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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노트 스크랩 제갈량을 상대하는 사마의의 전략
정규훈 추천 0 조회 139 10.09.11 01:39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삼국지에서 제갈량의 전술을 가장 극적으로 평가한 말이 ‘죽은 제갈량이 산 사마의를 이겼다’는 말이다. 이 말은 자치통감에도 실려 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제갈량은 죽고, 사마의(司馬懿, 사마중달)가 있는 위(魏)나라에 촉한은 멸망한다. 이것이 제갈량이 죽었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지만 이는 한쪽만 보고 평가한 것이다.
후항 명제 청룡 2년(서기 234년) 8월, 이때에 제갈량과 사마의는 이미 100일을 대치하고 있었다. 사마의는 성을 굳게 하고 나오지 않으니 싸울 수가 없었다. 공격하는 군사력은 방어하는 군사력의 3배 이상이 되어야 하니 신출귀몰한 제갈량도 사마의를 어쩔 수 없었다. 제갈량은 꾀를 냈다. 사마의를 모욕하여 나와서 싸우게 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제갈량이 부인들이 사용하는 건괵(巾?)과 복장을 보냈다. 너는 사내대장부가 아니니 이 여자 옷이나 입으라는 뜻이었다.
사마의는 공개적으로 모욕을 당한 것이었다. 화가 난 사마의는 황제에게 싸우게 해 달라고 표문을 올렸다. 그러나 그것은 제스츄어일 뿐 정말로 싸우려는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전방에 있는 장군이 싸우려 한다면 바로 싸우면 되지 구태여 천리 밖에 있는 황제에게 허락을 받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었다. 물론 제갈량도 사마의가 자기와 싸울 뜻이 없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제갈량이 사마의 진영으로 사자(使者)를 파견하여 보냈다. 제갈량의 사자를 만난 사마의는 전쟁에 관한 것을 물음직 한데 그것을 한 마디도 묻지 않았다. 그리고 엉뚱하게도 제갈량의 일상생활을 물었다. 군사에 관한 일이야 군사기밀이지만 일상생활이야 군사기밀이 될 것이 없다.
그러니 제갈량의 사자는 잔뜩 자량을 늘어놓았다. ‘제갈공께서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저녁에 늦게 자는데 하루에 20판(板)이상의 징벌(懲罰)문제를 모두 친히 살펴보고 있습니다. 먹는 양은 몇 승(升)에 이르지 못합니다.’ 판이란 종이가 귀한 시절에 일반적으로 공문서를 쓴 목간의 단위이다.  목간 20판이 얼마의 무게인지 몰라도 매일 산더미 같은 이 서류를 검토하였으니 대단히 부지런한 셈이었다. 또 하루에 몇 승(升)을 못 먹었다니 구체적으로 얼마인지 모르겠으나, 사마의는 제갈량이 적은 량 밖에 먹지 못한 것을 알게 되었다.
이러한 제갈량의 행동은 어떠한가? 지혜로운 일인가? 아니면 우둔한 일인가? 전술에는 능하여 죽은 뒤에도 사마의를 이겼을지 몰라도 일상생활에서는 대단히 어리석은 짓을 한 것으로 보인다. 제갈량이 누구인가? 촉한의 기둥이었다. 유비도 죽고, 관우, 장비도 죽고, 놀기에 바쁜 유선(劉禪)이 황제로 있으니 나라의 운명은 제갈량에게 걸려 있는데, 자기 몸을 학대하는 셈이었다.
이 말을 들은 사마의는 제갈량의 사자를 돌려보내고 다른 사람에게 말하였다. ‘제갈공명은 밥은 적게 먹으면서 일은 번거롭게 많이 하고 있으니, 그가 능히 오래 버틸 수가 있겠소?’ 이 말은 적중하였다. 제갈량은 병이 들었고, 위독하여 졌다. 촉한에서는 큰일이었다. 누가 제갈량 뒤를 이어서 승상을 맡아야 할 것인가? 상서복야인 이복(李福)이 급히 제갈량에게 와서 문병하였다. 그러나 정작 제갈량에게 ‘당신이 죽은 다음에 누구를 세워야 할 것입니까?’를 물어야 하지만 차마 입을 못 열고 돌아갔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으니 며칠 만에 다시 제갈량에게 달려갔다. 제갈량도 그 뜻을 알고 스스로 말하여 결국 장완(張琬)을 추천하였고, 그 다음으로 비의(費?)까지 말하고 다음은 이야기 하지 않고 결국은 죽었다. 그 다음에 제갈량은 죽었고, 이때에 죽은 제갈량이 산 사마의를 이겼지만, 그렇다 한들 일시적인 일이지 국가 백년대계와 관계된 것은 아니었다. 누가 더 지혜로운가? 곰곰이 생각해 볼 일이다. 재주꾼이냐 먼 안목을 보는 사람이냐? 나는 오히려 먼 안목을 가진 사람에게 표를 던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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