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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속초신협산악회 원문보기 글쓴이: 끼리(김기태)
야간을 포함한 장거리산행을 나홀로 한다는 생각을 해보지 않았지만, 어느날 문득 그것도 괜찮은 산행의 맛이 날 거라는 feel이 꽂히기 시작한 시점은 설악태극종주를 실패했던 때이다. 주 5일 근무는 꿈도 못꾸는 직업이라 토요일 하루 업을 팽개치고 산행을 하던 중 걸려오는 거래처 전화에 기분이 상했던 때이기도 하다. 핸드폰이 잘 터지지도 않는 상황이라 더더욱 그랬었지. 그나마 일요일은 휴일이라는 것을 인정해주는 것만으로도 다행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최소한 나에게는 말이다. 이런저런 여건이 딱 들어맞지 않아 생각해낸 것이 토요일 업무를 끝내고 홀가분하게 밤을 하얗게 새면서 일요일까지 이어지는 산행코스인데 혼자서 잘 되기나 할런지? 혼자라도 준비물은 대단했다. 양말, 방풍복, 코어텍스비옷, 행동식, 생수 2병, 빈 물병, 헤드랜턴, 손수건, 휴지, 압박붕대, 여벌 옷, 스틱. 스틱은 원래 하나만 가지고 다녔는데 야간에 무슨 일이 생길지 몰라서 호신용으로 하나를 더 장착했다. 2011년 7월 23일 17시, 심명섭님의 택시로 남교리까지 이동 후 뻑적지근할 나홀로 산행을 시작했다. 걱정으로 가득한 심명섭님의 얼굴에서 그의 마음이 어떤지 고스란히 느껴졌다. 속초의 날씨는 당장 비가 쏟아지기라도 할 것처럼 흐렸는데, 여기는 간간히 구름만 떠 있는 후텁지근한 날씨였다. 계곡의 바위에 폼나게 누워 망중한을 즐기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산해야 할 시간에 혼자서 거꾸로 등산하는 모양새가 여러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을까? 어디까지 가느냐고 자주 묻는 질문에 조금만 올라갔다 금방 내려올 거라고 대답하고 속으로 'my way!'를 외쳤다. 인적이 끊긴 복숭아탕을 혼자서 감상하는 시간이 이상야릇하게 느껴졌다. 서서히 밀려오는 어둠과 함께 인적도 자취를 감추고, 이제는 정말로 나 혼자라는 걸 느끼면서도 발걸음을 조금씩 앞으로 움직였다. 계곡물이 끝나는 지점에서 빈 물병에 생수를 보충하고 잠시 쉬면서 계속 진행해야 될지를 고민하는데, 바람에 나부끼는 나뭇잎소리에 등골이 오싹해졌다. 자꾸 약해지면 뭐하나, 나만 손해지. 어두운 것 빼면 오히려 시원하면서 한적하고 좋기만 하다는 생각은 왜 안 드는지? 허~참! 뻔한 산길이라 길을 잃을 염려도 없을텐데, 새가슴이 된 상태로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계곡에선 낮의 후텁지근한 기운을 쓸어가는 바람이 불었고, 솜털처럼 부드럽게 몸을 훓고 지나가는 그 바람엔 텁텁한 외로움의 냄새도 배어 있었다. 뒤돌아 보면 생각나는, 까마득히 잊고 있었지만 예전부터 느끼고 있었던 그리움을 닮은 외로움의 냄새였다. 미안함으로 남은 추억이 많아서일까? 어느새 나는 벌떡 일어나 바람의 냄새를 맡으며 두근거리는 새가슴으로 옅은 어둠 속을 걷고 있었다. 혼자 지난 일들을 되새기는 시간이 얼마나 있었던가. 이왕 이렇게 된 거면 홀로된 자유를 마음껏 누려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싶었다. 한참을 생각하며 걷는데 갑자기 장대비가 쏟아지기 시작해서 우중산행 모드로 바꿔 다시 출발했다. 이 비는 다음 날 날이 밝을 때까지 오다 말다를 계속 반복했다.
