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 여행의 백미는 뭐니 뭐니 해도 여유롭게 풍경을 감상할 수 있고, 제때 목적지에 데려다 주는 것이 아닐까? 다양한 상품이 있어 입맛 따라 골라 여행할 수 있으니 무엇을 망설이랴. 이번에 소개하는 팔도장터 투어열차는 전통 시장 체험은 물론, 덤으로 늦가을 단풍을 감상할 수 있어 친정엄마와의 나들이코스로 제격이다. |


1 기차 여행과 장터 쇼핑을 즐길 수 있는 '팔도 장터 투어열차'. 2 객실에는 콘서트 장을 방불케 하는 공연이 열린다. 3 고려 후기 8국사를 배출한 '백련사'. 4 나주의 명물 '나주곰탕'. |
기차에서 즐기는 공연 |
나주역까지는 먼 길이라 아침 일찍 출발하는 게 좋다. 보통 평일이라도 서울역 3층 대합실은 초만원일 때가 많다. 좌석번호와 일정표를 들고 열차를 타려는 관광객만 300명이 넘으니 그럴 만도 하다. 열차 곳곳의 승객들은 "이렇게 일찍 일어나 보기는 처음이야" "알람 맞추고 일어나느라 애먹었다니까" 라는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피곤함에 졸음이 밀려드는데, 4호 차 이벤트 칸에서 관광객을 위해 깜짝 공연을 준비했다는 안내 방송이 나온다. '무슨 공연일까?' 궁금함에 자리를 잡고 기다렸다. '바겐바이러스' 라는 인디밴드가 '먼지가 되어' '슈퍼스타' '여수 밤바다' 'Hello Yesterday' 등 감미로운 곡을 열창한다. 노래에 빠져 흥얼거리다 보면 한 시간이 금세 흘러간다. 공연의 여운을 안고 자리로 돌아가 준비한 꼬마김밥을 먹고, 옆자리 승객과 수다를 떨며 기차 여행의 즐거움을 만끽하니 이보다 좋을 수 없다. 창밖에 펼쳐진 드넓은 들판을 보고 있으면 달리던 열차는 어느새 종착역인 나주역에 멈춘다. |

1 '천일각' 과 '강진만'. 2 다산의 유배 길을 따라 걷는 것도 의미 있다. 3 다산이 18년 유배 기간 동안 머문 '다산초당'. |
곰탕 먹고 정약용 발자취 더듬다 |
나주역에 내려 나주 곰탕골목에 가기 위해 '백련사 - 다산초당' 이라고 적힌 버스에 몸을 실었다. 목적지에 내리니 골목에 쇠고기 고는 냄새가 가득하다. 어느 식당에 들어서니 가마솥에 쇠뼈를 넣어 24시간 곤 국물이 펄펄 끓는다. 곰탕한 그릇을 주문하니 뚝배기에 국물과 양지머리, 파, 달걀지단을 푸짐하게 올려준다. 서울에서 보는 곰탕과는 사뭇 다른 모습. 기대감을 안고 한 수저 맛보니 역시 '나주 곰탕' 이다. 부드러운 쇠고기에 구수하고 깊은 국물, 여기에 새콤달콤한 깍두기를 곁들이면 수라상 부럽지 않다. 식당 여기저기서 "밥 한 공기 추가요"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 필자도 밥 한 공기 뚝딱 해치우고 공깃밥 추가를 외쳤다. 나주 곰탕은 역시 곰탕의 지존이다.
곰탕 한 그릇 먹으니 세상이 더욱 아름다워 보인다. 본격적으로 여행에 나설 때다. 버스를 타고 한 시간 이동해 내린 곳은 '백련사' 다. 천연기념물 151호로 지정된 동백나무 숲을 따라 걸으면 고즈넉한 사찰과 마주한다. 비록 작은 사찰이지만 신라 말에 창건한 뒤 고려 시대 때 원묘국사 요세가 중창한 곳으로, 고려 후기 8국사를 배출할 정도로 유서 깊은 사찰이다. 절에서 가을바람 만끽하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낸 뒤 '다산초당' 과 '다산유물전시관' 으로 이어지는 오솔길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 이 길에는 천주교 박해로 시작된 유배 기간 18년 중 절반 이상을 다산초당에서 머물며 대표 저서인 <목민심서> 등 집필 활동으로 학문적 업적을 남긴 정약용의 발자취가 오롯이 남았다. 이 숲길은 초의선사와 함께 시국담을 나누며 자주 거닐었다는 기록이 전해지며 '정약용 남도 유배길' 이라고도 불린다.
