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대석> 김재기 학생독립운동연구 단장, 전남대 교수 전국
|
“학생운동 정신을 세계화해야 한다”
광주학생독립운동 체계적 연구
토론회 등 대외적 학술활동 전개
|
1929년 일본인 중학생 후쿠다 등이 광주여자고보 3년생인 박기옥 등 여학생들의 댕기꼬리를 잡아당기면서 희롱을 한다. 이때 개찰구를 나오던 박기옥의 사촌 남동생인 광주고보 2년생 박준채와 싸움이 일어나고, 급기야 나주역전에서 광주고보생들과 광주중학생들 사이의 편싸움으로 번진다. 이에 일본인 순경들은 일방적으로 일본인 학생들을 편들고 박준채를 구타했으며 일본어 신문인 ‘광주일보’도 일방적으로 일본인 학생들을 옹호하는 보도를 한다. 급기야 역전 충돌은 11월 3일에 일본인 학생과 조선인 학생의 집단적 격돌로 발전, 광주고보·광주농교·광주사범의 학생시위대는 광주형무소를 포위하고 ‘구속자 석방’과 ‘조선독립’을 외치면서 격렬한 시위를 전개한다. 제2차 시위에서 광주고보생 약 300명과 농교생 약 100명이 경찰에 구속당했으며 일본은 약 70명에게 체형을 선고한다. 엄격한 보도통제에도 불구하고 광주학생시위 사실은 전남지역과 서울 그리고 전국에 알려지기 시작했고, 이에 따라 학생들의 항일시위운동은 전국적으로 확산된다. 이것이 광주학생독립운동의 개요이며 11월3일이 학생의 날로 지정된 유래이다. 하지만 광주학생독립운동에 관련하여 그동안 체계적인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사실인데 광주학생독립운동에 대해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노력을 다하고 있는 곳이 전남대 학생독립운동연구단이며 정치외교학과 김재기 교수가 팀을 이끌고 있다.
|
|
이어 성균관대 김인덕 박사는 ‘일제시대 재일한인 민족운동과 재일유학생 운동’에 대해 “이들이 반제·반봉건적 성격을 갖고 활동했으며 식민지 조선을 민주 독립국가로 수립하는데 활동목표를 두었다”고 발표하였다.
또한 학생독립운동 81주년을 맞아 정신계승 방안 모색 토론회를 전남대 사회대 교수회의실에서 개최하기도 하였다. 토론회를 통해 학생독립운동연구단이 지난 1년 동안 수집한 자료 및 광주학생독립운동 문화 유적을 활용, 국립 아시아문화중심도시사업과 민주인권평화센터 건립사업에 그 정신을 계승하는 구체적인 방안을 모색하였다. 김재기 교수는 최근 구축한 2만여 건의 일제강점기 학생독립운동 자료에 대한 활용방안 등을 설명하기도 하였으며 광주학생독립운동의 세계화를 위한 구체적 방안도 제시하였다. 구체적 방안 중에 하나가 광주 학생독립운동의 정신을 광주에서 추진 중인 국립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조성과 민주인권평화센터 건립사업에 적용해야 한다는 방안이다.
김 교수는 “아시아 문화전당 민주평화 교류원에 식민지시대 중국, 인도, 베트남, 태국 등 아시아 지역 민족저항운동에 대한 자료를 콘텐츠화 하고 광주고보, 광주농업학교, 광주역, 교도소 등 광주 학생독립운동 관련 권역을 ‘민족운동 문화권’으로 조성하자”고 제안했다.
또 “광주 학생독립운동 당시 북한 150여개 학교가 참여해 남북 공감대가 이미 형성된 만큼 앞으로 이와 관련한 남북 교류 및 공동연구의 가능성도 검토해 볼만하다”며 “영문 책자를 발간하고 외국 주요도시에서 국제학술회의를 열어 학생독립운동 정신을 세계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연구단은 기존의 개별적이고 단편적인 접근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학생독립운동에 대한 종합적인 조사연구를 통해 관련 기초자료들을 수집 정리 하고 있으며 광주는 일제시대 학생독립운동의 진원지라는 측면에서 중요한 곳이지만 1929년 광주에서 발생한 학생독립운동은 전남지역으로 확산 1930년 초에는 서울과 경기 평양과 함흥 등 북한지역, 경상도와 충청도, 해외는 만주와 북경 상해 동경 소련 연해주 지역으로 확산되었기 때문에 모든 지역이 조사연구 대상이라고 말한다.
현재 정치학, 역사학, 문헌정보학을 전공하는 교수진과 박사 10여명이 공동연구를 진행하고 있고 대학원생과 학부생 10여명이 보조연구원으로 연구 활동을 진행하고 있으며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사업회, 광주학생독립운동 동지회 및 후손회, 학생독립운동연구회 등 학생독립운동 관련 단체들과 유기적인 협조체제를 맺고 있다. 김 교수는 인터뷰를 마무리하면서 학생독립운동의 시발점이 되었던 광주시민들이 특히 많은 관심을 가져주기를 바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