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휘파람새와의 첫 만남은 소리와의 만남이었다.
대학시절 방학이면 지리산에 있는 암자를 찾았다. 명분은 책도 읽고, 글도 쓰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보다도 집을 떠나는 것이 좋았고, 깊은 산이 좋아서였다. 처음 찾아 든 곳은 지리산 불일폭포 앞쪽에 자리한 불일암이었다. 쌍계사에서 서북쪽으로 1.8킬로미터 떨어진 이 암자는 고요했고, 수려한 산새와 울창한 숲으로 온갖 아름다움을 뿜어내는 곳이었다. 먼 옛날 보조국사 지눌이 이곳에서 심신을 수련했다고 전하는 곳이기도 하다. 어둠이 물러가고 해가 떠오르면 숲은 다양한 색깔과 맑은 공기와 쪽빛의 정기를 마구 토해냈다. 때때로 그 위를 낮게 스치며 지나가는 운무는 선경을 이루는 듯했다. 선경을 이루는 필수품은 온갖 톤으로 쏟아내지는 새소리가 아닐까? 어치, 딱따구리, 목탁새, 동박새, 동고비, 부엉이, 수리부엉이, 밀화부리, 멧새, 직바구리, 꾀꼬리 등등. 그 중에서도 휘파람새 소리는 과연 일품이었다.
“ 휘- 휘휘휘휫 휘-우우, 휘- 휘휘휘휫 휘-우우 ”
나는 종달새, 카나리아, 꾀꼬리 소리는 이미 익히 알고 있었지만 처음 만난 이 아름다운 목소리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처음에는 몰랐다. 신기하고 매력적인 소리에 빠져서 마음을 진정할 수가 없어서 얼마간 책을 볼 수가 없었다. 그러나 목소리의 주인공인 휘파람새의 모습은 그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꼭꼭 숨은 술래잡기의 주인공처럼 찾고 또 찾아도 결코 찾을 수가 없었다. 아름다운 소리는 여기저기서 절벽에 반향되어 돌아오는데 그 모습은 찾을 수가 없었다. 그 이후 휘파람새 소리는 지리산 동서남북 쪽 암자 어디에서도 들었다.
어느 날 나는 틈만 나면 배낭을 등에 지고 찾았던 지리산행을 포기했다. 그 이유는 내가 어릴 적 누볐던 해운대 장산이 군 통제구역에서 드디어 개방된 것이었다. 군 보초들의 눈을 피해 산으로 숨어들어 가서 머루와 도토리를 따고, 가재를 잡고, 켕켕-하는 여우소리에 놀라 바위 밑에 숨기도 하고, 산새들을 수없이 잡아왔던 그 장산이 개방된 것이다. 나는 틈나는 대로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장산을 올랐다. 그리고 지금은 주위에서 떠나간 친구들의 이름을 크게 소리쳐 부르기도 했다. 그러던 그 첫 해 초여름, 장산 8부 능선 억새밭 근처의 숲에서 나는 휘파람새의 소리를 들었다. 너무 반가워서 해가 질 때까지 그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내가 지리산을 찾지 않으니 네가 이 먼 곳까지 찾아 왔나?’
역시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하루는 남천동 새가게엘 들렀다. ‘안녕하세요!’하는 구관조의 인사를 받으며 들어갔다. 시끌벅적한 잉꼬, 횟대에 앉아 스트레칭하듯 몸을 틀며 요란한 소리를 질러대는 앵무, 언제 보아도 아름다운 깃털색의 경계가 빰과 머리, 가슴 선이 선명하고 삣쭉뺏쭉- 작은 소리로 지저귀는 호금조, 연미복에 흰 와이셔츠, 검정 넥타이로 잘 차려입은 듯한 검정조를 차례로 보고 나면 마음이 너무나도 흡족했다. 그러고는 혹 새 식구는 없나하고 둘러보는 가운데 나는 처음 보는 새 한 마리를 발견했다. 그 새는 새장 속에서 입을 꾹 다문 채 오히려 새장 바깥의 나를 살피고 있는 듯했다. 참새보다 조금 큰 몸집에 짙은 암회색 깃털, 뾰쪽한 주둥이, 작은 검은 눈, 첫눈에 볼품없는 꾀죄죄한 야조라는 알 수 있었다. 주인아저씨에게 이 새의 이름을 물었다. 순간 나는 깜짝 놀랐다.
