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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사철에 관한 말씀(창 8:22)
"땅이 있을 동안에는 신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하리라"(창 8:22)
우리 구주님은 언제나 비유로 사람들을 가르쳤습니다. 우리 구주님은 그의 사역자들도 그렇게 하도록 만드셨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지금 제시한 기후나 산업에 관한 상태도 아주 명백하고도 교훈적인 비유를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비유를 그냥 모르고 지나친다는 것은 현명한 일이 아닐 것입니다. 매일 아침 우리는 잠에서 깨자 바람이 자고, 햇빛이 비치고 안개가 걷히기를 갈구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음과 같이 읊은 시인과 더불어 함께 울부짖기도 합니다.
"길고도 지루한 겨울이여,
차고도 잔인한 겨울이여."
우리는 "봄은 영원히 가고 말았는가?"라고 스스로 자문할 때도 있습니다. 이 외에도 무역과 상업이 심히 불경기를 만나 고전하며, 많은 사람이 이 직장에서 해고당하며, 혹 사업이 지탱되고 있으나 이익이 별로 없는 처지입니다. 미래를 관망하는 사람들은 좀 회복될 날의 징조가 있느냐고 질문을 받습니다마는, 그들의 대답은 "아니라"고 하는 그저 부정적인 대답일 따름입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공통적인 고난에 머리를 숙이고, 각자에게 자기 동료를 위로해 주라고 부탁하는 바입니다. 우리가 아직 어떤 징조를 보지는 못했지만, 기대하던 소망의 빛을 띤 동쪽 하늘이 어둡지는 않으니 말입니다. 하나님을 믿으면 우리는 허약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를 위한 사랑의 교훈이 이 어두운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손으로 친히 기록되어 있음을 믿습니다. 우리는 어린이처럼 믿음으로 이 교훈을 한번 설명해 봅시다.
지금 우리가 다루고 있는 본문은 홍수의 물결이 진정되던 때로 돌아갑니다. 하나님은 방주의 문을 여시고 노아와 그의 가족을 하나의 새 세계로 나오게 하셨습니다. 한 동안 혼란이 있었습니다. 계절도 알아볼 수 없었으며, 계속 비가 퍼부었기 때문에 밤낮의 구별이 없이 줄곧 어둡기만 했습니다. 때가 여름인지 겨울인지 말해 있지도 않습니다. 자연의 구조도 엉망이었습니다. 자연의 질서는 말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하나님은 노아에게 이젠 다시는 홍수로 땅을 멸하지 아니할 것을 약속하시면서, 아울러 선포하기를 땅이 있을 동안에는, 온 생물을 파멸에 이르게 한 계절의 혼동과 밤낮의 혼합도 더 이상 없을 것이라고 한 것입니다. 온 땅을 덮을 대홍수가 결단코 없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이젠 심각한 계절의 운행이 뒤범벅이 되어, 기온의 변화가 생기는 따위는 더 이상 없을 것입니다.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영구히 일정한 변화를 이루며 피차 연속될 것입니다. 지금의 관용스러운 통치가 계속하는 한, 질서 있게 그런 일들이 연속될 것입니다. 마지막 때가 오기까지, 밤낮으로 구성된 일 년이란 기간이 적당한 질서를 유지하면서 추위와 더위를 내며 흘러갈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심중에 그렇게 작정하신 것을 인해 우리는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의 손을 들어 물의 홍수로, 모든 살아있는 생물을 다시는 멸하지 아니할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안심이 됩니다. 하나님은 오래 참음과 온화한 자비와 관용으로 사람을 다루십니다. 하나님은 엄한 파멸의 무기를 사용하시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인내와 은혜의 부드러운 봉사로 우리를 보살핍니다. 그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회개에 이르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이 세대는 끝장이 날 것입니다. 그러나 관용의 통치가 계속되는 동안 자연은 자연 본연의 행로를 그대로 유지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무질서한 돌진이나 파괴적인 혼란 따위는 겁낼 필요가 없겠습니다.
"4계절이 1년을 채우노라"
신비롭게도 4계절은 오고 가며, 이것들이 모두 연합하여 현명한 고안의 활동 조화를 나타내어 우리 하나님께 지극한 영광을 돌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즉 폭풍의 날을 무서워 마십시오. 비가 와서 땅을 홍수로 넘치게 하는 일이 없을 테니 말입니다. 하나님은 사람들과 맺은 언약의 증거로 구름 속에 무지개를 두셨습니다. 어두운 밤중도 무서워 마십시오. 하나님은 낮의 등불을 켜사 어두움을 쫓으실테니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관용의 통치를 시작하실 때에, 다음과 같은 진술에 대한 이유를 말씀하신 것은 참으로 기이한 일입니다.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인하여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의 마음의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창8:21)
이런 말씀은 참으로 기이한 진술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의 마음의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하다는 사실이, 인류를 지면에서 멸하게 되었던 강력한 이유였기 때문입니다. 6장 5,6절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말씀을 읽을 수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셨다"는 것입니다.
이 구절에서도 거의 유사한 말씀이 있습니다. 심판의 이유가 자비에 대한 논의가 될 수 있습니까? 분명히 그렇습니다. 절대로 변함이 없으신 하나님이시지만 인간을 다루실 때에 그 손길이 변하게 합니다. 가령 하나님은 사람들을 자기 자신들대로 그냥 방치해 두어서 오랜 세월을 살도록 허용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장수하면 할수록 악만 더해 갔습니다. 결국 죄는 무서울 정도의 험악한 데로 나가고 말았습니다. 사람은 살아 70세가 될 때에 더 철저하게 나쁜 죄인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700년 또는 그 이상이 되도록 살았다고 한다면, 범한 죄악이 어떠했을지는 상상하기도 어려운 일입니다. 우리는 그 당시에 거인들이 있었음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그럼 법을 파괴하는 일에는 물론 사회적인 범죄를 저지르는 데에도 거물급 범죄자가 있었을 것은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장수하면 범죄에만 노련한 사람이 될 것을 아셨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마음의 계획하는 것이 계속 악하며, 그것이 무서울 정도의 죄악으로 커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인류를 멸하고 새롭게 시작하시겠다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새 인류의 조상이 되도록 자기가 아껴 보호하려는 사람을 보셨을 때에도, 그들 속에 역시 악의 샘이 있는 것과, 그들의 마음이 악한 욕망과 기만을 계속 드러낼 것을 아셨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인생의 생명을 단축시키려 했습니다. 그래서 어떤 개인도 더 이상 무거운 지경으로 악의 관영함과 악의 지혜에 이르지 않도록 하려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하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기도 하셨습니다.