어느 순간, 가늘어진 빗줄기가 비옷에 떨어지는 소리 넘어로 적막을 뚫고 어디선가 들려오는 새의 울음소리. "쪽쪽쪽쪽...!" 참 희한한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얼핏 들은 얘기인데 짝을 찾는 쏙독새 울음소리라고 하더라. 벌건 대낮에 뭐하고 하필이면 밤에 짝을 찾느라 난리를 치는 것일까? 그러는 나는 밤에 뭔 역사질인지? 쏙독새와 나, 둘 다 뭔가 필요한 건 사실이다. 이제는 야생동물 퇴치용으로 배낭에 달아놓은 방울소리와 쏙독새의 울음소리가 박자까지 맞아진다. 산세가 점점 높아지면서 쏙독새의 울음소리가 멀어지더니 한동안 구슬이 부딪히는 쇳소리만 "땡그렁~, 땡그렁~" 들렸다. 비가 그치고 조금 더 산세가 높아질 때쯤, 이번엔 소쩍새의 울음소리가 아주 멀리서 들려왔다. "소쩍?, 솥쩍?, 솟쩍?" 맑고 명랑한 새의 울음소리를 글자로 표현할 방법이 없으니 새의 이름대로 "소쩍"이라고 해야겠다. 아무튼 두 글자가 맞는데, 이것도 희한한 소리이다. 그러고 보니 혼자서 심심하니까 별 걸 가지고 놀고 있었네? 아니지, 두려움을 떨치려는 나름대로의 방법을 터득하는 과정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소쩍새라도 날이 밝아질 때까지 나하고 놀아줬으면 좋은데. 부탁한다, 소쩍새야!' 그런데 대승령을 가리키는 표지목 앞에 섰을 때 새의 울음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언제부터 들리지 않았는지 알 수 없을 때부터 마치 환청인냥 공허하게 밤하늘을 맴돌았을 것이다. 아마도 바람처럼 휑하니 스쳐가는 느낌 외에 그 새의 울음소리를 듣지도 못 했을 것인데, 내가 너무 깊은 곳까지 들어왔음이라 그렇겠지만 이해되는 건 아무 것도 없었다. 산에서 느끼는 외로움은 속세에서 느끼는 그것보다 한 차원 넘어선 고독에 가까운 것이었다. 여기서 잠깐 서 있는 사이 땀이 얼굴과 등을 타고 줄줄 흘렀다. 산 속의 물기를 다 머금은 바지 가랑이도 촉촉히 젖었다. 여기의 물기는 내가 다 닦아주는 게 아닐까란 생각도 들었다. 여기 어디서 편히 앉아 쉬고 싶지만 그러는 사이 짐승이라도 달려들까봐 안전지대가 나올 때까지 그냥 움직이여야 했다. 안전지대라면 긴 철계단이 제격이지. 약간의 행동식은 배낭 허리벨트에, 생수는 옆구리에 있어서 굳이 배낭을 내려놓지 않아도 되었다. 능선에서 보이는 주변은 모두 검은색이어서 거리감을 느끼지 못 했다. 그냥 손을 뻗으면 산이 만져지기라도 할 것처럼. 좁지만 가도가도 그만큼 자꾸만 멀어지는 마법의 세상으로 들어온 듯했다.
이제부턴 어두움과 외로움과 두려움을 동시에 극복해야 되는데, 어쩌면 좋을까? 어두움과 외로움은 이겨낼 수 있는데 두려움이란 견디기 힘든 문제이다. 설마, 산짐승이 등 뒤에서 공격하는 일은 없겠지? 산을 타면서 지은 죄가 많아 이번 기회에 '신령님께 용서를 구하노니 좀 보살펴주신다면 은혜를 잊지 않겠노라'고 다짐을 해도 소용이 없었다. 보이는 건 헤드랜턴 불빛이 닿는 곳이요, 들리는 건 바람과 장난치는 나뭇가지소리와 방울소리일 뿐이었다. 시커먼 나뭇가지가 흔들리는 소리조차 짐승이 움직이는 소리로 들렸다. '오, 철계단이여 어서 나와라. 숨 좀 돌리게.' 마의 시간은 도망치듯 헐떡이며 한참을 걸어온 나에게 갑자기 불빛 앞에 "짜잔~!" 하면서 철계단을 보여주었다. 첫 번째 만난 계단은 짧아도 감지덕지로 고마웠다. 더도 덜도 말고 딱 계단 중간에 걸터앉아 모처럼 배낭을 내려놓고 가져온 떡으로 배고픔을 해결할 때에도 신경은 곤두섰다. 그러니 먹은 게 소화가 제대로 되겠나? 혼자서 흥얼거리는 말도 거창했다. '귀때기청은 알고 있느뇨, 올 때마다 감명을 받았던 순간들을. 지금은 잘 알 수 없으나 내 곧 거기에 가거든 무엇을 보여줄텐가.'
