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태탈산(偸胎奪産)과 감화통(感化通)
문(問): 감화통(感化通)은 인신합발(人神合發)에서 이루워진다 하오니
문명신(文明神) 도통신(道通神)이 사람몸에 들어온 후의 상태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문명신, 도통신이 결과적으로는 사람된것 밖에 없는데
아기로서 태어나는 것과 어떻게 다를까요?
답(答): 큰 차(差)가 생긴다.
얼핏 생각하면 문명신 도통신이
사람이 되려고 아기로 태어나는 것이나
성인(成人)의 몸에 들어온 것이나 같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도통(道通)을 한 영(靈)도 환생(還生)하면
전생의 도통영기(道通靈氣)가 거의 없다시피 된다.
석가(釋迦)는 오백생(五百生)을 닦아 세존(世尊)이 되었다 한다.
499생을 닦은 후에 태어난 것이 석가(釋迦)이나
자기 전생이 누구인지 몰랐던 것이다.
그래서 다시 수도(修道)하여 깨치고 알았던 것이니.
다만, 다시 수도(修道)하면 전생에 통한 영(靈)의 기운이 있는지라
생내기보다는 빠르고 쉬운 것이다.
옛날 어느 절에 왕수인(王修人)이라는 중이 있었는데
매일같이 공부를 하고 타인(他人)과 더불어 말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절에 십년이상 같이 있던 대중들도
그의 공부가 어느정도인지 짐작하지 못하였다 한다.
어느날 그는 법당에 들어가며 문을 닫았는데
그가 법당에서 나오지도 않았으나 법당문(法堂門)은 영영 열리지 않았다 한다.
이 기적이 있은 후 대중은 승려로서 법당문을 깨트릴수도 없고,
백여명이 힘을 합하여 문을 열려고 해도 문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아
그대로 버려둔채 세월은 오십년이 지났다.
왕수인(王修人)이 법당에 들어갈 때 보았던 중은 거의 입적했고
어린중이 노승되었을 무렵,
하루는 그 고을 태수(太守)가 절에 온다고 기별이 있어서
마침내 태수가 와서 이곳 저곳을 구경하다가
경내(境內)를 두루 돌고나서 법당(法堂)을 구경고처 하니
승통(僧統)이 이야기를 자세하게 하였다.
태수는 불가(佛家)에서 기적이 많다는 말은 들었으나
이토록 허황(虛荒)에 가까운 일이 있을수 있을까 이상한 일이로다 생각되어
“내가 보는데 다시 한번 열어보도록 함이 허떠뇨” 하니,
대중은 태수의 명(命)대로 여럿이 힘을 합하여 문을 열려고 하였으나
여전히 문은 꼼짝하지 않았다.
보다못한 태수는 일어서서
참 기이한 일이로다 내가 한번 열어보자” 하면서
법당문 고리를 잡고 열어본즉 문(門)이 스스로 열리는지라
놀랜 대중들은 태수를 코시고 법당에 들아가보니
왕수인(王修人)은 형적(形跡)도 없고 다만 벽에 글 한수가 적혀있는데
오십년전(五十年前) 왕수인(王修人) 개문인시(開門人是) 폐문인(閉門人)”이라는
열넉자 였다 한다.
풀이하면 오십년전에 왕수인이라는 사람은
이 법당문을 여는 사람이 문 닫은 사람이라”는 말이다.
그러니 왕수인(王修人)은 죽은 후 태수가 되어서
오십년후에 그 절을 찾아가 열도록 법력(法力)으로 마련해 놓고 입적했건만,
그 장본인이 다시 태어나서 된 태수는 전혀 자기전생을 몰랐던 것이다.
그 이유는 십개월간 어머니의 배속에서 육신이 크는 동안에 받은
열(熱)로 인하여 영력(靈力) 태심(太甚)하게 감소되었든 까닭이다.
이 손해막심한 과정을 밟지않고 전생영의 청정(淸淨) 그대로
인간화(人間化)하는 법이 인신합발(人神合發)이라는 것이다.
즉 모체(母體)안의 생활없는 인신화(人身化)를 하자니
성인(成人)에게 막 들어가는 것이다.
