序品 第一
[더없이 아름다운 세상과 사람들]
(법화경의 제목 풀이)
법화경(法華經)이란?
부처님께서는 법화경에서 수차에 걸쳐 하신 말씀이
"이경전은 불교에 있어서 최고의 수준에 이른 사람들[보살]만을 위한 가르침이다.
늘 마음속에 간직하여 두고 아까워하던 가르침이다.
비장해 두었던 최상의 가르침이다.
내가 열반을 앞두고 최후의 유언으로 전해주는 가르침이다
이 이상은 없다." 라고 하셨습니다.
전통교학적인 표현을 빌리지 않더라도 불교 경전 전반에 있어서
얼마나 소중하고 높이평가 받는 경전임을 알 수 있는 말씀입니다.
화엄경은 막 떠오르는 아침해에다 비유하고
법화경은 장엄한 낙조를 남기고 사라지는 저녁 해에다 비유합니다.
"아침의 밝은 햇살도, 한낮의 그 뜨겁고 강렬함도, 석양의 신비한 아름다움도,
모두가 아쉬움은 있으나 그러나 보여줄 것은 모두 보여주었고
이제 더 이상은 없노라.
단지 곧 밤이 오려는데 그어둠을 밝힐 마음의 빛을 주노라.
부디 잘 받아 지니도록 하라."라는 말씀으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법화경의 온전한 이름은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입니다.
"진흙 속에서 더욱 빛나고 그 고귀한 모습으로 늘 그렇게 피어있는 흰 연꽃처럼
더없이 아름다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 들과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에 대한 바른 이해의 가르침"이라는 뜻입니다.
불교의 모든 경전은 그 경전이 담고 있는 가장 중요한 뜻을
경전 제목에 함축하여 나타내고 있습니다.
[금강반야 바라밀경 ]이 그렇고, [대방광불화엄경]이 그렇습니다.
[묘법연화경]은 더더욱 그렇습니다.
그래서 경전의 제목만 읽어도 그 경전의 가장 혁심적인 뜻을 생각할 수 있으며,
그 경전의 제목만 독송하여도 그 경전 전체를 독송하는 공덕이 있다하여
경전 제목을 불.보살의 명호를 칭명(稱名)하듯이 하는 수행법도 많이 행해지고 있습니다.
먼저 묘법(妙法)이란
모든 사람을 위시하여 이 세상에 존재하는 유정이나 무정,
일체 삼라만상들과 그들이 활동하고 움직임이
그지없이 아름답고 미묘 불가사이하며 고귀하다는 뜻입니다.
특히 사람 사람들이 그지없이 아름답고 미묘 불가사의 하다는 것은
한마디로 "사람이 곧 부처님 이라는 말입니다".
깨달은 사람들의 눈으로 볼 때,
우리 인간들이야 말로 더없이 소중하고 미묘 불가사의하며, 아름답기 그지없고,
보고 듣고 알고 느끼는 그 신통묘용(神通妙用)이 신묘불측(神妙不 )하다고 하십니다.
여기에서 부족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미묘한 도리[妙法]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을 누구보다도 밝게 깨어 있는 부처님께서 법화경 이라는 가르침을 통하여
인류에게 깨우쳐 주고자 하는 것입니다.
다음의 연화(蓮華)란
우리가 익히 아는 연꽃으로서 특히 여기에서는 흰 연꽃을 뜻합니다.
다른 경전에는 붉은 연꽃, 푸른 연꽃. 황색 연꽃도 등장합니다.
연꽃은 그 꽃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곳과 그 꽃과 열매의 관계가 특별하기 때문에
경전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꽃이며 일찍부터 불교의 사상을 잘 상징하고 있다하여
불교의 꽃으로 정하여 졌습니다.
연꽃의 첫째 특징은
높은 언덕이나 잘 다듬어진 화단에서 피지를 않습니다.
진흙탕 더러운 늪에서만 핍니다.