낮에 보았던 무지막지하게 긴 계단은 어디에 있는지, 그냥 불빛이 비추는 만큼만 보여서 얼마나 다행인지... 이런 것이 야간산행의 묘미인가? 그저 다시 나올 철계단만 생각하며 커브길을 확 꺽는 순간 시커먼 물체가 후다닥 내달렸다. 너무 놀래서 주저앉았는데 중간 크기의 멧돼지가 내가 가고 있는 등로를 따라 내달리는 것이 불빛에 포착되었다. "오메~, 산비탈도 있는데 하필이면 거기로 도망을 치는 거여, 나는 어떡하라고!" 안 되겠다 싶어 방울을 스틱 손잡이에 메달아 예배당 종 치듯이 요란한하게 흔들며 앞으로 전진했다. 철계단만 나오면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고 정신을 제자리에 갖다놓고 다시 출발하기를 반복했다. 밤 11시 30분, 자근자근한 너덜이 밟히는 것으로 보아 까맣고 우뚝 솟은 봉이 앞에 있음을 직감했다. 바로 귀때기청이다. 비를 맞으며 귀때기청을 오르는 내내 시원하다 못해 약간 차가운 바람이 사정없이 불어댔다. 바람과 함께 휘몰아쳐서 얼굴을 때리는 빗방울이 몹시 차고 따가웠다. 오를 때의 너덜은 그럭저럭 괜찮은데 내림길의 너덜은 어떤 모습으로 나를 맞아줄려나. 바람 덕에 힘들이지 않고 오른 귀때기청 정상에서의 풍경은 고요한 상태로 잠을 자고 있는 듯 온통 새까맸다. 어둠에 압도당한 나는 바람이라도 불어주지 않았더라면 그대로 주저앉아 뻗었을지 모른다. 여기서도 머뭇거릴 여유가 없었다. 아까 보았던 멧돼지가 쫒아오는 느낌을 버릴 수 없기 때문이었다. 나름 멧돼지를 따돌리기 좋은 장소가 너덜지대라는 판단이 섰다. 급한 상황에서 잔머리를 잘도 굴린다.
여기의 너덜은 낮에 보았던 그것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불쑥 튀어나온 돌들은 마치 유령이 득실거리는 듯했다. 이런 너덜지대는 설악산이 생긴 천만 년 전 중생대 말기 땅 속 깊이 묻혀 있던 암장이 땅을 뚫고 솟아오르면서 둥근 모습이었으나,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비바람에 씻기고 틈새가 벌어지면서 뾰족하고 움푹 패여 지금의 비경이 된 반면, 빙하기 이후 무너진 암봉이 산산조각 나서 생겨난 것이라고 한다. 그저 귀동냥한 것에 불과한 얘기인데 믿음이 가는 내용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오랜 세월의 늪이 그대로 녹아든 너덜과 상대적으로 짧은 다리가 진행을 더디게 했다. 다그치는 사람이 없어 좋지만서도 걷는 방법을 잊은 사람처럼 굳은 다리가 제대로 움직여주질 않았다. 어찌어찌 해서 너덜을 벗어나긴 했는데 캄캄해서 보이지도 않지만 뒤돌아 보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너덜을 통과하는 시간이 천만 년쯤 걸린 것 같았다. 어렵게 통과해서 보상받은 건 멧돼지를 따돌렸다는 뿌듯함이었다. '이제 24일 01시가 넘었다. 어서 새벽을 맞으러 대청으로 가야겠다.'
밤새 나뭇잎을 흥건히 적셨던 빗물이 길 위로 후두둑 떨어지며 지나가는 나그네를 계속 괴롭혔다. 고마운 바람은 졸음이 쏟아지는 나를 그런 방법으로 깨우고 있는 것이었다. 손톱모양의 빠알간 달이 모습을 드러내며 동화책을 읽어주듯 속삭이기도 했다. '이번엔 안개를 조심해...' 코 앞에만 보일 정도로 짙은 안개는 나만 따라다니며 기운을 빼고 있었다. 끝청이 가까워지고 있을 때, 꿈결처럼 지났던 시간의 장막을 걷어내고 날이 밝아오기 시작했다. 흐린 날씨라 아주 천천히 밝아왔다. 새까맣게 줄지어 솟은 것은 산이고, 희미한 달빛과 군데군데 반짝이는 별빛을 입은 옅은 검은색은 하늘이었다. 이제는 배낭을 내려놓고 쉬고 싶을 때 편히 쉬어도 된다는 것에 마음이 편해졌다.
