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송배 교수님!
정말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우선 건강은 어떠신지요?
늘 글을 쓰시며 은은함으로 삶을 만들어 고운 날들이겠지요
몇 번의 계절들이 어김없이 지나 제가 미국으로 온지 벌써 3년이 된답니다
그간 넉넉하고 여유로운 시간에 젖어있던 제게도 이곳은 한가로움을 잊게 하려는 듯 바쁘게 지내고 있답니다
그간 자주 연락드리지 못함을 용서해 주시길 바랍니다
이번에 교수님께 편지를 드리자니 새삼 그때가 그립군요
일주일에 한 번씩 반가움과 기대로 강의를 다니던 그때 벌써 오래전의 이야기로 제 기억 한곳에 자리하고 있군요
수필로 시작한 제 글쓰기는 교수님을 만난 후 조금씩 변화하면서 지금에 이르렀지요
더 많은 공부를 함께 하지 못함이 제게 참 아쉬움과 안타까움으로 남아있답니다
하나, 둘 걸음마를 하는 아이처럼 발걸음을 한발씩 내 디디던 때, 늘 옆에서 조용하게 그리고 따사함으로 지도를 해주시던 날들, 지금도 제 삶의 커다란 행복으로 남아 있답니다
대학로로 나서던 날들, 나도 다시 젊어져 그 자리에 마냥 서 있고 싶던 날, 그리고 낭송을 하고 어느 시인의 강의를 듣기도 하던 날들, 여의도 KBS방송국 앞에 꽃비로 내리던 벗꽃의 봄 날, 그 길에 서서 차창 밖의 꽃을 하염없이 보며 숨막히는 기쁨으로 강의를 향하던 어느 날, 때론 차를 마시며 우리의 삶을 이야기하던 동인들 많이 그립습니다
교수님과 그 많은 동인들의 웃음과 목소리가 봄, 여름과 가을 그리고 눈이 온 천지를 덮던 겨울의 시간들을 몇 번이나 건너며 함께하던 날들과 무수한 기억들...
교수님
그리 잘난 제자는 아니었지만 전 무척 교수님을 존경하고 따랐답니다
이곳에서는 많은 시를 쓰지도 못하고 길을 잃은 아이처럼 때때로 막막하고 두렵기도 하답니다
더구나 생활도 다르고 국소화된 제 삶에 힘겹기도 하지요
그러던 중 이곳의 미주시협에 참가해 훌륭한 시인들과 접하며 글쓰기를 다시 시작하며 새로운 발돋음을 하고 있답니다
문금숙회장님의 사랑과 보살핌으로 힘을 얻고 여러 문인들의 격려로 다시 일어서려 한답니다
교수님
몇 년 전 해변문학제에 댜녀 가신 적이 있으시지요?
얼마 전에도 그 해변에 많은 문인들이 모여 의미있는 날을 만들어 가슴에 가득 넉넉하게 채우고 왔답니다
언제 시간 나시면 한번 오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좋은 시간이 될 수 있도록 해보렵니다
교수님
지금 이렇게 편지를 드리자니 너무도 많은 이야기들과 기억이 저를 벅차게 한답니다
이젠 자주 문안드리렵니다
요즈음도 시를 많이 쓰시는지요
서정적이고 인간미가 가득한 교수님의 시 한편 읽고 싶군요
시 한편 전해주시길 바랍니다
미주 시세계에 스승과 제자의 글 형식으로 올리려 한답니다
교수님
정말 반갑습니다
그리고 감사드립니다
이 제자는 교수님을 내내 기억하며 함께 할거랍니다
답글 전해주시길 바랍니다
그럼 다시 글 올리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2007년 8월 14일
미국 L.A에서
제자 심상화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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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화 시인.
참으로 오랜만에 직접 목소리를 듣는 것 같군.
그곳으로 훌쩍 떠난지가 벌써 3년이라니 세월이 빠르기도 하네.
그러나 건강하게 그곳 생활에 잘 적응하면서 지금도 시를 잊지 않고 미주시협에 참가해서 글쓰기에 발돋움하고 있다니 여간 기쁜 일이 아니구만.
나도 지금은 건강하게 글 쓰는 일과 시 창작 강의하는 일에 전념하고 있지. 18년을 넘게 근무하던 한국예총에서 명예퇴임을 하고, 그 후에 한국문인협회에서 사무처장으로 재임하다가 올해 봄에 한국문인협회 시분과 회장에 당선하여 문협 운영에 참여하면서 바쁜 나날을 지내고 있지.
그동안『여백시편』이라는 제9시집도 내고 평론집『성찰의 언어』도 발간했지. 그리고 평론집과 수필집 발간을 위해서 이 여름에 땀 좀 흘리고 있다네.
요즘에 조용히 생각해 보면 문학은 결국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고 성찰하면서 인생을 나름대로 정리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네. 왜냐하면 누군가가 말했듯이 시는 무지개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왜 사라지는가 하는 것을 가르쳐 주는 환상의 대본이라는데 공감하고 있기 때문이지.
결론적으로 인생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인지를 끊임없이 추적하고 또 다른 사유를 창출하는 가치관의 정립에 지적으로 대처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었지. 이러한 문제들을 함께 풀어보고 그 해석을 공유하기 위해 우리들은 여의도 KBS방송문화센터에 모여서 머리를 맞대고 시라는 괴물을 분해하고 있었던 거야.
심상화 시인.
돌이켜보면 그래도 그때가 행복했었지. 벚꽃길을 나들이하고 계절마다 문학기행을 하고 또 대학로와 신촌 어느 까페에 모여 앉아 자작시를 낭송하고 선배 시인들의 강연을 듣고 강평을 하는 등 모두들 열정이 대단했었지.
