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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게시판 스크랩 독립군 신흥학교 교가 백제가요 정읍 태평소소리 2
바두슴(서병철) 추천 0 조회 69 13.12.04 08:59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전주신흥학교 교가   독립군 신흥무관학교 소리 2

 

 

악학괘범의 저자 유자광이 한글 정읍사노래 멜로디를   한글시 상춘곡을 정극인이   그소리로 이어 세운  정읍 칠보면 무성서원 책읽는  경서소리가 그대로  원촌마을 농악 태평소로  전봉준의 친족 전광문이 불었다  

전광문은   전봉준 전도성. 전금순 등  친족이며 상두산 무속재인으로  살았다 

이를 이곳 서당출신  와세다 대학생  김낙기가  협율사 농악으로  구성하여  독립군자금  모금 농악으로 사용햇다

 와세다대학 학우  채동선이 이소리로  선배 최남선의 가사로     조선의병군가,희망가, 학도가, 철도가,  철도가, 권학가,등으로 신가요로  만들엇다

그리고  신고산타령, 아리랑,등 모두 근본의 2000년 정읍사 멜러디  모든 군가. 동요. 찬송가. 역시  이 소리에 가사 붙여 이소리와 유사한 악절이 한국노래로 만들어 불럿다


찬송음악종교 학교 전주신흥학교가 1900년에 교가를 만들었는데 1920년에 만주독립군 학교 교가로 되었다

우리민요를 농악의 된삼채 4박자로 편곡한 북한의 소년행진 '용진가'는 전주신흥학교 교가 소리로 현재 정읍농악 허허굿 멜러디 농악박자로 1900년대부터 사용했다

한국민요 아리랑등은 모두 정읍농악 고유장단 양산도굿 세마치 장단으로 반주된다

그리고 함경도 신고산타령과 신흥고 교가(용진가) 찬송가 예수사람하심이 장단은 정읍농악 고유의 허허굿 장단이다

 

세마치장단과 허허굿이 한국민요  기본장단

호남농악은 백제가요 정읍사 비들기소리 멜러디 연주 군악이고, 경기농악은 꾀꼬리 고구려가요 황조가 멜러디, 영남농악은 신라가요 동동 닭.말.까치 멜러디 연주 군악이엿다,

우리 한국음악은 서양 도레미파 감정표현도 아니고 ‘궁상각치우’ 중국계급소리가 아니고

유화부인 (비들기) 고주몽(꾀꼬리) 김알지(닭) 박혁거세(말) 설탈해(까치)하늘님 소리가 3000년 찬송가로 남아잇다

비들기- 꾀꼬리- 닭. 말. 까치소리를 천신.찬양소리로 5000년을 이은소리로 꾀꼬리 다음에 비들기소리나 말소리 다음에 닭소리 역순 서영은 절대 안되는 세계고유 토템종교 음계이다

정읍농악 멜러디는로 가장 비슷한 민요는 1악절 갑돌이갑순이, 2악절에 용진가, 3악절에 태평가, 4악절에 신고산타령,이다

농악장단 이름을 새소리라는 뜻음으로 삼채, 세마치,라고 전해왔다

백제 마동왕과 신라선화공주 후손 흑치상지 장군이 당나라에서 개선군가로 사용했다

그러다가 당나라 안록산의 난에 촉으로 피난시에 당현종의 태자 숙종이 황제를 찬탈하자 황제 복위를 위한 청해성 실크로드 지역 군장 백제인 허기장군을 756년 동방예의국왕으로 봉하고 신라 청해진과 정읍에서 로마식 음악 의학 웅변 군사조직 교육을 하였다

 

이를 장보고 최치원에 이어서 후에 후백제 음악으로 사용 고려 조선 대대로 이어서 같은 멜러디에 가사만 다르게 불러왔다

자연의 모방이 동양화이다 그러므로 음악도 새소리 모방 변함 없는 옛 새소리 그대로 이어 불러보면 우리민요의 모든소리와 같은 소리이다

왕건태조가 허기장군의 후손 허사문을 사위로 태산태수 정읍호족장이며 후백제 군악을 계승한 백제가요 정읍농악이다

태인허씨 시조 허사문의 후손으로 이자겸, 이의방, 조선태조 이성계가 이어 전주완산. 지리산. 선운산 .방장산. 무등산. 정읍삼산.등의 산신제단 성황당 찬송가 무속음악으로 정읍농악 멜러디가 천년을 이어왔다