끝청을 오르기 직전의 개선문이라 불리우는 휘어진 나무가 있는 곳에 다다랐을 때엔 온갖 감정이 솟구치며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여지껏 아무 생각없이 지나다녔지만 지금은 측은함과 위대한 생명력에 가슴 한켠이 숙연해지다니... 어느 겨울에 쌓였던 눈의 무게를 못 이겨 가지가 뜯기고 휘어져 끊어지는 아픔을 견딘 이 나무는, 또 다시 열매를 맺기 위해 애를 쓰는 것이었다. 죽었나, 살았나를 확인하려고 상처를 벗겨내고 스틱으로 쿡쿡 찔러댄 자국을 보니 사람들을 많이 미워하고 있을 것 같아 나무를 쓰다듬었다. 나무가 이토록 삶에 애착을 보이는지 이제사 이해할 수 있다. 비록 잡목일지언정 모두가 이름이 있듯이 이 나무도 씨앗을 퍼트려 설악을 구성하는 떳떳한 일원으로 영원히 남고 싶어서이다. 사람이라는 존재가 주는 고통만 없으면 비정상적인 자세로도 얼마든지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 나무에게 걱정되고 사랑한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나무도 살고 싶어해요! 스틱으로 나무를 찌르지 맙시다!' 이런 푯말을 달아주면 좀 나아질런지. 더 이상 사람의 호기심 어린 불장난으로 인한 고통이 없기를... 앞으로 여기를 지날 때면 몸을 낮추고 마음은 숙여야겠다. 깨어 있는 민족은 자연을 지혜롭게 이용할 뿐이지, 그 흐름을 바꾸거나 지배하려 하지 않음을 명심해야 한다. 8시간 안팍의 산행에서 느끼지 못 했던 자연과의 동화된 나를 발견하는 순간이었다.
안타까움을 뒤로하고 오르는 끝청의 오름길이 무척이나 힘들게 느껴졌다. 끝청에 올라서 해야될 일이 많았다. 물이 스며든 왼쪽 신발을 벗어 양말을 갈아신어야 했고, 배고픔도 해결해야 했고, 거시기 생리현상도 해결해야 했다. 그런데 엉덩이와 등이 돌에 닿는 순간 긴장감이 풀려서인지 스르르 잠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빵조각을 입에 문 채로 잠이 들다니, 봉정암에서 들려오는 염불 외는 소리와 목탁소리가 자장가로 들렸나? 그것도 잠시, 멀리 한계령쪽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 잠을 깼다. "슈~억!, 슈~억!" 텔레비젼에 나오는 동물의 왕국을 보면 숫사자가 영역을 침범한 놈에게 경고의 멧세지를 보내는 그런 소리였다. 환청인가 싶어 귀를 후벼파도 계속 들렸다. 멧돼지를 봤을 때처럼 머리털이 바늘처럼 섰고 몸이 후덜덜 떨렸다. "아이고, 나는 경쟁자가 아니라 조금 쉬었다 지나가려던 참이었거덩~." 먹다 남은 빵조각을 배낭에 때려넣고 멧돼지가 도망가듯 후다닥 중청으로 도망쳤다.