문득 그때 심상화가 읽었던「꿈」이라는 시 한 편이 떠오르는 군.
엷게 흐린 하늘
작은 베란다로 들어와
화초들 곁에서 수채화를 만든다
감혹
염려와 믿음 함 묶음 엮어내며
말없이 지켜보는 부모처럼
그 어둠에서 평안을 만난다
먼 산자락마다
소리없이 안개 아우성치고
가깝게 만날 비를 꿈꾸는 대지
한 포기 풀을 키워내려 한다
보이지 않는 반란의 기미
누군가의 속절없는 흔들림
일깨워 재촉하지만
바다로 향하는 강물은 쉬임 없을 뿐.
나는 본래부터 제자들의 작품 중에서 잘 된 부분은 칭찬을 하지 않고 안 되는 부분만 마구 질책하는 특성이 있었지. 그러나 이「꿈」은 이제사 말하지만, 담백하면서도 진솔한 언어의 구사도 좋고 사물을 응시하는 능력, 그리고 이미지로 전환하는 기법이 마음에 든다고 할까.
그때도 심상화는 그랬지. ‘아직은 너무 생소하고 낯설며 내 몸에 익은 모습이 아닙니다. 살면서 위로하기 보다는 언제나 위로 받고자하는 욕심으로 살고 있는 나를 봅니다. 그러나 이제 나는 나 아닌 또 다른 누구를 나보다 더 사랑하게 되어 그를 위해 내 안의 따스함을 일구어 내며 그를 다듬고 보듬어주고 싶답니다.’ 라고.
바로 그것이 시와 친숙해지면서 ‘나’와의 관계를 새롭게 세우려는 정서와 사유의 지향점을 확고하게 하는 심상화의 문학관이 되고 있다는 점에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를거야.
그 당시 수강들이 모여 결성한 ‘청시동인’은 작년에 동인지 제10집『꼬리 없는 그림자』를 내고 매월 모이는 신작 발표회를 지난 8월 10일, 강원도 백담사 만해마을에서 제115회째 개최해서 주변 참가자들에게 많은 호응을 받았어.
지난 10년간 열성을 다한 수강생들은 전원 등단해서 한국문인협회, 한국시인협회, 펜클럽 등에 가입해서 시집도 상재하고 나름대로 열심히 창작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 마음이 뿌드해지더군.
심상화도 국내에 있었으면 벌써 시집도 나왔을 텐데 하는 아쉬움도 약간 들기도 하고....
그러나 그곳에서도 열심히 하기바랄 뿐이라네.
그곳 문금숙 회장을 비롯해서 전달문, 송순태, 김호길, 김문희, 이승희, 조옥동, 한우연, 석정희 시인과 김영중, 조만연, 박영보 수필가, 이언호 극작가 등을 국내에서도 만나서 잘 알고 있는 문인들이니 많은 지도를 받기 바란다.
그리고 몇 년전에 그곳 해변문학제에 초청받아 참석한 일이 있지. 앞으로 기회가 된다면 다시 가서 그곳 문인들과 즐거운 시간도 보내고 싶네요. 그때 심상화를 만나면 그동안 못다한 얘기를 나누고 싶기도 하고.....
끝으로 나의 졸작 몇 편을 보내니 감상하기 바라고 항상 건강에 유의하기 바란다.
2007년 8월 15일.
서울에서
김송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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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詩 . 6
-분노의 물
폭우는 무섭다
강풍에 이미 망가진 우산을 버리고
내장까지 젖은 채
빗속 시오 리 산길을 걸어간다
시뻘건 황톳물은
금방 저수지 뚝을 무너뜨리고
대지의 평화를 휩쓸어
저주의 땅에서 넘실거린다
아, 누구의 울분이었나
산길 끝머리에서
찾아 들어가야 할 집이 없어졌다
아아, 빗속에 섞이는 저 울음들
이 지상에는 홍수라는 이름으로
무섭게 평정되고 있다. 이럴 때
구원의 기도는 하늘도 듣지 못했다
물 詩 . 7
-어머니의 물
늦은 밤 별빛으로 부르던 자장가
젖꼭지를 문 채 잠든 새 생명
포근함과 매서움이 함께 고인
영원의 영천(靈泉)이었다
아마 내가 중년을 넘고서야
보았던, 이미 말라버린 젖샘
갈래갈래 제 갈 길을 가듯이
모두들 그의 품안을 떠나고
양지바른 고향 뒷산에 잠들어
육탈된 그의 물길은 멈춘 지 오래다
하지만, 그 물줄기는 지금도
내 온몸에 질펀히 흐르고 있음에야.
물 詩 . 8
-허공의 물
새벽 이슬길을 가다가
풀잎의 잔잔한 웃음을 보았다
온몸 생기 감도는 이파리
--꿈이었다
무작정 먼 길 떠나다가
따가운 태양을 만나면
맞이해야 할 지극히 허무적인 한생
그것은 소멸이 아니었다
온몸 씌워진 허물 모두 허물고
잠시 창공 어디쯤에서 몸 푸는 사랑
비가 되랴 눈이 되랴
꿈속에서만 영롱한 이슬이 되랴
어느 날 문득, 이 지상의 환생.
첫댓글 회장님 열심히 읽었습니다. 그리고 느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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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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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님! 훌륭하신 시 읊고 감상하고 갑니다. 정말 만나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많은 가르침 받들겠습니다. 옥체건안하옵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