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미와 선비
글 김덕호
몇주전 한여름 주말, 때마침 교육계에서 제법 이름있는 후배 둘이
휴가차 내려와 오래간만에 회포를 푸는 자리를 가졌다.
소수서원과 선비촌을 둘러보면서 다시금 우의를 다졌다.
각자 자기 분야에 대한 정보를 교환하는 등 매우 유익한 시간이었다.
하나는 대학교수이고 또 하나는 고급관리였다.
학술서클에서 만난 우리는 학창시절부터 각자 자기분야에서
대의를 위해 고민도 하고 결단도 하고
의기투합하기도 했던 거리낌 없는 사이었다.
때로 이념노선을 달리할 때는 앙숙처럼 토론을 하면서
어느새 이해의 폭도 넓어지고 더 가까워졌다.
수년간 자기영역에서 지금 위치까지 정신없이 바쁘게 달려왔다.
그러나 한편 공허하고 외로운 마음을 달래려고 영주에서 선배님 모시고
그간의 살아온 얘기를 나누고 싶다는 것이었다.
참 인성이 좋은 인재들이었고 재회를 기대하는 마음이 그만큼 컸다.
영주시 순흥면 내죽리 선비촌의 한 식당 툇마루에서 이른 저녁식사를 시작했다.
이런 저런 살아온 얘기꽃을 피우면서 서로 마주보며 흥을 돋구었다.
우리 얘기에 장단을 맞춰주려는 듯이 참매미, 쓰름매미, 말매미의 윤창(돌림노래)이 이어졌다.
선비촌에서 잠시 머무르면서 진지하게 나누는 교육에 대한 대화가
400여년간 수많은 선비들을 길러낸 소수서원에서 풍겨 나오는 향취속에 무르익고 있었다.
소수서원은 선비촌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어 인격을 갖춘
나라의 인재들을 길러냈던 선비들의 교육기관이다.
조선 중종 37년(1542)에 풍기군수 주세붕이 안향을 제사하기 위해 사당을 세웠다가,
그 이듬해 유생들을 교육하면서 백운동서원이라 했다.
명종 5년(1550)에 풍기군수 이황(퇴계)의 요청에 의해 ‘소수서원’이라고 사액을 받고
나라의 공인과 지원을 얻게 되었다.
우리나라 최초로 공인된 사액서원(사립대학)인 셈이다.
다른 서원들보다 앞서 세워졌으므로 건물은 비교적 자유롭게 배치되었다.
정문으로 들어서면 강당인 명륜당이 있고
학생들이 머물며 공부하는 일신재와 직방재가 이어져 있다.
서원의 일반배치가 강당 좌우에 대칭으로 동ㆍ서재를 두는 데 비해
소수서원은 현판의 이름으로서 구분하였다.
사당은 명륜당의 서북쪽 따로 쌓은 담장 안에 있다.
여기는 원래 통일신라시대의 절인 숙수사가 있었는데
그 유적으로 당간지주와 초석 등이 남아있다.
소수서원은 조선시대 후기 대원군이 서원을 철폐할 때도
살아남아 꿈이 있고 뜻있는 젊은이들에게 선비의 정신과 삶을 가르쳐주었던
교육기관으로서의 자용(姿容)을 보여주고 있는 곳이다.
지금도 배움의 방향과 방법은 물론 도야성(陶冶性)을 개발하여
선비로서의 인격을 어떻게 세워 나가야 할지를 가르쳐 주는 곳이다.
소수서원 뜰의 오래된 소나무를 바라 볼 수 있는 여기서
대화하고 있다는 자체가 의미가 컸다.
먼저 교수가 꺼낸 얘기였다. 현재 우리나라의 교육현실은 우려 반 희망 반이다.
이제는 올바른 교육관을 가진 뜻있는 학부모들이 결집해야 한다.
최근 진보성향의 교육감 및 관리들의 행보에 대해서 열을 올렸다.
교육은 급한 진보도 안되고 과거에만 머물러 있어도 안된다.
“온고지신(溫故知新)”의 근간위에 사심 없고 정치색 없는 교육이어야 하는데 큰일이다.
인기영합과 포퓰리쥼에 능한 자들이 현 정권이 무한경쟁교육을 조장한다고
허위사실을 학부모인 유권자들에게 유포해 당선 되었다.
