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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행소감
오래전부터 한남금북정맥종주를끝내면 바로 금북정맥을 시작하겠다고 이미 생각은 하고 있는 터였다.
그런데 회사일이다 뭐다 하면서 바로 토요일이 눈앞에 다가왔는데, 금북정맥 종주산행에 대해서는 아무런 정보를 갖고 있지 않은 상태였다. 이번 기회에 GPS도 구입하고자 했지만 이 역시 다음 기회로 미룰 수밖에 없었다.
금요일 오후 여느 때보다는 일찍 퇴근을 하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인터넷을 통하여 금북정맥지도와 선답자의 산행기를 잔뜩 출력하여 배낭에 쳐 넣었다. 19시 30분 죽산행 시외버스를 타고서 선답자의 산행기와 지도를 대조하면서 오늘의 산행코스를 스크린하며 특이사항을 지도에다 표기하였다. 안성 칠장사에서 천안 응원리 경부고속도로까지 약 47km(도상거리)를 진행하기로 하였다. 물론 더위 때문에 목표거리 7km를 남겨두고 하산해야 했지만....
이번 금북정맥길은 대간길과 같이 대체적으로 길이 분명하였고, 소나무길이 많고 평탄하여 진행하기가 수월하였다. 또한 정맥 가는 길에 뭔가 모를 가슴 찡한 사연을 담고 있는지 돌탑들이 많았다. 특히 싸리재의 부부 칠순탑은 오랜 시간 걸쳐 차곡차곡 정성으로 돌을 쌓은 만큼이나 그들의 절절한 사랑을 느꼈고, 다시 한번 부부의 연(緣)을 생각하게 했다. 덕성산에 이르자 생거진천(生居鎭川 )이라는 팻말이 나타났다. 이미 선답자의 산행기에서 “풍수지리적으로 길지이며, 사람 살기가 진천만한 곳은 없다”는 설명이 되어 있었고, 이 문구는 엽돈재에도 사용되고 있었다.
덕성산 인근에는 김유신장군과 관련된 유적들이 많고, 태조산은 고려 태조와 관련이 많았으며 성거산(聖居山)은 고려 태조가 신령한 산이라고 할 만큼 유적과 역사성이 높은 곳이었다. 그리고 위례성(백제의 옛 도읍지)과 성거산 인근에는 천주교 순교자들의 묘지가 많은 곳이기도 하다.
그런데, 성거산은 바로 앞에 공군부대가 가로막아 포장도로를 따라 올라가도록 되어 있어, 정맥길을 연결하려면 공군부대를 되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폭염에 진행하기가 수월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이미 서운산에서 엽돈재까지 정맥길을 놓치면서 청룡저수지를 우회하여 도로를 따라 올라가려니 뜨거운 햇볕에 엄청난 지열을 감내해야 했다. 아마도 그 때문인지 그 때부터 얼굴이 화끈거리며 정신이 몽롱한 상태가 되기도 하였다.
차라리 한남금북정맥 종주때 같이 비나 퍼부어 내렸으면 하는 바램이 간절한 하루였고, 틈틈이 배낭을 배게 삼아 아무데나 들어 눕기도 했다. 가장 힘들었던 산행 중 하나가 되었다.
★ 산행개요
- 산행코스 : 안성 칠장산 - 천안 태조산(교보생명 연수원)
- 산행일행 : 돌쇠 단독산행
- 산행일시 : 7/23 23:00~ 7/24 18:20
- 산행거리 : 도상거리 약 40km
- 산행시간 : 19시간 20분(식사, 수면 등 4시간 20분 포함)
★ 시간대별 산행기록
7/23 23:00
한남금북정맥 종주 때는 비 때문에 힘들었지만 이제부터는 무더위와의 싸움이 될 것 같다. 21시가 채 되지 않아 도착한 죽산터미널은 밤인데도 후텁지근한 기운이 느껴진다.
