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이제 꼭 한 달 되었습니다. 지금이라도 찾아오셔서 "왜 무거운 것은 들고 다니느냐, 그러다가 골병 들면 어쩌려고? 너희들보다야 내가 낫지"하시면서 잔소리를 하실 것만 같은데 다시는 못 오실 길을 떠나신 지가 벌써 그렇게 됐습니다.
여든 한 살의 섭섭하지 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셨다고는 하지만 자식들 마음이야 어찌 그렇습니까. 막상 떠나보내드리니 더 사셨으면 좋았을 것을 하는 아쉬움만 남습니다. 평소에 유난히도 자존심이 강하셔서 남에게 아쉬운 소리는 죽어도 못하시던 꼬장꼬장하신 성품에다가 늙어서도 자식들에게 신세 안 지시려 하시고 병석에 누우셨어도 자신의 나약하고 누추한 모습 보이는 것이 싫어서 대소변 처리는 당신이 직접 하셨습니다.
어쩌다가 외손자가 한 번이라도 갈라치면 꼬깃 꼬깃 모아둔 지폐 두어장 쥐어주시는 것을 잊지 않으시던 분이셨습니다. 유독 자식들에 대한 애정이 많으셨던 분이신지라 월요일에 전화를 안 드리면 자식들 집에 무슨 일이라도 난 줄 알고 노심초사 전화를 걸어서 확인하시는 분이셨습니다.
여기서 아버지라 부르는 어른은 나에게는 장인 어른이십니다. 장인이란 말이 왠지 거북하고 거리감을 두는 말 같아서 사위도 자식인데 그냥 아버지라 불렀습니다.
친아버지가 내 나이 8살에 돌아가셔서 아버지라는 단어가 주는 어감이 남들이 느끼는 것과 달랐습니다. 그래서 장인을 굳이 아버지라 불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남들이 다 장인이라 부르는 장인과 사위 관계임에도 유독 아버지라 불러주는 사위가 고마우셨는지 장인어른, 곧 아버지는 그런 나를 퍽이나 반가워하셨습니다.
외손주인 우리집 아이가 이번 대학 시험에 합격하면 입학식에 꼭 같이 가자고 하셨는데 그 바람을 풀어드리지 못했습니다. 외손주가 여럿임에도 우리집 아이를 그중 아껴주신 것은 아마도 여러 자식들 중에서도 우리가 사는 형편이 제일 걱정이 돼서 그러셨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언제나 새벽이면 자식들이 걱정스러워 기도하시던 모습을 이제는 바라볼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저 하늘나라에 가셔서도 자식들 걱정만큼은 유별나게 하시고 계실 것만 같은데 말입니다. 그런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자식들은 아버지의 유품 정리를 하였습니다.
아버지의 유품이라야 워낙 검소하게 사시던 분이시라 별다른 게 없었습니다. 너무나 아끼고 절약을 하시면서 사셨기 때문에 어머니, 그러니까 장모님과는 언제나 토닥토닥 다투셨습니다.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아버지가 주시는 돈이 너무 적어서 시장 한 번 가고 싶으실 때나, 목욕 한 번 가고 싶으실 때, 손주들 오면 용돈 몇 푼 주고 싶으실 때에 매번 주머니 걱정을 해야 하는 당신의 신세가 서글프셔서 그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의 쌈지돈 관리에 언제나 불만이 많으셨습니다.
그런 아버지의 유품 중에서 저금통장 하나가 나왔습니다. 다름 아닌 우리집 아이의 이름으로 된 적금통장이 말입니다. 그 통장은 올 2월 만기로 된 3년 기한의 100만 원짜리 통장이었습니다.
그 통장을 집어드시고 어머니는 다른 자식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통장은 아버지가 지난 3년 동안 지훈이(우리집 아이 이름) 대학 가면 등록금 주시려고 매월 2만 몇천 원씩 적금을 부은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시면서 어머니는 그 통장을 제 아내에게 주시면서 아버지가 지훈이 주려고 부은 돈이니까 너희가 가져가라시는 것이었습니다.
아내와 저는 정말 기가 막혔습니다. 이 돈 100만 원을 모으려고 어머님 목욕비도 잘 안 주시고 시장 볼 돈도 조금밖에 안 주시고 자신은 버스도 잘 안 타시고 걸어 다니시면서 모았을 텐데 그 돈을 받으려니 차마 용기가 나질 않았습니다.
아내와 나는 많이 망설였습니다. 노인네의 고래 힘줄 같은 돈을 어떻게 넙죽 받겠나 해서였습니다. 그렇지만 어쩌겠습니까, 주시는 돈이니 받아야지... 그 돈을 받아온 우리는 아직도 그 돈을 통장 속에 고이 모셔두고 꺼내 쓸 용기를 못 내고 있습니다.
그 통장과 돈을 볼 때면 아버지가 걱정하시는 모습이 떠올라서 차마 함부로 써질 것 같지가 않습니다. 지금도 통장 속에 잠자고 있는 100만 원을 어떻게 써야할지 더 고민을 해야만 하겠습니다. 어떻게 써야 아버지가 기뻐하실지를 말입니다.
첫댓글 부모님의 자식사랑은 한도 끝도 없이 하늘에 닿았습니다 *^^*
부성애의 극치입니다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