"나는 저들에게 오래 참으리라. 내가 저들을 엄히 다루어 왔건만 저들은 변화되지 않는구나. 물에서 내가 빼어 내온 소수인도 역시 죄로 향하는구나. 이 무서운 방편으로도 인간 마음의 반항적인 기질이 제거되지 않는구나. 그러므로 나는 사람으로 회개할 여지를 주기 위해 오래 참는 관용을 보이면서, 관대하고도 부드럽게 저들을 다루리라. 이제 나는 더 이상 모든 생물을 멸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파멸 자체가 죄를 없이하지 못함이로라"
그런즉 하나님의 거룩성으로 인해 심판이 있게 되었으며, 또 하나님의 긍휼로 말미암아 자비가 있게 되었던 사실을, 우리가 알기란 결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인간을 새로운 자세로 다루시게 된 합리적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나는 그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한 가지 사실에 돌리고 있습니다. 오늘 설교의 본문의 그 앞에 있는 구절을 어디 한번 읽어봅시다.
"노아가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 중에서와 모든 정결한 새 중에서 취하여 번제로 단에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그 향기를 흠향하시고"(창8:20~21)라고 했습니다.
제사가 전환점입니다. 제사가 없으면 죄는 복수를 자초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멸망의 홍수를 보냈던 것입니다. 그러나 노아가 드린 제사는 인간의 죄를 위해 마련된 효과적인 구속자 되시며, 하나님의 독생자의 장차 죽음의 제사를 상징한 것입니다. 한 위대한 대속물의 그림자가 세계의 상태를 일변시켰습니다. 하나님은 과거에 멸망을 주장했듯이 이제는 은혜를 스스로 탄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나아갈 방향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런가 하고 이해하기만 하면 됩니다. 왜냐하면 여호와는 변함이 없으시며, 언제나 사랑이며 지혜이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보고 따르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제사로 인해서, 하나님은 인간을 용납하시며, 또 불치의 바보나 또는 절망적인 병자라도 다 용납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마음이 계획하는바 악한 경향성을 견딜 수 없는 분노로서가 아니라, 뿌리박힌 고질적인 병으로 보시기를 작정하셨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인류를 지극한 인내로서 다루시사, 더 이상 진노로 제기하시려 하지 아니하셨습니다. 제사가 행해질 때에 하나님이 어떻게 하실 것인가를 보십시오. 나는 하나님께서 땅에게 다음과 같이 하시는 말씀이 들리는 것 같습니다.
"홍수에서 구출되어라. 계절 따라 결실하라. 이는 내가 대속물을 보았기 때문이노라."
Ⅰ. 내 사랑하는 친구 여러분, 나는 여러분에게 본문을 소개해서 꼭 유의시켜 주고 싶은 내용이 있습니다. 그것은 본문 가운데 있는 대로 무엇보다도 경고에 대한 하나의 엄숙한 암시라는 점입니다.
본문은 "땅이 있을 동안에는"이란 말로 시작되고 있습니다. 나는 본문의 심장부에서 마치 땅속에 울려 퍼지는 큰 소리와 같은 음성을 듣습니다. 본문의 외침은 자비의 외침입니다. 그러나 "의로움 가운데 있는 엄위하신 일들의" 저음이기도 합니다.
"땅에 있을 동안에는"이라는 말은 땅이 언제나 있을 것은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지극히 높으신 자의 정하신 때가 있습니다. 그 때는 반드시 오고야 맙니다. 그때는 계절이 따로 있지 않고 영원한 세대 속에 녹아지고 말 것이며, 시간은 영원 속으로 흡수되고 말 것입니다. 땅은 지금 세기에 세기를 거듭해서 남아 있습니다마는, 오직 하나님을 향해 조금씩 변해지고 있습니다. 온 세상이 악한 자 안에 처해서 어두움이 온 땅을 덮고 있으며, 빽빽한 어두움이 모든 나라를 덮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호와께서는 한 백성을 두고 계십니다. 그들은 "은혜의 선택에 따른 남은 자"입니다. 그들을 위해서 땅은 아직 잠시 동안이라도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끝은 매순간 다가오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예수란 사람으로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해 두셨습니다."(행17:31)
자비라도 더 이상 열매 맺지 못하는 나무에 걸린 도끼를 제거할 수도 없으며, 관용이라도 더 이상 세상의 추수를 하기 위해 낫을 가지고 덤비는 천사를 억제할 수도 없는, 그런 절박한 어느 시각이 오고야 말 것입니다. 지금은 아직도 사랑이 사람들의 아들들 사이에 찾아다니고 있습니다. 애처로운 비애의 음성으로 탄원하며, 하나님과 화목하기를 호소하며, 사랑이 전파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사랑의 사명이 끝날 날이 옵니다. 은혜의 날이 끝이 납니다. 심판의 통치가 도래합니다. 잠시 동안이라도 이 세상 것에다가 많이 의존하는 사람이 되지 맙시다. 우리는 이 세상에 있는 것들에 우리의 애정을 던지지 맙시다. 왜냐하면 여기에는 영구한 도성이 없기 때문입니다.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고후4:18)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세상도 지나갈 것입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행적들은 다 불타 버릴 것입니다.
심지어 "체질도 뜨거운 열로 녹아질 것입니다."(벧후3:12) 불의 홍수가 내릴 날이 오고 있습니다. 이 불의 홍수는 위에서 내립니다. 또 이 불의 홍수는 아래서 위로 타오르기도 합니다. 그리하여 모든 물질의 사물들이 하나의 공통된 대화재로 녹아지고야 말 것입니다. 아, 불쌍한 세상입니다! 세상이여, 그대는 반드시 멸하고야 말겠노라! 하나님은 그대에게 은혜로우십니다. 그러나 세상이여, 그대는 돌을 부딪치듯 파괴자가 되었으며, 도끼를 기다리는 나무처럼 되었구나. 그러나 하나님의 간증을 믿는 사람들은 다음과 같이 기쁘게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에 따라 의에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라고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사랑하는 친구 여러분, 나는 여러분께서 주목해 주시기를 원하는 하나의 중대한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땅이 없어지게 되는 때가 언제냐는 일체 언급된 바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이 세상이 소멸될 사실에 대해서는 너무도 분명하지만, 언제 소멸될지 그 시기에 대해서는 분명치 않다고 경고했습니다.