대피소에는 미리 잠을 깨고 일어나 밥을 짓는 동족들과 대청을 오르는 동족들로 붐볐다. 약 10시간만에 만나는 동족들은 밤새 분실물 없이 잘 주무셨는지? 지난 1월 16일에 잇었던 일이다. 추운 날씨에 연맹산행으로 대청에 오게되었는데, 맨 후미에서 올라온 우리들은 지하 취사장 입구에서 한참을 기다린 후에야 자리를 잡고 점심을 먹을 수 있었지. 연맹식구들과 개별로 올라온 사람들이 뒤섞여 난리통이었을 때, 여성회원 두 분이 배낭을 통로에 놓고 스틱 네 자루를 손수건으로 묶어 벽에 세워놓았었다. 그런데 먹고나니 누가 손수건만 달랑 남겨두고 스틱을 가져간 것이었다. 잃어 버린 두 분의 말이 걸작이었지. "괜찮아, 보시했다고 생각하면 돼~!"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열(?)관리를 잘 하시는 분들이다. 산을 오래 타면 그런 마음이 쌓이는 걸까? 산에 와서도 머리칼이 새고 속이 타는 일이 생겼는데 어찌 그런 마음의 고생을 참아낼 수 있었을까? '으이그...나는 언제나 보시하고 사나?' 이런 생각을 하면서 처량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자세로 밥짓는 풍경을 구경했다. 따뜻한 밥이 그리워서였다. 다행히도 내 몰골이 말이 아니었던지 어디서 오는 중이냐고 묻는 사람이 있었다. 남교리에서 밤새워 왔다고 빛의 속도로 대답을 했더니 기가차서 할말을 잃은 표정으로 입만 쩍 벌린 채 다물지 못 한다. 나는 그저 밥이라도 같이 먹자는 말이 나오길 바랬는데 전혀 그런 말은 없었다. 또 약해지면 뭐하나, 더 약해지기 전에 대청을 왕복하기로 했다. '나한테 보시 좀 하면 어디가 덧나나?' 예상했던 시간대에 여기까지 왔으니 마등령에 도착하는 시간도 통법으로 예측할 수 있었다. 대청에서 보이는 것은 온통 희뿌연색이어서 일출을 기대하기 힘들 듯했다. 그나마 보이는 것은 희뿌연색깔 틈으로 보일락말락 희미한 속초시내였다. 너덜에 걸터앉아 여유롭게 먹다 남은 빵을 먹으며 속초시내를 내려다보았다. 돌을 던지면 누군가 맞을 만큼 좁게 보이는 저곳이 나의 삶의 터전이자 전쟁터이다. 저렇게 좁은 동네에서 십 원자리 하나 더 먹겠다고 '서로 싸우면서 헤어지고 웃으면서 또 만나고'가 반복되는 곳. 하도 쥐뜯기고 살아서 단련됐다 싶었는데 또 쥐뜯기고, 쥐뜯기고...! 그런식으로 나를 아프게 했던 피플들을 길거리에서 만나면 울화가 치밀어 미쳐 버릴 것 같았다. 놀음밑천을 대준 꼴이면 받을 생각을 말아야겠지만, 나처럼 물건값을 뜯긴 경우엔 누구든지 아까워 죽겠다는 생각을 버릴 수 없을 것이다. 사기꾼 하나가 없어지면 멀쩡한 사람이 사기꾼이 되고, 정신 못 차리면 멀쩡했던 그 피플한테 뒤통수를 얻어맞는 일상이 반복되는 곳이다. 태어나면서부터 별난 사람을 다 만나게 되는데, 하필이면 조물주는 얍삽한 피플들의 비율이 적절하게 유지되게끔 만들었을까? 꼭 그래야만 세상이 제대로 굴러가는지 묻고 싶었다. 세상에 악다구니 쓴다고 되는 일이 얼마나 있겠냐마는, 나도 남의 애간장을 녹인 적이 많았기에 홀가분하게 보시했다는 마음으로 살면 될려나? '부디 떼먹은 돈으로 똥에 볘람빡을 칠할 때까지 잘 먹고 잘 싸기나 하쇼.' 옛날 도인들은 배가 고플 때 자기에 알맞은 양이 한 그릇임을 깨달아 그만큼만 먹으면 건강할 것이요, 분별없이 두세 그릇을 먹는다면 탈이 나거나 건강에 좋지 않을 것이라 했다. 남의 몫인 밥을 욕심으로 탐하면 죄를 짓는 것으로 결국은 자기한테 나쁜 결과로 돌아온다는 내용이다. 또한 어리석은 마음은 자기 스스로 잘 알 수 없으므로 평소에 닦을 수밖에 없다고 하였다. 어리석은 마음이란 곧 제 잘난 마음이며 탐심과 진심은 그래도 스스로 느끼고 닦아나갈 수 있지만, 제 잘난 마음은 스스로 깨닫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에 끊임없이 수행을 해야만 된다는 것이다. 나는 속이 좁아 무엇을 채울 수 없었던 놈이었는데 응어리졌던 욕심을 비우니 닦여진 뭐라도 채워진다. 결국 나를 힘들게 했던 본질은 나의 내면에 있었다. 사람이 땀을 흘리며 운동을 하면 어느 정도 생각이 정리되고 단순해진다는 말이 맞다. 가야할 길이 먼데 대청에서 너무 오래 머물렀다. 일어서려고 다리에 힘을 주었더니 쌍바위골의 비명소리가 "피~익!" 나오다 말았다. 더 힘을 주었으면 이물질이 쏟아질 뻔했다. 냄새를 살짝 흘렸을 뿐인데 산 속의 맑은 공기를 오염시켜 정신이 하나도 없는 와중에 맛이 갈 정도였다. 아침을 너무 과하게(?) 먹었더니만 더부룩한 속이 기어코 사고를 쳤다. 만사가 귀찮아지면 싸가지도 출장을 나간다더니 누구의 눈치를 볼 겨를이 없었다. 혹시나 하고 해맞이를 기대하는 관중들한테 미안한 마음은 있어서 조용히 짐을 챙겨들고 중청으로 내려갔다.