“휘파람새”
“아니, 휘파람새?”
“휘파람새!!!”
“네가 휘파람새? 그런데 네가 왜, 어떻게 여기에?”
나는 누군가가 팔아 달라고 맡겨 놓았다는 주인아저씨의 말을 듣고 거금(?)을 주고 우리 집으로 모셔왔다. 새장보다 넓은 공간인 베란다에서도 휘파람새의 모습을 찾기란 쉽질 않았다. 언제나 분재나무 가지 속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그러나 목청을 뽑아 높은 톤의 목소리로 노래하기 시작하면 아파트 전체가 쩌렁쩌렁 울리는 것 같았다. 나는 며칠간만 이 새의 모습과 동작, 습성을 살펴보고는 장산으로 날려 보내기로 마음을 먹었다. 퇴근 후 돌아와 거실에 앉아 차를 마시며 녀석의 동태를 세세히 살폈다. 내가 지리산이고 장산에서 너의 모습을 보려고 얼마나 애타게 찾았는데 네가 이렇게 잡혀 있다니 너무도 의외라는 생각을 했다. 내가 휘파람새를 관찰한 지 사흘 되던 날 나는 그 새의 모습을 더 찾을 수가 없었다. 또다시 놀라서 화분들의 자리를 옮겨 가며 휘파람새를 찾았다. 그러나 허사였다. 문득 간밤에 바람이 세차게 불었던 것이 생각나서 방충망의 상태를 살폈다. 오른쪽 가장자리의 방충망이 5센티미터쯤 안 쪽으로 밀려 열려 있었다. 아! 그렇구나. 방충망의 열린 틈으로 휘파람새는 장산으로 돌아갔구나!
나는 요 근래 몇 년 사이 가을이 가고, 겨울이 오면 휘파람새를 기다리는 습관이 들었다. 5년 전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울산 경계인 이곳 판곡마을로 이사를 와서는 해마다 봄이 오면 이 새를 기다렸다. 집 뒤 대나무 숲과 모과나무, 포구나무 쪽 어디엔가 앉아 아름다운 소리로 나를 살맛나게 하는 그 휘파람새를 기다리는 것이다. 작년 2월 보름께 아직은 추위가 물러가지 않은 늦은 겨울, 나는 텃밭과 화단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때 등 뒤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처음 듣는 소리였다. 이상한. 목소리가 쉰 듯한 새소리를 들었다. 변성이 덜 된 듯한 소리는 사흘 뒤 정상적인 휘파람새의 소리로 바뀌어 마을에 울려 퍼졌다. 아직 추위가 덜 물러가 몸이 풀리지 않은 탓인지, 아니면 먼 길을 날아 온 피곤 때문인지 쉰 목소리를 냈던 휘파람새는 곧 정상을 찾았고, 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8월 중순까지 아름다운 목소리로 나의 귀를 감미롭게 했다.
나는 휘파람새를 통해 깨달은 것이 있다. 그렇게 아름다운 목소리를 내며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면서도 자신의 모습은 나뭇가지 속 어디엔가 감추고 결코 잘 나서지 않는 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구나!
우리가 사는 사회에서도 아름답고 훌륭한 선행들을 많이 하면서도 끝내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사람들!
이 휘파람새와 같은 사람들!
나는 오늘도 이제 막 시작된 겨울이지만 이 겨울이 쉬 지나가기를 바란다.
이 겨울의 끝에 이은 내년의 이른 봄, 내가 사는 이 판곡마을에 또다시 올 휘파람새를 기다리는 것이다.
첫댓글 휘파람새 소리는 요즘 지하철 환승역을 알리는 시그널로도 많이 쓰이네요. 스크린 골프장에서도 음향으로 쓰이고, 휴대폰 소리 기타 등등. 일본 야후 You Tube-a bush warbler 에 들어가니 동영상으로 새와 소리가 멋지게 실려 올라와 있던데.....
