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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봄호 수필세계 신인상 발표
짜임새 있는 구성과 의미화가 뛰어난 작품
- 주인석의 수필 <수의壽衣> 외 4편 -
심사위원
정목일(수필가, 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 회장)
박양근(수필가, 문학평론가, 부경대학교 영문학과 교수)
최원현(수필가. 한국수필작가회 회장)
《수필세계》신인상에 응모된 많은 작품 중 주인석의 <수의> 외 4편을 당선작으로 정하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 무엇보다 많은 습작을 거친 흔적이 역력히 나타나고 있어서 그의 창작 열정을 읽을 수 있었고, 기성 수필가에 못잖은 나름의 창작기법과 문학세계의 틀을 갖춘 듯한 원숙미까지 엿보였다. 또한 글감을 선택하여 주제를 형상화하며 성공적으로 의미화까지 해내는 작품들에서 그의 보통이 넘는 작가적 오감(五感)과 집요하게 파고드는 작가적 근성(정신)을 보았다. 지극히 평범하여 하찮다 할 수도 있을 소재를 값지게 활용하여 의미있게 작품화해 내는 능력은 결코 짧은 기간에 쉽게 이뤄질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주인석은 사물을 바라보는 눈이 예사롭지 않다. 사물을 바라보는 작가적 눈은 크게 두 가지라 할 수 있다. 하나는 객관적이고 비평적으로 바라보는 분석적 눈이고, 하나는 바라보이는 대상에 들어가거나 그를 보듬고 완전히 안아버리는 방법이다. 보는 게 아니라 느끼는 것, 파보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들어가 그의 숨결에 나의 숨결을 맞춤으로서 그가 온전히 느껴지게 하는 것인데 작가는 자기가 잘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접근하면 된다. 그런데 주인석은 이 두 가지를 다 가지고 있으면서 적절하게 활용도 잘하고 있다. 따뜻한 마음도 갖고 있고 예민한 통찰력의 눈도 갖고 있다. 그는 이미 올해 두 곳의 일간신문 신춘문예에서 당선의 전력이 있다. 그런 그가 다시《수필세계》신인상에 응모한 것은《수필세계》라는 좋은 토양의 전문지에서 동료감을 갖고 수필가의 길을 걷고 싶다는 뜻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의 응모작은 <수의> <뜻밖> <찐쌀> <뙤창> <꽃살문> 등 5편인데 제목이 주는 신선감이 내용에 대한 호기심까지 자극했다.
첫째, 주인석의 수필은 제목과 서두에서 성공하고 있다. 독자와의 첫 만남은 제목으로부터이고, 두 번째 만남은 서두의 첫 문장이다. 제목과 첫 문장과의 첫 만남 곧 첫인상 첫 느낌은 그 수필을 더 읽을 것인가 그냥 말 것인가를 결정하는 결정적 동기가 된다.
'<수의> 마음이 서늘해진다, <뜻밖> 내게는 오랫동안 버릇이 든 즐거움이 있다, <찐쌀> 방안이 왁자하다, <뙤창> 오늘은 눈이 황소만한 사람을 봤다, <꽃살문> 꽃이라고 해서 다 물만 먹고 피는 것은 아니다' 등에서 보듯 작가는 수필의 제목 붙이기 그리고 시작과 나아감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알고 있다. 서두에서 독자를 끌어들이지 못하면 내용이 아무리 좋더라도 실패하게 된다. 그만큼 제목과 서두는 수필의 성공을 좌우한다 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주인석은 제목과 서두에서 상당히 성공하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마무리도 아주 산뜻하게 하고 있다. <수의>의 경우 방충망에 끼어 우화하지 못한 채 죽어간 매미와 잘 해보겠다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음으로 가버린 형부에게 미색 수의가 입혀지는 걸 대비하면서
"환자복을 벗기자 바짝 마른 형부 몸이 보였다. 생의 옷을 벗고 뽀얀 날개를 단 형부는 금방이라도 날아갈 것처럼 보였다. 끼여서 바스라질 것 같은 매미를 빼내 나무 사이로 날려 보낸다. 그리고 방충망을 씻는다. 여름내 입었던 먼지 옷을 벗기자 건너편 바람이 기다렸다는 듯 들어와 안긴다. 옷은 잘 벗으면 이렇게 시원하고 가볍다" 라고 마무리한다.
둘째, 주인석은 잊혀졌거나 묻혀있어 죽은 것 같은 우리말을 되살려 내어 문학이란 이름으로 생명을 불어넣고 있다. 뜻밖, 뙤창, 꽃살문 등 수필 제목을 입속으로만 되뇌어봐도 우리 것 냄새가 솔솔 풍겨나고 잊혀진 것들이 소롯이 생각나게 한다. 그것은 작가가 꾸준하게 자연스럽고 풍부한 어휘 구사력을 위해 공부하고 있다는 증거이고 거기서 더 나아가 토속적인 우리말로 전통적 서정미를 복원해 보려는 아름다운 시도로 보여진다.
지금 젊은이들은 모르겠지만 나이가 오십 정도 된 사람이면 거의 뙤창의 기억들을 갖고 있을 것이다. ‘뙤창’은 바깥세상과 연결되는 안테나 같은 거였다. 그래서 뙤창 속에는 사계절이 살아 있었고, 그것은 그리움과 반가움, 믿음과 사랑도 알게 해 주었다.
꽃살문은 "백년 넘은 소나무가 3년간 바람의 고행을 참아내고 일 년 넘게 살을 에는 아픔을 참아 꽃과 잎이 되어 색을 입고 문틀을 꿰차고 앉은것"이란다. 그러니‘인고의 세월이 피워낸 꽃’이고, 그래서 ‘꽃살이 문틀을 저리도 꽉 잡고 있는 이유’였는데‘괴로움이나 번뇌는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참아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셋째, 주인석 수필의 관찰력과 묘사다. 일상적 평이한 소재인데도 이야기가 있는 수필로 꾸며내는 친화력에다 세심한 관찰력과 그것의 묘사가 좋은 수필이게 하고 있다. <뜻밖>의 경우 계절이 바뀌어 옷도 바꿔 입고 나가게 된 날 그 옷 주머니에 손을 넣었을 때 잡히던 것의 기쁨과 즐거움에서 시작한다. 그것은 내가 넣어두고도 까맣게 잊어버렸던 것들이다. 그런데 다시 입게 된 그 옷의 주머니에 손을 넣으니 손에 잡히는 것이 있다. 영수증이나 보아버린 영화표가 아닌 지폐에서 얻는 뜻밖의 황재감은 비단 이 작가만이 겪은 것은 아닐 것이다. 작가는 그걸 우연인 것 같으나 사실은 만들어 저축해 둔 기쁨의 씨앗들이라 한다.
