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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강
얼핏 들으면 空에 떨어진 사람 같죠. 요 앞에 句에 대해서 죽~ 설명하고 성성역력을 아무 생각도 없고 그야말로 생각이 붙을 자리도 없고 그러면 그건 空 아니냐? 이거야. 공부하다가 공에 떨어지면 그건 큰 병이라 하는데 이렇게 염려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喩似舟未飜(유사주미번)에 先自跳下水去(선자도하수거)라 此(차)는 深可憐愍(심가연민)이로다
喩似舟未飜(유사주미번)에 先自跳下水去(선자도하수거)라- 이것은 배가 넘어지기도 전에 벌써 스스로 물에 빠져버리는 사람과 같다. 배가 넘어질 때 그 때 빠져도 되는데 이게 배가 아직 넘어질런지 안넘어질런지 바람에 조금 흔들린다고 해서 그만 먼저 물로 뛰어들어 버리는 것과 같다. 그러니까 이런 경험 해보지도 않고 뭐 그게 空에 떨어졌든 안떨어졌든간에 경험을 위선 해보기나 하고 空에 떨어졌다던지 해야지 경험도 해보지도 않고는 그게 空에 떨어졌다고 그 근처에 얼씬도 안한다면 그 무슨 공부이냐 이거죠.
此(차)는 深可憐愍(심가연민)이로다-이건 참말로 불쌍한 사람이다.
近至江西(근지강서)하야 見呂居仁(견려거인)호니 居仁(거인)이 留心此段因緣(유심차단인연)이 甚久(심구)호대 亦深有此病(역심유차병)이라
近至江西(근지강서)하야- 아마 저기 증시랑이라고 하는 분이 편지에 이런 분위기가 좀 있었던가 봅니다. 근래 강서에 있어서 呂居仁(려거인)이라는 사람을 보니 여거인이라는 사람이
留心此段因緣(유심차단인연)이 甚久(심구)호대- 이 일에 바로 이 공부하는 이 선공부하는 이 일에 마음을 머무는 것이 매우 오래 되었으되
亦深有此病(역심유차병)이라- 또한 깊이 이 병이 있더라.
渠豈不是聰明(거기불시총명)이리오만은 某嘗問之曰(모상문지왈) 公(공)이 怕落空(파락공)하니
渠豈不是聰明(거기불시총명)이리오만은- 그가 어찌 총명하지 않으리오만은 여거인도 내노라하는 사람인데
某嘗問之曰(모상문지왈)- 내가 일찍이 그 사람에게 묻기를
公(공) 怕落空(파락공)부아- 이제 空에 떨어진 문제를 가지고 여기서 대혜 스님이 참~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우리가 공에 떨어진다, 공에 떨어진다 하는데 사실은 공에 떨어질 수 없게 되어 있다. 그거 괜히 염려하지 마라 이거여. 우리도 공에 떨어진게 아닌가? 하는 소리만 들었지 공에 떨어진게 어떤 것인지 나도 경험 못해봤고 공에 떨어진 사람도 못봤어 사실. 그런데 이 대혜 스님의 말씀을 들어보면 우리가 이게 공에 떨어지게 되어있질 않애. 이 죽은 물건 같으면 공에 떨어지겠는데 아직 펄펄 살아있어. 그래서 공에 떨어질 수가 없게 되어 있어. 우리의 마음이 그리 쉽게 공에 떨어지지 않애. 여기보면 여거인이라는 사람하고 이런 이야기가 있네요.
怕落空(파락공)부아- 公이 空에 떨어질 것을 두려워하니, 잘 들어보세요
能知怕者(능지파자)는 是空耶(시공야)아 是不空耶(시불공야)아 試道看(시도간)하라
能知怕者(능지파자)는 是空耶(시공야)아-능히 두려워할 줄 아는 사람 “空에 떨어지면 어쩌나?” 하고 “아~ 이 상태로 지금 공부해나가다 공에 떨어지는게 아닌가?” 간혹 두려워하는 스님들이나 도반들도 더러 봤어요 보면은. 공에 떨어지는게 아닌가? 라고 두려워할 줄 아는 그 사람은 이제 공이냐? 아니냐? 한 번 대답해 보라구.