21시 30분, 지난번과 같이 광해원행 버스를 타고 칠장사 방면 갈림길에서 하차하였는데, 등산복 차림의 초로의 아저씨가 같이 하차한다. 혹시 야간등반하시냐 물으니 그게 무슨 말이냐고 한다. 편하니까 등산복을 입고, 배낭을 짊어졌을 뿐 등산과는 무관한 분이다. 칠장사 인근에 사시는 분이라 다행히 지나가는 차가 그분을 알아보고 근처까지 같이 태워다 주셨다.
22시 정각, 세 번째 칠장사와의 만남이다. 지난번과 달리 칠장사 입구가 가로등이 꺼져 있어 컴컴하다. 바로 칠장산을 올랐다. 다행히 바람이 불어줘 선선한 느낌이 든다.
천천히 칠장산 헬기장사까지 오른 후 약간의 요기를 하고 스트레칭을 했다. 그냥 달빛을 보며 눕고 싶다. 23시 정각, 심호흡을 하고 천안을 향해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였다.
장거리 정맥길은 반드시 식수에 대한 정보가 있어야 하는데, 식수를 보급할 만한 장소가 적절치 않은 것 같다. 안되면 민가로 내려와서 구할 수밖에 없었다. 만약을 위해서라도 식수를 아껴야 하지만, 밤인데도 더운 날씨 탓인지 식수 소비가 평소보다 훨씬 많았다.
건건산악회에서 설치한 삼정맥 분깃점을 다시 한번 돌아보고 칠장사 내려가는 갈래길을 통과하여 싸리재에 도착하였다. 싸리재에는 칠순을 맞이한 노부부가 정성으로 쌓은 돌탑이 있다.
23시 40분, 칠현산(515.7m)에 도착하였다. 정상에는 누군가 부부탑과는 비교가 되지 않지만 돌탑을 쌓아 놓았고, 그 옆에 정상 표지석과 삼각점이 있었다. 24시 정각 광해원 곰림정상 표지석(제멋대로 생긴 돌에다 흰색 페인트로 적어 놓음)이 있는 곳에 이르렀고, 이내 “생거진천” 표지가 있는 덕성산에 도착하였다(00:19).
매트를 깔고 자리에 앉아 땀을 씻었다. 달빛이 좋아 덥지만 않았더라면 산행하기에는 그만이었을 텐데....
10분정도의 휴식 후 자리를 털고 일어나 옥정현으로 하산하기 시작하였다. 표시기가 듬성듬성 붙어있지만 길이 외길이라 그리 걱정할 일도 아닌데, 신경이 쓰였다. 나침반이 지시하는 방향과 지도에서 표기된 방향과 다를 경우 표시기가 없다면 다시 되돌아가서 확인하기도 하였지만 틀린 방향은 아니었다. 축척이 1/5만 지도에서는 실제 산행경로를 자세하게 표기할 수 없기 때문에 부분적으로는 지도와 맞지 않을 수도 있어 발생하는 문제일 것이다.
7/24 03:00
몇 번 길을 확인하면서 시간이 지체되어 예상보다 늦어진 03시경 옥정현에 도착하였다. 옥정현은 안성시와 충청북도의 경계선이다. 충청북도의 캐릭터인 고드미와 바르미가 반갑게 맞는다. 벌써 배낭이 가벼워짐을 느껴 근처에 혹시 약수터가 있지나 않을 까 해서 둘러봤지만 허사였다. 왜냐하면 옥정현이 한자로 우물정자를 사용한 玉井峴이기 때문에 우물이 있을만해서 였다.
옥정현에서 정맥길 찾기는 어렵지 않았고, 임도를 따라 2~3백미터 올라가자 왼쪽으로 정맥길이 표시기와 함께 선명하게 나타났다. 03시 20분, 409.9봉을 통과하였고 04시 40분 470.8봉 헬기장에 도착하였다.
<470.8봉 정상 헬기장에서 비추는 달>
헬기장이 여느 헬기장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널따랗게 철판을 깔아 만들었다. 아마 날이 밝으면 알 수 있겠지만, 조망이 사방으로 열려 있어 전망도 좋을 것이다.
