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요세미티 갈 수 있을까]
[1-3] 우연은 필연으로, 요세미티에 가다
산악교육을 시작한 2015년은 손목 골절로 등반은 전혀 해보지 못하고 산악교육 진행을 지켜볼 뿐이었다. 2016년에는 2년 차 산악교육을 진행하며 틈틈이 학생들의 산행에 동행하였다. 그저 한 두 시간 정도의 산행 경험이 전부였던 나는 2박3일 지리산 종주에 참여하였다.
갈아입을 옷을 제대로 준비하지 못해 낮의 더위와 밤의 한기에 떨었던 경험과 장거리 등산에 맞지 않는 등산화로 발톱이 몇 개나 빠진 경험은 지금도 생생하다. 지리산뿐 아니라 그 이후 학생들과 동행했던 도봉산, 설악산, 덕유산 등은 모두 처음 올라가 보는 산이고 새로운 세상이었다.
가을이 되자 등산전문강사 고경한 선생은 교내 산악교육과 별도로 틈틈이 나에게 자신의 등반에 함께 갈 것을 권유하였다. 손목도 회복되었고 호기심에 나도 시간이 나는 대로 따라다니게 되었다. 무릎과 어깨의 관절염으로 장거리 산행이 어렵게 된 것도 암벽등반을 하게 되는 이유 중의 하나였다.
오래 걷기는 어렵지만 암벽등반의 출발점까지 1시간 정도 워킹한 다음 등반을 준비하고 한 피치씩 힘들여 오른 후 확보점에 매달려 팀원의 빌레이를 하는 것은 휴식에 해당하기 때문에 생각보다 힘들지 않았다. 나이 많은 사람은 어렵다 위험하다는 일반적인 우려와는 달랐다. 오히려 장시간 산행을 할 수 없는 나이 많은 사람이 산을 새롭게 그리고 멋있게 즐길 수 있는 방편이라는 생각이 더 크게 다가왔다.
암벽등반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어렵게 힘들게 인수봉, 선인봉 등을 따라 다녔다. 그때도 나는 암벽등반에 대하여 거의 백지 상태로 그저 버둥대며 끌려 올라갈 뿐이었다. 또 가르쳐 주어도 바로 잊어버려 매번 처음인 것처럼 허둥대었다.
용어부터 귀에 설고 무슨 뜻인지 모르니 장비사용법과 등반기술과 익혀보려 해도 생각뿐이었다. 고선생은 그런 나를 싫은 내색 한번 안하고 안전에 신경을 쓰면서 다시 처음부터 가르치고 확인하였다. 그때는 고선생의 돌봄을 당연하게 생각하여 주의를 기울여 배우고 익히지 못했다. 지금 생각하면 나의 무성의함이 너무나 미안하고 그의 정성과 희생이 너무나도 고마울 뿐이다.
2017년은 서울사대부고 등산교육 3차년이 되는 해였다. 5월에는 고선생의 권유로 전용학 선생의 KMG(Korea Mountain Guide) 등반교육과정(암벽반 10기)에 입교하였다. 이때도 암벽등반에 대하여 더 깊이 이해하고 숙달하였다기보다 그저 전선생이 이끄는 대로 관악산, 천등산, 대둔산, 미륵장군봉 등의 암장을 따라가며 간신히 이끌려 가는 정도였다.
6월이 되어 산악반 학생들의 한라산 종주에 동행하였다. 첫날 오른 한라산 백록담에서 고선생의 요세미티 원정계획을 듣고 바로 요세미티에 가기로 결정하였다. 그리고 그로부터 몇 주 후에는 요세미티에 가있던 고선생과 합류하게 되었다.
그때 본 요세미티는 경이 그 자체였다. 암벽등반에 조금씩 눈을 떠 갈 때 본 엘캡, 하프돔과 주위의 그 거대한 바위덩어리는 아름답고 웅장한 경관으로 다가오기보다는 큰 위압감과 함께 ‘나도 저기 오를 수 있을까, 오르고 싶다’라는 욕구를 불러일으켰다. 캠프 4에 일주일 정도 머무르며 매일 엘캡 주위를 맴돌고 바라보면서 ‘나도 엘캡에 오를 수 있을까’하는 생각을 하였다. 그때 요세미티는 무척 더웠다. 한낮에 바위에 붙어 있으면 살이 익을 것처럼 뜨거웠다. 더위를 피해 아침 일찍 또는 오후 늦게 짧은 루트에 조금씩 매달려 보았다.
너트크래커(Nutcracker)라는 루트를 아침 7시 출발하여 저녁 9시까지 하루종일 등반하기도 하였다. 하나부터 열까지 고선생이 이끄는 대로, 시키는 대로 한 등반이지만 나로서는 처음 해보는 장거리 등반으로서 매우 큰 경험이었다. 고선생의 배려와 희생이 아니라면 불가능한 등반이기도 했다. 내로라하는 등반전문가로서 10여년간 엘캡의 여러 루트를 등반해 온 고선생으로서는 스스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하지도 않으려는 완전 초보자를 끌고 가는 무척 지루하고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새해에도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 하시고,
항상 안전 등반 하시길 진심으로 기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