 아들들이 성불이 된 곳으로 한번 장작불을 붙이면 한 달 동안 열기가 지속되는 아자방이 있는 곳이다. 그리고 화개장터에서 10리 거리에는 쌍계사가 있는데, 신라 문성왕 2년에 진감선사가 중국 선종의 육조대사인 혜능의 초상화를 모시면서 절을 창건하였다고 한다. 경내에는 비문을 최치원이 적은 국보급인 진감선사 태공탑이 세워져 있다. 그 외에도 가까운 곳에 피아골의 연곡사, 화엄사골의 화엄사와 천은사 등이 있다.
그리고 이곳에는 섬진강과 지리산의 정기와 이슬을 먹고 사는 차나무밭이 지천에 즐비하다. 이곳의 녹차 재배는 사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신라 흥덕왕 3년 당나라로 사신 간 대렴공이 차 씨를 가져와 쌍계사 근처인 화개계곡 근처에 심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평사리 뒷산인 형제봉의 중턱에는 사국시대에 축성된 고소성이 있다. 둘레가 350미터인 이 성은 신라와 백제의 접경지에 위치하여 먼 옛날 이곳에서 치열한 전투가 있었음을 상기시켜 준다. 또, 평사리에서 묵계재를 넘으면 운둔과 비기의 땅인 청학동이 나타난다.
이처럼 동정호 근방의 강토는 아름다움과 문화 및 문학의 땅이다. 자연과 사람이 서로 조화를 이루면 더 발전될 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이야기가 절로 만들어지는 법이다. 우리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던 동정호가 지금 사라지고 있다. 늪의 기능이 물을 저장하여 생물들에게 삶의 보금자리만 제공하는 것만은 아니다. 이 자연을 이용해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심성과 살아감의 의미도 주기에 작은 자연물이지만 보존할 값어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