是空耶(시공야)아 是不空耶(시불공야)아 試道看(시도간)하라- 한 번 살펴보자 이거지. 그렇게 물었는데 “한 마디 해 보라 ”라고 했는데 그 때 이 여거인이
渠佇思(거저사)하야 欲計較 對(욕계교기대)어늘 當時(당시)에 便與一喝(편여일할)호니 至今茫然(지금망연)하야 討巴鼻不着(토파비불착)이로다
渠佇思(거저사)하야- 그 사람이 생각을 이렇게 머물러가지고 “야~ 내가 지금 공에 떨어졌나? 안떨어졌나?” 라고 이렇게 머뭇거리고 사량계교해서 대하려고 하는 머리 굴려가지고 뭔가 이렇게 생각하려고 할 그 當時(당시)에
便與一喝(편여일할)이라- 대혜 스님이 喝(할)을 한 번 했다 이거야. 대혜스 님 눈에는 환히 보이는 거야. 그 사람이 지금 의식이 흘러가고 있는 상태가 환히 보이는 거죠. 그래서 지금까지도 아득해있다. 망연해 있다. 뭐가 어떻게 된건지 그래서
討巴鼻不着(토파비불착)이로다- 어떻게 된건지 도대체 이게 과연 공에 떨어질 꺼리인지 아닌지 공에 떨어질 수 없는건지 이 물건이 공에 떨어지게 되어 있는지 그런 어떤 근거를 찾지 못하고 있다. 토 파비, 파비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비전이라던지 하는 이야기는 생략하고 하여튼 근거라고 하는 뜻입니다. 여기선. 근거를 찾을래야 찾지를 못하다. 그런 수가 없다는 거예요. 그런 수가 없다. 엉뚱한 생각을 하죠. 정말 공한 자리에서 있지는 않습니다. 엉뚱한 생각을 해서 옆에 사람이 보니까 이 사람이 멍청하게 가만히 있는 것 같지만 그 사람은 그 사람대로 딴 생각을 하고 있는 거예요.
此蓋以求悟證之心(차개이구오증지심)이 在前頓放(재전돈방)하야 自作障難(자작장난)이요 非干別事(비간별사)니라
此蓋以求悟證之心(차개이구오증지심)이 在前頓放(재전돈방)해서, 공에 떨어질까 두려워하는 이 사람의 심리도 가만히 들여다보면 대개 오증을 구하는 마음, 깨닫기를 구하는 그 마음이 在前頓放(재전돈방)이라 앞에 딱 가로놓여가지고 ‘내가 공에 떨어지면 못깨닫는데...’ 이렇게 생각하는 거야. 공에 떨어지면 내가 못깨달을텐데 공에 떨어지면 그러면 큰일난다 이거지. 그래서 깨달으려고 하는 그 마음이 탁 앞에 놓여있어가지고
自作障難(자작장난)이요- 스스로 장난을 짓는 것이다. 장애를 스스로 장애를 짓는 것이다.
非干別事(비간별사)라- 딴 문제가 없다 이거야. 다른 문제가. 그 저기 학부모들, 아이들 학교 잘 가라고 사업 잘 되라고 병 나아라고 기도하는 사람들 보면 온통 그저 그 아이 생각만 하고 있는 거야. 부처님 앞에 와가지고. 아이 생각만.
사실인지 아닌지 몰라도 어떤 스님이 기도를 한참 하고 있는데 가만히 들으니까 이상한 보살 자기는 관세음보살 기도를 한참 했는데 딴소리가 자꾸 나니까 자세히 귀를 기울여 보니까 “대학보살 대학보살” 이러더라는거야. 얼마나 급했으면 대학보살 대학보살 하겠어요. 아~ 삼수 사수 해봐요. 환장하지 사실은. 기도하는 순간에 그 자식이 대학에 붙어달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은 이게 딱 在前頓放(재전돈방)이야.
