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학은 무형적인 과거의 유적이다. 그러나 유적을 보고 사라진 과거의 무형적인 세계를 추정하는 역사학이나 고고학은 아니다. 그래서 이 글은 문화유산답사기는 아니다. 한의학은 과거의 박제된 복고주의가 아니라 미래를 향해 뻗어나가는 지혜를 담고 있다. 그래서 한의학은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하는 '오래된 미래'이다. 이 이론의 바탕은 드넓은 우주와 자연을 포괄하고 있다. 다양한 자연의 이치를 인체라는 공간에 적용한 것이 한의학이다. 동양에서는 인간 속에 우주가 있다는 인신지소우주(人身之小宇宙)라고 말을 한다. 이것은 화엄경에서 말하는 일미진중함십방(一微塵中含十方)이라는 말과도 통한다. '우주'와 '티끌'에 비유한 동양의 학문은 참 거시적이기도 하고 미시적이기도 하다.
필자는 한의학을 공부하면서 느낀 여러 가지 기본적인 이론과 원리, 이치 등을 살피면서 그 바탕 저변에 면면히 흐르는 원리를 생각해보았다. 그 원리를 이름하여 "Trans(通)이론"이라고 명명했다. 모든 원리나 이치가 그렇듯이 자연에 원래 존재하는 것을 형상화시키고 이론화시킨 것이지 내가 창조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씀드린다. 그렇다면 Trans란 무엇인지 간단하게 알아보겠다.
Trans의 어원적 의미는 '흘러간다','옮기다','변하다', '통하다', '관계를 갖다', '교류하다','영향을 주다', '이전하다', '바꾸다' 등의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이것은 모든 무형 유형의 대상과 관계 속에 빗어지는 흐름이다. 모든 것은 인연(因緣)이 있고 인연끼리 Trans를 한다. Trans이론은 우리의 삶 속에 존재하고 과거 현재 미래를 거치면서 존재해왔다. 이렇게 세상을 사는 기본적인 이치가 Trans이다.
전쟁, 파괴, 살상, 폭력, 차별, 분쟁, 갈등 같은 것들은 Trans가 제대로 안될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세상살이의 모든 문제는 Trans가 제대로 안될 때 생긴다. 우리는 남북분단으로 반세기동안 Trans가 안된 채 살아왔다. 동서간의 지역차별도 대표적으로 Trans가 안 되는 것(地緣)이었다. S대를 비롯한 명문대가 싹쓸이하는 학력패권주의(學緣)는 사회적 Trans를 막고 있다. 북한의 꽃제비들, 아프리카의 난민, 외국인 근로자, 모든 피압박민들의 고통과 아픔은 안중에 없고 오직 내 가족과 우리만 생각하는 가족이기주의(血緣)도 정상적인 Trans가 아니다. 우리가 늘 만나는 모든 괴로움, 외로움, 우울, 분노, 시기, 질투, 오해, 착각, 스트레스, 위기의식 등도 제대로 Trans가 안돼서 나온 것이다. 그러나 이런 '모순된 Trans'가 '건강한 Trans'가 되기도 하고, '건강한 Trans'가 '모순된 Trans'로 흘러가는 경우도 많다. 이러한 Trans의 선악적 판단은 인간으로서 보편성과 가치를 가지고 할 뿐 신의 견해나 절대적인 가치판단은 아니다.
Trans의 세계는 넓고도 광범위하다. 이것을 역사, 철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예술, 종교, 심리학 등 모든 학문에 적용된다. 흘러가지 않는 것은 진리가 아니다. 노자 첫 장에 "上善若水"라는 말이 나온다. 가장 선한 것은 물과 같은 것이다. 물은 고이고 증발되며 낮은 곳을 향해 끊임없이 흘러간다. 물은 Trans를 가장 잘 설명한다.
Trans에 대한 올바른 인식은 아주 중요하다. 왜 정상적인 Trans가 되지 않는가를 아는 것은 사회적 동물인 인간이 나아갈 길을 가장 합리적으로 제시해준다. 사실 모든 것이 Trans가 되지 않는 경우는 없다. 비정상적인 것도 Trans는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Trans는 진리에 대한 성찰을 통해서 좀 더 고양(高揚)될 수 있고 범생명적이고 범자연적인 세계로 갈 수 있는 길을 제시해주고 있다. 그래서 Trans는 道이기도 하고 眞理이기도 하다는 생각이다. 모든 생명은 유한하지만 Trans는 영원한 흐름이다. 인간이 죽을 때 그 영(靈)은 자연이 되고 우리의 썩은 몸은 흙으로 돌아가는 Trans를 한다. 그래서 우리는 나뉘고 흩어지지만 결국 거대한 하나가 된다. 인간이란 개체가 큰 자연에 편입되어 하나가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나가 된 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것이다.
모든 평등을 꿈꾸는 과정이 Trans이다. 평형을 향해 끓임 없이 흘러가지만 평형은 유토피아처럼 영원히 도달할 수 없는 비현실이다. 그래서 우주 자연은 영구기관(永久機關)처럼 쉬지 않고 현재진행형 Trans를 계속하고 있다. 허실, 과부족,빈부,고저,한열,고금(古今) 등이 있으므로 Trans가 존재한다. Trans가 있어서 자연은 살아있는 것이다. 단, 진리와 신의 세계는 더하고 뺄 것이 없는 절대적이고 완벽한 세계이므로 Trans가 존재하지 않을 것 같다. 그러나 진리(말씀)는 형형한 빛을 발하며 四部大衆을 향해 Trans되고 있는 것이다. 결국 Trans가 안 되는 것은 없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구체적인 Trans의 세계로 안내해 드린다. |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