그런가 하면 "찐쌀은 사람을 닮은 구석이 있다"고 하며 찐쌀의 생성, 맛, 먹는 법, 기호도 등을 사람과 비교해 세심하게 관찰하여 묘사하고 있다. 입안에 재갈을 물리는 방법으로의 찐쌀 발상도 흥미롭다.
넷째, 주제의 의미화에도 성공하고 있다. 의미화는 문학적 품격을 이루는 근간으로 사물이나 사건을 해석하는 힘이다. 곧 독자는 작가가 만들어 놓은 형상화를 통해 동감 또는 감동하는 동기가 되는데 여기서 독자는 읽을 맛, 읽는 맛을 느끼게 된다.‘옷을 잘 벗으면 이렇게 시원하고 가볍다’(수의)‘때론 한 마디가 백 마디보다 더 통쾌할 때가 있다’(찐쌀)‘동전만한 유리로 눈이 가는 나는 이 시대를 거스르지 못하는 마음의 소경’(뙤창) 등의 의미화에 독자도 작가의 마음이 되어 자기의 이야기로 읽게 된다.
이처럼 주인석의 수필들은 다섯 편 모두 일정한 수준의 수필들로 완성도가 느껴진다. 이만한 능력과 열정이라면 더욱 좋은 수필을 쓸 것으로 기대된다. 누구나가 아닌 나만이 쓸 수 있는 수필들도 계발해 내서 수필의 영역을 확대해 주기 바란다. 신인에게서 보고 싶은 것은 잠재력이다. 지금 작품도 좋지만 이 작품보다 더 좋은 작품을 얼마나 쓸 수 있을까도 중요하게 작용한다. 이제 비로소 시작이다. 끊임없는 자기진단과 향상을 위해 계속적인 공부가 필요하다. 또한 신인다운 겸손과 패기도중요하다. 수필은 특히 쓰는 사람의 인격과 품격이 적나라하게 나타나는 글이다. 모쪼록 기대치를 능가하는 훌륭한 수필가로 크게 빛나기 바란다. 신인상 당선을 큰 박수로 축하하며 좋은 수필가가 수필문단의 가족이 된 것을 환영한다. (심사평 : 최원현)
당선소감
나의 사랑 아니무스 /주인석
1.
중년에 눈을 떴어요. 사십 년간 내 곁에 머물렀던 그를 이제 알았지요. 나는 그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한 채 미숙한 나로 살아왔던 게지요. 그저 짜증 잘 내고 따지며 삐치는 평범한 여자로만 살아왔어요.
나의 사랑 아니무스, 내 무의식 속에 깊숙이 숨어 있는 남성성 이름이랍니다. 사람들은 외부로부터 자신의 억압된 남성성과 여성성을 발견하게 되면 사랑에 빠진다고 합니다. 왈가닥이라는 소리를 자주 들었던 나는 침착하면서 조리 있게 할 말 다 하는 그를 흠모하게 되었지요.
현재의 나는 급하고 흥분 잘하고 직설적이라면 나와 사뭇 다른 그는 냉철했고 이지적이면서도 감성적이었어요. 내가 그를 알기 전에는 내 미숙함을 다른 사람에게 여과 없이 투사하여 잘잘못을 지탄하며 살아왔지요.
내가 그를 알면 알수록 헤어날 수 없는 사랑에 빠졌지요. 내 사생활의 부끄럽고 힘든 부분을 털어 놓게 되었어요. 그런데 어인 일일까요. 나를 끌어당기는 내 속의 아니무스, 다가가면 갈수록 멀어지는 것 같았어요. 나는 그를 쫒아 날마다 허우적거립니다.
흥분하지 않고 나를 가장 나답게 표현하는 그는 또 다른 나랍니다. 그래서 평생 헤어지지 못할 내 동반자고 옆지기지요. 내 덜렁거림과 어설픔을 덮어주고 다독여줄 이가 그대 밖에 없음을 알았어요. 내 삶이 버거울 때 그대를 붙잡고 밤새도록 고민하며 울기도 하고 실성한 사람처럼 웃기도 하지요. 아, 나의 사랑 나의 아니무스.
2.
나는 나들이를 좋아합니다. 거리에 상관없는 여행이지요. 계획 없이 즉흥적일 때가 더 많지요. 큰 길이나 잘 닦여진 길보다 비포장도로를 더 좋아해요. 그냥 자동차 바퀴가 가는 데로 액셀러레이터를 밟지요. 그러다 눈길이 가는 곳이 있으면 멈추지요.
그곳에 사람이 있으면 붙잡고 늘어져요. 이것저것 귀찮을 정도로 물어봅니다. 사물이 있으면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내 마음에 아, 소리가 날 때까지 들여다보지요. 큰 것보다 작은 것, 예쁜 것 보다 못난 것, 잘 보이는 것보다 안 보이는 것에 더 신경을 쓰지요.
그리고 빠지지 않는 것이 사진이지요. 사진으로 담아온 것들을 집에 와서 눈이 빠지게 관찰합니다. 그러면서 사진속의 그것들과 끊임없는 대화를 해요. 이 과정에서 글감의 뼈를 추려내지요.
그리고 컴퓨터 앞에 앉습니다. 살을 붙이는 과정에서 수많은 감정의 교차가 일어나지요. 글로 쓰는 작업이 아니었다면 내 입에서 어떤 말들이 쏟아져 나갔을지 생각만 해도 아찔할 때가 많아요. 내 마음속에 있는 듬직한 아니무스가 이때 단단히 한 몫을 하죠. 누르고 다지고 걸러내면서 한 편의 글이 되는 거죠. 그러나 내 글에서는 아직 완전히 익지 못한 부분이 많아요. 아마도 아니무스가 내 고집을 꺾지 못하고 나자빠졌을 때 그럴 거예요. 내 속의 아니무스는 평생 나에게 거리를 두고 한 발씩 물러 날 것 같아요. 아니면 내가 교만해 질지 모른다는 걸 아니무스가 잘 알 테니까요.
3.
수필이 주변 문학이라는 소리가 참 듣기 싫어요. 그건 수필을 속속들이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소리가 아닐까 싶어요. 수필을 쓰면서 소설보다 더 웃음이 나고 더 눈물이 날 때가 있고 시보다 더 깊은 의미가 가슴 속에 파고 들 때가 있어요. 수필은 길고 긴 글을 다 읽어야 전해지는 감동도 아니고 너도 모르고 나도 모르는 짧은 글 속에서 깊이를 찾는 것도 아니어요. 건드리기만 해도 잘 익은 삶이 뚝뚝 떨어지고 스치기만 해도 사람마다의 색이 묻어나고 한 입 깨물면 향이 먼저 코를 파고드는 글이 수필이죠.