그리고 두 번째 특징은
꽃이 필 때 열매도 꽃과 함께 생겨난다는 것입니다.
진흙탕이란 두말할 나위도 없이 고통스럽고 급박하고 쓰라린,
즉 사람들이 사는 이세상의 현실을 뜻합니다.
그런 진흙탕 속에서라야 그 고결하고 아름다운 꽃을 피울 수 있다는 것은
초월적 깨달음의 경지도 결국은 인간의 파란만장한 현실에서 출발하였으며
그런 현실을 떠나서는 부처님의 세계도 존재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즉 흙투성이의 못생긴 연뿌리에서 그 아름다운 연꽃을 보아야합니다.
부정부패와 시비영욕과 희로애락이 뒤범범이 되어 있는 이 현실에서
부처님의 삶을 보아야 합니다.
그런 사람들의 삶속에서 부처님과 부처님의 삶을 발견하지 못하면
더 이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초월적 깨달음의 경지란 바로 우리들의 오늘의 삶입니다.
물결을 떠나서 물이 없고 물을 떠나서 물결이 없습니다.
정신없이 출렁거리는 그대로가 물입니다.
숱한 병고와 팔만사천의 번뇌로 몸부림치며 잠 못 이루는 그 모습 그대로가
부처님의 삶입니다.
옛 조사스님께서 사람 사람들이 더없이 소중하고 아름답고
완전무결한 존재임을 표현하는 말씀에 이런 것이 있습니다.
"구류동거일법계(九類同居一法界)
자라장리살진주(紫羅帳裏撒珍珠)
무수한 사람들, 무한한 생명들 그들이 함께 이 땅 이 국토에 살고 있네.
마치 아름다운 비단 위에 빛나는 보석을 뿌려 놓은 듯
사랑스럽고 아름답기 그지없네."
연꽃의 두 번째 특징인 열매와 꽃이 처음부터 함께 생긴다는 것은
원인[꽃]에 해당되는 중생들의 삶과
결과[열매]에 해당되는 부처님의 삶이 공존하고 있으며
그것이 가장 이상적인 사상으로서 "사람이 곧 부처님"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연꽃으로 부처님의 궁극적인 가르침을
간단명료하면서도 가장 잘 나타내고 있다고 합니다.
경(經)이란
성인들의 가르침, 즉 늘 바르게 깨어있는 위대한 성자의 가르침을 경이라고 합니다.
불교에서는 진리를 깨달은 사람들의 가르침은
누구의 가르침이든 모두 부처님의 이름으로 편찬하여 경전이라고 합니다.
특히 부처님이 열반하시고 5,6백년이 지났을 무렵부터
인도에서는 대승경전이 매우 많이 편찬되었는데
모두 석가모니 부처님의 이름으로 편찬하였습니다.
편찬 하신 분들은 모두 석가모니 부처님처럼 깨달음을 이루었고,
그 깨달음에 의하여 진리를 설파하셨기 때문에
그분들의 가르침을 경전이라 하더라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석가의 이름을 빌리든 아난존자의 이름을 빌리든
자신의 이름으로 저술하든 그 문제도 역시 전혀 잘못이 없습니다.
다른 종교에서는 말씀의 진위 여부를 가려서 아니다 싶으면 배제해 버리지만
불교에서는 바른 가르침이거나, 사람들에게 유익한 가르침이면
모두 경전에 포함시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비불설(非佛說)이니, 위경(僞經)이니 하는 말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법화경에 이르기를,
"혹 있는 사실도 말하고 없는 것도 꾸며서 이야기하여
사람들의 이익과 행복에 보탬이 된다면 나는 가리지 않았다." 라고 하였습니다.
문 밖에 호랑이가 실제로 왔든지, 오지 않았든지 그것은 아무런 상관없이
우는 아이의 울음을 그치게 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경전의 진실은 거기에 있고 그렇게 성립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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