"땅이 있을 동안에는"이란 표현은 땅은 단지 계절이 있는 동안만 남아 있다는 사실에 대한 충분한 증거가 됩니다. 그러나 그 계절이 언제 끝나느냐는 날짜에 대해서는 죽은 사람의 혀처럼 묵묵부답입니다.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한다"(롬8:22)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 피조물을 구출하는 때가 언제인가는, 아무리 교육을 많이 잘 받은 사람이라도 말할 수 없습니다. 예언하려고 시도하지 마십시오. 더욱이 이 세상의 종말의 날짜에 대해서 감히 예언하지는 마십시오.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는 알바 아니요"(행1:7)라고 했습니다.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마24:36)고 했습니다.
만물의 마지막을 확정하지 않고 둔 의도는 우리로 계속 깨어 있으라고 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우리는 열심히 기대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주님의 크고 두려운 그날이 이르기도 전에 시기의 길이를 계산해 보는 따위를 꿈꾸어서는 안 됩니다. 만일 여러분께서 그리스도가 언제 오시는가를 알고 있다면, 그 중간 시간은 괜히 소홀하고도 들뜬 기분으로 무료하게 소비하려는 시험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에 기록하기를 "너희가 생각하지 아니한 때에 인자가 오리라"(마24:44)고 했습니다. 주님이 의도하신 것은 이런 것입니다. 즉 여러분이 허리를 동이고 등을 준비해 두었다가 "보라 신랑이 오도다"(마25:6)라고 밤중에 외치는 소리를 듣도록 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나는 좀 더 주의를 환기시키고자 하는 바가 있습니다. 땅의 존속이 곧 끝날 때가 멀지 않아 임박했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들이 가진 히브리어 성경에 의해 보면 본문의 여백은 다음과 같습니다.
"아직 땅의 모든 심음과 거둠의 날들이 그치지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땅이 존속하는 "동안"을 "날"로 계산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그 "동안"을 월이나 년으로 계산해서 언급하지는 아니했다는 말입니다. 더욱이 세기를 가지고 셈하지는 아니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보기에는 땅이 오래갈 것 같으나, 그러나 영감된 말씀에서 보면 역사의 현 단계는 오직 날로 계산되고 있을 만큼 길지 못합니다. 언젠가 마지막 날이 올 것입니다. 그 때가 멀다고 생각지는 마십시오. 왜냐하면 베드로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왔다"(벧전4:7)고 했습니다.
여기에다 더 추가해서 베드로는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벧전4:7)고 했습니다.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벧후3:9)고 했습니다.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습니다. 만일 지질학자들이 세계의 역사에 관해 정확하게 말한다면, 이미 수백만 년이 되었을 것이며, 창세기 1장에 묘사되고 있던 사건 이전에 이미 수없는 세월이 흘러갔을 것입니다. 인간의 살아 있을 시기는 영감 받은 성경기자에 의해, 하나님이 우리에게 묘사해 주시는 그대로입니다. 우리는 이 시기가 아주 짧은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이 거주할 수 있도록 땅을 적당히 세워주시던 그날부터, 마침내 뜨거운 열로 이 땅을 소멸하시게 될 그 순간까지의 기간은 무척 짧은 시간일 것입니다. 하나님이야 수억만 년 무궁히 살아계시는 분이신고로, 하나님에게는 수천 년도 단지 하룻밤의 일순간일 뿐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좀 더 이해하고 있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 세대는 장구하게 연장되는 세대가 아니며, 또 현상태대로의 세상의 지속이란 이전 시기나 이후 시기에 비해 비교적으로 너무도 짧다는 사실입니다. 현재의 이 악한 세상에서의 생명이란 지극히 순간적입니다. 그것은 불과 몇 날에 지나지 않으며 고통의 투성입니다. 그러나 죄와 은혜의 시기가 무한한 사랑과 자비의 하나님의 영광을 놀랍게 드러내면서, 연합되어 있음을 나는 분명히 말해 드리는 바입니다.
Ⅱ. 오늘의 본문에는 이상에서 본 것처럼 하나의 경고에 대한 암시가 있었습니다마는, 둘째로 약속도 해 주고 있습니다. 이 약속은 의미심장한 것입니다.
"땅이 있을 동안에는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하리라."
이것이 본문입니다. 이것은 이 세상적인 것에 관한 약속입니다마는, 영적인 분위기도 불어주고 있으며, 주님께서 축복하시는 한 들판의 향기가 돌고 있습니다.
이 약속은 지금까지 계속 유지되고 있습니다.
이 약속이 기록된지도 이미 오랜 세월이 흘렀고, 또 이 약속이 하나님의 심중에서 결의된 적은 더욱 더 오랜 세월이 흘렀으나, 지금까지 그 약속은 패하지 않고 있습니다. 어떤 때는 추위가 서리를 동반해서 일 년 내내 위협해 온 적도 있었으나, 심고 거둠이 계속되어 왔습니다. 추수가 풍성하지 아니할 때도 있었으나 인류가 살기에 충분한 추수가 되었습니다. 날이 어두워서 밤과 구별조차 못할 때도 있었습니다. 가령 애굽의 역병이 내리던 우울한 때와 같이 말입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보아 지금까지 밤낮을 구별을 두고 있어 왔습니다. 하늘의 이치는 조상때처럼 우리에게도 그대로 존속하고 있습니다. 자연을 연구하는 학도도 이 시간까지 더위와 추위의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항시 계절이 불변하게 지속되어 왔음과, 또 햇빛이 없거나 빛의 감소 사실은 있었으나, 역시 주야가 땅의 낮의 주기를 따르고 있었다는 사실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있습니다. 조상들이 살았던 이래로 만물은 그대로 존속하고 있습니다. 하나의 큰 파괴공작이 있었다면 그는 대홍수 때의 경우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젠 더 이상 그런 일이 없을 것이라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이 약속의 성취는 너무도 장기간을 두고 계속되고 있는 만큼, 이젠 불신자들까지도 그 약속을 믿기에 이르렀습니다.
