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우리의 이웃, 외국인 노동자
대구는 서울, 경기 지역 다음으로 외국인 노동자들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으로 현재 대구에 거주하는 외국인 노동자의 수는 약 2만 2천여 명이다. 대구시는 매년마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약 8~9%씩 증가하고 있으며 월평균 170여 명씩 늘어나는 추세이다. 외국인 노동자들은 달서구 공단지역을 포함하여, 북구와 달성군을 중심으로 8개의 구·군에 골고루 분포되어 있다. 대구에 사는 외국인들은 국적이 다양하고, 국적만큼이나 대구에 하는 일들도 다양하게 나눠져 있다.
《달서구 공단지역 일대》
달서구와 달성군에 넓게 위치한 공단지역은 외국인이 가장 많이 거주하고 있는 곳으로 대구시에 거주하는 외국인의 약 70%가 이곳에 집중적으로 거주하고 있다. 이들은 성서산업단지에 근무하는 외국인 근로자와 외국인 결혼이민여성들이며 주로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이주해온 베트남, 중국, 인도네시아의 국적을 가진 동·서남아시아 계통의 외국인들이다.
《북구 일대》
북구의 대현동과 산격동 일대에는 인도·네팔, 파키스탄 등 동남아시아 외국인이 많이 거주하는 곳으로 대부분 유학생이거나 제조업체의 취업 근로자로 종사하고 있다. 특히, 산격3동에는 인도인 20여명이 집단으로 거주하고 있으며, 대부분 국어 연수 및 학위 취득을 목표로 거주하고 있다. 이들의 궁극적인 목적은 대부분 한국어 학습을 통해 한국에서의 취업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렇듯 이제 대구지역에서도 많은 외국인들이 거주하고 있으며, 이들은 우리의 또 다른 이웃으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 하지만, 보수적이고 배타적인 대구의 정서로 인하여 많은 외국인들은 더욱 고립되고 위축되고 있다. 대구에서는 이들이 타향에서의 외로움을 달래며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는, 자신들의 문화를 공유하기 위한 마땅한 장소도 갖추고 있지 않으며, 심지어 이들을 배척하고, 외국인을 이해하고 포용하지 않으려는 경향도 종종 나타난다. 이러한 조치는 향후 대구의 커다란 사회적 문제로 나타날 우려가 있으며, 감당하기 어려운 문제로 확대될 수도 있다.
얼마 전, 달서구에 외국인 거리를 조성하려 하였으나 주민들의 반대로 무산된 사례가 있었다. 대구는 거주하는 외국인만 2만 명을 넘어서고 최근 3년간 3천 명씩 그 수가 늘어나고 있지만 늘어나는 외국인에 비하여 외국인을 위한 시설이나 조치는 미흡하다. 개인적으로 다른 지역들의 사례를 살펴보고 타 지역의 사례를 통하여 대구의 다문화 거리 조성 방향에 대해서 한번 쯤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다.
<다른 지역의 사례>
(1)‘부산 초량동의 외국인 거리’
부산에서는 이미 초량동에 외국인거리를 조성하였다. 더불어 부산시에서는‘차이나타운특구’를 지정하여 이 지역을 세계적인 관광지로 만들기 위한 계획을 마련 중이다.구체적으로 2012년까지 국비와 시(市)비 등 389억원을 투입해 부산의 대표적인 중국풍 관광지로 가꿀 큰 계획이라고 한다. 또한 외국인 거리 내 건물을 중국풍으로 리모델링하고 중국산 특산물 쇼핑센터와 한중문화교류원, 중국어학원이 들어설 건물을 신축하였다. 또한, 차이나타운 일대를 ‘삼국지 풍물거리’,‘패왕별희 풍물거리’등 테마거리로 조성하고 거리마다 중국식 주소도 새로 부여하고 있다.
(2)‘서울의 외국인 거리’
서울의 이태원 거리와 반포동 서래마을의 프랑스촌, 동부이촌동의‘리틀 도쿄, 한남동의‘독일 커뮤니티’등이 미군과 외교관, 외국 회사 주재원들이 모여 만든 외국인 거리였다면, 최근의 외국인 거리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만들어 내고 있다. 옛 구로공단 주변의 가리봉동 ‘중국타운’이 대표적인 경우로‘중국타운’에는 2만여 명의 중국 동포들이 살고 있어 자연스레 중국어 노래방과 중국PC방, 중국음식점 등이 생겨나기 시작해 지금은 한자 간판이 한글 간판보다 많을 정도로 중국인 공동체를 이뤘다.
용산구 한남동 이슬람성원 주변에는 이슬람거리가 형성됐다. 이슬람 거리에는 이슬람식 도축법으로 잡은 고기만 판다는 뜻의‘할랄(Halal)’표시를 한 정육점과 음식점들이 줄지어 있다. 하루 여섯 차례의 이슬람 예배가 끝나면 이슬람거리는 수염을 기른 무슬림들과 히잡을 둘러쓴 여성들로 넘쳐난다.