내용도 잘 모르고 후보에 대해서도 잘 모르는 유권자들이
우선 듣기 좋고 보기 좋은 말에 속아 넘어갔다는 얘기다.
그렇게 당선된 그들이 학생들에게도 똑같은 약속들을 쏟아 내고 있단다.
교사들에게도 평가 받지 않는다고 공언하면 임기 4년이 얼마나 쉽고 편안하겠느냐는 것이다.
실은 이전 정권보다 교육의 경쟁 요소를 줄였는데도.
다른 후배와 나도 주거니 받거니 얘기를 이어갔다.
국가의 교육정책이 인기영합으로 흐르면 결국 학생, 사회, 국가 모두에게 큰 독이 되어 돌아온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아는 그들이다.
그런대도 그렇게 하고 있다.
국가 인재를 기르는 교육에서는 경쟁이 불가피한 것이 냉엄한 현실이다.
특히 선진국은 치열하다.
그럴때 일류 국가가 된다.
우리가 지금 이만큼 경제 부국을 이룬 것은
경쟁력 있는 인재 양성을 해왔기 때문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이제 전국 16명의 교육감 중 6명의 진보가 쏟아내는
감각적인 이슈들이 일방적으로 가지 않도록 견제해야 한다.
참 교육을 바라는 침묵하는 다수의 힘을 발휘해야 할 때다.
대한민국의 교육자인지 의심스러운 자들을 가려내자는 것이다.
이념과 정치색을 교묘하게 덧칠하는 교육자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역사와 현실에 대한 올바른 교육관은
당연하고 인성과 사회성과 도덕성을 갖추고 있는 자,
사고와 인간관계가 균형 있고 원만한 교육자여야 한다.
좌로 편향되어있는 자들이 대거 대한민국의 교육을 주무르고 있으니 큰일이다.
극도의 개인주의적 교육인데다 민감한 사안을 국가전체를 생각하지 않고
민주적인 절차 없이 소영웅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으니 말이다.
학생들이 진정 배워야 할 것과 합리적으로 생각해야 할 것과 존경할 만한
스승상을 보이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만의 도식화된 사상과 이념을 주입시키고 있다.
그러기 위해 코드 인사는 도를 넘고 있는 실정이다.
학생은 교육을 받아야 하는 미성년자이며 아직 백지상태의 연령층이다.
따라서 백지에다 무엇을 그려 넣고 무엇을 채우는지
교육감이나 일선 교사들을 우리 모두가 철저히 감시하고 견제해야 한다.
중용이 필요한 때다. 그리고 참스승을 가려내야 할 때다.
최근 교육계가 야단스럽다. 스스로를 가장 민주적인 교육자라고 주장하던
현장 교육책임자들이 가장 비민주적이고 가장 독선적이고
일방통행식 행보를 하고 있다는 보도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교육 바로 세우기 연합체 같은 단체가 조직되어 활동을 서둘러야 한다.
후손들의 미래교육에 대한 얘기를 듣고 있노라면 가슴이 꽉 막히는 듯 했다.
대입시, 급식, 과외문제와 강도 높은 가정교육과 사회교육의 필요성에 대한
얘기를 하다가 강남학군 모 아파트 단지 내 매미 사건 얘기도 나눴다.
보도되지 않은 것이 이상할 정도의 내용이었다.
얘기인즉, 방학 중 학생 자녀들의 공부에 방해를 주는 매미를 없애기 위해
단지 내 나무마다 살충농약을 살포하자는 반상회의 결의 내용이다.
갑론을박도 없이 진행되었다는데서 가슴이 아팠다. 처음에는 설마? 했는데 사실이었다.
세상에! 공부하는 일부 자녀를 위해 매미를 집단 학살한다?
그것도 여러 주민들이 합의해야 하는 반상회에서.
하기야 집단이기주의를 간혹 생산한다는 보도에 매를 맞기도 하는 모임이긴 하다.
어떻게 생각해야할까?
난 이 얘기를 듣고 한참이나 얼떨떨했다.
좀 더 설명하자면 살충제를 탄 분사기(가로수나 과수나무에 약을 치는 큰 기구)를 사용하여
단지 내 모든 나무에 친 결과는 어떠했겠는가?
수많은 매미뿐 아니라 잠자리와 풍뎅이, 나비 같은 무해 곤충들이 땅바닥에 즐비했다고 한다.
