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횡설수설(橫說竪說)
禪眼으로 세상 바라보는 지혜 필요
-연재를 시작하며
이어령 씨는 만만찮은 연세임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끊임없이 글을 써 내린다. 읽을 때마다 그 번득이는 지혜에 감탄하곤 한다. 요근래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신구의 대립개념이 아니라 하나의 조화로움으로 만들어 버린 ‘디지로그’라는 탁월한 조어능력을 보였다. 이는 단순한 지식의 나열 내지는 박식함의 자랑이 아니라 뭔가 창조적이면서도 불이(不二)한 중도도리를 유감없이 드러낸 것이다.
이규태 씨의 글을 읽으면서도 그랬다. 그 뛰어난 자료처리 능력과 지칠줄 모르는 열정은 평생 글쓰는 일에 매달려 있으면서도 날마다 스스로를 새롭게 만들어가는 수행방편이었다. 마지막 불꽃까지 활활 태워버리고는 재 한 점 남기지 않고 그렇게 참으로 아름답게 사라져갔다. 이즈음 조용헌 씨의 글을 읽으면서도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인문학의 모든 영역을 망라하면서도 하나로 꿰뚫어내는 일이관지(一以貫之)의 도인풍(道人風)의 글은 또 다른 통쾌함을 준다.
선지(禪旨)가 따로 있는게 아니다. 이 세 작가들은 갈기갈기 분화되는 것이 협량화되어 가는 시류 속에서도 거시적 안목으로 분야를 국한시키지 않는 왕성한 지적의욕에 불타는 18세기 조선실학자들의 후신이라 하겠다. 횡으로 종으로 자유자재한 그야말로 종횡무진이었다. 동서와 고금을 가리지 않았고 문.사.철(文.史.哲)을 두루 아우르면서 배포의 광대함을 자랑하고 있다.
옛것 본받아 새로움 만들어 내듯
‘우리의 정신’ 깨달아 오늘을 보자
그들의 공부방법은 선경후사(先經後史)였다. 먼저 경서를 읽고 난 뒤에 역사서를 보았다. 경서는 원리를 제시해주고 역사는 원리의 적용과 변화를 알게 해 주기 때문이다. 이를 절집에 대입하면 먼저 경전을 읽고 뒤에 불교사를 읽으라는 말이 된다. 어쩌다보니 경전도 나름대로 천착할 수 있었고 불교사도 반복해서 열심히 읽었다. 시간의 개념을 이해하고 공간의 원리를 알고 나니 교리와 교리간의 모순과 불일치로 인하여 머리를 짓누르는 번뇌들이 한 순간에 눈 녹듯이 해결되었다. 대장경을 여기저기서 개발새발 인용하면서도 마지막 결론은 늘 선안(禪眼)으로 가닥이 저절로 쳐졌다.
이제 그런 작업들을 직접 내보일 수 있는 기회가 왔다. 적지않는 지면을 매주 한번씩 할애 받았다. 그래서 영역을 한정짓지 않고 동서와 고금을 포섭하여 그야말로 횡설수설하고자 한다. 연재물의 타이틀은 〈동어서화(東語西話)〉로 정했다. 이는 천목중봉(天目中峰 1243~1323) 선사의 어록 가운데 권18, 19. 20의 소제목이기도 하다. 유.불.도(儒.彿.道)와 제자백가서를 두루 취하면서도 선종(禪宗)적 안목으로 모든 걸 꿰뚫는지라 당시에도 ‘강남고불(江南古佛)’로 불렸다.
〈성경〉말마따나 하늘 아래 새 것이란 없다.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옛 것만 답습하는 것만으로 현재의 문제의식이 속시원히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다. 옛것을 본받아 새로움을 만들어 낸다는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정신과 온고지신(溫故知新)의 안목으로 새로운 〈동어서화〉를 나름대로 꾸며보고자 한다.
몇 년 전 고려대장경연구소의 종림스님은 불교신문에〈종림 주장자〉란 이름으로 연재를 하다가 끝을 맺지못한 기억이 지금도 아쉬움으로 남아있다. 그 스님조차도 몇 달을 버티지 못한, 문제중심의 지난(至難)한 글쓰기를 다시 시도해보고자 한다. 눈 밝은 강호제현의 많은 질책을 바란다.
원철스님/ 조계종 기획국장
원철스님은 해인강원과 실상사 화엄학림, 동국대에서 경전을 강의했으며, 현재 조계종 총무원 기획국장을 맡고 있다.
[불교신문 2293호/ 1월13일자]
2007-01-10 오전 10:35:36 / 송고
첫댓글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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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안목을 열어줄 원철스님의 연재물에 기대를 걸어봅니다. 도류님 감사합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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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에서야 이 방에 들어와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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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류님 감사합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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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셔갈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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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낌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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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_()()()_
감사합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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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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