몽골인들은 중구 동대문운동장 인근 광희동 ‘몽골타워’에 자리 잡았다. 10층짜리 빌딩 40여개의 사무실은 국내 몽골인을 대상으로 몽골인이 운영하는 무역상, 환전소, 여행사, 잡화점, 음식점, 미용실로 가득 차 있다. 네팔인들 역시 종로구 창신동 지하철 1호선 동묘앞역 부근에 네팔 음식점과 잡화점을 중심으로 네팔거리를 만들었다. 이외에도 이태원역 뒷골목의 나이지리아거리 등 서울에는 새로운 외국인 거리가 끊임없이 생겨나고 있다.
(3) ‘안산시의 외국인 거리’
안산시의 외국인 거리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국경 없는 거리’이다. 안산시의 외국인 거리에는 중국어, 베트남어, 힌두어 등 각 나라별 간판들이 빼곡하게 늘어서 있다. 각 상점 앞 스피커에서는 외국 노래가 흘러나오고, 슈퍼마켓에는 각 나라의 특유의 식료품들이 즐비하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상점에도 외국인 고객을 위해 외국인 점원을 두고 있다. 외국인 거리가 있는 원곡동은 주민 3만6천명 가운데 등록된 외국인만 1만4천명(38.9%)에 달한다. 외국인들이 많이 모였지만 슬럼화나 범죄증가의 문제점은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한 우려는 오히려 정반대로 돌아간다. 일례로 실제 지난 3월까지 지구대에 접수된 각종 신고는 3천190건으로 한국인만 살고 있는 인근 지구대 접수건수 4천989건보다 1천800건이나 적다.
이 ‘외국인 거리’는 무려 세계 50여 개 국에서 온 외국인들이 찾고, 특히 주말이면 지방에서 찾아오는 외국인 노동자들까지 합하여 50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이를 이용하여 최근 안산시는 외국인 거리를 잠재적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걷고 싶은 거리 조성 사업’을 추진하여 간판정리, 전선 지중화 사업, 만남의 광장 조성 등을 계획했다. 이 사업에는 사업비가 100억원이나 들지만 투자가치가 인정된 것이다.
<외국 사례>
‘시카고속의 한인거리’
시카고의 경우, 브린마 길에서 조촐하게 시작됐던 한인사회의 축제가 해를 거듭하면서 놀랍게 성장해 13년이 지난 지금은 시카고 한인사회의 대표적인 축제로 자리 잡았다. 갓을 쓰고 붓글씨로 한글 이름을 써주는 테이블 앞에서 호기심에 찬 눈으로 미소를 짓고, 태권도 시범에 감탄을 하고, 사물놀이에 어깨를 들썩이면서, 갈비와 떡볶이를 즐기는 외국인의 모습에서 한국문화가 서서히 미국 문화와 조화를 이루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위의 사례처럼, 외국에도 한인촌이 있고 우리도 외국사회에서 잘 정착하기 위해 한인들끼리 모여 한인사회를 구성하고 서로의 정을 나누며 살아가고 있다. 나아가, 그곳에서 같은 한국인을 만나면 서로 반가워하고 한국을 그리워한다.
이처럼 외국인 노동자들도 고향을 그리워하며 서로 모여 함께 문화를 향유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이러한 기본적인 욕구를 무시하고 주민반대를 이유로 들어 외국인 거리 조성을 무산한다면, 우리 또한 외국에 나가 인종 차별을 당하고 괄시 받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다른 지역의 사례에서 보듯 각 도시들은 거리조성 뿐만 아니라 축제도 개최해 거리문화 활성화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 중 대표적인 축제로‘이태원 지구촌 축제’를 들 수 있다. 이 축제는 국내외 관광객들에게 최고의 쇼핑 및 관광 도시로서의 위상정립은 물론이고, 지구촌축제를 통한 이태원의 비전을 제시하고 다양한 문화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다. 이태원에서는 관광도시의 메카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매년 용산구에서 이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또한, 이태원은 서울의 대표적인 관광특구로 서울을 찾는 외국인의 발길이 가장 많은‘쇼핑, 관광 허브지역’이며 다국적, 다민족적, 다정체성의 문화적 정서를 수용하고 교감할 수 있는 대표적‘퓨전 문화 지역’이다.
우리나라도 한때(1950, 60년 박정희 대통령시절)는 유엔에 등록된 120여개 나라 중 가장 가난한 나라로 많은 젊은이들이 돈을 벌기 위해 해외로 나가 많은 괄시와 인종차별을 겪기도 했다. 일례로 박정희 대통령이 서독에 방문했을 때, 그곳에서 고생하는 광부들과 간호사들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그랬던 우리 민족이 이제는 우리나라를 찾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괄시하고 무시를 일삼고 있다. 우리가 경험한 것처럼 오늘의 후진국이 내일의 후진국일 것이라는 법은 없다. 지금 우리가 그들을 도와주고, 우리나라에 정착할 수 있도록 함께 나누고 베풀면 그 또한 대구의 이미지를 좋게 하고, 더 나아가 우리나라에 대한 인식을 좋게 하는 하나의 외교수단이 된다.
더불어, 후에 그들이 자국으로 돌아가 아들, 손자에게 대구시, 더 나아가 우리나라의 고마웠던 경험을 이야기 한다면 한번쯤 오고 싶은 도시, 나라가 되어 하나의 외교가, 하나의 관광산업으로까지 연결될 수 있다. 외국인 노동자들은 우리 사회의 필요에 의해 정착하고 있는 노동자들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들과 함께 공유하고 살아가고자 노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