悟證之心(오증지심)이 在前頓放(재전돈방)이라, 깨닫고자 하는 마음이 딱 앞에 놓여 있는 것. 그러니까 아이 학교 보내려고 하는 그 마음이 앞에 딱 가로놓여가지고 기도를 하는게 아니야 그거는. 기도할 때는 오로지 관세음보살과 하나가 되어야지. 관세음보살의 삶과 관세음보살의 정신과 하나가 혼연일체가 되어서 내가 대학에 보낼 자식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고 있어야 될거 아니야. 그게 좋은 기도가 될텐데. 깨닫고자 하는 마음 기도 성취를 하고자 하는 그 마음이 앞에 딱 놓여있어서 이건 공부도 아니고 기도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야.
그러니까 참선도 그렇게 참선할 때는 화두만 제대로 들어야지 깨달으려고 하는 급한 마음이 딱 앞에 가로놓여 있어가지고는 참선이 제대로 되는 게 아니다. 그런 병을 아주 대개 사람들이 많이 걸리기 쉬운 그 병을 여기서 지적하고 있습니다. 여기보면 현 사대부뿐만 아니라 구참납자들도 그렇다고 하는 앞의 표현도 있었지만 이 다 해당되는 거예요. 견성하려고 참선하는 사람에게만 해당되는게 아니라. 기도할 때는 잊어버리고 해야 돼요. 자기의 어떤 기도 성취를 어떻게 뭘로 하겠다고 하는 그런 마음 깡그리 잊어버리고 그야말로 관음기도는 관세음보살이 돼야 해요 자기가. 한 시간이면 한 시간. 그래서 혼연일체가 되어야지 그 화두하고도 혼연일체가 되어야지 깨달으려는 마음 딱 있고, 화두하는 마음 있고 관세음보살 한 번 불렀다 대학보살 한번 불렀다 뭐 이래가지고야 그게 어디 온전한 기도가 되겠어요. 깨달으려는 마음 있다가 화두 드는 생각했다가 또 깨달으려는 마음있다가 “아~ 내가 깨달아지고 나도 큰스님 노릇 한번 해서 말이지 나도 본때를 한번 보여야지!” 이런 어떤 보복 심리 내지 소영웅심으로 공부하는 우리 도반들 많이 봤어요. 허허~ 그래 다 경험담입니다.
그래가지고 무슨 공부 되겠어요. 그러니까 이게 제대로 알아야 된다구요. 그러니까 어록도 많이 봐야 되고 경전도 많이 봐야 되고. 이 어려운 글로 보지 말고 한글로 된 것, 편한 한글로 된 것 가지고 포~옥 몸에 젖도록 사상과 공부의 길과 이것을 환하게 알고 그리고 공부에 들어가야지. 이걸 뭐 화두를 들어라는 소리인지 들지 말라는 소리인지 ‘아니 불 자’를 저기 내려오다가 저 위에다 놓고 내려오니까 못새겨가지고 이거는 반대말로 새겨버리는 거야. 허허~ 한문이라는게 그렇거든요. 그러니까 온전한 사상이 몸에 밸 기회가 훨씬 적죠.
非干別事(비간별사)니라- 딴 게 아니다 이거여. 대개 이 말 우리 꼭 기억해야 돼요. 비간별사라. 특별히 다른 사람이 장해하는게 아니라 자신이 성취하고자 하는 그 마음이 앞에 있어서 기도도 제대로 못하고 참선도 제대로 못한다.