중청으로 내려가는 왼쪽에 한 사람이 숲에 들어가 뭔가를 열심히 촬영하는 모습이 보였다. 다가가서 뭐냐고 물었더니 여기가 눈(누운)잣나무 군락지란다. 신기하게도 눈잣나무는 오랜 세월 동안 자신의 몸을 땅에 닿을 듯 낮추어 주어진 환경에 순응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었다. 수 없이 겪은 겨울의 꽁꽁 언 땅, 살을 애는 듯한 강풍을 맞으며 숨도 못쉴 정도로 수북히 눈을 이고 있었던 바로 그 자리에서! 이곳의 식물들은 온실에서 곱게 자란 화초처럼 화려하지 않지만, 자기네만의 생존방식으로 평범한 꽃을 피우며 아름다움을 뽐내려 하지도 않는다. 서로 잘 났다고 피 터지게 싸움이나 하는 우리네 삶이 부끄러운 줄 알아야겠다. 가축이나 농작물은 주인의 발자국소리를 듣고 무럭무럭 자라지만 산에서 사는 동식물들은 그와 정반대이다. 자연을 살게 해줘야 자연이 사람을 살게 해준다는 이치를 왜 모르는 것일까? '그대로 두고 바라보면 될 것을 촬영하겠다고 마구 헤집고 들어가는 나쁜 피플들 때문에 나라 꼴이 이 모양이여...'
아린 마음을 알아주기라도 했을까? 희운각으로 내려가는 도중에 희뿌연색이 꼭대기부터 지워지는 장관이 펼쳐졌다. 구름이 휘감아 도는 공룡능선, 천불동계곡, 화채봉... 동쪽으로 뾰족하게 솟은 화채봉을 보니 쓸데없는 의문점이 생겼다. 대, 중, 소, 끝, 귀때기, 주위의 모든 봉이 '靑'자를 쓰는데 왜 화채봉만 '靑'자를 쓰지 않는 것일까? 별나게 특이한 점은 없어 보이는데 말이지. 그렇다면 나는 화채청봉이라 부르고 싶다는 짓궃은 생각을 했다. 그러고 보니 훨씬 세련되지 않을까 싶다. "오늘부터 화채봉을 '화채청봉'이라 명하노니, 백성들이 이를 어기고 화채봉이라 부르면 내 엄히 다스리겠노라!" 지난 1월 30일 방태산에 갔을 때, 거기에서 조망되는 화채청이 대청 오른쪽으로 보이던데 무슨 조화인지 아직도 궁금했다. 화채청이 대청 오른쪽으로 보이는 각도라면 방태산이 대청의 남서쪽이 아니라 남동쪽에 가깝다는 것인데 화채까지의 거리가 그리도 멀다는 말인가? 방태산은 조침령 넘어 인제군에 있는데 시선을 틀어 남동쪽에서 찾을려니 이미 희운각으로 내려가는 중이라 볼 수 없었다. 천불동계곡은 안중에도 없고 가야할 공룡의 등딱지를 보는데 "충분히 힘들게 해줄테니 얼른 와~!"라고 부르는 소리가 메아리쳤다. 헛소리가 들릴 정도로 몸뚱이가 지쳤나 보다. 여기부턴 지나온 시간이 얼마나 됐고 가야할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지는 중요치 않았다. 머리에 저장된 등로를 따라 움직이면 만나는 흙과 돌, 동물과 식물들, 바람이 나의 벗이요 영혼을 발혀 줄 등불인 것이다. '축 늘어진 내 물건을 보는 사람이 여성이라면 흥분될려나?' 잠시 여유를 갖고 젖은 옷을 갈아입으며 뒤돌아 보았는데 토사가 흘러내려 속살을 드러낸 채 신음하는 대청의 모습에서도 많은 생각에 잠겼다. '살점이 찟어지는 아픔일텐데...' 상처가 깊어 쉽게 아물지 못하는 모양인데 무슨 대책은 있는지 모르겠다. 혹여 수 많은 사람들의 몸무게를 견디지 못해 치유가 더뎌지는 것이라면 나도 대청을 아프게 했던 장본인이다. '대청이여 미안, 나를 받아만 준다면 앞으로는 경건한 마음으로 다녀갈 것을 약속합니다.'