아직 달도 밝게 비추고, 한줄기 시원한 바람도 가끔씩 불어와 앉아 있으려니 잠이 오기 시직한다. 매트를 배게로 하고 그 자리에 벌러덩 누웠다. 잠깐 눈을 붙이는가 싶더니 옆에서 새들이 시끄럽게 재잘거린다. 무시하고 또 잠을 자려는데, 아예 근처까지 다가와서 소리를 지른다. 자기네 구역을 침범했다고 그러는가 보다.
<헬기장이 철판으로 되어 있음>
07:30
05시 20분, 40분간을 비몽사몽으로 누워있었지만 잠을 잔 것인지 안 잔 것인지도 알 수가 없다. 전망이 어렴풋이 열리고 동쪽 편 하늘은 일출을 준비하는지 조금씩 붉어지고 있었다.
헬기장에서 오른쪽 방향으로 정맥길이 확 꺾이면서 북쪽으로 향했다. 잠을 자다말다 한 것이 더 피곤하다. 금새 20분도 못 가 쏟아지는 잠 때문에 진행할 수가 없을 지경이다. 5시 40분, 바람이 올라오는 능선에 누웠지만 자리가 불편하다. 할 수 없이 아침을 먹기로 하고 도시락을 꺼냈다. 식사를 하니 한결 나아진 느낌이다.
6시 40분, 이제 식수가 바닥이 났다. 다행히 정맥길 왼쪽으로 연안이씨 납골묘가 나타나고 그 아래 골프장(중앙컨트리클럽)이 보였다. 골프장 안에 화려한 납골묘를 모시고 있는 것을 보니, 아마도 골프장 사장이거나 아니면 그 부모님이거나 대충 이 골프장과 상당히 관련이 있는 사람인 것은 분명한 것 같다. 골프장에 내려선 후 건물 안으로 들어가자 무장공비 같은 행색의 등산객을 반가워 할리도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 쫓지는 않았다. 물을 떠가든 말든 관심이 없다.
<골프장 안의 연안이씨 납골묘>
물주머니(3리터)와 보조물병에 물을 채우고 다시 능선을 올라타기 위해 진행하는데, 어디서 튀어 나왔는지 토끼 한 마리가 골프장에서 미동도 하지 않는다.
<골프장안에서 만난 산토끼>
앞으로 20km 정도는 식수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바로 골프장 도로를 좌측으로 두고 한참을 진행하자 헬기장이 나타나고 거기서 100미터 정도를 내려오자 삼각점이 있었다. 산 정상이 아닌 능선에 삼각점을 표시한 경우는 처음 본다.
7시 30분, 313번 도로인 배티고개(또는 이티재)에 도착하였다. 역시 이 곳에서도 고드미와 바르미가 나를 반긴다. 안성시와 진천군 백곡면을 연결하게 되어 있다.
<이티재(밤티고개)>
10:45
배티고개에서 서운산 들머리를 올라서자마자 이정표가 서운산까지 2.1km 남았다고 한다. 누군가 방금 지나갔는지 절개지의 흙이 파헤쳐져 있었다. 오늘 나를 앞서서 정맥종주하시는 분이 있는 모양이다.
서운산 들머리에서 10분도 채 걸리지 않는 곳에 천주교 무명선교자의 묘가 좌측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정맥 길에서도 바로 비석 뒷면이 일부 보이긴 했지만 가보지는 않았다.
땀냄새를 맡았는지 날파리 떼들이 모여들기 시작한다. 한두마리가 아니다. 해충퇴치기를 설치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다. 고가의 해충퇴치기도 기껏해야 밤에 모기가 접근하는 것을 막을 정도이지 날파리들에게는 아무런 효과가 없는가 보다. 이 날파리떼는 하산할 때까지 계속하여 나를 괴롭혔다. 가장 고통스러운 것이 무작정 눈 속에 뛰어드는 것이었다. 나중에는 눈이 따끔거리고 눈꼽이 생기면서 물체가 잘 보이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
08시 30분, 서운산(또는 청룡산)에 도착하였다. “산불조심 산지정화” 표시와 함께 서운산성 안내표지가 있었다. 전망이 좋지 않아 멀리까지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가까이 있는 안성시내는 어렴풋이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청룡사와 좌성사 하산길은 이정표에 표시가 되어 있었는데, 엽돈재 방향은 표시되어 있지 않았다. 선답자의 산행기도 그 부분에 대해서는 명쾌하게 설명되어 있지 않았다. 일단 헬기장에서 좌측방향으로 진행하라고 되어 있어 좌측으로 갔지만 표시기도 없고, 나침반이 진행하는 방향과 지도가 표시하는 방향이 맞지를 않는다.