公(공)은 試如此做工夫(시여차주공부)하야 日久月深(일구월심)하면 自然築着磕着(자연축착합착)이어니와
公(공)은 試如此做工夫(시여차주공부)하야- 公은 그대는 시험삼아 이와 같이 공부를 지어서, 如此(여차)라고 하는 것은 유소득심 제거하고 유소득심 놓아버리고 이 말입니다. 여기서 이와 같이, 여차라고 하는 말은 어떤 목표 달성을 염두에 두고 하는 그런 것 좀 하지 마라 이거지. 아~ 출발이야 발심이야 다 목표가 있어서 발심하지. 기도도 목표가 있어서 와서 하지. 참선도 그렇고. 그렇지만 이미 마당에 들어서서면 생각할게 없는 거죠. 부산 가려고 고속도로에 올렸으면 그냥 길만 갈 것이지 왜 자꾸 부산 생각해? 부산 생각하다가 천안도 못가서 사고 나는 거지. 안그렇겠습니까? 고속도로에 올렸으면 길만 잘 가면 되는 거야. 부산 생각할 것 없는 거야. 길만 잘 쫓아가다보면 결국 부산에 도달하는 거야. 가지도 않고 내 부산만 생각하고 운전해 봐요. 그 온전히 되겠는가? 너무 당연한 이야기예요. 이거 알고 보면. 너무 쉬운 이야기라고. 한문으로 써나서 어렵지.
주여차, 공부해서 日久月深(일구월심)하면 날이 오래고 달이 깊으면 일구월심, 우리도 많이 쓰죠.
自然築着磕着(자연축착합착)이어니와- 이 축착합착 이 말 뭐 해석이 구구한데 그 말이 맞든 틀리든 간에 여기에 어떤 흐름으로서는 傳來(전래)된대로 해석하는게 맞아요. 여기 註(주)에도 엉뚱한 소리 해놓았더만 그까짓 볼 것 없이. ‘섬돌 맞듯 댓돌 맞듯’ 그렇게 우리가 배웠는데 그게 아주 근사한 해석이야. 축은 축대로 이제 뭘 쌓아간다는 이거지. 그러니까 돌을 착착착 깨어가지고 축대를 쌓아갈 때 그 저기 석공들 얼마나 착착 잘 맞아요. 보면 아주 기가 막히게 갖다 맞추잖아요. 놓을 자리 탁 보고 저기 가서 돌 주워오면 이가 착착 맞아. 야~ 전문가는 또 그 분야는 그렇대. 이렇게 척 보고 주워오는데 그 자리 딱 맞는 거야. 어떻게 아냐? 고. 자기들은 딱 볼 때 파인 부분이라던지 관계라던지 볼 때 수치가 딱 나온다는구만. 생긴 것. 그래서 가면 그 돌이 보인대요. 딴 돌은 안보이고 그 돌은 보인대. 거기에 맞는 돌이 착 보인대. 그러면 그냥 가서 주워 오는 거야. 주워 와서 놓으면 착 맞는 거야. 이게 축착이야 축착.
磕着(합착)은 이제 맷돌 아래 위 맷돌이 착 맞으면 틈이 생기면 콩이 안갈리지 않습니까? 그렇게 착 맞아 떨어진다. 그게 섬돌 맞듯 댓돌 맞듯, 이렇게 옛날부터 새겼는데 여기에 다른 해석들도 많아요. 그거 뭐 뜻만 잘 통하면 돼요. 틀린 해석이라고 하더라도 옛날 조사스님들이 그렇게 해석해왔어.
自然築着磕着(자연축착합착), 저절로 일구월심은 축착합착된다. 이 축착합착이라는 말을 배워가지고 강원 생활 동안 아니 중노릇 일생 동안 잘 쓰는게 이 축착합착이야. 도반 사이가 좋아도 축착합착이라고 하고, 뭐든지 잘 맞아 떨어지면 그냥 축착합착이야.
