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홍원기 전 대한언론인회 회장
홍원기 전 대한언론인회 회장이 1월 8일 오후 별세했다. 향년 86세.
고인은 1937년 경기 양주시에서 태어나 성균관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1954년 한국일보 창간 당시 고등학생 소년 사원으로 입사한 그는 군복무를 마친 뒤 1959년 본격적으로 기자 생활을 시작했다. 한국일보에서 사회부 차장과 상무이사, 감사 등을 지냈다. 한국ABC협회 이사 겸 공사제도 위원장, 한국신문협회판매협의회 회장, 한국신문마케팅연구소 소장, 한국메트로 상임고문, CBS노컷뉴스 대표이사 회장 등을 역임하며 평생 언론계에 몸을 담았다. 2004년 4월에는 서울언론인클럽 특별 언론인상을 수상했다. 저서로는 '나의 신문인생 50년', '신문산업 어제와 오늘'이 있다.
장례는 가족장으로 치러지며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6호실이다. 발인은 11일 오후 1시, 장지는 양주시 백석읍이다. 가족으로는 아내 한영옥씨, 아들 유석(디앤디파마텍 대표이사)씨, 딸 수연·수아씨, 며느리 우지민씨 등이 있다.
미디어오늘은 고인의 부음을 전하면서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신문인생 40년. 쉽지 않은 일이다. 그것도 기자, 광고 사원 그리고 판매 책임자로 변신을 거듭했다. 한국일보 홍원기 판매본부장(이사)이 그 주인공. 그는 최근 외길로 걸어온 언론인 생활을 정리한 ‘신문인생 40년’을 발간했다. 홍 본부장은 ‘전쟁고아’로 불우한 성장 과정을 거쳤다.
6.25 한국전쟁 당시 피난길에 부모님을 잃은 것이다. 중 1시절부터 두 여동생을 책임지고 ‘소년 가장’ 역할을 해온 홍 본부장은 1958년 1월 1일 장기영 한국일보 창간사주의 배려로 한국일보에 입사했다. 교열기자로 출발한 홍 본부장은 이후 사회부, 광고기획국 차장, 업무기획국장, 업무 1국장, 판매이사를 거쳤다. 편집, 광고, 판매 등 신문사 조직의 3대 축을 골고루 경험한 셈이다.
40년의 신문인생 가운데 가장 애착을 갖고 있는 분야는 판매. 그는 ‘신문과 세일즈맨’ ‘신문판매 무엇이 문제인가’ 등의 책을 펴내는 등 자타가 공히 인정하는 신문판매 베테랑이다.
“한 3년간 신문사를 떠나 있었습니다. 인척 소개로 중소규모의 회사 사장 노릇도 해 보았지만 신문사에 근무하는 재미를 못느끼겠더군요. 기자가 됐든 뭐가 됐든 신문사 일이 역시 재미있고 보람이 있지요. 특히 판매 사원들은 과거보다 훨씬 더 많은 자부심을 느끼는 것 같아 뿌듯합니다.”
홍 본부장의 ‘신문 인생 40년’은 단순히 한 개인의 이력으로만 치부하기에는 아쉬움이 있다. 전쟁의 와중에서 부모님을 잃고 신문배달을 통해 역경을 딛고 주경야독의 길을 걸어 온 가난한 시절의 자화상이 진솔하게 담겨 있다. 이 탓인지 책 머리에 ‘추천의 글’을 쓴 이상희 서울대 명예교수는 홍 본부장의 40년 신문인생을 ‘살아남은 사람들의 감동적인 삶을 증언하는 한 본보기’라 했다.
그가 소년 가장으로 역경을 헤쳐오면서 경제적 문제를 해결했던 공간은 ‘신문 배달’. 가난한 시절, 신문배달이 그 어느만큼 많은 고학생들의 유용한 직장이었는지 ‘신문인생 40년’에는 잘 표현돼 있다. 그가 40년의 신문인생 중 판매에 가장 많은 애착을 갖고 있는 것은 어쩌면 어려운 환경에서 꿋꿋이 살아가는 청소년들과 자주 접할 수 있는 탓 때문인지도 모른다.
출처 : 미디어오늘(http://www.mediatoday.co.kr)
놀라운 근면성실, 입지전적 신문인생
‘한국일보가 낳은 최초의 신문배달소년 출신 신문기자’ 홍원기 그가 10년 전에 출간한 ‘신문인생 50년’은 한편의 인생드라마 바로 그것이다.‘ 이책에는 홍 회장이 6·25한국전쟁 당시고아로 소년가장의 역할까지 하면서 한국일보 사건기자로 밤낮이 없을 정도로 뛰었다는 근면 성실함이 눈에 선할 정도로 현장감 있게 적혀있다. 6·25전쟁으로 하루아침에 전쟁고아로 내 던져진 뒤 불굴의 의지로 주경야독 하며 모진 세파를 뚫고 고학을 해온 홍원기, 그가 딛고 온 역경이 남의일 같지 않다.
* 남다른 친화력에 인간미 넘쳐
경기도 양주시 백석읍이 고향인 홍 회장은 1·4후퇴 때 피난길에 비행기 폭격으로 부모님이 모두 참변을 당해 소년가장으로 세파와 싸우며 젊은 날을 살았다. 한국일보에서 함께 일했던 송효빈 선생은 홍 회장을 가리켜 ‘그토록 어려운 환경을 극복해 왔으면서도 천성적으로 낙천적이고 친화력이 강한 호인이며 바르고 의리를 천금처럼 사랑하는 성품을 지니고 있다’고 평했다.
