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동남아선교정보센터에서 발행하는, 한아봉사회 자매지 '동남아선교뉴스레터' 48호에 실린 글 입니다.
캄보디아의 행복한 대가족
이 글은 Asia Times Online (2007. 03.20)에 실린 Bertil Lintner의 “One Big Happy Family in Cambodia"를 번역한 것이다. Bertil Lintner 은 현재 Asia-Pacific Media Services에 글을 쓰는 동남아시아 전문 저널리스트이다.
캄보디아의 혼탁한 정계는 빈번한 정치적 암살과 폭력으로 훼손되는 가운데 오랫동안 피로 물들어져 왔다. 하지만 그 정계가 이렇듯이 혈연관계로 맺어진 적은 과거에도 없었을 것이다.
격주 영문 간행물인 Phnom Penh Post는 2월말 경에 그들이 수집한 가계도를 논평 없이 실었는데, 이는 여당인 캄보디아인민당(CPP: Cambodia People's Party)의 상부 지도층이 캄보디아의 구습인 중매결혼을 통해 어떻게 더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게 되었는가를 보여주었다. 점차 확장되고 있는 가족 관계는 캄보디아의 정치적 피라미드의 정점에 있으며 동남아시아의 최장 집권 지도자인 훈 센(Hun Sen)총리에까지 이어져 있다.
한 예로, 훈 센의 형이며 현재 꼼퐁참(Kompong Cham)의 주지사인 훈 넹(Hun Neng)의 딸 훈 킴렝(Hun Kimleng)은 캄보디아의 경찰청 차장인 넷 사워은(Neth Savoeun)과 결혼했다. 한편, 훈 넹의 아들 훈 세앙헹(Hun Seang Heng)은 또 다른 경찰청 차장인 속 팔(Sok Phal)의 딸 속 소피악(Sok Sopheak)과 결혼했다. 훈 센의 25살짜리 아들 훈 마닛(Hun Manith)은 경찰청장인 혹 룬디(Hok Lundy)의 딸 혹 첸다비(Hok Chendavy)와 결혼했다.
총리의 또 다른 아들인 24살의 훈 마니(Hun Many)는 농촌개발부 차관인 유임 처일리(Yim Chay Li)의 딸 유임 처일 린(Yim Chay Lin)과 결혼했다. 훈 센의 딸들 중 한명인 23세의 훈 말리(Hun Mali)는 훈 센의 오른팔이자 각료회의 장관인 속 안(Sok An)의 아들 속 뿌티웃(Sok Puthyvuth)과 결혼했다. 훈 센과 속 안의 우정은 훈센이 외무부 장관이었고 속 안이 외무부의 외무국장이었던 1980년대 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들의 사적인 관계는 오늘날 인척 관계로 발전하여 핏줄 깊숙히 흐르게 되었다.
이들은 최상위 계급 간에 형성되어 있는 친척 관계의 한 예에 불과할 뿐이다. 1979년 유엔이 개입하기까지 캄보디아의 국가원수였다가 현재는 국회의장이자 CPP의 명예총재인 헹 삼린(Heng Samrin)의 딸 헹 삼안(Heng Sam An)은 뻰 꼬살(Pen Losal)과 결혼하였는데, 뻰 꼬살은 상원의원이자 CPP 총재인 찌어 심(Chea Sim)의 처남이면서 부총리와 내무부 장관을 겸하고 있는 사 켕(Sar Kheng)의 고문을 담당하고 있다.
헹 삼린의 보좌관인 쩜 니몰(Cham Nimol)은 통상부 장관인 쩜 쁘라싯(Cham Prasidh)의 딸이다. 쩸 쁘라싯의 또 다른 딸인 쩜 끄라스나(Cham Krasna)는 속 안 장관의 아들인 속 소깐(Sok Sokann)과 약혼했다. 한편, 사 켕의 아들 사 소카(Sar Sokha)는 캄보디아군의 총사령관인 께끔연(Ke Kim Yan)의 딸 께 순소피(Ke Sunsophy)와 결혼했다. 또한 훈 센의 아내인 분 라니(Bun Rany)가 현재 캄보디아 적십자사의 총재로 있는 것과 동시에, 안니 속 안(Sok An Anny)으로도 알려져 있는 속 안의 아내 텡 아이안니(Teng Ay Anny)는 그 부총재 중 한 명이다.
가족의 전통
이러한 Phnom Penh Post의 내용 공개에 대해 어떠한 공식적인 반응도 찾아 볼 수 없다. 주요 정치적 및 경제적 엘리트층 간의 결혼은 아시아에서 흔히 있는 일이다. 이웃하고 있는 태국에서는 육군 원수인 핀 춘하완(Phin Choonhavan)의 아들 찻차이 춘하완(Chatichai Choonhavan)이 태국의 총리가 되었고 그의 딸 쿤 잉 우돔락(Khun Ying Udomlak)은 타이 경찰청장인 파오 시야논(Phao Sriyanond)과 결혼했다. 또 다른 고위 군 장교인 타놈 낏띠까촌(Thanom Kittikachorn)은 군사 독재자 쁘라팟 차루사티안(Praphas Charusathien)의 처남이었고, 그의 아들 나롱 낏띠까촌(Narong Kittika쵀구) 또한 군 실력자가 되었으며, 그의 여동생 송수다(Songsuda)는 수차례 태국정부에서 일한 수윗 욧마니(Suvit Yodmani)와 결혼했다.