若欲將心待悟(약욕장심대오)하며 將心待休歇(장심대휴할)인댄 從脚下參(종각하참)하야 到彌勒下生(도미륵하생)이라도
若欲將心待悟(약욕장심대오)하며- 마음을 가져서, 그 깨닫고자 하는 그 마음을 가져서 깨닫기를 기다린다.
將心待休歇(장심대휴헐)이라- 또 마음을 가져서 뭐 마음을 갖는다는게 뭔가 자기 하고 있는 그 생각으로 이런 뜻입니다. 마음을 가져서 컵을 이렇게 들듯이 이렇게 하는게 아니예요. 장심이라는 말이. 휴헐, 기다릴진댄 시기를 기다릴진댄
從脚下參(종각하참)하야-지금부터, 각하는 지금 선 자리에서 바로 이 순간부터 참구해서 미륵이 下生할 때 까지 이른다 하더라도 무슨 계산해났더만 36억 7천만년, 36억7천만년 뭐 설사 그렇다손 치더라도 이것도 다 실재하는 이야기는 아니예요. 하나의 우리 이상으로서 미륵보살과 미륵 하생을 이야기해놓은 것이지 경전에 있는 말이지 무슨 36억7천만년 후에 미륵보살이 나온들 안나오든 우리하고는 상관없는 거요. 그 때 사람들이나 관계할 일이고 그 때 나온다고 해서 꼭 그렇게 설정해놓은게 아닙니다. 경전을 그렇게 바로 알아야 해요. 이 이야기를 할 때 듣는 사람들에게 그 이야기가 꼭 필요해. 그렇게 이야기를 해줘야 이 사람들에게 뭔가 깨우침이 있어. 그래서 그 이야길 해놓은 거예요.
<아미타경>같은 것 빔비사라 왕의 부인 말리 부인 있잖습니까? 그 고생하며 살던 그 자기 아들 반란 일으켜가지고 자기 아버지를 감옥에 가둬가지고 그랬을 때 그 부인으로서 그 마음이 오죽 했겠어요? 그렇게 고통 받는 사람에게 부처님이 무슨 이야기를 해줘야 좋겠어요? 한번 생각해 봐요. 무슨 이야기를 해줘야 그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줄 수 있겠어? 그 <아미타경>이나 <관무량수경>이나 <무량수경>이나 이런 서방 정토를 설정해놓고 그 이야기를 해야만 이 사람에게는 아주 천금 같은 약이 되지 그 외 다른 이야기 안통해요. 아미타불이 어디에 있든 십만 억 국토 뒤에 있든 십만 팔천억 국토 뒤에 있든 어디에 있던 간에 그건 문제가 되지 않는 거야. 열심히 아미타불을 불러서 한 순간이라도 그 고통을 잊을 수가 있으면, 잊어버리고 그 마음이 그 정신이 강화되어 가면 그래서 어느 날 강화된 마음에 어떤 빛이 들어온다면 마음이 확~ 열려서 모든 사실들을 환히 꿰뚫어 볼 수 있으면 그러면 되는 거예요. 경전이 전부 그렇게 써진 겁니다.