땅바닥에 나뒹구는 매미들이 왜 한꺼번에 죽어있는지
왜 다른 곤충들도 함께 죽어있는지를 생각하면서 걷는 사람들이 없었다는 얘기다.
부모를 통해 이런 상황을 바라보는 자녀들은 과연 무엇을 배우고 무엇을 생각하겠는가?
이 행동들이 과연 학부모로서의 바른 자식 사랑일까?
이렇게 해서 한자라도 더 암기해서 좋은 대학에 들어간들
자연환경에 대한 사랑과 생명존중에 대한 교육이 공염불이 되는 건 아닌지?
“내 아이 만큼은 특별하고 최고다”라고
모든 학부모가 똑같이 자기자녀에게 가르치니 과연 그들의 인성이 어떻게 될까?
이들과 더불어 살아야 하는 공동체적 자연환경관, 배려와 양보와 겸손의 덕목,
인간에게 맡겨진 자연환경을 아끼고 보존하고 존중해야 할 청지기쉽은 찾을 수 없는 걸까?
비뚤어진 자녀사랑의 결과는 부모 자신과 자녀에게로 결국 돌아온다는 점이다.
반상회에서 한명이라도 생각이 깨어있지 않았을까?
오히려 매미를 낭만과 휴머니즘을 담아 아름다운 노래를 전하는
싱어라고 생각하는 학생 한명이라도 있었을 텐데.
6년에 걸친 긴 세월을 어두운 땅속에서 희미한 희망 한 가닥을 안고
게다가 많은 천적을 피해 지내다가 겨우 성충이 되어 한여름 한달 가량을
열심히 싱어로서 살다가 생을 마친다는 생활사를 조금이라도 아는 학생이 있다면
반상회에서 학부모들에게 당당하게 말을 했을 것이다.
해충으로 결론짓고 박멸한다 해도 인간은 참 잔인하다는 생각이 든다.
감정도 인정도 애정도 메말라가는 이 시대에 우린 무엇을 위해 살며
어디로 가려고 그렇게 바쁘게 움직이는지?
이젠 학부모들의 의식도 바뀌었으면 한다.
내 자식이 귀하면 다른 집의 자식도 귀하다는 것, 또한
자연환경의 고마움을 가정교육을 통해 가르쳐야 한다.
자연환경은 사랑하는 만큼 우리에게 플러스를 주고 파괴하는 만큼
마이너스를 준다는 증거는 세계 기후예보를 얘기 안 해도 스스로 느끼지 않는가?
우리가 물고기를 잡을 때 낚시나 투망은 허용이 되어도 전기충격기는 사용할 수 없다.
씨를 말리는 행위이기에 불법이다.
마찬가지로 사람에게 그다지 해충이 아닌 매미를 시끄럽다고 학살 한다는 건
그 아파트 단지 주민들뿐이겠는가?
아프고 힘들게 껍질을 깨고 세상에 나와 단 한번도 노래를 불러보지 못한
수많은 생명들을 조금이라도 생각한다면!
하기야 내 새끼가 아니면 남의 새끼야 어찌되건
무관심해져버린 이 세태를 어떻게 설명해야 될지?
가정에서 못 다한 인성교육을 학교교육을 통해 조금이라도 실천하고자 하는
다수의 참 교사가 훈육에 필요한 체벌임에도 불구하고
과잉보호하는 학부모에 의해 구타당하거나 피의자가 되는 암담한 교육현장이 참 모습인가?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을 만큼 교육질서는 지켜져야 하고
“책씻이”라는 행사(서당에서 책 한권을 다 배우면 학생들이 스승에게 감사하여 한턱내는 행사로서
동료들끼리 친교하면서 글공부 내용을 되짚어보는 일종의 졸업 잔치)를 통해
진정한 배움의 즐거움과 사제지간의 예의는 온데간데없어졌으니 미래가 한없이 걱정된다.
지나친 환경파괴 행위에 대해 취재차 들이닥친 기자들을 설득해
보도가 나오지 못하도록 했다는 데서 마음이 더 아팠다.
이젠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인간 회복이 되어야 한다.
참 인간상과 거기에 따른 도덕이 회복되어야 한다.
하늘이 무서운 줄 알고 자연의 인과율(因果律)을 깨달으며 창조주 아래서
평등한 인간관계와 자연환경에 대한 존중이 없이 삶의 질이 높은 지구촌이 될 수 있을까?
법으로 정한다고 준법할 것 같은가?