일단 지도와 나침반을 비교하면서 진행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다시 청룡사 방향으로 잘못 빠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고, 가능한한 청룡사 이정표 좌측능선을 의도적으로 바꿔 타고자 했다. 그러다 은화암이라는 암자가 있는 곳으로 빠져 들자 노승이 나를 발견하곤, 대뜸 “엽돈재 갈려고 그러지”라고 한다.
조금 전 앞서 가던 등산객에게도 길을 알려 주었다고 하는데, 설명이 정확하지 않다. 자꾸 물어보기도 불편할 것 같아 일단 진행하기로 했다. 가는 도중 계곡이 있어 땀에 흠뻑 젖은 등산복을 빨고 간단하게 등목을 했다. 노승이 말한 지점인 듯한 삼거리가 나타나기는 했지만, 노승이 가도록 한 왼쪽방향은 길이 희미하고 위쪽으로 진행하는 것처럼 보여 고민하다 길이 좋은 오른쪽을 택하였다.
그런데, 계곡을 따라 한참을 내려가니 청룡사가 나타났다. 노승이 알려 주는 대로 진행하였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것이 후회스러웠다. 농부가 논에 농약을 치려고 준비하고 있었다. 엽돈재 방향을 묻자 알려준다. 다시 계곡을 따라 가다보니 조그만 폭포수가 나타났다. 시간은 9시 20분을 지나고 있었다.
<목욕하기에는 그만인 조그만 폭포수>
발가벗고 몸을 담았다. 언제나 그렇지만 목욕하는 시간만큼은 즐겁다. 그러나 오래 머물 수도 없는 일, 옷을 입고 10시 정각에 청룡리(경기도 안성시 서운면)로 하산하였다. 서운산 입구라 이것저것 팔고 있었다. 애들한테는 불량식품이라 사먹지 말라고 하였지만, 유해색소를 잔뜩 머금은 포도맛 쥬스를 달라고 했다.
서운산에 못미쳐 지도와 볼펜을 분실하여 여분의 지도(무대포가 같이 가기로 하여 따로 준비했던 지도)가 있어 다행이었지만, 볼펜을 구하여야 했다. 매점에 들러 볼펜을 구입한다고 하니 쓰던 볼펜 밖에 없다고 한다. 그런데, 그 쓰던 볼펜을 줘도 그만인 것을 꼭 돈을 받는다. 얼마를 받아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길래 그냥 500원을 줘 버렸다. 인심도 야박하지...
34번 도로로 내려와 엽돈재로 가야했다. 3km이상을 아스팔트 포장길을 따라가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덮지 않은 날 같으면 마라톤으로 뛰어가면 되지만 오늘은 달랐다. 뜨거운 햇볕에 지열은 온몸이 사우나로 데워지는 것처럼 그 열기가 참을 수 없을 만큼 전해져 왔다. 청룡저수지 옆을 지나자 엽돈재까지는 가파르게 올라가야 했다. 엽돈재에 못미쳐 칡즙을 팔고 있었다. 종이컵 한잔에 1500원이라 한다. 더위를 이용한 바가지다. 알면서도 사먹을 수밖에 없었다. 수건으로 햇볕을 가렸지만 줄줄 흘러내리는 땀은 바닥에 떨어지며 내가 가는 흔적을 표시라도 하는 듯 하였다. 청룡리에서 택시를 못 탄 것이 후회되기도 하였다.
10시 45분, 드디어 엽돈재에 도착하였다. 충청남도와 충청북도 경기도가 분기하는 곳이다. “생거진천”이라는 표지가 큼지막하게 걸려 있었고 절개지 공사를 한다고 인부들이 땡볕에 고생하고 있었다.