백련사에서 시작하는 계단에 오를 때는 "왜 이리 계단이 많아?" 라며 투덜댔지만, 정상에 다다르면 드넓은 들판과 강진만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피로가 눈 녹듯 사라진다. 다산이 기거하며 손님을 맞은 '송풍루(동암)' 를 지나면 다산초당이 수줍은 듯 방문객을 맞는다. 원래 해남 윤씨 집안의 산정(정자)이지만 경치의 아름다움에 매료된 다산이 머물고 싶은 마음을 시로 전하자 주인이 흔쾌히 초당을 내줬다고. 이곳은 다산이 후진양성과 집필활동을 하며 제가 18명과 함께 500권이 넘는 저서를 남긴 역사적인 장소다. |
부드러운 쇠고기에 구수하고 깊은 국물, 여기에 새콤달콤한 깍두기를 곁들이면 수라상 부럽지 않다. 식당 여기저기서 "밥 한 공기 추가요"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 나주 곰탕은 역시 곰탕의 지존이다. |
차밭 정취 품에 안고 장터로 가자 |
다음 목적지 강진 차밭 역시 초의선사와 다산 정약용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다산은 차를 마시며 많은 학자와 교류해 학문의 깊이를 더했고, 초의선사는 차 따기부터 차 마시기, 차 보관 등 차의 모든 것이라 할 수 있는 <다신전>을 집필하며 차 문화 부흥에 이바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1982년 월출산 아래 33만500여 m2 규모로 조성된 '강진다원' 은 녹차를 생산하는 대표 시설로, 전망대에서 끝없이 펼쳐진 차밭 풍경을 렌즈에 담으면 누구나 작품 사진을 남길 수 있다.
'나주목사고을시장' 은 금계상설시장과 성북오일장을 통합, 현대적인 시설로 바꿔 마트보다 저렴하고 백화점보다 친절한 시장을 지향한다. 전국 최초로 오일장과 상설 시장이 공존하는 이곳은 물건만 파는 것이 아니다. 시장 곳곳에서 사물놀이, 색소폰·통기타·피아노·해금 연주, 길거리 마술, 풍선 아트 등 흥겨운 무대가 열린다. 또 노래 부르기에 참여하면 나주 특산품을 받을 수 있으니 스트레스 해소 겸 용기를 내어 도전해보는 것은 어떨까? 이밖에도 시장에서 1만 원 상당의 물건을 구입하고 영수증을 제출하면 무료로 팝콘을 먹을 수 있고, 2만 원 이상일 때는 룰렛을 돌려 선물(돌자반볶음과 참기름+머그컵, 사골 세트, 배추돌이·무순이 인형)을 받을 수 있다. 심지어 곳곳에 숨은 쪽지를 찾는 보물찾기는 1만5천 원짜리 사골 세의 행운이 기다린다.
무엇보다 찬찬히 시장을 돌면 남도 대표 특산품인 삭힌 홍어와 향토 반찬 가게가 주부들에게 인기다. 끝 자리 4·9일에 오일장이 열리는데, 오늘이 장날이라 더욱 풍성하다. 나주의 대표 과일 배를 비롯해 채소부터 군것질거리까지 없는 게 없다. |
Travel Info 팔도장터 투어열차 기차 여행과 전통시장이 결합된 여행. 소비자의 요구에 맞춘 문화 관광형 시장(70여 곳) 중에서도 엄격한 심사를 거쳐 선정된 11곳(단양구경시장, 강경젓갈시장, 삼천포용궁수산시장, 안동구시장, 정선아리랑시장, 나주목사고을시장, 남원공설시장, 양평전통시장, 계림연합시장, 제천한마음약초시장, 무주반딧불시장)을 방문하는 열차다.
코스 서울역-나주역- 나주 곰탕골목- 강진 백련사-다산초당/산책- 강진 차밭-나주목사고을시장(장보기) 이용료 어른 4만2천 원(온누리상품권 5천 원 지급 ) 문의 코레일관광개발 1544-7755(www.korailtravel.com) |
 | 미즈내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