이젠 우리는 계절이 있는 것을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봅니다. 나는 오늘 여기 모이신 가운데 단 한 사람도 봄이 올 것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 봅니다. 지금 보기에 나뭇가지는 앙상하고 싹이 틀 여망은 조금도 없는 것 같고, 크로커스(식물의 일종)와 수선화는 꽃 피기를 두려워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새들은 다가올 봄을 믿고 있습니다. 내가 들어보니 새는 매일 아침 아름다운 합창으로 기다림의 노래를 지저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여, 여러분도 또한 기다리고 있습니다. 오랜 관찰로 인해 여러분들 속에도 요동치 않는 신뢰가 깃들고 있습니다. 즉 그것은 밤에 해가 서산으로 넘어가서 공중에 없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해를 없이해서 이젠 다시 그 큰 등불인 해가 빛을 내주지 않을 것이라고 걱정하는 사람은 비록 어린이라도 없을 것입니다. 아니, 우리들은 아침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잠시 동안 겨울이 우리를 싸늘하게 만들고 있지만, 우리는 봄과 여름이 있음을 믿고 기다립니다. 또 여름에 우리의 얼굴은 햇빛에 타고 있지만, 머지않아 낙엽이 지고 눈이 내릴 것을 기대합니다. 나는 여러분들이 스스로 물어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자연의 시절을 그렇게 믿을진대 어찌하여 하나님의 기타의 약속은 믿지 못한단 말입니까?
우리가 이런 자연의 계절에 대해 가지는 것과 같은 확신을,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기타 다른 진술의 진리에 대해서는 왜 갖지 못한단 말입니까?
우리는 경험해 왔지 않습니까?
오, 형제들이여, 우리는 또한 기타 문제에 대해서도 경험을 갖고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섭리에 관한 우리의 생각을 지배하고 있는 것과 같은 근시안적 회의를 품고 기후를 본다면, 우리는 여름과 겨울을 끝없이 회의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봄이 올 것 같지 않습니다. 우리의 목장을 한번 보십시오. 문자 그대로 추위가 얼마나 풀을 바싹 마르게 했나를 보십시오. 목장에 있는 사철나무가 제법 많이 죽어 있고, 또 어떤 것들은 딱하게도 부러져 있습니다. 추위 때문에 얼마나 엄청난 변화가 생겼나를 보십시오. 앞으로 이런 목장에도 잎이 나고 꽃이 필 수 있을까요?
뜨거운 정오에 이마에 김이 나듯 흐르는 땀을 닦을 날이 올 수 있을까요?
이 꽁꽁 얼어붙은 개울물이 녹아질 날이 있을까요?
오늘은 우리가 이렇게 추위에 못 이겨 불 옆에 모여 있습니다마는, 그래도 건초를 햇빛에 말리고 황금볏단에 둘러싸일 날이 있을까요?"
그런데 우리가 지금까지 경험을 별로 갖지 못했더라면 '아주 불가능한 듯이 보일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계절의 주기와 밤낮이 계속될 것을 믿어 확신하면서 즐깁니다. 그러지 못할 것이 무엇입니까?
왜 어떤 약속은 이렇게 확신하면서도, 역시 똑같이 진실된 다른 약속에 대해서는 흔히 불신하는 이유가 도대체 무엇입니까?
그런 약속들은 다 제 때가 되면 성취되는 것입니다. 그것들은 아무런 어려움도 없이 나옵니다. 왜 우리는 의심합니까? 구원이 도저히 가능하지 아니한 것처럼 될 때에도 그것은 여전히 확고한 것입니다. 이유는 하나님이 그것을 약속한 때문입니다. 눈에 보이는 수단이 없다고 해서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무한한 자원을 갖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친구들이여, 우리는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친히 봄과 여름을 보내주시지 않으시면, 우리로서는 그 중 어느 것도 만들어 낼 수는 없다는 사실이겠습니다. 여기서는 우리의 소관이 아닙니다. 태양이 넘어갈 때 만일 하나님께서 그 태양을 다시 뜨게 하시지 않으신다면, 우리는 아침의 문을 열지 못하는 자가 되었을 것입니다. 나는 자연의 들판에 나아가 넓은 경치를 보기를 좋아합니다. 그러나 거기 가 보아도 사람은 하는 일이 없이, 다만 하나님만이 뜻에 따라 모든 일을 하고 계심을 볼 수 있습니다. 하늘과 하늘의 모든 천체들이 하나님의 임재와 계십니다. 우리만 하더라도, 계절을 변화시키는 데에는 손가락 하나도 움직일 수 없습니다. 어디 두고 봅시다. 국회가 봄을 오게 하거나, 성급한 여름을 오게 하거나, 또는 추수기를 오게 하는 데에 자기들의 온갖 행사를 다 치룬다 해서 가능할 수 있는 일입니까? 비단 국회뿐만 아니라, 왕이나 영주들이나 일반 민중인들 계절의 변화에 무슨 역할을 감당해 낼 수 있단 말입니까? 전연 아무 것도 행할 수 없습니다. 이런 일들은 인간 능력 밖의 일입니다. 그러나 그런 일들은 여전히 확고한 현상들임은 부정 못합니다.
나의 형제들이여, 여러분들이 도저히 여러분 자신을 도울 수 없는 그런 상태에 이르게 되거든, 그때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목적을 능히 성취하실 것이며, 또 여러분의 도움은 전연 필요치 아니 하시면서도, 그 약속을 이루어 주심을 믿어 의심하지 마셔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언제 여러분의 도움을 요청해옵디까? 그러나 소위 선인들은 자기들이 약속과 예언의 성취에 도움을 주고 있다고 생각을 하는 순간에 커다란 과오를 저지르고 있는 것입니다.
더도 말고 리브가를 보십시요. 그녀는 야곱에게 이미 약속된 축복을 얻기에 인간적으로 얼마나 수고를 했습니까?
그런즉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하나님의 손에 맡기는 것이 보다 잘 하는 일입니다. 어떤 경우가 최악의 경지에 이르러서, 여러분들로서는 그런 입장을 당해 아무 것도 행할 수 없게 될 때에, 여러분은 다만 안전하게 잠잠히 서서 하나님의 구원을 바라보아야 할 것입니다. 자, 지금 이 순간에도 여러분은 봄과 여름이 올 것을 확신합니다. 물론 여러분들로서는 하나님의 미리 정하신 길 밖에 단 1인치도 태양을 움직일 수는 없지만, 그래도 봄과 여름이 올 것을 탄탄히 믿습니다. 그런즉 1년의 주기에 대해 그토록 자신을 가지듯이, 이제 하나님의 기타의 약속에 대해서도 안심하고 믿으시기 바라마지 않는 바입니다.