로마시대 군사와 음악훈련이 전주대사습 대회로 이어오자

 

수양대군이 한글을 찾아 태인현에서 기거 정읍곡 가무에 능숙한 근빈박씨의 가무에 반해 유일한 후궁으로 삼고 연산군이 모든행사에 정읍사가요를 공연시켰다

이 근빈박씨의 후손이 전주호성동사람으로 임진난에 평양탈환 승전의 호성군 이주장군이다

모든 학교 서당에서 구구셈외우기 천자문 외우기 연주시 외우기 상여소리가 모두 정읍곡 소리이다

그래서 기독교 초기에 찬송가는 민요에 예수가사를 붙여 사용하엿다

완산주 후백제 수도는 즉 전주의 성지(聖地)는 완산(完山)인데 신흥흥학교와 예수병원의 완산이다

1900년 이곳에 미국선교사 신흥학교가 신설되어 서양음악의 찬송가는 미숙하고 후백제 토탬 정읍곡의 멜로디에 가사를 ‘예수사랑하심이’ 찬송가로 창조되고 이 소리를 학교4박자 행진곡으로 전주신흥학교교가(용진가)로 사용한다

후백제 국가기원의 성지 완산 국사당인데 완산 산신당 주변 전주시민은 천년 백제정읍노래로 배우게 된다

 

 

후백제 종묘 완산터에서 애국가(정읍) 노래가  1900년 예수교  신흥학교 찬송 소리로 변주  교가소리는  1919 호남의병 만주 이동으로

독립군가가 되었다     

백제시대 토탬소리 산비들기(지지구구) 꾀꼬리(꾀꼴-앵) 닭(꼬끼오) 말(히히힝) 까치(째작)소리로 비교 모방하여 불러보자

노래가사 동물의소리 그대로   모창하면 후백제 시대 찬송가 음악   

 

 

1 전주신흥교가

 

 

    완산정기          모아드는        수려한곳 은

    지지 구구      지지 구구         꾀꼴 꾀꼴 앵-

 

   

     예부터           문명한               희현당 정기로다.

    지지 구구      지지 구구              꾀꼴 꾀꼴   앵-

   

     백운간에          솟아있는          층층한  집은

    지지 구구       지지 구구          꾀꼴 꾀꼴  앵-

  

        지인용을         배양하는         신흥학교다

      지지 구구         지지 구구        꾀꼴 꾀꼴 앵-

 

  

   만세 만세           만 만세             신흥학교 만만세

    꼬  끼오          히히힝              째작 째작 째작 작

  

       지인용을          삼덕으로            신흥할 지니

     꼬  끼오           히히힝                째작 째작 째작 작

 

   

      학도들아           용감력을          분발하여서

    지지 구구         지지 구구          꾀꼴 꾀꼴 앵-

  

     한 목소리         한 발자국             나아갑시다.

    지지 구구         지지 구구            꾀꼴 꾀꼴 앵-

 

 

 

2 후백제 군악 정읍소리 찬송가 예수사랑하심

 

 

예수 사랑          하심은        거룩    하신     말일세

지지 구구        지지 구구     꾀꼴    꾀꼴     앵-

 

우리 들은        약하나      예수 권세   많도다

지지 구구     지지 구구   꾀꼴 꾀꼴    앵-

 

 

[후렴]

날 사랑           하심            날사랑       하심

꼬 끼오       히히힝           꼬 끼오     히히힝

 

날 사랑           하심            성경에 써있 네

꼬 끼오       히히힝            째작 째작 째작 작

 

만주신흥학교는 임진난 의병장 고경명 1894동학군 1905 항일의병 최익현에서 김병로 김성수 백관수 장덕수가 신익희와 동경유학생으로 3.1운동을 기획하였다