이 개방 사회에 이 시대에 살면서 우리가 대충 얼버무려서 덮어놓고 그렇게 지나갈 일이 아니라구요. 들춰내서 바른 말 할 시대가 되었으니까 다 들춰내서 바른 말 해야 돼. 여기에 미륵보살도 마찬가지입니다. 저기 저 선재동자 이야기 지난 시간에 장황하게 나왔었지만 그 역시 마찬가지구요. 거기서 우리가 감동받고 눈을 뜨고 하면 그러면 된 겁니다. 그 <법화경>에 연등불, 연등불이 저기 뭡니까? <금강경>에는 석가모니 부처님을 인가한 부처라고 그랬죠? 인가한 부처님이 연등불이라. 연등불에게 내가 인가를 받았다 그렇게 해놨죠. <법화경>에는 연등불은 가짜다, 연등불은 가짜다. 방편으로 만들어 놓은, 이야기한 것이다. <법화경>에 딱 그렇게 해놨어요. 내가 그래서 그 대목에서 눈이 확~ 뜨여버렸지. 확신을 가져버렸지. 연등불은 가짜다! 요즘 표현하면 쪼금 강한 표현하면 연등불은 가짜다 이거야. 연등불은 내가 만들어서 이야기한 것에 불과하다. 그 <법화경>에는 내가 있는 이야기도 하고 없는 이야기도 꾸며서 하고 별별 소리 너희들 위해서 그렇게 다 했다. 그러니까 그런 소리 못받아들이겠다고 5천명이 자리에서 털고 일어나지. 부처님 안전에 어디라고 부처님 앞에서 5천명이나 되는 제자들이 “그런 법문 우리는 수용할 수 없습니다.” 하고 자리를 털고 일어난 그런 사건이 있잖아요? 그게 뭐 누가 7백년 뒤에 그걸 그렸던 그리지 않았던 간에 그러나 그건 근사한 이야기예요. 이런 이야기 내가 말씀드리는 이런 것들도 스님들 고정관념에 전혀 용납이 안 될 수 있을 거야 아마. 못받아 들일수도 있을 거야. 그래도 안일어나는 것 보면 크게 충격을 덜 받았는지, 아니면 무슨 뭐 별로 감각이 없는지, 이게 보통 이야기가 아닌데 스님들 가만 있네요 참. 아유 충격적인 이야기인데... 내 딴엔 아주 가슴 떨리면서 드린 말씀인데...
亦不能待悟(역불능대오)이며 亦不能待休歇(역불능대휴헐)하고 轉加迷悶耳(전가미민이)이니라
축착합착이라 미륵하생에 이를지라도
亦不能待悟(역불능득오)이며- 미륵하생을 얼마나 멋있게 써먹나요? 여기서 또 대혜 스님도. 대혜 스님도 뻔히 아시지. 그렇지만 또 우리 의식 속에 미륵하생경을 통해서 미륵보살이 미륵부처님이 언제쯤 어떻다고 길고 긴 세월 이후에 오실 부처님이라고 하는 것을 우리 잘 알고 있잖아요? 그러니까 대혜 스님이 멋지게 써먹지 않습니까? 이럴 때. 또 우리도 잘 써먹지. “니는 그래가지고 미륵이 출생한다하더라도 제도못받을 것이다!” 이런 식으로.
亦不能待悟(역불능득오)며, 또한 깨달음을 얻지 못할 것이며
亦不能待休歇(역불능득휴헐)이며, 쉰다는 것도 깨달음과 같은 뜻입니다 이게. 쉰다! 깨닫지 않고야 어찌 쉽니까? 깨달았다한들 또 쉴 수 있나요? 중생 제도 해야지.
轉加迷悶耳(전가미민이)이니라 - 더욱 더 답답하기만 할 뿐이다. 답답함만 더할 뿐이다.
平田和尙曰(평전화상왈) 神光(신광)이 不昧(불매)하야 萬古徽 猷(만고휘유)니 入此門來(입차문래)인댄 莫存知解(막존지해)라하며
平田和尙曰(평전화상왈)- 이게 난 누가 했나? 했더니 평전화상이 했네요.