또 기억하셔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언제나 여름이 오고, 또 언제나 태양이 떠오른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위대한 경이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다만 우리가 그런 사실들을 익숙하게 알므로 인해서, 우리는 이런 일들을 별로 놀라운 일로 생각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의 참된 기적은 매일 날이 새고 매번 태양이 뜰 때 그것이 기적입니다. 경이의 세계는 봄의 소식을 드러냅니다. 풀잎의 모든 끝마다 그리고 곡식의 모든 눈들이 하나님의 전능을 과시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아침부터 저녁에 이르기까지 전능한 능력과, 자비의 작품들과, 밤의 하늘의 관찰자들로 둘러 싸여 있습니다. 정월 초하루부터 그해 마지막 달 그믐날까지 하나님은 우리 주위에 계십니다. 우리에게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손이, 인간의 예측의 능력으로는 그 궤도를 조금도 움직일 수 없는 조용한 세계를 돌리고 계십니다. 바로 그 능력이 만물을 지탱하고 살리며 완전케 하십니다. 하나님은 만유 안에 계시고 모든 경이 가운데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신 대로 계속해서 한 해의 계절의 변화를 초래하십니다.
그렇다면 믿음이 적은 자들이여, 왜 기타의 약속에 관해서는 하나님을 의심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는 그 하신 말씀을 땅에 대해서도 지켜 주시거늘, 하물며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하신 말씀을 지키지 아니하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태양과 별에게도 신실하신 하나님이신데, 하물며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에게 하신 모든 약속을 성취하지 아니하시겠습니까?
심음과 거둠과 여름과 겨울이 하등의 우리 인간의 도움을 필요치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오고 있듯이 이런 변화는 진실로 경이로운 변화올시다. 이런 변화는 조금도 어긴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기타의 사실들을 잊으실 수 있을까요?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언약을 거짓 맹세하며, 하나님의 독생자에 대한 자기의 약속을 부정하실까요?
결단코 그렇지 않습니다.
형제들이여, 우리들은 계절에 대한 이 약속을 믿으며, 그 약속에 대해 확신하기에 이르렀을 뿐만 아니라, 우리는 실제로 믿고 활동하고 있습니다.
농부들은 가을에 밀을 뿌립니다. 또 봄에 밀을 뿌릴 기회를 찾는 자들도 많습니다. 씨뿌린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좋은 씨앗을 땅에 묻는 것이 아닙니까?
농부들이 땅에 씨앗을 뿌리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씨를 뿌리고 나면 반드시 거둘 때가 있을 것을 확신한 때문입니다. 농부들은 땅에 뿌린 씨앗이 나중에 백배나 더 열매를 맺어 결실할 것을 소망하고서 뿌리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기타의 약속에 대해서도 역시 그런 동일한 믿음의 실천적인 자세로 행하지 못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진실된 믿음은 하나님의 약속을 아주 유효한 것으로 만듭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약속들을 진실한 것으로 보아 실제로 경험해 보므로 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하나님께 무엇을 부탁할 때는 언제나 부탁해 오던 탄원이 성취된 것을 믿고서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많은 사람들은 날씨가 따뜻해질 것을 예상하고서 얇은 옷을 준비하며, 또 여름이 끝날 즈음이 되면 겨울을 대비해서 모직 속옷을 준비해 둡니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저들이 계절을 정확히 알아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정한 시간에 우리 하나님의 약속을 받기에 스스로 준비하지 아니할 이유가 도대체 무엇입니까?
우리는 성경의 모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여기지 못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약속을 조금도 의심 없는 기정사실로 평가해서 자신 있게 거기에 따라 행동해야 하는 것입니다.
좀 더 나아가 보기로 합시다. 만일 사람이 오늘의 본문에서 하나님의 선언하신 사실에 기초해서 활동하지 아니한다면 참으로 어리석은 자로 간주될 것입니다.
가령 어떤 사람이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봅시다.
"나는 추수기가 올지 확신할 수 없기에 씨를 뿌리지 아니하노라"고 말입니다.
그의 이웃 사람들이 이 사람의 밭이 경작되지 아니한 것을 보고서, 이 사람을 정신 빠진 자라고 여겼을 것입니다. 또 어떤 다른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고 봅시다.
"나는 겨울을 대비해서 곡식을 저장해 두지는 않으리다. 나는 여름이 영구히 계속할 것을 믿으니 말입니다. 볏단에는 언제나 벼가 달려 있고 나무에도 언제나 실과가 달려 있을 테니 말입니다."
자, 우리는 이런 사람을 보고서는 정신병원에 가야 할 사람으로 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기타의 약속도 괜한 말들이며, 따라서 순 엉터리 야바위꾼의 예언 이상으로 보아 줄만한 가치도 없는 것으로 취급한다면, 이런 사람들도 역시 이만저만 미친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들의 대부분도 자기들의 경우에 적응되는 약속을 찾아보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상고하는 사람도 없으며, 또 그런 약속이 자기들 눈앞에 놓여 있어도 그들은 그것을 단지 추상적인 문제나, 또는 무의미한 횡성수설로 여기고 그칩니다. 영원한 진리를 우습게 여겨 조롱하는 저들에게 내가 무어라고 말해야 할까요?
다만 저들은 미쳐서 정신을 빼앗겼다는 말 외에 무슨 말을 해주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은 우리에게 미래에 대해 명백히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마땅히 행동해야 할 것에 대한 암시를 주는 것입니다. 그런즉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행동합시다.
하나님께서 "너희는 내 얼굴을 찾으라"고 말씀하시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얼굴을 찾는데 유의하시면 됩니다.
하나님께서 "구하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라고 말씀하실진대, 단지 여러분은 구하고서 받기를 기대하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을 믿는 자에게 사죄를 허락하신다면, 우리는 그 아들을 믿고 자비를 얻읍시다. 하나님은 밤과 낮을 두고 행하신 언약도 지키십니다. 그런즉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도 언약을 지켜 주실 것을 믿고 또 하나님이 말씀하신대로 행합시다. 오, 비록 이 교훈은 너무도 단순하고 간단하지만, 모든 신자가 배워야 하고 모든 불신자도 배워야 할 것으로 믿어마지 않습니다.
나는 사람들이야 이 사실을 믿든 믿지 않든 역시 계절의 원리는 그대로 존속하리라는 것을 말씀드리면서 본 대지를 마칠까 하는 바입니다.