무너미고개에 도착해서 팅팅 불어 아픈 발바닥을 주무르고 양말을 갈아신을 때, 술이 고파서 서글픔이 몰려와 포기하려 했지만 몸은 벌써 공룡으로 향하고 있었다. 지난 일들을 생각하면 내 몸이 충분히 힘들어야 용서될 일이 많았기에 지금 그렇게 하려고 하는 것이었다. 나로 인해 가슴아파 했던 산과 사람들에게 용서를 구하는 심정으로! 죄값을 치루며 올라온 신선대에는 사진동호회인들이 한껀을 기대하며 연신 셔터를 누르는 소리가 요란했다. 마등령 방향으로 앵글을 잡아보려 했지만 그들의 뒤통수와 미리 설치한 카메라가 방해되었다. 여기서의 풍경은 주변에 보이는 모든 것이 변화무쌍한데 털끝만큼도 인위적인 흔적이 없이 장쾌한 파노라마처럼 이어지는 드라마였다. 생각나는 시라도 읊고 싶은데 입에서만 빙빙 맴돌지 도무지 생각나지 않았다. 신선의 그림자도 밟을 자격이 없지만서도 비슷하게 신선이 된 느낌으로 몇 장을 카메라에 담고 신선대를 내려섰다.
신선대에서 거리를 두고 보았던 비경은 어디에 숨었을까? 마등령으로 진행하는 동안 보이는 암봉이 모두 크고 멋있어 조물주가 그런 모양으로 본을 떠서 갔다놓은 것처럼 신기하고, 바람과 오랜 세월이 조각한 예술작품과 같았다. 벼랑 끝에 매달리듯 뿌리를 내린 소나무에서 강한 생명력이 꿈틀대는 포스가 느껴지고, 다른 면으로 보면 한폭의 동양화로도 보였다. 눈을 가늘게 뜨고 생각을 달리하면 추상화로도 보여 애매모호한 세계에 빠져드는 느낌도 들었다. 여기서의 풍경은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 수식어를 찍어다 붙여도 형용하기 힘들 것인데, 나 같이 해박하지 못한 존재가 무슨 표현을 할 수 있겠는가. 굳이 말로 표현하지 않으련다. 여기를 지나는 것 자체가 아름다움과 힘듦의 정점이라 주위를 둘러보며 쉬엄쉬엄 걸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공룡의 중간쯤 되는 곳, 샘터에 왔을 때 백담사에서 마등령으로 올라오는 당일 산행팀에서 무전이 왔다. 시간상으로 내가 먼저 마등령에 도착할 것 같다는 내용이었다.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지면 더 힘들 것 같아 샘터에 보따리를 풀고 시간을 떼웠다. '아, 잊고 있었던 비상약이 있었지.' 포켓용 소주를 꺼내 바로 한입에 털어넣었더니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는 느낌이란, 캬소리와 함께 소스라치는 살떨림으로 바로 효과가 나타났다. 온 몸에 힘이 쭉 빠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진작에 생각났으면 귀때기청구간을 취권으로 용감하게 들이댈 수 있었는데. 무게를 줄이고자 줄일 건 다 줄였는데 역시나 그것만은 챙겼다는 것에 스스로 대견스러웠다.