어릴때 익히 들었던 새, 그것이 꾀꼬린줄 알았었는데, 오늘 you tube 를 통해 휘파람새인 것을 알았다. 호연지기가 그릇을 키운다더니 장안의 마음 씀이 항상 넓다 했더니만, 이런 사연이 있었구나. 휘파람새 다시 들으니 정말 좋다. 어릴때 저소리를 가지고 많이 웄었다. "뒷산 꾀꼬리가 뭐라든? " 하면 "수동띠기 똥구멍" 한다며 웃곤 했다.
쌍계사의 털보아자씨, 날 보면 '아재'라고 불렀다.출세하여 잘 살기 바라는 부모 가슴에 대못을 박고, 쌍계사 절에 숨어들어서는 평생을 거기서 살았다.4촌들이 모두 누구라 하면 거창사람들이 대부분 알만한 사람. 그분 부친을 나는 형님이라 불렀다. 그 형님, 잘난 조카들 보며 자기 자식은 절에 들어가 수염기르면서 사는 모습보며, 쌍계사쪽을 바라보는 맘이 어떠했으랴.그 쌍게사에 우리 장안선상이 가 계셨구만.
변처사님이 불일휴게소에 계실 때 몇 번 뵈었고, 그 아드님은 고로쇠 물 가지러 집에 들러 만난 적이 있었지요. 풍백님과 가까운 혈족인줄 미리 알았더면 내가 덕을 좀더 톡톡히 봤을 터였건만... 이제 선경이었던 이승을 떠나 멀리멀리 가셨다니 아쉬울 밖에. 회자정리(會者定離)라 했소? 과거와 현재를 같은 선상에 놓고 보면 아쉬움이 많겠지만 미래와 연결시키면 과거와 현재의 가치는 별 의미가 없는 것 아닌 거 아닌가요? 풍백님, 매사에 정이 많으신 것 훈훈함과 감사를 느끼나이다.
지리산의 수려함이 눈 앞에 선~하다. 지리산에 가 본지도 10하고도 몇년이 흐른 것 같다. 강박사가 나무, 식물에만 造詣가
깊은 줄로 알았는 데, 완전히 새 박사구만. 내 어릴 때 우리집 뒤에는 산죽 울타리로 되어 있었는 데, 겨울이면 온 갖
종류의 겨울새들의 보금자였는 데, 한 밤중에 부엉이가 와서 울면 그렇게 무서울 수가 없었다. 부엉이 꽁무니에는
호랑이가 따라다닌다고 했거든, 부엉이 똥 줏어 먹을려고...... 아주 귀한 글 잘 감상하여씀다.
방장님 동네도 좋은 동네데요. 산수유 많이 나고, 뒤로 백운산이 병풍처럼 둘러처져 있는 것이 명당이데요. 새가 많이 날아왔으리라 짐작 됩니다. 백운암 표고맛 못 잊겠네요. 그곳에서 마님과 함께 다래덩굴로 목걸이해 찍은 사진 가끔 보고 내 처도 좋아하는구먼요. 옛날 사람들은 왜 그리 무서움이 많았는지. 그에 비하면 나는 목 밑으로는 다 간인가? 간이 큰 것인가? 아무튼 지루한 글 읽고 격려해주시니 감사!!!!!!!!!!!!!!
변처사 친자가 아니고, 어린 삼남매 가지고 과부된 여인의 전 남편 아들들. 그녀를 사랑하여, 그녀와 결혼하여 세상뿌리치고 쌍계사에서 처사로 일생을 보냈지요. 그녀의 아들들을 자기 아들이라 하고. 그러니 그 아들들, 아버지 고향엔 얼씬도 못했지요. 본인도 부친 돌아가셨을 때, 삼촌 돌아가셨을 때 정도 오더라구요. 순애보... 누가 소설로 장식할만한 주제.
한 때 밀양 얼음골에 자주 다녔는데, 어느 날 들리기 시작했답니다. 새소리가. 학생열명남짓 대리고 갔었는데, 저 새 소리는 선영이 소리, 새 새소리는 상민이 소리 라면서 이름을 붙여 주었는데, 10가지로 모자랐소. 그 중에는 분명 휫파람새 소리도 있었을 거요. 장안이 봄철 얼음골 가보면 무척 좋아 할듯 하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