어떤 사람이 겨울은 이젠 없을 것이라고 말해서 옷을 준비해 두지 않고 있다고 한다면, 그는 12월이 되어 온 땅이 흰눈으로 덮힐 때에 북풍설한에 덜덜 떨고 있을 것입니다. 또 어떤 믿지 못하는 자가 여름은 없을 것이라 하여, 씨도 뿌리지 않고 곳간도 준비하지 아니했다고 봅시다. 그의 그 어리석은 회의주의가 추수 때가 오는 것을 막을 도리가 있을까요? 그런 사람이야말로 불쌍한 농부인 것입니다! 그는 자기 자신의 실제적인 불신앙에 대한 보상으로 가시와 엉겅퀴의 추수를 거둘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모든 밭에는 곡식의 추수가 있을 것입니다. 이때 와서야 그는 어리둥절하게 될 것입니다. 누구가 아무리 어리석은 짓을 해도 일 년은 고스란히 계획대로 진행됩니다. 누구가 아무리 끝없는 밤이 올 것이라고 예언했다 해도 태양은 떠오르고 맙니다. 그렇습니다. 비록 언덕이 떠나갈지라도 하나님의 목적과 약속은 굳건히 버티고 서 있습니다. 여러분이 주 예수를 믿으시면 구원을 얻을 것이며, 믿지 아니하시면 멸망을 받게 마련입니다. 어느 경우든 이 법칙은 여러분에게 조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위대한 영적 세계의 법칙들은 자연세계를 다스리는 법칙과 꼭같이 아주 확고하게 유지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인력의 위력을 중지시킬 수가 없습니다. 만약 우리가 인력의 위력을 중지시킬 수 있다 해도, 우리는 영원부터 자존하셔서 진리로 계시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실재만은 변경시킬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고 행하시지 아니한 것이 있습니까? 하나님은 말씀하신 것을 행하십니다. 우리는 믿지 아니해도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자신을 부정하실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아들된 여러분이여, 현명하시오. 하나님의 말씀에 유의하십시오. 여름에 겨울 준비를 했듯이, 봄에 씨앗을 뿌리고 나중에 추수를 하려고 했듯이, 이제 여러분은 자연계에 있는 하나님의 목소리에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나는 여러분께서 하나님이 성경책에서 말씀하시는 것처럼, 대자연에서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경이를 표하고, 또 하나님께서 계시해 주시는 그 자연의 말씀에 따라 행동해 주시기를 기도하는 바입니다.
Ⅲ. 이 본문 가운데는 유추의 암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이 본문의 말씀을 읽을 때에 하나의 철학적 예언으로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의 일부로서 도덕적, 영적, 신비적 의미가 있음을 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자연적인 현상을 가르치려고 의도한 것이 아니라, 영적인 것을 가르치려고 의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오늘의 본문 가운데서 가치 있는 유추가 나오리라는 것을 믿어 결론짓는 바입니다.
땅이 있을 동안에는 영적 세계에도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본문을 읽으실 때에 변화를 나타내는 말에 강조해서 읽으시고, 그것이 바다의 파도처럼 어떻게 올랐다 내렸다 하는가를 유의해 보십시오.
"땅이 있을 동안에는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이런 진술을 보면 어느 하나도 계속된 것이 없습니다. 왔다가 갑니다. 계절은 영구한 과정이며, 끝없는 고리이며, 계속 움직이는 바퀴입니다. 추위는 더위 앞에서 달아나고 다시 여름은 겨울로 인해 없어집니다. 고정된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런 것이 인생입니다. 그런 것이 모든 사람에게 있는 영적 생활의 감정입니다. 그런 것이 하나님의 교회의 역사입니다. 우리가 슬퍼하다가 기뻐합니다. 우리는 싸우다가 승리합니다. 우리는 일하다가 휴식합니다. 우리는 다볼(Tabor)산에만 항상 있는 것은 아니며, 또한 바카(Baca)골짜기에만 언제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비록 어떤 변화가 우리에게 생긴다 할지라도 우리는 놀라지 맙시다. 낮이 밤이 되고 여름이 싸늘한 겨울로 옮겨갈지라도 우리는 놀라지 맙시다. 우리는 기쁨에서 슬픔으로, 슬픔에서 기쁨으로, 성공에서 실패로, 실패에서 성공으로, 이렇게 우리는 빨리 지나들 갑니다. 과연 그렇습니다. 땅이 있을 동안에는 다 그런 것입니다. 우리가 땅의 동참자로 남아 있는 동안에는 다 그런 것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에도 하나의 질서가 있습니다.
추위와 더위, 여름과 겨울, 낮과 밤들의 갈짓자(之)걸음으로 춤을 추며 오는 것도 아니며, 또는 시끄러운 소리를 내면서 야단법석을 피우며 오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 것들은 오히려 공평하고 아름다운 일 년을 형성해 줍니다. 이 모든 사건 속에는 우연이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집의 질서를 유지하시기 위해 바람과 폭풍과 태양과 바다를 이끌어 오십니다. 어느 것도 하나님의 명령에 반항하는 것이란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영적 왕국, 믿는 자의 생애, 그리고 하나님의 교회의 역사에서 보면, 모든 것이 선을 위해 역사합니다. 영적인 것은 천국으로 나아가는 교육이 됩니다. 우리가 당하고 있는 계절에도 하나님을 볼만한 하나의 질서가 있습니다. 지금 겨울입니다. 그런데 이 겨울철이지만 나무의 진액은 은밀히 여름의 꽃송이를 내기에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이렇게 추워하고 있습니다마는, 우리엔 아직도 여분의 열을 품고 있는 것입니다. 변화가 있을 것을 기대하십시오. 그런 변화는 법칙에 따라 올 것임을 믿으십시오.
땅이 있는 동안에는 위대한 법칙들이 존속합니다.
그것은 자연계나 영계나 매한가지입니다. 예를 들어 봅시다. 씨 뿌리는 것과 거둠이 있으며, 노력과 그 결과가 있으며, 수고와 그 성공이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여, 앞으로 그대에게는 거두어 드릴 때가 올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대의 씨뿌리는 때입니다. 하나님은 교훈과 성화로 그대에게 씨를 뿌립니다. 그것은 때가 되면 그대가 하나님의 영광의 추수를 내기 위함입니다. 때때로 우리는 수동적 자세로 누워있을 때도 있습니다. 그때는 마치 갖다놓은 밭과 같습니다. 그 후 우리의 씨 뿌리는 자이신 하나님께서 우리 속에 살아 있는 씨를 던집니다. 그런가 하면 또 우리가 능동적일 때도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에게 전날에 체험한 하나님의 은혜의 결과를 하나님께 드립니다. 마땅히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미숀 홀이니 교회학교에서 일하고 계시는 사랑하는 여러분에게는 씨 뿌리는 때가 있습니다. 노력의 성과가 크게 나타나기도 하지만 별로 많이 성취되지 아니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나를 지적하여 말하더라도 설교할 때는 씨 뿌리는 때라 하겠지요. 그러나 씨 뿌리기만 했지 다른 일은 별로 일어나지 않고 있을 때도 있습니다. 나 주위에 자라나고 있는 푸른 싹들이 별로 눈에 띄지 아니한 경우도 있습니다. 아마도 노동자가 자기의 수고의 결과를 보자면 일 년이란 세월이 흘러야 하는지도 모릅니다.