내 삶을 오롯이 반영할 수 있는 자전수필을 쓰고 싶어요. 어린 시절이 기억에 가물가물해요. 그래서 부모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 보고 싶어요. 내게 살점 떼어주신 그들이 없으면 내가 기억 못하는 내 존재는 완전히 암흑으로 묻혀 버릴지 모르니까요. 이와 병행해서 내 아이들의 기억도 찾아 주고 싶어요. 육아수필이라고 우선 못 박아 둡니다.
수필은 나를 가장 나답게 하는 것, 나의 핵이라 생각해요. 이것이 타 장르보다 나를 더 매혹되게 하는 부분이죠. 이 세상에 나라는 점을 하나 찍고 간다는 것 그것이 수필이라 생각해요. 그래서 나를 해부하는 글을 먼저 써보고 싶어요.
산꼭대기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며 야호 소리를 지를 때 항상 다리가 후들거렸어요. 올라갈 때보다 훨씬 더 무서웠어요. 지금이 딱 그런 기분이에요. 앞으로 수년간 부지런히 수필 쓰기만 해야 할 것 같아요.
모자람 투성이지만 늘 어여삐 보아주시고 지도해주신 교수님께 감사드려요. 글을 쓰면서 떠오르는 고마운 분들, 다 밝힐 수 없는 것은 속 좁은 지면 때문이어요. 종이에게 잘못을 다 덮어씌우며 ‘감사합니다’라는 바짝 마른 한마디로 갈무리합니다.
당선자 : 주인석 (울산광역시 북구 천곡동)
2009 대구매일신문 신춘문예 수필 당선-작품 ‘왈바리’
2009 제주 영주일보 신춘문예 수필 당선 -작품 ‘맷돌’
2008 김유정문학관 수필공모 대상 수상-작품 ‘낀’
동리목월문학관 문예대학 수필창작반 수료
수필세계 신인상 당선작
수의 외4편
주인석
마음이 서늘해 온다. 여름내 묵혔던 방충망을 뜯어내다가 기겁을 하고 말았다. 매미유충 한 마리가 탈피를 하다 자신의 갑옷에 끼인 채 활처럼 몸을 젖히고 바싹하게 말라 죽어 있다. 때론 목숨이 다한 것을 보는 것보다 오히려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에 함께 있는 것이 더 나을 때가 있다.
꼬리를 빼지 못한 매미유충의 마지막 두려움과 괴로움이 감지 못한 눈에 선명하다. 옥색 날개를 펴는 꿈을 꾸며 정신은 하나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갔을 것이다. 탈피를 간원한 휘어진 몸, 무엇이 끝까지 놓아주지 않았을까. 불완전한 삶을 완전하게 승화시키려했던 마지막 발버둥이 박제 되어 있다.
문득 십년 전에 본 몸부림이 떠오르면서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생의 마지막을 보는 것은 엄숙하거나 아니면 괴롭다. 마무리가 잘 된 호상일 때가 그러하고 사연 많은 단명일 때가 그렇다.
형부는 사십대의 절반을 채우고는 매미유충 같은 삶을 마감했다. 표면상으로 언니보다 우리가 훨씬 애석하게 여겼던 죽음이었으니 당사자가 아니면 그 연유야 알뜰히 알 수가 없다. 내가 형부를 처음 만날 땐 기저귀를 차고 있었다하니 나에게 있어 형부는 숲 같은 아버지였다.
친정 장롱 안에는 아직도 형부 옷이 있다. 농사일을 거들어 줄 때 입던 아버지의 옷이다. 강산이 바뀐 지금도 그 옷에서 형부를 기억한다. 채 빠져 나가지 않은 형부 냄새와 그리움 때문에 눈보다 가슴이 먼저 소매를 적신다.
형부를 생각하면 매미같이 까만 눈이 떠오른다. 언니와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너무나 미남이었던 형부는 머리도 좋았다. 그래서 그런지 형부는 결혼한 이듬해부터 이 세상 떠나는 날까지 언니 속을 무던히도 태웠다.
언니와 다르게 우리에겐 항상 인기가 좋은 형부였다. 얼굴만 잘생긴 게 아니라 싹싹한 말솜씨와 통솔력으로 맏사위답게 일처리도 그만이었다. 그런 성격 때문에 무뚝뚝한 언니와는 충돌이 많았지만 밖에서는 늘 인기최고였다. 형부는 집보다는 밖에 있는 시간이 더 많았다. 매미가 숲의 걸그림을 이탈하여 방충망에 앉아 있듯이.
수풀에 있어야 할 유충이 왜 아파트 베란다로 올라와 옷 벗기를 시도했을까. 유리에 붙은 스텐실 나비날개에 유혹을 당했나. 맴맴 잔소리 많은 집을 떠나 조용히 살고 싶었나. 현란한 환경에 사람이 흔들리듯 곤충도 사람 같은 구석이 있나보다.
불완전변태를 하는 매미는 유충 속에 날개가 있다. 그것은 우리 육안으로도 보인다. 그런 사실을 매미 자신은 모를 것이다. 나쁜 소문이 무성히 돌아도 몰랐던 형부처럼.
눈으로 보이는 것을 그것이라고 말하면 안 될 때가 있다. 유충 속에 날개로 보이는 것도 탈피가 되기 전까지는 날개라고 말 할 수 없다. 가끔 주변 사람들이 잘 알지도 못하는 가운데 언니 마음에 더 불을 지르는 경우도 있었다. 형부도 모르는 일을 주변 사람들이 언니나 우리에게 왜곡된 해석으로 전해 줄때가 있었다. 그럴 때마다 언니는 속상해 죽는다고 난리고 형부는 속 터져 죽겠다고 야단이다. 안 보이는 것이 원인이 되었는데 결과는 보이는 것이 되어 버렸다. 둘 다 죽는다고 할 때는 주변사람들이 오히려 원망스러웠다.
매미의 변태는 밤사이 몰래 이루어진다. 누가 보면 안 되는 사연이라도 있었을까. 역사는 밤에 이루어진다는 속설의 말처럼 매미에게도 은밀한 장소와 여자의 등장이 필요했던 걸까. 완전변태를 하는 곤충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우화를 한다. 그것은 아마도 성숙된 번데기 과정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한동안 먹지도 않고 두문불출해야 하는 번데기 과정은 답답할 것이다. 그래서 매미는 꾸물거리더라도 움직이는 애벌레 과정을 더 오래 거쳐서 등을 가르는 비상을 선택했나 보다. 껍질이 찢기는 아픔을 감내하면서까지.