그래서인지 홍 회장을 아는 사람치고 그를 싫어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을 4년여를 동고동락하는 동안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외유내강, 바로 온유하면서도 내적으로는 강한 사람’이 바로 홍 회장이 아닌가 생각된다. 아닌 것은‘NO’라고 분명히 말하는 소신도 남다르다. 홍 회장은 신문 판매와 광고에 대한 일가견도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소문나 있다.
* 보람찬 대한언론인회 회장 4년
홍원기 회장과의 4년은 정말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이었다. 물론 모두가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한 출판사업이었지만 작고한 원로언론인들을 재조명한 ‘한국언론인물사화’ 제7권을 출판 한 것을 비롯,‘ 신록 언론 언론인의 길-- 그때 그 현장 못다 한 이야기’ 를 3집까지 낸 것은 우리 언론사는 물론 현대사 연구에 도움이 되는 자료를 축적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 받고 있다.
6·25전쟁 60주년을 기해 대한언론인회가 ‘6·25참전언론인회’를 창립, 전적지를 순방하고 박기병 6·25참전언론인회 회장이 대표 집필한 ‘우리는 이렇게 나라를 지켰다’출판도 대한언론인회가 기획하고 6·25참전언론인들의 피의 증언이 어우러진 한 시대 역사의 값진 실록이라 아니할 수 없다.
방한 중이었던 필립핀 아퀴노 대통령에게 대한언론인회와 6·25참전언론인회 이름으로 감사패를 전달한 일이 세계적인 뉴스가 되었던 사실도 홍회장 임기 중에 있었던 의미 있는 이벤트였다.
* 정론지로 거듭난‘大韓言論’
홍 회장은 특히‘대한언론’은 회보차원으로 제작돼서는 안 된다는 소신을 가지고 신문을 제작했다. 월간 ‘대한언론’은 단순히 친목성격의 ‘회보’가 아니라 원로 언론인들이 만드는 매체답게 정론지로서는 물론이고 미디어 비평지로서의 품격을 유지해야한다는 시각이다.‘ 국익과 언론’ ‘위기의 한국진단’등 격조 높은 주제로 회원들의 칼럼과 전문가 논평을 게재, 우리사회의 병폐를 지적하고 나아갈 길을 모색하고자 했던 홍 회장의 신문제작 방향은 ‘대한언론’이 독자들로부터 호평 받는 상당한 이유라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2011년 3월 1일자 회보 대한언론 지령 300호는 이를 기념해 특별세미나를 개최했다. 단순히 친목단체의 회보로서가 아니라 정론지로 자리 잡고 있다는 평가에 부응하는 한편 회보의 내용을 보다 충실히 하자는데 목적이 있었다. 지령 300호를 기해 대한언론에 기고한 이명박 대통령의 글은 대한언론에 대한 인지도를 크게 드높이는 계기가 되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 격려할 정도로 위상이 높아진 ‘대한언론’ 그 중심에 홍원기 발행인 겸 편집인과 편집진이 있었다는 것은 대한언론인회의 자긍심과 무관하다 할 수 없을 것이다.
홍회장 4년 동안 개최한 대토론회도 대한언론인회의 위상제고에 기여한바 컸다. 언론재단은 2010년부터 2013년까지 매년 한 두 번은 토론회를 열 수 있도록 지원해주었다. 6·25 60주년과 한국안보’ ‘납북 언론인 생사 확인 되어야한다’를 주제로 한 토론회를 전후해서는 북한에 납북언론인 송환을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대한언론’300호 기념 특집에선 ‘한국정치의 포퓰리즘과 언론’, 2012년 총선 대선을 앞두고 벌인 대토론회 ‘국민의 선택’ ‘사이비 언론에 대한 법적대응’등은 우리 시대 언론의 자화상을 냉철하게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 NIE 특임강사 적극 추천
홍 회장 4년의 대한언론인회는 프레스클럽회원과의 나들이도 유난히 잦았다
언론재단의 각종행사에 대한언론인회 회원들을 동참시킴으로써 명화감상 송년음악회, 문화역사 탐방 등의 기회가 자주 있었다. 모두가 홍 회장과 이성준 이사장의 합작이었다. 홍원기 회장 4년은 이런 저런 행사로 하여 날마다 활기가 넘쳤다. 홍 회장은 특히 NIE에 남다른 관심을 보였다. 원로언론인들의 경륜을 높이 사 NIE 특임강사로는 대한언론인회 회원이 적격이라는 점에 주안을 두고 한국언론진흥재단에 34명의 회원들을 강사로 추천한 일이 그것이다. NIE는 미래 독자를 확보하고, 잠재적 고객을 관리하고, 사회적 공익 의무를 다하는 매우 유익한 개념이자 운동으로 계속 활발하게 추진돼야할 사안이라고 본 것이다. 홍원기 대한언론인회 회장 4년, 홍 회장을 모시고 일했던 나로선 그 어느 때보다도 보람찬 나날이었다.
<홍원기 저 '신문산업 어제와 오늘' 에서 정운종 전 대한언론인회 상근부회장 겸 상임이사(전 경향신문 논설위원)>
<고인 생시에 유한준시인이 봉정한 송축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