"농부가 땅의 귀한 열매를 바라노라"(약5:7)고 했습니다.
이 지방에 계시는 선교사와 여자 성경 교사가 매일 매일의 설교에서 눈에 띄는 효과를 보지 못할지는 모르나, 추수 때와 씨 뿌리는 때는 분명한 고리로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라"(시126:6)고 했습니다.
형제들이여, 이 말을 믿읍시다. 그리고 기뻐합시다.
"너희 수고가 하나님 안에서 헛되지 아니 하리라"(고전15:58)고 했습니다.
땅이 있을 동안에는 씨 뿌리는 것과 추수하는 것이 서로 차례를 따라 되는 것입니다.
또 하나 본 것이 있습니다. 땅이 있을 동안에는 추위와 더위가 교차합니다. 생명이 있는 동안에는 변화가 있습니다. 오직 죽음 안에서는 단조로운 것 밖에 없습니다. 여러분은 다음과 같은 것을 체험하는 때가 있었을 것입니다. 즉 그것은 죄를 깨닫게 하시는 성령님께서 육체의 모든 영광을 깡마르게 만들매, 여러분은 무서울 정도로 위축감을 느꼈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누가 능히 하나님의 추위를 감당하리요?"(시147:17)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곧 죄를 뉘우침과 회개의 때가옵니다. 이때는 부드러워집니다. 성령님께서 여러분의 마음을 따스하게 해서, 하나님 안에서 소망과 믿음과 사랑과 기쁨과 즐거움을 가지도록 인도해 주십니다. 추위와 더위가 교회에 옵니다.
나는 흔히 교회에서 비참한 추위도 주목해 봅니다마는, 그것에 대해 하나님께 울부짖기도 해 왔습니다. 그러나 또 더위도 오는 것입니다. 우리는 부흥의 열을 느낍니다. 열심에 불이 붙고 열의가 대단합니다. 나는 원컨대 우리가 항상 그와 같은 영광스러운 여름의 더위에 머물러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빛 안에 계시듯 우리도 빛 안에서 걷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마땅히 그러해야 합니다. 우리 중 혹자는 언제나 열심을 다해 불로 충만해서 일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에 우리나 또는 기타 어떤 사람들이 축복의 충만한 가운데 있지 아니하는 때가 닥쳐오더라도, 우리는 절망할 것은 없습니다. 그러기보다는 우리는 하나님께 크게 부르짖어 다시 말씀을 주시고 은혜의 물결이 흐르게 간구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이 차가운 겨울이 지나가고 꽃이 땅 위에 다시 피고, 새가 다시 노래하는 때가 오도록 빌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나는 우리의 현세에서도 여름과 겨울, 번영과 역경이 있음을 보아 왔습니다.
사랑하는 형제여, 여러분이 이 세상에 살고 있는 동안에 만발한 백합화와 장미화 속에서만 언제나 콧노래를 부르며 산다고 기대하지는 마십시오. 여름이 올 때 여러분은 지혜롭게 모든 유용한 기회를 해가 비칠 그 동안에 건초를 장만해 두십시오. 여러분은 겨울을 대비하십시오. 나는 여러분이 어느 상업에 종사해서 이를 보며, 어느 직업을 택해서 어려움을 면하게 될는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내 알기로는 지구에 밤이 없는 모퉁이가 없으며, 돌 없는 땅이 없으며, 폭풍 없는 바다는 없습니다. 영적 정신적 체험을 두고 말해 봅시다. 땅이 있는 동안에는 나는 밀물도, 썰물도 겪으며, 흥망성쇠를 골고루 체험하게 되더라는 사실을 바로 내 자신 속에서 보는 듯 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섭리의 세대를 발로 차거나 투덜대지는 마십시오. 때가 여름이거든 "하나님께서 주셨으니, 하나님의 이름이 복되시도다!"라고 말만 하시오. 때가 겨울이거든 "하나님께서 가지고 가셨으니, 하나님의 이름이 복되시도다!"라고만 역시 말하시오. 한 음절 낮추어 노래해야 할 때에도 계속 같은 노래만을 부르시오. 씨를 뿌릴 때나 거둘 때나 언제든지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에게 영광을 돌리시오. 하나님으로 하여금 언제나 하나님 보시기에 선한 것을 행하도록 하십시오. 그리고 언제나 여러분에게는 언제나 찬양할 수 있는 선한 것이 되게 하십시오.
사랑하는 여러분, 수고 뒤에는 휴식이 찾습니다. 왜냐하면 땅이 있는 동안에는 밤과 낮이 있기 때문입니다. 낮에는 일하러 나가고 밤에는 눕습니다. 밤낮을 주신데 대하여 하나님께 감사하시오. 아무도 일할 수 없는 밤이 옵니다. 우리에게는 이 밤이 무서운 것이 아니라 기다림의 소망이 있습니다. 나는 밤이나 낮을 다 주신데 대해 하나님께 어떻게 감사해야 할지 모를 일입니다. 우리 젊은 사람들은 활동을 할 수 있으니까 낮을 주신 것을 하나님께 감사 드리는가 하면, 나이가 든 노인들은 휴식할 수 있으니까 밤을 주신 것을 인해 더욱 하나님께 감사드리고자 하는 생각이 납니다. 많은 세월을 살면서 슬픈 인생의 경험을 많이 쌓은 백발성성한 노인은 마냥 밤을 기다립니다. 그것은 괴로웠던 모든 악한 일이 그치고 피곤했던 모든 것이 쉼을 얻게 되겠기 때문이지요. 우리가 죽음을 밤으로 여긴다면, 우리는 죽음 다음에 오는 끝없는 낮을 기다리게 됩니다. 이때는 해가 영원히 넘어가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님은 우리가 향해 가고 있는 그 영화로운 나라의 태양입니다. 땅이 있는 동안에는, 계속해서 갖가지 감사의 기도가 있을 것이며, 자비의 은종소리는 다양하게 울려 퍼질 것입니다.
내 형제여, 여러분이 높은 데 있을 때는 내려올 것도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이 낮은데 던지움을 받았을 때는 기쁘게 들림을 받을 것도 기대하십시오. 긴긴 낮을 맞이해서는 재빨리 여행하십시오. 밤이 옵니다. 어두워질 때는 소망 가운데서 바라보십시오. 동트는 아침이 옵니다. 변화무쌍한 나라에서 여행하는 자처럼, 우리는 거룩한 두려움 속에서 순례의 나날을 보냅시다. 그렇게 해야 우리는 세상을 사랑하지 않고 전진하게 될 것입니다. 나는 더 이상 이 본문을 가지고 유추해석을 내리지는 않습니다.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더 많은 유추해석이 떠오를 것이기에 나는 여기서 그치고 맙니다.