CCTV를 설치한다고 해서 해결되겠는가?
회의한다고 해서 해결될 것인가?
환경 사랑은 마음에서부터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
내가 자연 앞에서 겸손하고 배려하는 마음 말이다.
자연은 공존관계라는 것을!
매미는 곤충으로 보면 하찮은 미물에 불과하다.
하지만 미물의 가슴팍 성대에서 진동하면서 발성하는 소리는
중장비가 내는 소리와 비슷한 80~90 데시벨(dB)로 매우 크다.
남아공의 부부젤라의 120데시벨에 버금가는 소리크기라서 “매미젤라”라 불릴 정도이다.
소리 주파수대가 2500~5500헤르츠(Hz)로 사람의 귀에 가장 잘 들리는 영역에 있으므로 크게 들린다.
리듬, 음정을 이해한다면 참으로 훌륭한 싱어로서 신기할 따름이다.
어릴 때 곤충채집 숙제는 의무적이라서 딱히 매미에 대한 특별 관찰은 하지 않았던 것 같다.
환경의식이 강하게 일어나는 나이가 되면서부터
그리고 허물벗은 껍질이 한약재로 사용되고 있기에 매미에 대한 지식을 갖게 되었다.
산림녹화가 잘 되어있기 때문에 수액으로 생존하는 매미는 그 숫자가 많다고 추측할 수 있다.
천적도 그만큼 늘어나고 기온도 변수가 된다. 하지만 농약, 화학비료 등이 스며들어 있어
친환경적이지 못한 흙속에서의 6년이라는 긴 생활사를 갖고 있기에
끝까지 생존할 가능성은 오히려 상쇄된다고 볼 수도 있다.
어떻든 생존조건을 종합적으로 본다면 7년째 성충매미 숫자는
적정 숫자로 유지되어 왔으리라 생각된다.
몸크기에 비해 소리 크기는 동물세계에서는 가장 크다.
따라서 예민한 사람에게는 고통을 줄 수 있음도 사실이다.
특히 밤에는 낮보다 온도가 낮은 공기 때문에 매미 소리가 멀리 퍼지지 못하고
지표면을 향해 굴절되므로 더 크게 들린다.
이 때문에 진료실을 찾는 불면증 환자가 있고 야간 공부에 방해를 주기는 한다.
진료실 예를 들어본다. 한 중년 여성이 불면증으로 진료실을 찾아왔다.
수년간 이혼과 자녀문제, 고부간 갈등과 갱년기 증상으로
불면증에 시달려오던 데다
금년은 폭염과 장기간 열대야와 매미소리 때문에 밤을 꼴딱 샌다는 것이다.
집이 산기슭에 있고 주위 테니스장에서 나는 사람소리 공소리,
환한 전기불에 매미가 밤중에도 활동한다고 했다.
이 경우 매미소리가 밤잠을 설치는 원인중 하나로 작용했다.
침술치료와 약 처방과 함께 매미소리를 소음공해로 생각하기 보다는
음악소리로 바꾸어 긍정적으로 생각할 것을 권유했다.
소음이냐 노래냐 하는 건 그때그때 생각하기 나름이 아닐까?
미물 매미에게 주어진 소리선물, 참매미, 말매미, 유지매미, 쓰름매미 등
각자 다른 소리, 그 얼마나 경이로운가?
여름을 알려주는 전령자, 새벽을 알려주는 기상나팔 수,
자기들대로 순서와 질서를 지키면서 소리 내는 사회동물로서의 약속,
알고 보면 짧지만 굵게 살다가는 생명체이다.
위로부터 부여된 30여일간 소명을 다하고 가기에 굵게 산다는 것이다.
미물 하나까지도 그 생명을 배려해야 할 인간들이,
더 큰 힘을 가졌다 해서 이기적 이익을 위해서 잔인하리 만큼
비신사적인 우리 인간들이 겸손히 배워야 할 대목이다.
옛 성현과 선비들은 매미를 벗으로 여겼다.
잠자리나 나비와 같이 사람 생활속에 깊숙이 들어와 있지만
매미는 글 공부하는 이들에게는 친구같은 특별한 존재였다.
매미없는 여름은 생각 할 수도 없었고 매미소리가
여기저기서 요란하게 들려야 비로소 여름답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특히 서당과 서원은 주로 산속이나 나무숲에 둘러 싸여있는 한적한 곳이므로
매미소리는 졸음을 쫓는 음악이요 어떤 때는
마음먹기에 따라 상황에 따라 자장가로 들리기도 했다.