신익희 친족 이시영의 만주신흥학교에 자금전달 목적으로  정읍내장사 윤세만농악, 지강내농악, 김낙기농악 등으로 모금하여 정읍 승부리 사람 유학규가 만주 이시영 신흥무관학교에 자금을 전하였다 구속됐다

 1920년경 함경선철도 공사장에 김낙기 정읍농악소리 그대로  신고산타령이 모방되고  이미 전주에서 1900년 개교한 전주신흥학교 정읍곡 모방 교가(용진가)가 여기서 만주신흥에 전달 독립군가로 되었다

삼국시대부터 찬송가가 삼국 사투리로 정착한 고유소리 러시아 중국에 없는 전라도소리다

신흥학교 용진가 신고산타령은 정읍농악 고유소리로서 나운규 아리랑 영화 주제가 역시 정읍 항일의병 후손 김낙기가 동경지진학살사건 항변투쟁 유학생으로 일본순경 폭행하고 김영진 이름으로 바꾸고 함경도로 피신하엿다

그리고  철도공사 감독으로 고향 정읍 옹동면 친구  권순국. 쇠바우 (유동근) 농악패를 인부로 불러와서 공연시켰다

아리랑 영화 내용에서  농악과 일본순경 구타행위를 모방한 아리랑영화는 오빠생각(뜸북뜸북뜸북새) 퐁당퐁당 등노래를 정읍곡 모방 동요를 부른 아리랑 가수 이정숙이였다

 

아리랑 민요의  백재가요 정읍 토탬찬송가 역사 줄거리

 서양 종교신당 지붕은 태양신 처럼 둥글고, 동양은 산비들기 날개를 모방한 기와집 사찰지붕이 신당이다

 삼국시대에는  천신이 강림하는  하늘의 새를 신앙체를  보았다

부여의 유화부인(柳花婦人) 버들'柳' 글자는 버드나무가 아닌  비들기 새의 이름이다

  알로 태어나 들에 버려서 새가 품어 주어 그 알에서 깨어나 고구려 시조가 된 고주몽 원래 이름이 상해(象解)라고 했다 그 ‘상해’ 이름은 '고주몽'을 ‘코키리 해’로 읽으며 ‘꾀꼬리 햇님’이라는 뜻이 상해(象解)였다

  고주몽의 아들 유리왕은 꾀꼬리 솟대를 바라보며 꾀꼬리를 보고 기도한 노래가 황조가이며 그 소리가 현재 서울말 사투리 경기민요 꾀꼬리소리이다

  백제국 온조왕은  할머니 유화부인 산비들기소리와 아버지 고주몽 꾀꼬리소리 순으로 소리내어 하늘새 하느님으로 환웅(桓雄) 새웅(雄)자를 사용였는데 황조가 꾀꼬리소리 찬송가였다  

  서양 종교 창세기 신화에서도 비들기가 하늘에서 신을 모셔 내려오는 새로 숭배하여 교회당에서 기른다

  그리고 신라는 하늘에서 천마가 내려와서 말우는소리 찬송가로 박혁거세가 태어났다

  그리고 석탈해 임금도 까치소리로 축가로 만 태어났다

  그러나 닭소리 찬송가로 태어난 김알지 후손 미추왕이 정권을 잡자 신라국은 이때부터 찬송가 순서가 1번순으로 닭소리가

올라가서 닭. 말. 까치소리 순서로 애국가 형태로 찬송했다

  백제는 비들기, 꾀꼬리소리가 찬송가이고, 신라는  김알지는 닭소리, 박혁거세는 말우는 소리, 석탈해 까치소리 였다

  여기서 새소리는 그 나라 토탬 하늘님 찬송가였다

  백제찬송가를 부르는 서동왕자가 비들기 꾀꼬리소리 노래로 불러 그 노래에 반해서 신라 선화공주와 결혼한다

  서동왕자는 그 후손 백제 무왕(또는 무령왕)이 된다

 

서동 백제왕 부르는 비들기, 꾀꼬리소리에 신라에서 시집온  선화공주는 신라찬송소리  닭소리, 말우는 소리, 까치소리로 따라 부르니 여기서 백제 신라 ‘통합애국가’로 작곡 현재의  농부가. 학교종. 아리랑. 고유새소리 악식곡이 탄생 지금 3도 사투리 된다