神光(신광)이 不昧(불매)하야 萬古徽猷(만고휘유)니 入此門來(입차문래)인댄 莫存知解(막존지해)라- 큰 절 山門에 들어갈 때 의례 우리가 만나는 구절이죠. 참 멋진 말이죠! 이런 구절 하나만 남기고 일생을 마쳐도 할 일 다 한 거죠. 神光(신광)이 不昧(불매)하야 萬古徽猷(만고휘유)라! 신비로운 광명이 어둡지 아니해서 昧하지 아니해 어둡지 아니해서 만고에 빛나고 있다. 만고에 빛나고 있다. 기분 나쁜 소리 하면 화낼 줄도 알고, 기쁜 좋은 이야기하면 웃을 줄도 알고. 참 만고의 희유 아닙니까! 어제만 그랬나요? 오늘도 그렇고 내일도 그렇고. 어릴 때 그랬던 것이 지금도 그렇고. 꿈에서도 이건 잠도 안 자네 이 물건은. 이 神光은. ??스님은 이럴 때는 신광이라고 했고, 원효 스님은 신해라고 했구요. ‘알 해’자. 그 원효 해동송가에는 신해, 이것도 멋진 말이야. 신비롭게 안다. 신해. 신광. 신비롭게 빛난다. 또 뭐라? 영지. 신해 신광 영지. 참 뛰어난 표현들입니다 이런게요. 이제 공부 좀 하면 이런 낱말들을 좍~ 읽다보면요 그냥 염주 끼듯이 주루루~ 이렇게 꿰어서 해통이 처져야 조금 불법에 안목이 좀 생기는 거죠. 우리가 뭐 經眼 경안 그러지. 경을 보는 안목 그러죠. 축원할 때도 看經者 慧眼 通透(간경자 혜안 통투)그러는데 그게 바로 경안입니다.
神光(신광) 不昧(불매)하야 萬古徽猷(만고휘유)라, 만고에 빛난다.
入此門來(입차문래)인댄 莫存知解(막존지해)라, 거기에 대해서
이러고 저러고 알음알이 붙이지 마라 이거야. 그거 신광 불매 만고희유 여기에 우리가 초점을 맞추어야지 그 왜 잡다한 쓸데없는 지식들 사변 논리 아까 내가 서두에 말씀드린 그 수백 년 수천 년 그 어떤 발달해온 알음알이로 축적해온 논리 이게 사실은 허망한 거예요. 허망한 것. 그래 入此門來(입차문래)인댄 莫存知解(막존지해)라, 이 문에 들어올 때 이 山門에 이 수행하는 문에 절 문에 들어올 때 그런 것 좀 놓고 들어오라 이거야. 놓고 들어와. 참 멋진 말 아닙니까? 신광이 불매하야 만고휘유니 입차문랜댄 막존지해라!
그 다음 구절은 조금 길게 내려가니까 잠깐 쉬었다 합시다.
첫댓글 平田和尙曰 神光이 不昧하야 萬古徽猷니 入此門來인댄 莫存知解라하며... 신비로운 광명이 어둡지 아니해서 만고에 빛나니, 이 山門에 들어올 때 알음알이 그런 것은 좀 놓고 들어 오라 ... 불퇴지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감사드립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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神光 不昧하야 萬古徽猷라....불퇴지님 감사드립니다_()()()_
神光이 不昧하야 萬古徽猷니 入此門來인댄 莫存知解라...불퇴지님 수고하셨습니다.._()()()_
神光이 不昧하야 萬古徽猷니 入此門來인댄 莫存知解라...신비로운 광명이 어둡지 아니해 만고에 빛나고 있으니 수행하는 문에 들어올 때 이러고 저러고 알음알이를 붙이지 마라...불퇴지님, 고맙습니다. _()()()_
入此門來(입차문래)인댄 莫存知解(막존지해)라.... 이 문에 들어올 때 알음알이 붙이지 마라 ...... 감사드립니다. 불퇴지님_()()()_
神光이 不昧하야 萬古徽猷니 入此門來인댄 莫存知解라...고맙습니다. 불퇴지님._()()()_
의식의 흐름.........감사 합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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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_()()()_
若欲將心待悟(약욕장심대오)하며 將心待休歇(장심대휴할)인댄 從脚下參(종각하참)하야 到彌勒下生(도미륵하생)이라도 亦不能待悟(역불능대오)이며 亦不能待休歇(역불능대휴헐)하고 轉加迷悶耳(전가미민이)이니라. 감사합니다.
^^ _()()()_
감사합니다._()()()_
삼배 올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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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