이것을 선가(仙家)에서는 투태탈산(偸胎奪産)이라 하니
남의 태(胎)를 훔쳐서 출산(出産)한다는 뜻이다.
감화통(感化通)이라는 것은 투태탈산(偸胎奪産) 말하는 것이다.
이로 인하여 신(神)은 사람되기를 이루게되고
사람은 신통자명(神通自明)하게 알고싶은 바와 얻고 싶은바를 이루게되니
사반공배지법(事半功倍之法)이라 할지니라.
이러한 경우에 본래있던 영(靈)은 어떻게 되는냐가 문제인데,
그것은 마치 고욤나무에 감나무를 접(接)부친것과 같으니라.
옥추문(玉樞門)과 용화회상(龍華會上)
문(門): 인신합발(人神合發)하면 이미 문명신(文明神)도
도통신(道通神)이 들어오게되고
그렇게 되면 사람은 통(通)해 버리는데
용화회상(龍華會上)은
또 무엇 때문에 있는지요?
혹 인신합발(人神合發)이 용화회상(龍華會上)에서 이루어지는지요?
답(答): 인신합발(人神合發)의 실질적인 구현은
옥추문(玉樞門)을 여는데서 이루워진다.
후천 5만년의 완격(完格)을 이루는데는 용화회상(龍華會上)이니라.
용화회상은 과거회상과는 다르다.
자네들은 통(通)이라 하면 막연히 그 한계를 모르고 있기 때문에 같은줄 안다.
그러나 통(通)에는 평면적(平面的)으로 광(廣)의 범위가 있고
입체적으로 고저(高低)의 단(段)이 무수(無數)하리만큼 다양하게 있는 것이다.
이조(李朝) 선조(宣祖)때 임진왜란 전년 신묘(辛卯)의 가을에
우리나라는 대풍년(大豊年)이었다 한다.
영남(嶺南) 어느 평야에서 지각자(智覺者)가 지나가다가
등풍(登風)의 들을 평하여 가로되
“내년에는 난(亂)이 날것인데 이렇게 풍년이 드니 도대체 누가 먹자는 양식인가.
천의(天意)도 이상한지고?” 한즉
들에서 일하는 농부가 “ 그 양반 참 지기일(知其一)이요
부지기이(不知其二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른다는 의미) 로구만
양국(兩國)이 먹을 양식이 그만치도 못되여서 쓰겠는가? 하드라는 것이다.
그랬더니 건너편 논에 있는 노인(老人)이 말하기를
“내가 본즉 삼국(三國)이 먹을 양식 밑자리 같은데---“하더라는 이야기가 있다.
양국(兩國)을 이야기한 농부는
우리나라사람과 왜군(倭軍)이 침입해와서 먹을것을 알았고,
삼국(三國)양식을 이야기한 노인은 명(明)나라 원군(援軍)의 양식도
포함해서 한 말로써, 지기이자(知其二字:둘까지 아는 사람)도 부족하여
지기삼(知其三)이 못되었으니, 통(通)에는 이와 같은 일이 대부분이니라.
인신합발후에도 궁천지지묘(窮天地之妙)에 미달하는 까닭에
용화회상(龍華會上)이 필요한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아무라 말하여도 알기 어려울 것이며,
그 때를 당하여 보는 것이 가장 정확(正確)할 것이다.
대체로 옥추문(玉樞門)은 능력을 얻는 것 위주의 결과를 가져오는 성질의 것이니,
옥추문후의 실태는 능견난사(能見難思)의 검이 있다고 해야하고,
용회회상은 전리(全理)를 통효(通曉)하는 결과이므로
능(能)과 각(覺)이 쌍전(雙全)함 이니라.
문(門): 언제 신명공부(神明工夫)를 시키셨나이까?
저희들은 알지 못합니다.
답(答): 자네들이 공부를 많이 했는줄 알고 있지만,
내가 자네들 공부를 시킨 것이 아니네.
신명(神明)은 득체(得體)치 아니하고는 행(行)이 불가능하네.
자네들이 공부했다는 것이 바로 신명(神明)이 공부한 것일세.
금신(金神)들이 자네들을 체(本)하여 모두 공부하였네.
이 뒤에 그 신명들을 사용만하면 되네.
용신(用神)에 있어서는 아마 낮익은 자네들이 유리할것일세
보화교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