후텁지근한 바람이 조금씩 불기는 하지만 그늘에 앉아 있어도 계속하여 땀이 난다. 그리고 더위를 먹은 것처럼 얼굴이 후끈거리고 정신이 몽롱하다. 진이 다 빠져 버린 것과 같이 더 진행하기도 어려울 것 같다. 일단 점심을 먹고 정신을 차리기로 하였다.
<엽돈재>
2km를 더 우회하기는 했지만 도상거리로 27km밖에 진행하지 못했으니 천천히 가더라도 날이 밝아 있는 동안은 진행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11시 15분, 출발하려고 자리에서 일어나자 앞서서 은화암 노승에게 길을 물어봤다던 정맥종주하시는 분이 나타났다. 끝내 그 분도 길을 못 찾아 34번 국도를 따라 올라온 모양이다. 나는 목욕을 하고 식사도 했으니 나보다 한시간 이상 더 지독하게 길을 헤맨 모양이다. 부산(산새들의 합창)에서 왔다고 하면서 오늘은 너무 힘들어 여기서 산행을 접어야 하겠다고 한다. 그 분이 호출한 택시가 오자 나도 순간적으로 포기하고 그 택시를 같이 타고 가버릴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13:22
11시 20분, 절개지를 따라 터벅터벅 정맥길을 찾아 올랐지만 발걸음에 힘이 없다. 바람 한 점없는 폭염속에 식수도 벌써부터 조금씩 바닥을 보이기 시작한다. 정맥길에서조차도 지열이 느껴진다. 고도가 3~4백미터로 높지 않아 그럴 것이다. 459.1봉을 지나 12시 10분, 부수문이고개에 도착하였다. 위례산 이정표가 보인다.
계속하여 잠이 쏟아진다. 아마도 더위를 먹어서 더욱 그럴 것이다. 12시 30분, 그늘 좋은 등산로에 퍼질러 누워 잠을 청했다. 여전히 날파리가 기승을 부린다. 30분을 그렇게 누웠지만 잠을 잘 수가 없다.
13시 22분 위례산 정상(529.9m)에 도착하였다. 위례산성(충청남도 천안시 입장면 호당리 소재, 백제의 첫 도읍지로 추정되는 곳)이 있었던 곳으로 정상부근이 분지지형으로서 산성터에 대한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기왓장과 깨진 구조물 파편들이 여기저기 나뒹굴고 있었다. 그런데 우물물이 있다는 산행기를 확인하고 이를 표기한 지도를 분실하는 바람에 그냥 지나치고 말았다. 아쉽게도 한참 그곳을 지나 식수가 바닥이 난 후에야 그 생각이 났다.
16:00
14시 정각, 우물목고개에 도착하였다. 지도에는 임도주변에 민가가 있는 것으로 표시가 되어 있어 민가에서 식수를 보충하기 위하여 일단 임도를 따라 내려가기로 하였다. 그런데 민가라고 생각되는 곳은 집이 아니고 공장형 비닐하우스 같은 건물이었다.
순간 아찔한 생각이 들었지만 다행히 계곡에는 깨끗한 물이 흐르고 있어 이 물을 식수로 쓸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보면 계곡물이라 할 지라도 도심 가운데 오염된 약수물보다는 나을 수도 있다. 핑계에 다시 한번 옷을 벗어 등목을 했다.
<식수로 이용한 계곡물>
임도를 따라 더 내려가자 계곡에서 행락객들이 웃고 떠들며 놀고 있었다. 맥주나 막걸리 한잔이 간절하였지만 누구하나 한잔하시라는 말을 건내지 않는다. 이제 또 한번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2km정도를 올라가야 했다. 목욕을 했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금새 온몸이 땀으로 뒤범벅이 되었다. 산길을 가려고 바로 옆의 능선에 힘들게 올라가 봤지만 가다가 끊기고를 반복하여 아예 처음부터 포장도로를 따라 가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누군가 우측으로 암벽연습할 수 있도록 로프도 설치하여 놓고 그 좌측에는 운동기구도 갖다 놓았다. 조금 더 진행하자 천주교 성지가 나타났다. 정맥길이 지나는 곳에는 천주교인들의 공동묘지가 많았다.