형부가 언니에게 용서 받지 못했던 것도 매미의 속성을 일부 닮았기 때문이다. 밤을 낮 삼아 활동했던 것, 집에 있기보다는 장거리 여행을 좋아했고 게다가 잔꾀까지 부렸으니 매미라 할 만하다. 싸움도 하니 늘고 잔머리도 쓸수록 단이 높아지더라는 말은 형부의 능청스런 성격을 대변한다.
매미유충은 긴 세월 동안 땅속에서 열 번이 넘는 허물벗기를 하고 땅 위에서 마지막 한 번의 우화로 매미가 되는 것이다. 등이 갈라지고 머리와 가슴이 나오는 그 순간은 참으로 경이롭다. 그러다 한참을 쉰 후 마지막 꼬리를 뺀다. 그동안 자신의 삶을 가렸던 껍질을 잡고 한참 동안 회상에 잠기다가 날개를 추스르고 깊은 밤 속으로 파르스름한 줄을 긋는다.
형부는 죽기 전까지 꽤 많은 허물벗기를 했다. 그것이 임기응변이고 구렁이 담 넘듯 하여 언니에게 더 많은 고통을 줬다할지라도 형부 나름대로 가정을 지키기 위한 방편이었을 것이다.
불혹에 접어든 형부는 굼벵이 같은 생활에 손을 떼고 언니 곁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형부 몸은 이미 당뇨로 손을 쓸 수 없는 지경이었다. 언니에게 마지막으로 잘 해 보겠다던 형부는 뜻을 이루지 못하고 마지막 우화를 눈앞에 두고 돌아가셨다. 우화에 성공한 매미가 까만 밤에 파란 포물선을 그리고 하늘로 날았다면 형부는 파란 바다에 하얀 파도를 잠깐 일으키다 끝내 수평선을 그리고 바다와 맞닿은 하늘로 스며들었다.
형부는 임종을 앞두고 출입문을 향해 조금만 기다려 달라는 말을 반복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공간을 향한 눈빛이 참으로 애절했다. 형부는 미안하다고 몇 번이고 말했지만 언니는 눈을 감아버렸다. 그것이 용서를 의미하는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삶은 겪는 자의 몫이라는 말이 딱 맞는 모양이다.
흐르는 눈물이 연애라면 마른 눈물은 결혼인 모양이다. 언니는 눈물도 말라있었다. 형부는 생의 부끄러운 옷을 벗고 가려고 안간 힘을 쓰다 자신의 옷에 끼여 우화되지 못한 매미였을지 모른다.
통증 때문이었는지 형부 몸은 구부정하게 보였다. 멈춰버린 형부 가슴에 미색수의가 얹혀있다. 수의는 형부에게 줄 수 있는 마지막 언니 마음이었던 것이다. 환자복을 벗기자 바짝 마른 형부 몸이 보였다. 생의 옷을 벗고 뽀얀 날개를 단 형부는 금방이라도 날아갈 것처럼 보였다.
끼여서 바스라질 것 같은 매미를 빼내 나무 사이로 날려 보낸다. 그리고 방충망을 씻는다. 여름내 입었던 먼지 옷을 벗기자 건너편 바람이 기다렸다는 듯 들어와 안긴다. 옷은 잘 벗으면 이렇게 시원하고 가볍다.
뜻밖
내게는 오랫동안 버릇이 든 즐거움이 있다. 계절이 바뀌거나 외출할 때 겉옷을 바꿔 입으며 느끼는 행복이 그것이다. 옷매무새를 잡으며 주머니에 손을 넣었을 때 뭔가 잡히는 것이 있으면 기쁘고 그렇지 않으면 허전하다.
주머니에 무엇이 있다면 끄집어내기 전 그것을 상상해 본다. 가끔 지폐가 아니고 영수증이거나 영화표일 때도 있다. 그럴 땐 약간의 실망을 한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주머니에 종이돈을 일부러 넣어 두기도 한다. 한참 잊어버리고 있다가 외투를 바꿔 입는 날의 즐거움을 위해서다.
옷을 갈아입을 때 주머니가 주는 기쁨처럼 우리 삶에도 생각지 않은 감사함이 찾아올 때가 있다. 그것은 우연인 것 같지만 찬찬히 돌이켜 생각해보면 주머니에 고의로 돈을 넣어두듯 어떤 계기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아주 우연이라는 것은 없을지도 모른다. 내가 시아버지의 며느리가 된 것도 억겁의 세월 속에 그리 될 수밖에 없는 무언가가 있었을 것이다.
새로 나온 의료보험증엔 아버님 이름자만 빠졌다. 여섯이었다가 다섯 식구가 된 보험증이 일곱 살 적 앞니 빼고 났을 때의 흔적만큼이나 서운하다. 아버님은 그렇게 우리에게서 조금씩 잊혀져가고 있었다.
그럴 즈음 우편물이 왔다. 보험료 환급금을 찾아가라는 내용이었다. 아버님이 돌아가신 지 삼 개월이 지났지만 나는 아버님이 살아계신 것만 같은 착각이 들었다. 우편물의 이름자를 보니 아버님이 오신 것처럼 반가웠다. 아버님 얼굴이 우편물 위로 겹쳐 보였다.
아버님이 끝까지 나를 챙겨주시는구나 생각하니 코끝이 찡해왔다. 평소처럼 아버님은 하늘에서도 내게 용돈을 보내셨다. 이것이 마지막 용돈일 것이다. 주머니에 있는 돈을 박박 긁어내신 듯 잔돈까지 보내셨다. 36240원. 끝자리 숫자를 다 읽기도 전에 글자가 퍼져 보였다. 내가 처음 아버님께 용돈을 받았을 때처럼.
어머니가 전형적인 시어머니라면 아버님은 친정아버지 같았다. 철없는 나이에 시집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헤매는 송아지에게 부빌 수 있는 유일한 언덕이었던 아버님이다. 야물지 못한 내가 하는 일마다 엉성해서 어머니 눈에 차지 않아 꾸중을 들을 때 아버님은 나를 싹싹하고 귀엽다는 말로 위로하셨다.
효자와 사는 여자가 안아야하는 고통은 말로만 전달하기에는 언제나 부족하다. 효자는 중간역할을 잘 해야 본전이고 아니면 말썽이 생긴다. 문제가 생기기 시작하면 시어머니나 며느리 중 한 사람이 큰 아픔을 겪어야 한다. 우리의 관습상 보통 며느리가 약자가 되는 경우가 많다.