정자나 툇마루에서 소리내어 읊어대는 글공부는
매미의 소리장단과 어울리기도 하고 소리크기 경쟁도 했을 것이다.
여름 한철 짧은기간 소리의 정체성으로
만나고 나누고 격려하는 선의의 경쟁 관계였던 것이다.
선비들은 글공부에서 시끄럽고 방해하는 존재로서의 부정적 생각보다는
긍정적인 마음으로 매미를 대했던 것을 지금 우리는 명심해야한다.
다섯 가지 덕목에서 닮았다.
첫째는 매미의 머리는 갓(관,冠)끈이 달려있는 형상이므로 문(文)을 연상한다는 것이다.
큰소리내서 글공부하는 선비와 닮았다.
6년이라는 긴 세월의 각고 끝에 얻은 기회요 자격이며 비록 짧은 생을 살고 간다 하더라도
자신의 소명을 실천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결심이 선비와 매미가 닮은 점이다.
둘째로 이슬을 먹고 나무의 깨끗한 기운을 먹고 살므로
맑고 여름에 맑은 소리를 낸다 하여 (청, 淸)이라 하는데서 닮았다.
셋째로 곡식을 축내지 않고 욕심이 없으며 부끄러움을 알고
체면을 차릴 줄 안다는 면에서 염(염, 廉)이 있다.
넷째로 안정적인 살 집조차 없을 정도로 검소하니 검(검,儉)이 있다.
마지막으로 약속과 신의를 지킬 줄 알므로 신(신,信)이 있다.
철에 맞추어 오가고 허물을 벗으며 자신의 정체성을 변함없이 나타내기 때문이다.
군자가 지녀야 할 오덕(五德)을 갖추고 있어
예부터 군자지도(君子之道)를 상징할 때 매미를 거론한다.
또한 홀로 어두운 지하에서 긴 준비 기간의 수행을 통해 인내와 끈기라는 또 다른 덕목도,
때를 기다릴 줄 아는 지혜도 사람들에게 보여준다.
매미의 특징에 대해 좀 더 살펴본다.
매미는 동물분류표상 매미목에 속하는 몸길이 약 10~80mm의 곤충이다.
머리는 크고 겹눈은 튀어나와 있으며 홑눈은 보통 3개가 정수리에 서로 접근하여 붙어 있다.
촉각을 담당하는 더듬이는 짧고 겹눈 사이의 앞쪽에 나 있으며 5∼9마디로
밑마디와 제2마디는 다소 굵고 거기에서 앞쪽은 털처럼 가늘다.
입은 머리에서 시작해 길쭉하다.
날개는 2쌍으로 앞·뒷날개 모두 잘 발달되어 있고 앞날개는 막질이다.
앞다리의 넓적다리마디는 굵고 아랫가시가 있다.
뒷다리의 밑마디는 움직이지 않으므로 펄쩍 뛰어오르기에는 알맞지 않다.
발목마디는 3마디이다. 앞가슴등판과 가운뎃가슴등판은 크고 넓으며 가운데가 볼록하다.
수컷에서는 배의 기부 양쪽 안쪽에 특수한 발성기관이있다.
암컷의 배 끝에는 긴 산란관이 있다.
발성기관은 V자 모양의 굵은 근육으로 되어 있으며 발음기라고 한다.
근육을 수축하면 등판 안쪽에 있는 원형의 발진막[鼓膜]이
발음근 끝에 있는 건판(腱板) 위의
건돌기(腱突起)에 붙어 있으므로 잡아 당겨져서 오므라들면서 소리를 낸다.
발음근이 늘어나면 발진막은 원형으로 되돌아가는데 이 때에도 약한 소리를 낸다.
근육의 수축과 이완이 연속적으로 일어나면
독특한 울음소리가 되는데 복강의 대부분이 공명실(共鳴室)로 되어 있으므로
그 소리가 훨씬 크게 확대되어 몸길이에 어울리지 않는 큰 소리가 된다.
발진막은 키틴질이며 탄력이 있고 표면에 갈색 줄무늬가 있다.
발진막의 진폭 조절은 발음근의 기부에 있는
장근(張筋)이 한다는 근원설이 설득력 있다.
소리 횟수와 진동수는 조도(照度)나 온도와 관계가 있고,
소리에는 종류에 따라 분명한 주기성이 있다.