  서동이 무왕이 되어 궁중에서 거문고 춤으로 자주 연주하였고 대를 이어 이를 보고 자라난 후손 흑치상지 장군이

  그리고 그 신앙곡을 의자왕. 흑치상지 장군등 후손이 이어 부르다가 백제가 망하고 정읍과부안에서 부흥운동 개선가로 사용하다가 당나라로 간 흑치상지 장군이 이 소리를 군악 개선가로 불러 5000군사로 5만 토번군을 격퇴 당나라

  화려한 음악으로 성장하고 “모든 음악은 동쪽(백제)에서 왔다”라고 기록하여 백제 K-POP 은 이시대 한류음악으로 대유행하였다

  전쟁마다 개선가를 지어 가무궁녀출신 측천무후 여황제에서 부터 그 손자 당현종시대 까지 100년간 당나라에서 백제가요 정읍악이 사천성 청해성 실크로드지역에서 개선가 군가로 크게 유행 발전하게 된다

  756년 당현종이 안록산의 난에 패하여 터어키에 구원병 요청하러 그 양귀비 친족과 가무악공 도공 보물 등을 가지고 피난가는 중에 태자(숙종)가 현종황제 왕관를 찬탈하고 점차 악공.보물까지 압수하려고 하자

  당현종은 재빨리 청해성 방위군 백제인 장수 허기장군을 수양아들로 ‘성왕’에 봉하고 신라국으로 친위군과  친족과 악공 보물을  양자강으로 빼돌려 신라국 태산(정읍)에 허궁실과 음성향에 정착시켜 당현종 복위 구원병 양성을 하여 756년에는 신라에서 사신으로 당현종에 지원하자 동방에의지국 성왕으로 봉한다

그러다가 장보고 최치원이 계승하고  당나라가 망하자 당현종 수양아들인 성왕 허기장군의 후손 태산태수 허사문이 친위대장 진현래 후손 진훤과 후백제를 세우자  당현종의 태자 숙종의 후손 왕건이 후고구려로 군장으로  신라에서 대립하게된다

  그때 만들어진 토탬노래. 새소리로 구성 노래가 신라 후백제에서 정읍 율수학당 음악교육으로 사용하였다

후삼국이  왕건의 승리로  후백제 애국가를 폄하시켜  '정읍'이름으로 만들어  고려태조 왕건이 허기장군의 후손 허사문을 사위로 시산부원군 특별 호족으로  삼고 노래를 세습하여 왔다

 고려 현종 때부터 허사문 허씨 후손 허겸 이자겸등 3대 세습 세력이 태산군 속현 정읍현에 음성향을 세우고 악공을 양성하였다

조선시대  세조 연산군 유자광이게승하고  중종 인조왕이 페지 영조 정조왕이  군악으로 사용하여 정읍농악에 새소리 모방리듬으로  남아잇다 

  그 백제가요 정읍사 가요를 유자광이 한글로 번역하여 악학괘범을 만들었고 유자광 친구 정극인이 한글 노래 상춘곡을 짓고 그 제자 이항(일제) 양사언등 시조가 모두 정읍사 소리에 가사를 붙여 불렀다

  로마제국 터어키와 교류하던 허기장군이 데리고온 터어키와 청해성지역 기독교적 신앙이 산신제사 예절격식을 변화하여 기독교 목사 웅변(설교)과 음악으로 기도하는

리스 로마식 찬송가 부르는 정읍곡 노래로 산신제사는 노래로 치료하는 전라도무당굿 노래종교로 시행 판소리가 되었다

 그리고 1909 한일합방 전에 일본의 최고 천재로 옥스퍼드대학출신 이등박문이 한국문화예술(艶麗之聲)에 더욱 욕심을 보이자 악학괘범에 한글로 정읍.동동곡을 기록한 유자광(樂學掛帆발행자)을 순종황제가 무령군으로 복권시켰다

이등박문은 조선군악대장 독일인 에케르트가 20년전 1880년에 일본군악대장으로 음악 개척자이기 때문에 에케르트의 일본인제자 궁성도웅 등이 일본에서 몰려와서 배워가게 하였다