남편도 삼등 효자는 된다. 그러다보니 내게 살갑게 하기 보다는 어머니 편에 섰던 경우가 많다. 우리끼리 한 약속도 어머니 앞에 가면 흔적 없이 사라지고 어머니 말씀이 법이 되었다.
시댁에서 나는 늘 외로운 섬이었다. 부엌바닥이 내 자리였다. 먹을 것이나 해다 나르고 잡다한 심부름이나 하는 것이 내가 할 일이었다. 어쩌다 잘못된 일이 발견되어 호되게 야단을 맞아도 남편은 단 한 번도 내 편이 되어 준 적이 없었다. 어떨 땐 남보다 못하다는 생각이 든 적도 있었다.
모유로 두 아이를 키웠던 내가 방에 들어갔다 나오면 방에 들락거리느라 언제 일하냐고 타박이시고, 우는 아이 달래느라 아이를 업고 일하면 동작 느려 일 적게 한다고 나무라셨던 어머니였다. 그럴 때도 남편은 묵묵부답으로 남의 일 보듯 했다. 어떨 땐 일부러 어머니 편을 더 드는가 싶기도 했다.
눈물 글썽글썽한 눈으로 궁지에 몰려 있으면 아버님은 나를 뒤란으로 부르셨다. 잠시 동안이라도 위기를 모면하게 해 주시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우는 아이 사탕으로 달래듯 아버님은 내 손에 꼬깃꼬깃 접은 돈을 쥐어 주셨다.
“이눔아야, 월급쟁이 힘들제? 이거 가져가거라.”
용돈보다 더 따뜻한 아버님의 말씀에 쌓였던 서러움이 가슴을 타고 내렸다.
아버님과 나의 지중한 인연은 무뚝뚝한 남편과 까다로운 어머니 사이에서 만들어졌을지 모른다. 어머니의 야단이 심할수록 아버님은 내게 더 다정하셨고 남편이 무신경할수록 애살스럽게 해 주셨다.
아버님이 조금씩 챙겨주시던 용돈은 금액에 상관없이 내겐 항상 뜻밖의 선물이었다. 나를 가엾이 여기는 아버님을 완전히 내편으로 만들기 위해 아버님 앞에서 나는 눈물도 자주 보이고 조금 아파도 많이 아픈 척했다. 그래서 아버님 마음엔 내가 여리고 딱한 며느리로 인식되었을 것이다.
아버님은 일 년 가까이 병원에 계셨다. 아버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나뭇가지 같은 손 하나는 링거 호스로 마지막 이승과 묶여 있었다. 나머지 손으로 내 손을 잡으셨다. 너무 세게 잡아 뼈마디가 느껴질 정도였다. 나를 꼭 보고 떠나고 싶었는데 보고 나니 속이 후련하다 하시며 잘 살라고 당부를 거듭하셨다. 다 퍼주시고도 모자라 하시던 아버님의 일생처럼 마지막 당신의 몸을 맡긴 일인용 침대의 절반도 차지하지 못하고 아버님은 떠나셨다.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의료보험증이 새로 나왔다. 어머니와 우리 네 식구만 남은 보험증에서 마지막 아버님을 기억하며 허전함을 가슴으로 삼켰다. 그리고 아버님을 잊고 살았다. 마치 주머니에 넣어둔 돈을 잊어버리듯이.
생각지도 못한 우편물 때문에 아버님을 향한 그리움이 사정없이 일었다. 마음속으로 아버님을 불러보았다. 시댁이라는 새로운 가정에서 쓰러지지 않게 해 주신 아버님의 마음은 내 인생에 너무나 큰 기둥이었다. 아버님은 하늘에 가셔서까지 마지막 주머니를 털었나보다. 잔돈까지 긁어서 내게 보내신걸 보면.
“이눔아야, 이것 밖에 없어 미안테이.”
분명 이렇게 말씀 하셨을 것이다. 우편물을 잡고 눈을 감는다. 하늘에 계신 아버님의 얼굴을 그려본다. 지금쯤 야윈 얼굴이 회복 되셨을까. 희미한 윤곽에서 내가 느끼는 것은 아버님의 온화한 얼굴이다. 욕심을 좀 더 낸다면 오늘처럼 예상치 않은 일로 아버님을 한 번씩 떠 올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누군가에게 기둥이 되고 뜻밖의 선물이 되는 사람은 잴 수 없는 가슴이 비좁을 정도로 사랑이 넘친다. 가슴보다 머리의 숫자에 더 민감한 나는 언제쯤 누군가의 뜻밖이 될 수 있을까.
찐쌀
방 안이 왁자하다. 오빠와 약속이 있는 날은 이틀 전부터 인삼 끌어안은 닭을 최소한 두 마리는 먹고 가야한다. 목소리야 알토보다 소프라노가 높으니 그나마 안심이고, 펜대만 굴린 오빠 팔뚝과 십오 년 경력의 아줌마 팔뚝이 맞짱 뜨는 것은 해볼 만한 일이다. 그런데 도저히 안 되는 하나, 그건 약으로도 어렵다. 안 그래도 비실비실한 나는 오빠를 만나고 나면 계룡산신이든 도봉산신든 만나야 할 판이다.
“이번에 말이야, 경쟁이 너무나 치열했는데도 떡하니 붙었지.”
신은 공평하다 믿으며 살았는데 가끔 의심이 갈 때가 있다. 막내로 태어난 나는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위로 다섯 명이 엄마 뱃속에서 좋은 유전인자를 다 골라가고 난 뒤 꼴찌로 들어갔으니 나는 고르고 말고 할 것도 없었다.
“야야, 기분은 참 좋지마는 그래도 자식자랑은 표시 안 나게 해야지러.”
나를 의식한 엄마의 눈짓 섞인 말이라는 걸 알지만 좀 낫다. 그래도 오빠의 천재양육 후기가 수그러들 줄 모른다. 그게 꼭 양육으로만 된단 말인가. 엄마 뱃속에 일등으로 들어가 좋은 유전자를 먼저 빼내간 유리한 조건 때문일 수도 있지. 예전 같았으면 엄마가 말하기 전에 벌써 유전자론 강의에 거품을 물었을 것이다.
나는 최근에 말 안 하는 수행에 들어갔다. 말을 하고 나면 안 한 것보다 못한 때가 더러 있다. 그래서 무작정 입을 다물고 있어도 보고, 이불을 쓰고 자는 척도 해보고 못 들은 척도 해본다. 간질간질한 입이 수행을 못 이겨 낼 때는 입 안 가득 재갈을 문다. 그것은 다름 아닌 찐쌀이다. 오늘도 찐쌀이 내 입을 단단히 묶고 있다.