일반적으로 암컷은 발음하지 않으므로 벙어리매미라고 한다.
또 예전에는 귀가 없는 곤충이라고 생각했고,
매미가 울고 있는 곁에서 대포를 쏘아도 아무렇지 않았다는 기록이 있다.
청각은 배판 밑의 경막에서 감수하며 같은 종의 발음진동수에 가장 민감하다.
번식기가 되면 종마다 이러한 발음기를 이용해 독특한 소리로 자신의 짝을 찾는다.
소리의 종류는 수컷이 암컷을 유인할 때 소리내는 유인음, 암컷이 가까이 오면
속도를 높여 우는 짝짓기음, 그리고 다른 수컷의 방해로 인한 질투음,
적에게 잡혔을 때의 위협성 경고 또는 비명음 등 여러 가락과 장단이 있다.
한국의 매미는 매미아과(Cicadinae)와 좀매미아과(Tibicininae)로 나눌 수 있는데,
매미아과에는 털매미·깽깽매미·유지매미·참매미류·애매미·쓰름매미·소요산매미 등이 속하고,
좀매미아과에는 세모배매미·호좀매미·두눈박이좀매미·풀매미·고려풀매미 등이 속한다.
예로부터 여름 곤충을 대표해 왔는데, 흔히 볼 수 있는 참매미·쓰름매미·애매미·유지매미·말매미 등
보통의 매미들은 여름이 시작되어야 울기 시작해 여름 내내 울다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모배매미· 풀매미·고려풀매미 등은 아직 봄인 5월 하순에 처음 나타나고,
늦털매미와 같이 늦여름에 나타나 가을을 지내다 가는 종도 있다.
대부분 나무에 붙어서 살지만 풀밭에서 사는 특이한 매미도 있다.
풀매미는 몸길이 17mm 정도로 몸빛깔이 대부분 녹색이다.
풀매미는 나무보다는 풀에 앉아서 소리 내는 특이한 생태를 가지고 있다.
소리도 풀밭에서 우는 메뚜기나 베짱이류의 소리와 닮아 구분이 쉽지 않다.
성충 매미는 길쭉한 바늘 모양의 입을 나무의 체관[篩管]까지 밀어 넣은 다음
가늘고 부드러운 혀를 길게 늘여 거기에서 당분을 빨아먹는다.
일반적으로 여러 나무에서 수액을 빨아먹는 다식성으로 좋아하는 특정한 나무가 있지는 않다.
옮겨 다니다 보니 농작물의 해충인 식물바이러스의 병을 매개하기도 한다.
많은 종류가 밀랍을 분비하며 특이하게 감로(甘露)를 배설하는 종류도 많다.
교미가 끝나면 암컷은 바늘처럼 생긴 산란관을 식물조직 속에 꽂아 알을 낳는다.
종류에 따라 산란흔(産卵痕)을 남기고 그 간격이나 알의 수 등이 다르다.
유지매미 등에서는 사과·배 등의 과일에 산란해 과일을 상하게 하는 등의 해를 끼친다고 알려져 있다.
부화까지의 일수는 털매미와 저녁매미가 약 45일이며,
그 밖의 많은 종류는 10개월, 또는 그 이상 걸린다.
매미 가운데서 유충기가 잘 알려진 것은 유지매미와 참매미인데,
두 종 모두 알이 부화되고 나서 6년째에 성충이 되므로 산란한 해로부터 치면 7년째에 성충이 된다.
털매미는 4년째에 성충이 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유충은 흙 속에 구멍을 파고 생활한다.
유지매미는 5령을 지내는데, 4∼5령에 땅 위에 진흙으로 속이 빈 둥지를 만든다.
매미의 알은 길이가 2밀리미터쯤 되며 윤이 나는 젖빛을 띠고 있다.
알은 그대로 지내다가 다음 해 여름쯤 부화한다.
부화에는 수분이 필요하므로 비 오는 날에 알이 깰 때가 많다.
식물 속에서 만들어진 구멍에서 나올 즈음에는 애벌레 전 단계라 하여
얇은 껍질을 뒤집어 쓴 물개 같은 생김새의 작은 벌레이다.
구멍의 입구에서 껍질을 벗고 1령 애벌레가 된다.
애벌레는 조금 쉬고 난 뒤에 땅위로 떨어진다.