공군부대까지 한참을 올라가다 정문에 못 미쳐 15분간을 휴식했다. 오늘 하루가 너무 힘들다고 생각된다. 부대 정문에 이르자 왼쪽 측면 철조망을 따라 악조건의 등산로(키를 덮어버리는 가시덩쿨)를 따라가니 조그만 후문에 이르게 되고 성거산으로 이어지는 진짜 등산로가 나타난다. 표시기가 좌측으로 내려가는 곳에도 붙어있고 직진방향으로도 붙어 있었다. 산행기에도 이 부분에 대한 설명이 있는데, 좌측 측면으로 올라 올 수도 있지만 부대 철조망 붙어 올라오는 것보다는 시간이 더 많이 소요된다고 한다.
16시 정각, 드디어 성거산(556.5m)에 도착하였다. 고려태조 왕건이 직산면 산헐원을 지나다 "신령이 있다고"(聖居) 하여 제사를 지내게 하였다고 하지만, 내 눈에 비치는 성거산은 그렇게 신성하게 보이지는 않았다. 정맥의 여느 봉우리처럼 그저 초라한 하나의 봉우리일 뿐이었다.
18:00
30분간 수면을 취하였다. 오늘처럼 휴식이 잦은 산행도 처음인 것 같다. 16시 40분 만일고개를 지나 17시 05분, 갈뫼고개에 도착하였다. 점점 해가 기울어지면서 날파리들의 기승도 덜 했으면 좋겠지만 이 녀석들의 공격이 더욱 저돌적이어서 이파리가 많은 나뭇가지를 꺾어 휘둘러보기도 하고, 달려보기도 하지만 소용이 없다. 손바닥을 쳐 몇 마리를 죽였지만 중공군 인해전술과 같아 이 또한 소용이 없다. 다음에는 에프킬러라도 준비해야 할 것 같다.
태조산 등산로는 천안시민들이 즐겨찾는 산책로로 이용하고 있었다. 부부 또는 친구들끼리 산을 많이 찾는 것 같다. 마치 부천의 소래산이나 산본의 수리산과 같이 길이 뚜렷하게 잘 나있고, 바닥이 흙으로 다져져 맨발로 걷는 사람도 많았다.
유왕골고개를 지나 태조산 성불사 이정표가 있는 정자를 통과하였다. 주변의 소나무들이 운치가 있어 보인다. 철망으로 된 경계를 지나 다시 능선을 올라가자 18시 정각, 태조산(421.5m)에 이르렀다.
고려태조 왕건이 산 정상에 올라 태조산이 군사적 요충지임을 판단하고 천안에 천안도독부를 두었다고 하여 천안과 태조산의 지명이 유래한다고 한다. 지도를 보니 취암산을 넘어 경부고속도로까지 가려면 약 7km 정도를 더 진행하여야 하므로 현재의 속도로는 20시 이전에는 도저히 끝내지도 못할 것 같고 가장 가까이 차를 이용할 수 있는 곳인 교보생명 연수원으로 하산하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물론 연수원으로는 출입을 통제하는 것으로 되어 있어 고민이 되었지만, 문이 열려 있었으므로 일단 들어간 후 다음 문제를 해결하기로 하였다.
18시 20분, 교보생명 연수원 하산 길을 따라 연수원에 내려서자 연수원내 도로가 나타나고 조그맣게 시냇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일단 옷을 벗어 몸을 씻었다. 오늘만 네 번의 목욕을 하는 셈이다.
옷을 갈아 입고 등산화를 신는데, 경비원인 듯한 분이 와서 외부인을 통제하는 곳으로 어떻게 여길 들어왔느냐 하길래 등산로가 있어 길 따라 내려 왔을 뿐이라고 하자 입구를 가르켜 주며 말없이 그냥 가버린다. 다음 정맥길을 연결할 때 이곳을 다시 와야 하는데, 통제하고 있어 신경이 쓰인다.
연수원 입구에서 내려오다 지나가는 차를 얻어타고 5분정도 거리의 버스정류장에 도착하여 시내버스를 이용, 천안역으로 이동한 후 지하철을 타서 집에 도착하자 22시가 조금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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