해마다 친정집 찐쌀은 내가 제일 많이 가져온다. 가을걷이 전에 덜 여문 풋벼를 베다가 쇠죽솥에 푹 찐다. 김이 술술 오른 벼를 소죽바가지로 퍼내 멍석 위에 주르르 붓고는 골고루 펴, 알이 쭈글쭈글해 질 때까지 바짝 말린다. 그 다음 정미기나 절구에 넣고 빻아 껍질을 벗겨 내는데, 덜 익은 벼가 많으면 싸라기가 되고 익은 벼를 쪘을 경우 양질의 찐쌀이 된다.
찐쌀은 사람을 닮은 구석이 있다. 덜 여문 벼에 자극을 많이 주면 싸라기가 되듯이 인격이 덜 갖추어진 상태에서 승승장구를 하여 칭찬을 자주 받으면 사람이 자잘해 지는 것이다. 싸라기는 입에서 몇 번 씹지 않아도 술술 넘어가 버린다. 그래서 찐쌀보다 맛이 덜하다.
찐쌀은 볼이 터지도록 입에 넣고 오래 불리면 녹녹해지고 구수한 맛이 난다. 천천히 불려가면서 꼭꼭 씹어 삼키면 뒷맛의 여운이 좋다. 지긋이 음미하는 사람은 구수한 찐쌀의 제 맛을 느낄 수 있지만 성급한 사람은 아무리 먹어도 알 수 없는 맛이다.
그래서 찐쌀은 어린아이보다는 나이든 어른의 간식이다. 아이들에게 찐쌀을 간식이라고 주면 몇 알을 입에 넣어 씹다가 이내 삼켜 버리고는 아무 맛도 없는 이걸 왜 먹느냐고 한다. 새우깡 먹듯이 조금씩 넣어 씹는 둥 마는 둥 금방 삼키는데 무슨 맛이 날까. 한 입 가득 넣고 퉁퉁 불리는 인내가 필요한 맛이다. 아이들은 이런 참는 과정이 어른보다 약하다. 그저 빨리 씹어 삼킬 수 있고 혀끝에서 달콤한 것이라야 좋은 간식이라고 한다.
찐쌀의 참맛을 알려면 소가 여물을 되새김질 하듯이 해야 한다. 우리들이 하는 말도 이와 같다. 소가 되씹듯이 우리말도 입에서 나오기 전에 꼭꼭 되새김질되어야 할 것이다. 찐쌀을 오래 씹으면 씹을수록 구수한 맛이 나듯 오래 생각한 말일수록 좋은 말이다. 그것이 어렵다면 차라리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
대답을 하지 않으면 씹는다고 한다. 어떤 말에 대해서 대답할 때는 마음속으로 깊이 생각해 보고 입을 열기까지 시간이 걸린다. 말을 잘근잘근 씹고 있는 중이니 대답 할 수가 없는 것은 당연하다. 무엇을 씹으면서 말하기는 곤란하다. 어법에 맞지 않는 것 같으면서도 생각해보면 일리가 있는 말이다.
귀에 거슬리는 말을 듣고 가만히 참는다는 것은 부처가 되는 고행만큼 어렵다. 어떤 말을 들으면 나는 잠시 동안만 생각한다. 아이들이 찐쌀 몇 알을 입에 넣고 씹는 그 정도의 시간만큼. 그런 다음 이치에 맞지 않으면 하나씩 파헤친다. 남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말도 많이 했을 것이다. 그것이 악의는 없다 할지라도.
그래서 우선 말 안 하는 버릇부터 들여 보자 싶었다. 내 몸에 달린 것임에도 불구하고 달싹거리는 입을 다스리기가 참 어렵다. 막을 틈도 없이 벌써 저만치 나가 있으니 말이다. 막내처럼 앞서는 말을 의젓한 맏이 같이 다스려보자는 생각이었다.
아까부터 한 입 가득 넣은 찐쌀 덕분에 말없음의 수행이 잘 이루어지고 있다. 찐쌀 가득 문 입은 오히려 웃는 표정이고 볼록한 볼은 나를 더 복스럽게 만들었고 말 한마디 않고 있으니 착한 동생으로 보일 것이다. 오빠는 내 찐쌀 수행의 깊은 뜻을 알지 못하고 우리 동생, 불혹되더니 인간 다 되었구나싶은 눈이다. 바소쿠리 같은 입이 귀에 걸려 있다.
엄마는 오빠의 걸린 입을 걷어 내리듯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한다. 자식이 부모 바람처럼 되던가. 그래도 때로는 자식자랑이 하고 싶어 못 견딜 때도 있단다. 그럴 때마다 꾹꾹 씹어 삼킨다고 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면 남들이 먼저 알고 축하를 해 주러 오더란다. 그렇지만 자식은 자랑 할 일보다 덮어 줘야 할 일이 더 많더란다.
오빠와 엄마 이야기를 듣다보니 찐쌀이 불어 구수하다. 입속 가득한 말들도 퉁퉁 불어 목구멍으로 다 넘어갔다. 때론 한마디가 백 마디 보다 더 통쾌 할 때가 있다. 엄마 말에 오빠가 조용해졌다. 올해 찐쌀 맛은 특별히 더 고소했다.
뙤창
오늘은 눈이 황소만 한 사람을 봤다. 어제는 어떤 남자가 주먹코를 들이대는 바람에 동굴 같은 구멍 속 코털까지 보고 말았다. 계속 이러다가 내일은 하마 같은 입을 만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십 년째 쓰던 홈오토메이션이 한 번씩 말썽을 부리더니 며칠 전부터 아예 먹통이다. 밖에서 누군가 현관문을 두들기면 아이들이 뛰어나가 바로 문을 열어 버리는 바람에 잡상인이 들어와 애를 먹은 적도 있다. 함부로 문을 열어 줬다가 나쁜 사람이면 어쩔 거냐고 문을 열기 전에 반드시 누군지 확인하라고 아이들에게 이르고 나니 씁쓸한 마음이 든다.
현관문에 달린 도어 뷰(DOOR VIEW)로 밖을 내다보니 왜곡된 모습이 눈에 보여 마음이 그다지 좋지가 않다. 온화하게 생긴 남편도 심술궂게 보이는가 하면 미남 아들도 비율이 안 맞는 추남으로 보이고, 예쁜 딸도 너무 못생긴 모습으로 나타난다.
