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1990년부터 현재까지 일본 건축의 특징을 1) 불황의 시대의 건축론 모색 2) 초소형 주택건축 실험 3) 도시계획과 신축에서 재건축과 레노베이션으로 4) 건축을 통한 도시의 브랜드 구축이라는 네 흐름으로 나누어 서술한다.
첫째, 전체 연구의 이론적 배경이 될 서두에서는 불황이 이끌어낸 건축 담론의 지형도를 살펴본다. 일본의 장기불황은 진보에 대한 확신과 과학기술 낙관론에 기반한 모더니즘 건축에 대한 회의를 불러왔다. 지속적인 성장에 대한 확신 속에서 작동했던 전후 근대건축의 전제들이 붕괴되었으며, 그 대안으로 “약한 건축,” “작은 건축,” “커뮤니티 디자인,” “사회적 디자인,” “원시적 미래(primitive future)” 같은 대안적인 건축론이 제안되었다. 건축가의 역할과 활동 영역을 재정의하려는 움직임도 등장해서 강력한 마스터 빌더의 역할 대신 전문 컨설턴트나 활동가로서의 역할이 강조되었다. 한편으로는 사용자(거주자)의 역할을 강조한 “건축가 없는 건축” 개념이 등장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재화 가치가 있는 작품의 생산자, 즉 예술가로서의 건축가상이 재조명되었다. 물리적 공간에 건물을 세울 기회가 줄어든 대신 블로그나 웹진 같은 온라인상의 가상공간이 건축가들에게 새로운 활동 무대를 제공했고, 새로운 현상은 아니지만 건축 전시나 출판물이 건축가의 창조력을 표출할 중요한 출구가 되었다.
둘째, 고도 성장기에 유행했던 메가스트럭쳐(megastructure)가 쇠퇴한 반면, 다양한 형태의 초소형 주거 공간에 대한 실험이 등장했다. 소위 “작은 집”이라고 불리는 초소형 구조물은 1) 대지와 재료, 재정적인 한계 속에서 공간 효용을 극대화할 뿐만 아니라, 2) 고령화와 인구감소, 1인가족의 증가를 특징으로 하는 가족 구성의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하고, 3) 주변 자연환경에 대한 영향을 최소화하는 생태학적 요구에 부응한다. 본 연구는 아뜰리에 바우와우가 도쿄 도심의 비좁은 택지에 꾸겨 넣은 펫 건축(Pet Architecture) 연작, 전쟁 직후 제안된 마수자와 마코토(増沢洵, 1926년생)의 미니멀 하우스(1952)를 온라인을 통해 현대적으로 보급한 Commedesign 고이즈미 마코토와 오카자키 야스요키의 9-쯔보 하우스(2002), 건축사학자 출신인 후지모리 테루노부(藤森照信, 1946년생)가 조몬(縄文) 전통을 재소환한 원시주의 공간을 예로 들어 분석한다.
셋째, 대규모 신축과 도시계획의 시대가 끝나고 재건축과 레노베이션을 통한 도시재생이 강조되었다. 단게 겐조나 메타볼리스트 같이 호황의 시대에 활동한 선배 세대 건축가들이 전쟁으로 파괴된 국토를 빈 캔버스 삼아 야심찬 도시계획을 실행하거나 대규모 신축 프로젝트를 수행했던 것과는 달리, 불황의 시기의 건축가들에게는 건축을 통해 낙후된 도시공간을 활성화하고 근대건축유산을 보존하는 도시재생이 중요한 과제로 떠오른다. 필자는 구마 겐코의 나가오카 시청(2012)과 가부키 극장 재건축(2013)의 사례를 통해 건물의 신축과 다른 재건축, 증축, 개보수의 윤리와 쟁점에 대해 살펴본다.
넷째, 브랜드 가치를 갖는 건축을 통해 지역 경제를 활성화시키려는 노력이 등장했다. 경기 침체기 동안 젊은 건축가나 소규모 건축 사무소의 일거리가 현저히 줄어드는 한편, 확실한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소수의 스타 건축가가 시장을 독점하게 된다. 이들의 역할은 자신의 브랜드를 통해 지역 경기를 활성화시킬 수 있는 도시의 아이콘을 제공함으로써 관광 사업에 기여하는 것이다. 안도 다다오의 나오시마 프로젝트(1998- )는 인구감소와 고령화 문제에 직면한 산업화 시대의 버려진 섬이 안도 표 ‘작품’을 통해 “예술의 섬”으로 변모하는 과정을 잘 보여준다. 이 프로젝트는 일회성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세토우치 트리에날레(3년마다 개최되는 현대미술전)나 이에 프로젝트(버려진 빈 집을 개조해 전시공간을 만드는 프로젝트) 같은 문화예술 행사와 연계해 지속적으로 경험 산업을 위한 콘텐츠를 제공한다.
첫댓글 오우 멋진 테마. 경기순환과 관련하여 보편적인 함의를 지닌 주제이죠.
비단 건축분야에만 한정된 얘기는 아니라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