1880년 에케르트는 일본과 1900년 조선의 두나라 애국가를 최초로 작곡했다

백제가요 ‘정읍’곡.으로 이어 배워 서당의 책읽기 소리 조선군가로 애국가 일본가요로 활용되어 그 학당노래가 구 한말부터 초등학교로 이어저서 지금 ‘학교종이 땡땡땡’ ‘아리랑’ ‘안익태 애국가’곡으로 똑같은 새소리 노래로서 이다 “

 

후백제 전통가요 변천사를 토탬 새소리 모창 삼국(삼도)사투리와 비교하여 확실한 고증을 제시하고 토탬소리 사투리 새타령 백제가요 정읍이 정읍농악 연주와 격식이 일치함을 모창 연주등으로 후백제 음악 정통성을 모창 연주하며 해설을 한다

 

1900년에 3박자 찬송가 '삼천리반도 금수강산 '  '동지섯달 긴진밤에'  농부가등등 민요에 가사를 붙여 사용하다가 독립군가 4박자로 편곡한 것이 현재의 신흥학교교가이며  그 곡은 빠른 4박자 농부가이다

에케르트 백우용 김인식 이상준 안기영 홍난파 현재명 이흥렬 박시춘  작곡소리 그리고  우리 민요의 대부분이 이런  6개 악절 토탬음악 공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조선시대는 5행 형식으로 꾀꼬리를 하나로 줄여서  5 토탬소리악절(1비들기, 2꾀꼬리수암,   3닭, 4말,  5까치의  ) 로 구성했다

 백제가요 정읍사 노래를 현대동요로  편곡하면 고향의봄과 유사한 곡이 되어진다

우리민요가 거의 이런 악절로 구성되었다

 우리소리는  동서양의  "궁상각치우"나 "도레미파솔라시" 같은 계명이 아니라 1비들기, 2꾀꼬리수.암,   3닭, 4말,  5까치의  5행원칙의 새소리 모방하는 토탬신앙으로 3000년 이어왔다

소리의 고저보다 소리의 모양을 묘사하여  5천신을 불러내려서  토탬신앙 제사에서 부른 3000년 찬송가   노래다

 백제가요 정읍사 악절 순서가   1비들기, 2꾀꼬리수. 3암,   4닭, 5말,  6까치의  5음법칙으로  또는  이런 6악절로도 만들어진다

아마  고구려 시대는 1비들기 2 수 꾀꼬리  3 암꾀꼬리의 3악절로 부르고 있었다

고구려는 유화 금와 고주몽의 3신으로 1비들기 2 수 꾀꼬리  3 암꾀꼬리이다  

이소리가 전라도 사투리로 되어버렸다

전라도말로  묻는 말은 비들기와 수꾀꼬리소리 그 말에 대답하는 "라우--"소리는 암꾀꼬리 소리이며 한국고유소리 "농현"은 이소리에서 나왔다

그리고 우리나라 만의 고유 농현소리 내는  악기 꽹가리 장구 징은 암 꾀꼬리" 애앵--"하는 소리를 내기 위해 만들어진다 

그래서 그 왕족 귀족의 신성한 소리는  수천년 고관신분의 소리로서  전라도 사투리  "라우--" 로 남아있다

신라는 원래는 말 까치 닭소리였으나 김알지 후손 미추왕의 구테타로 조상신의 계급위치가 바뀌어  1닭, 2말,  3까치의 3악절로  사용하였다

그래서 신라음악은  1닭소리.  2말소리 . 3까치소리로서  구 신라시대 3신으로 소리로 사용하였다

삼신령,또는  "삼신령"이라는 우리의 3신 무속신앙은 불교스님 일연이 삼국유사에서 말하는  환인 환웅 단군이라는 이름이 생기기전에 신앙으로 원시적인 토탬신앙인 셈이다

불교의 신당  대웅전이" 대웅"이란 말이 "큰새집"이라는 뜻이 사찰의 대웅전으로 초기불교의 신화이다

                        

                                         

                                                권희덕 notany35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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