문을 열고 보면 정상인데 구멍으로 보이는 모습은 의심하는 마음처럼 휘어져 보이거나 한 부분이 확대되어 다가온다. 유리가 꾀를 쓰는 것 같아 얄밉다. 시대를 반영이라도 하듯 물건까지 영악한가 싶은 생각이 들자 민민한 마음이 앞선다.
홀연 기억 속에 감추어진 뙤창이 떠오른다. 지금은 박물관에나 가야 볼 수 있겠지만 친정의 허리 굽은 사랑채 세살문에 뙤창은 손때 묻은 안경으로 남아 있다. 그 작은 창으로 커다란 세상을 배웠던 유년이 그리워진다.
시골에서 사립문의 역할이야 그저 마당과 길의 경계일 뿐 누구나 열고 안으로 들어올 수 있다. 은밀히 말하면 세살문이 안팎을 나눈다. 세살문은 문틀에 가로와 세로로 살을 대어 창호지를 바르는데, 세로 살은 같은 간격으로 심고 가로 살은 상중하로 나뉜다. 가로와 세로로 만난 문살은 정확히 정사각형이다. 세살문 중간 부분에 만들어진 정사각형 네 칸은 창호지를 뜯어내고 유리를 붙이는데, 이것이 안에서 밖을 내다보는 뙤창이다.
세살문의 뙤창 속에는 사계절이 산다. 손바닥만한 유리지만 그 품이 얼마나 큰지 사시사철을 담아 그린다.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봄 뜰의 개나리와 골목길을 수놓는 뽀얀 벚꽃, 앞산의 분홍 진달래가 발그레 번지면 뙤창은 수채화가 된다. 파스텔 색에 눈이 호사를 누릴 즈음 뙤창은 뜨거운 햇볕 아래 초록으로 덧칠된 감나무를 한 폭 유화로 그려낸다. 탈곡기 돌아가는 소리, 콩 튀는 소리에 누웠던 빗자루도 일어서면 뙤창은 콜라주로 매달렸던 가을을 똑똑 따낸다. 마른 가지 텅 빈 겨울 마당의 여백을 수묵화로 그리는 뙤창은 계절의 캔버스고 화선지다.
홈오토메이션이 없었던 그 시절에 뙤창 밖을 내다보고 누가 오는지 확인하여 엄마께 말하는 것은 내 담당이었다. 마당에 발자국 소리가 들리면 얼른 뙤창에 두 눈을 갖다 붙인다. 시골이라 찾아올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으니 늘 그 사람이 그 사람이었다.
우편집배원이 마당에 바퀴로 둥근 원을 그리며 벨소리로 점을 찍는 날은 도시로 간 큰 언니 향내를 황토색 가방에 담아왔다. 왈칵 문을 열어 소포를 받아 안고 코를 킁킁거린다. 그 반가운 냄새는 세월이 흘러도 잊혀지지 않는다. 뙤창으로만 전해지는 반가움이고 그리움이다.
오일장이 열리는 날이면, 장에 간 엄마가 돌아오나 싶어 바스락 소리에도 뙤창을 내다보곤 했다. 사립문 저 멀리 하얀 블라우스가 어른거리면 영락없이 엄마다. 회색 두루마기 고름이 날리면 틀림없이 아버지다. 기다림을 해갈하듯 뛰어나가 마루 끝에 위태롭게 깨금발로 서서 두 팔을 벌리면, 뙤창 속으로 빨려들 듯 아버지 가슴팍에 아옹하며 안긴다.
유년의 뙤창은 내 눈을 화가로 만들었고 아름다운 그림을 내 가슴에 남겼다. 나는 그림 속에서 그리움과 반가움, 믿음과 사랑을 알았다. 내 작은 가슴이 한없이 넓어지게 한 것은 정사각형 네 개에 붙은 작은 유리였다. 안쪽의 좁은 공간에서 넓은 밖의 세계를 보여준 웅심 깊은 뙤창은 부분보다는 전체를 보는 것을 가르쳐줬고, 작게 보여도 바르게 보는 것을 알려줬으며, 보이는 그대로를 반영하는 믿음을 심어줬다.
현관문이나 세살문이나 뙤창의 재료는 둘 다 유린데 마음의 감각은 영 딴판이다. 세월의 흐름 따라 사람의 겉모습이 변해가는 것처럼 물건도 사람을 닮아가나 보다. 사람의 본성이야 어디 갈 것인가. 겉모습에 날조되어 고운 속이 덮여진 것이리라. 현관문의 유리는 그런 가면을 쓰고 본 세계는 아니었을까.
면접관의 심각한 샛눈처럼 현관문 중앙에 자리한 유리는 얼마나 철저히 사람을 분석해서 보여주는지 외양은 물론 마음까지도 상상할 수 있도록 해준다. 원근에 따라서는 일부분이 확대되거나 축소되어 인상 좋은 사람도 괴이하게 보여 시시종종 추측을 하게 된다.
사람을 만날 때 의심의 마음으로 볼 때가 종종 있다. 어떤 때는 마음보다 눈이 먼저 사람을 평가할 때도 있다. 부모님께 받은 뙤창 같이 맑은 마음은 없어진 지 오래고, 세월 따라 도어 뷰로 갈아 끼우고 맑은 척 살아가지만 뙤창의 믿음이 그리운 것은 말할 나위가 없다.
예전에는 얇은 창호지 발린 세살문으로도 안과 밖을 나누기에 부족함이 없었고 작은 뙤창으로도 바깥세상을 다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두터운 철문의 경계도 모자라 감시카메라까지 달고 도어 뷰로 보이는 모습을 판단하는 군맹무상이다. 속내와는 상관없이 자신의 눈에 보이는 것이 사람을 결정하는 전부가 되었다.
너무 튼튼한 벽을 가지면 일반 유리를 끼우기가 힘이 들어 특수 유리를 끼워야 한다. 유리도 벽의 힘을 지탱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마음인들 다를 것인가. 경계가 심할수록 눈은 왜곡이 극심해진다. 마음에 숨구멍이 생길 때 눈에도 여유가 생기는 법이다.
내 눈이 쌀쌀맞은 도어 뷰라면 아이들의 눈은 여유 있는 뙤창이다. 도어 뷰로 왜곡된 모습을 일일이 내다보는 나와는 다르게 현관문을 활짝 열어 버리는 아이들이 아닌가. 아이들처럼 문을 활짝 열고 싶다가도 동전만 한 유리로 눈이 가는 나는 이 시대를 거스르지 못하는 마음의 소경임에 틀림없다.