Ⅳ. 마지막으로 나는 여러분께서 오늘의 본문을 우리 믿음의 확증의 표로 보아 주시기 바라는 바입니다.
"땅이 있는 동안에는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하리라."
그렇습니다. 이런 계절들이 조금도 쉬지 아니합니다. 이 사실에서 우리는 언약의 인봉과 징표를 보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오늘 아침 예레미야 33장에서 읽은 구절을 봅시다. 여기 보면 우리가 즐기고 있는 왕에 대한 확고성이 있습니다.
"너희가 능히 낮에 대한 나의 약정과 밤에 대한 나의 약정을 피하여 주야로 그 때를 잃게 할 수 있을진대 내 종 다윗에게 세운 나의 언약도 파하여 그로 그 위에 앉아 다스릴 아들이 없게 할 수 있겠노라"(렘33:20~21)고 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왕의 혈통을 결코 변경시키지 아니할 것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땅이 있어서 밤낮이 있는 한, 다윗의 아들이 만왕의 왕 만주의 주로서 다스릴 것입니다. 모든 원수가 그 발 앞에 놓이기까지 그 아들은 통치할 것입니다. 나는 겨울의 추위를 몸으로 느끼고 옷을 겹쳐 내 몸을 두를 때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추위를 보내시사 우리 주 우리의 왕되신 예수님에게 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확증하셨습니다"라고 하는 내용의 이야기입니다. 매일 아침빛이 내 눈에 비쳐오며, 인사를 할 때마다 그 빛은 이렇게 선언합니다.
"태양이 있는 한 하나님의 이름이 계속하리라"는 것입니다.
저녁의 그늘이 드리우자 하늘의 별이 나타날 때 나는 "달이 있는 한 평화가 충만하리라"는 소리를 듣습니다. 하나님의 통치는 영원한 통치며 하나님의 나라의 통치는 끝이 없습니다. 주 예수님은 시온의 왕입니다. 땅이 있는 동안에는 교회의 머리로서 모든 것 위에 오릅니다.
항존하는 하늘의 모든 이치가 역시 제사장직의 계속에 대한 표입니다.
레위 족속의 모형 아래서 제사장직은 우리 주님의 인격 속에 들어 있게 되었습니다. 그는 우리의 멜기세덱입니다. 왕이며 제사장입니다. 그의 제사장직은 무궁합니다. 겨울이 살을 에듯 춥고 여름이 그토록 불타듯 볶아대지만, 또 낮은 일을 하게하고 밤은 휴식을 취하게 하지만, 우리의 위대하신 대제사장은 자기의 직무에 한결같이 임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아직도 우리를 정결케 하시며, 우리를 위해 중재의 기도를 올리며, 하나님에게 우리의 제물로 바쳐지고 있습니다. 우리 주님의 단한번의 제사가 영원히 하나님께 아름다운 향기이며, 또 달이 커졌다가 적어졌다 하는 일이 더 이상 없게 될 때까지 향기로 있을 것입니다. 나는 지금 쇠처럼 얼어붙은 땅을 밟으며, 차디찬 북풍설한에 치를 떨고 있지만 나 자신에게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 주님의 대제사장직은 지금도 있다. 왜냐하면 지금도 우리에겐 추위가 오고 있으며, 그 다음에는 더위가 정한 달이 되면 찾아오겠기 때문이다."
내가 잠자리를 들 때나 잠자리에서 일어날 때에, 주 예수님은 무궁한 생명의 법칙에 따라 영원히 한 제사장이라는 사실에 대한 보증은, 낮과 밤이 있다는 사실로 나는 보고 있습니다.
세 번째 사실로 역시 같은 표식으로 확증됩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의 낮과 밤에 대한 약정이 있는 동안에는 아브라함의 후손을 제거하지 아니하실 것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다윗의 한 아들이 그들을 다스려야 한다고 할진대, 다스림을 받을 대상들이 존재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다시 말하면, 영원히 선택된 백성이 있습니다. 이 백성은 주님 예수께서 왕과 대제사장으로 계시기 위해 필연적으로 있어야 할 백성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미리 아신바 된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십니다. 그들이 돌아오면 결코 버리지 아니하십니다. 씨 뿌림과 수확, 추위와 더위가 있는 한 하나님은 교회를 유지하십니다.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할 그런 교회를 유지하십니다. 이 얼마나 굉장한 자비입니까! 아, 딱한 일도 있습니다. 내가 바라기로는 매우 신실하게 보았던 사람들도 진리에서 떠나고, 기둥으로 여김을 받던 사역자들도 타락하고, 성도로 인정받던 사람들도 위선자로 변하고 맙니다.
그러나 "은혜의 선택을 따른 남은 자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사람들을 따로 두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용기를 가집시다. 주님의 방주를 두고 걱정하는 사람이 되지 맙시다.
이 모든 것을 끝마치면서 우리 모두 기도합시다.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셔 주시사, 더위로 인해 우리가 상하지 아니하며, 추위로 인해 우리가 고생하지 않도록 되기를 위해 기도합시다. 하나님이 계시며 기후가 고릅니다. 우리 모두는 죤 라일란드와 같이 이렇게 읊어봅시다.
의의 태양이여 솟아라,
아름다운 광채로 나를 축복해 주오.
겨울이여 물러가라.
하나님, 나에게 한결같이 축복해 주오.
오, 우리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있는 여러분, 나는 진심으로 여러분을 가련하게 여깁니다! 여러분에게는 모든 계절이 공허합니다. 하나님이 계시지 아니하신다고 하니까요. 나는 여러분이 예수를 아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계시지 아니하는 세상은 공허한 집이며, 싸늘하고도 텅 빈 복도와 같습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을 모르며 사랑하지 아니하면, 인간은 고아들이며, 인생은 소망이 없으며, 죽음은 별 없는 밤처럼 암담합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는 사람은 커다란 비밀의 열쇠, 곧 미로의 실마리를 가집니다. 이후부터 그런 사람은 현재의 변화무쌍한 기후 안에 살면서, 자기 둘레에 일어나는 모든 웃음과 격노 속에서도, 아버지의 사랑의 확증과 아드님의 은혜의 표징과 성령님의 사역의 증거를 보게 됩니다. 그런 사람에게 하나님은 영원히 영광이 될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