취기가 올라 맹~한 상태로 걸으니 힘든 걸 못 느끼는데 그것도 금새 땀으로 다 빠져버려 다시 힘들어졌다. 내리막은 잠시, 오르막은 길게 느껴져 주위를 둘러볼 여유도 없이 가슴이 터질듯한 힘겨운 오름길이 나오면 자주 쉬어갔다. 마등령이 가까워졌을 때 '목적이 있는 산행'과 '그냥 산행'이라는 주제를 놓고 고민하기 시작했다. 마음의 여유를 찾으러 산에 왔는데 잘 꾸며진 이 길을 날로 먹고 가는 나는 행복한 초보산꾼이던가? 예전의 선배님들에 비하면 풀 한 포기보다 못한 나의 나약함에 정신이 혼란스러웠다. 또, '전투적인 산행'과 '일반적인 산행'의 차이점은 무었일까? 전투적인 산행은 목적이 뚜렸하나 맹목적인 산행으로 변질되기 쉽고, 일반적인 산행도 목적은 있으나 맹목적인 산행으로 변질되는 건 마찬가지다. 높고 낮음의 차이뿐이지 좋고 나쁜 산은 없지 않을까? 나는 지금 엉뚱한 핑계로 자신의 한계를 시험하면서 몸을 혹사시키며 맹목적인 산행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마치 장마철에 못한 산행을 한꺼번에 봉창이라도 하듯이. 아니면, 본의 아니게 산행을 못 하는 동료들의 거친 숨소리를 대신하듯이. 물론 둘 다 산을 좋아해야 가능하지만 자신의 마음을 닦고자 고생을 감수하러 산에 왔다면 어디에 포함시켜야 될런지? 충분히 힘들어야 용서될 일이고 뭐고 작심 몇 시간이 된 지금, 되돌아가기엔 너무 먼 곳까지 왔는데도 괜히 공룡을 밟았다는 후회스러움이 발목을 붙잡고 놓아주질 않았다. '아, 외롭고 힘들다.' 살면서 겪었던 그 어떤 고통보다 더한 존재적 위기의 순간이 지금이던가. 인내심이 바닥난 내 표정을 누가 봤으면 금방 폭발할 것 같이 날카로운 신경질주머니가 얼굴에 주렁주렁 매달렸다 했을 것이다. 그런 내 모습을 상상했더니 웃음이 막 나오려는 순간 속으로 삭혀야 했다. 신라의 혜초스님과 조선의 김금원님에 비하면 후회스럽다는 나의 생각은 주제넘는 어리광에 불과한 것이지.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 했던 혜초스님의 기분이 어떤 건지 느껴보기나 했는가. 힘들다는 마음이면 몸도 힘들어지는데 걸을만 하다는 마음이면 피로감이 덜 느껴지는 것이다.
마등령을 지척에 두고 쉬는 시간에 합류하기로 했던 동료들이 더 늦어질 것 같다는 무전이 왔다. '그러면 나는 그동안 뭐하고 노나?' 마등령에 도착한 시간은 24일 오전 11시이다. 안개로 가득한 칙칙한 날씨에 밤새워 걸으면서 젖었던 옷을 꺼내 출입금지용 로프에 말리고 오가는 사람들 찍사노릇도 했다. 그것도 힘들어 금방 싫증을 느껴서 머리를 무릎에 파묻고 쪼그려 앉아 하염없이 기다렸다. 밥을 먹으려고 배고픔도 참아가며 앉아 있으니 졸음이 몰려왔다. 배낭을 베개삼아 드러누워 잠을 잤는데 얼마 못가 추워서 눈을 떴다. 그 사이 깨알 같은 벌레들이 온 몸을 뒤지고 다니며 간지럼을 태워 툭툭 털어냈다. 옆에서 본 사람들은 다람쥐들이 수도 없이 내 몸을 타고 넘나들었단다. 30분 놀고, 1시간 자고, 약 1시간 30분을 추위에 떨며 더 기다린 후에야 숲을 헤치고 나타난 동료들과 합류했다. 오히려 나 때문에 배고픔을 참고 올라온 그들보다 내가 더 보기좋은 몰골을 하고 있어 힘든 내색을 못 했다. 정말로 미안하고 고마워서 더더욱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 늦은 점심을 먹고 비선대로 하산하는 시간은 홀가분하고 동료들이 있어 든든했다. 돌이켜 보면 악조건을 다 이겨낸 기구한 사연이 많았던 35km, 24시간이었다. 이젠 한이 맺힌 술도 실컷 먹고 며칠간 푹 쉬어야지...
첫댓글 또 읽어 보아도 재미있네.
다른 이야기도 기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