꽃살문
꽃이라고 해서 다 물만 먹고 피는 것은 아니다. 향이 특별히 좋거나 자태가 고운 꽃은 사람의 손에 보호를 받으며 물을 먹고 꽃을 피운다. 과잉보호 탓인지 그런 꽃은 곱게 피지만 길지 않은 시간에 떨어진다. 그러나 물 한 방울 먹지 않고도 천년을 하루 같이 피어 있는 꽃이 있다.
아무런 연유 없이 내가 절집을 찾을 때는 꽃살문을 보기 위함이다. 꽃의 성질이라고는 전혀 없지만 꽃이라며 당당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그것에서 나는 묘한 매력을 느낀다. 가로 세로 대각선까지 흐트러짐 없는 자태와 문틀을 벗어나지 않는 꽃살의 지조가 내 마음을 잡고도 남음이 있다.
꽃살문의 꽃은 오직 붓과 칼로만 피어난다. 얼마나 목말랐을까 싶은 생각이 들자 애잔한 마음이 든다. 꽃잎에 나이테가 무엇 때문에 필요하겠는가. 그런데 꽃살마다 나이테가 인고의 세월처럼 감춰져있다. 얼마나 많은 아픔과 고난을 겪었기에 물로는 피지 못하는 꽃이 되었을까.
꽃살문의 꽃은 두루뭉술하고 건조하며 딱딱하다. 그런데도 생화보다 더 끌릴 때가 있다. 투박한 나무에 새겨진 문양과 단청 때문일까. 원색으로 덮여진 꽃살의 속내가 세월에 바래 희끗희끗하다. 평생 꽃이 되고 싶어 절절했던 까닭으로 수세기가 지났으나 결코 꽃잎을 떨어뜨리지 않는다. 문틀 안에서만 피는 꽃이라서 화려하지는 않아도 눈과 마음을 더 길게 잡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절집의 작은 연못 주위에는 소나무가 있다. 연못에는 수련이 해마다 참으로 곱게도 핀다. 한철 지나고 나면 사라지는 수련이지만 그 아름다움은 온 폐부를 파고든다. 사시사철 연못 안에 그림자만 빠뜨리고 있는 소나무는 연못의 품에 안겨있는 수련이 밉고도 부러웠을 것이다. 곱지 못한 자신을 원망하며 꼭 한 번은 수련이 되리라 소망했을지도 모른다.
간절히 소망하면 이루어진다 했던가. 백년 넘은 소나무가 3년간 바람의 고행을 참아내고 일 년 넘게 살을 에는 아픔을 참아 꽃과 잎이 되어 색을 입고 문틀을 꿰차고 앉으니 꽃살문이 되었다. 인고의 세월이 피워낸 꽃이다. 빼어나게 아름다워야만 꽃이던가. 이 말은 먼 이모께 자주 들었던 말이다.
내가 본 이모는 평생을 소나무로 사셨다. 남편을 향한 그리움만 품고 그 곁을 서성대기만 했다. 잘난 남편을 둔 아내의 고통이라고 하기에는 세월이 너무나 길었다. 아마도 이모의 가슴은 소나무 줄기보다 더 갈라 터졌을 것이다.
옛날에는 얼굴도 보지 않은 채 이루어진 혼사가 많았다고 한다. 이모의 혼인도 그러하지 않았을까싶다. 죽을 때까지 이모를 외면했다고 하니 마땅한 연유가 있었을 것이다.
이모 남편은 수련 같은 여인들을 곧잘 집으로 데리고 왔다. 계절이 꽃을 피우듯 아리따운 여인을 곁에 두고 살았다. 옷매무새도 단정하고 얼굴도 고운 여인들이었다. 머무는 시간이 비록 짧았을지라도 끊임없이 피고 지는 꽃을 보며 살았다. 남자의 지극한 사랑을 받았음에도 여인들은 몇 달을 못 버티고는 떠나버렸다. 그럴 때마다 앓아누운 것은 이모 남편이었다. 이모는 그 곁을 소나무처럼 서서 질투와 외로움의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어린 내 눈에는 이모가 너무나 무섭게 생겼기 때문에 도망갔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모는 얼굴 윤곽선이 울퉁불퉁했다. 얼핏 보면 세로 길이보다 가로길이가 더 긴 얼굴형이다. 그리고 눈은 얼굴 살에 묻혀 자세히 찾지 않으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비오는 날에는 코를 조심해야 했다. 입은 코보다 더 돌출했고 두꺼웠다. 피부색은 유달리 붉었고 체격이 좋아 걷는다기보다 구르는 형상이었다. 이러하니 처음 본 사람은 무서워 할만 했다.
이모가 무서웠던 것은 사실이다. 웃는 얼굴보다는 화났을 때가 많았고 나긋한 음성보다는 고성이 더 잦았다. 그것이 남편을 지키는 방법이라 생각하며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모습이 보일수록 남자는 더 어긋난 행동을 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참고 사는 이모를 주변에서는 당당하고 절개가 굳은 사람이라며 칭찬했다.
이모가 아리따운 꽃은 아니지만 늦게 핀 꽃임은 틀림없다. 원색 옷을 좋아하던 이모가 촌스럽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옷에 다는 브로치 하나에도 색을 맞추는 섬세함이 있고 덩치에 비해 소품을 좋아하는 아기자기함이 있기 때문이다. 젊은 시절 혈기로 이모가 참아내지 못했다면 지금의 꽃은 피우지 못했을지 모른다.
평생을 바친 꽃살문의 정성을 연못 속 수련의 한철 아름다움에 어찌 비길 수 있겠는가. 빛바랜 꽃살문 앞에서 이모의 이런저런 모습을 기억해 내며 법당 안을 들여다봤다. 법당 안에 주렁주렁 매달린 연꽃이 보인다. 꽃살이 문틀을 저리도 꽉 잡고 있는 이유가 있었다. 괴로움이나 번뇌는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참아내는 것인가 보다.
꽃이 꽃인 채로 사라지거나 나무나 나무인 채로 소멸되는 것보다 소생하는 삶이 값진 것이리라. 나무가 꽃을 피우기 위해 긴 시간을 감내하듯 꽃은 열매를 맺기 위해 자신을 삭혀야 하리라. 꽃살문이 되기 위해 수백 년을 참고 꽃살문이 되어서도 천 년을 한 날 같은 모습으로 있는 것은 지금 삶이 전부다 아니기 때문이리라.
문틀 속에서만 피는 꽃은 모진 세월에 색이 바랠지라도 꺾이거나 꽃잎을 날리지 않는다. (자료 : 수필세계 2009년 봄호)
첫댓글 주인석 수필가의 등단작품이군요. 역시 글 솜씨가 다릅니다. 좋은 작품 읽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역시글이 참 맛이 있습니다.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