태국의 화교계 재벌들은 상업적 이익증대를 위해 그들의 자녀를 다른 일류 기업 가문의 사람과 결혼시키는 것을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1975년과 1979년 사이에 크메르루즈(Khmer Rouge)에 의해 다수의 정치적 엘리트층이 숙청된 캄보디아의 경우 정치적 혼인은 놀랄 만한 수치를 기록하고 있다. 또한 장관들과 고위관리들 간의 그러한 새로운 가족 관계는 CPP의 권력 장악이 대대손손 이어질 수 있는 잠재적 발판을 마련해 주고 있다.
여기에서 두드러지는 점은, CPP 가족관계의 부상이 국내 정치에 대한 왕실의 영향력 감소와 동시에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훈 센과 그의 친구들과 고문들로 구성된 측근 세력이 1997년 쿠데타를 통해 전 수상 노로돔 라나리드(Norodom Ranariddh, 노로돔 라나릿)왕자를 쫓아낸 이후, 왕정파인 푼신펙 당(Funcinpec Party)의 정치적 운은 감소하였다.
라나리드(노로돔 라나릿)와 그의 당원 다수가 죽임을 당한 유혈 폭동 이후에 강제로 추방되었지만 뒤에 캄보디아로 돌아와서 승패가 불분명했던 2003년 총선거에서 국회의장으로 당선되었는데, 이는 CPP가 일당 정부를 구성할 충분한 표를 얻지 못하자 푼신펙 당과 불안정한 연합을 구성했기 때문이었다.
전 국왕 노로돔 시하누크(Norodom Sihanouk)의 아들이자 현재 국왕인 시하모니(Shhamoni)의 의붓 형제인 라나리드는 지난 3월 지위에서 물러난 직후 해외로 출국했다. 그는 자리를 비운 사이 캄보디아개발위원회와 국가올림픽위원회의 공동의장직에서도 면직되었다. 그는 나중에 캄보디아로 돌아왔으나 많은 정치 분석가들이 훈 센이 개입한 것으로 의심했던 10월 내부 권력 투쟁 와중에 푼신펙당의 총재 자리에서도 축출되었다.
어쩌면 그리 놀랄 일도 아니겠지만, 푼식펙의 기존 지도자들 중 몇몇도 이에 관여되어 있었다. 라나리드의 삼촌이자 전 국왕 노로돔 시하누크의 의붓 동생이었던 노로돔 시리웃(Norodom Sirivudh)은 1993년 푼신펙이 주도한 정부에서 외무부 장관으로 일했다. 한편, 라나리드의 의붓 형제인 노로돔 짜끄라퐁(Norodom Chakrapong)은 푼신펙을 창당하는 데 일조했지만, 후에 CPP로 돌아셨다. 그들의 의붓 자매이자 시하누크의 장녀인 노로돔 보파 데위(Norodom Bopha Devi [보파 데위])가 문화부 장관으로 일하는 동안 그녀는 최근 배우자인 켁 완디(Khek Vandy)는 1998년 푼신펙의 일원으로 국회에 선출되었다.
하지만 푼신펙의 가족에 대한 긍지는 1993년 5월 유엔 감독 하의 선거 당시 일반 투표의 45%를 얻으면서 38%로 근접한 2위에 그친 CPP를 앞지르며 다수당으로 부상한 이후 상당히 감소하였다. 많은 정치적 관찰자들은 최근 라나리드가 푼신펙에서 축출된 사건이 그의 마지막 정치적 호흡을 상징할 것으로 보고 있다.
예전 푼신펙 동료들은 지난 8월 정당본부의 판매로 벌어들인 360만 달러를 횡령했다는 혐의로 최근에 그를 고소했다. 프놈펜 지방법원은 부재 중인 왕자에게 유죄판결을 내려 18년형을 선고했다.
라나리드는 최근에 새 정당을 창립하여 노로돔 라나리드 당(Norodom Ranariddh Party)라는 적절한 당명을 지었다.
푼신펙, NRP, 그리고 야당인 삼랑시당(Sam Rainsy Party)은 앞으로 다가올 지방자치 의회 선거에서 거대 정당인 CPP에 맞서는 10개의 정당에 포함될 것인데, 4월 1일에 예정되어 있는 이 선거는 내년 총선거의 향방을 가늠하는 척도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어쩌면 분열되고 취약한 야당, 그리고 야당 후보와 농촌의 후원자에 대한 폭력과 협박 위주의 선거 운동을 펼칠 것으로 알려진 CPP를 감안한다면, 만우절 날의 선거에 그칠 가능성도 농후하다. CPP 소속인 키에우 깐하릿(Khieu Kanharith) 공보부 방관은 2월 22일에 그가 속한 당이 지방자치 의회 의석의 97% 내지는 98%를 얻고, 내년 총선거에서 95%의 표를 획득하게 될 것으로 내다보았다. 캄보디아가 CPP의 지베를 받는 일당 국가로 빠르게 변해가는 것을 보면 이렇게 되는 것이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hnom Penh Post지 2007년 2월 9일자는 한 외교관의 발언을 인용하였는데, 그는 “CPP는 정부, 국회, 상원, 마을 촌장들의 99%, 그리고 지방 정부를 지배하고 있다. 그들의 영향력은 사법부와 경찰에 미치고, 실질적으로는 모든 것이 하나의 정당에 의해 지배받고 있다”고 하였다.
이러한 평가는 55세의 훈 센이 1월9일 발표를 통해 적어도 90세가 되기 전에는 총리직에서 물러날 의사가 없음을 보여준 것과 일치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때가 되면, 그리고 모든 일이 계획대로 진행된다면, CPP 가족으로 묶인 정치인들과 관리들의 제3세대 정치 시대에 접어들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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