그리고 더듬이를 흔들면서 걸어 다니다가 땅이 부드러워 보이는 곳에서 땅을 파고들어간다.
땅 속으로 들어가 침과 같이 생긴 뾰족한 입으로 나무뿌리를 찔러
그 속의 수액(樹液)을 빨아먹으면서 허물벗기를 계속하면서 몇 해를 자란다.
애벌레가 땅속에서 보내는 기간은 참매미나 유지매미, 말매미 등
익히 알고 있는 종류는 6년이라고들 말하나,
그 기간은 종별로 달라서 1∼2년을 땅속에서 보내는 것부터
3∼4년, 5∼6년, 13~17년 등 다양합니다.
드디어 긴 땅 속 생활이 시작된다. 1령 애벌레는 잠시 땅 위에서 걸어다녀야 하므로
더듬이와 다리가 발달하며 밝고 어두움을 느끼는 안점이라는 기관도 갖추고 있다.
2개월 내지 3개월 뒤에 허물을 벗고 2령 애벌레가 되면 몸의 구조가 달라져 간다.
몸에도 다리에도 긴 털이 난다. 이것은 흙에 묻힌 캄캄한 생활 속에서
몸 주변의 상태를 알아내는 데에 도움이 되는 감각털인 셈이다.
번데기 과정이 없이 탈피과정을 거쳐 바로 성충이 되는 불완전한 특이한 생태를 나타낸다.
약 5~6년을 땅속에서 보낸 애벌레들 가운데에서 여러 적들을 피하고
살아남아 밖으로 나오는 것은 얼마 안 된다.
한여름 저녁 무렵부터 밤중에 걸쳐서 앞다리를 이용해 땅밖으로 나와 잠시 돌아다니고
난 애벌레는 나무줄기나 가지나 잎 뒷면 같은 곳을 찾아 앞발의 발톱 침으로 단단하게 매달린다.
매달린 자세는 매달린 곳에 따라 각각 다르다.
몸의 기울기를 조사해 보면 머리를 똑바로 세운 것과 뒤로 젖힌 것이 많다.
이렇게 해야 나중에 날개를 펼 때에 편리하다.
드디어 힘을 주기 시작하면 곧 등의 허물이 갈라진 틈에서
연한 녹색의 싱싱한 몸이 나오는데 참 멋진 순간이다.
10분쯤 지나 머리가 완전히 나오고 구겨졌던 날개도 나온다.
곧 이어서 다리까지 나오고 차차 몸을 뒤로 세워서 젖힌다.
마침내 배의 끝 부분만 허물 속에 남겨 놓고 매달려 있는다.
이렇게 한참 동안 가만히 있으면서 새로운 몸이 될 준비를 한다.
또 10분쯤 지나면 매미는 배의 힘으로 다시 일어나서
발로 껍질을 붙들고 배의 끝 부분을 꺼낸다.
이제 허물에서 완전히 빠져나와 몸을 일으키면 피가 날개의 구석구석까지 흘러들어가서
그 힘으로 날개가 천천히 펴지기 시작한다.
그러나 몸이 아직도 매우 부드러우므로 약간 건들리기만 해도
생김새가 일그러져서 기형 매미가 된다.
20분쯤 지나자 날개가 다 펴진다.
날개돋이가 끝나도 바로 날지 못하는데 몸이 아직 굳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날개가 펴진 지 3시간쯤 지나는 사이에
몸 전체에 점점 색깔이 돌며 몸이 굳어지고 나서야 성충매미가 된다.
날개가 갓 펴진 매미는 '구구구'하는 작은 소리밖에 내지 못하며
몇 칠 지나야 큰 소리로 울 수 있게 된다.
외모와 형태는 하나의 곤충에 불과하다.
성충이 되려고 벗은 껍질의 모양은 더더욱 보잘 것 없다.
하지만 그 생태는 선비가 지녀야 할 덕목을 비교 적용할 만큼 신비하고 기이하다.
이처럼 매미에게서 교훈을 받으려 했던 선비의 덕목은
지금까지 계승되어 왔고 또한 우리가 계승해야 한다.
강남의 아파트단지 학생들 뿐 아니라 모든 꿈나무들에게 선비정신을 가르쳐야 한다.
동족애를 느낀다고 한물간 낡은 사상이나 이념색깔이 들어가 있는 교육을 하다가는
은연중에 북한 통치세력들을 도와주는 꼴이 되기 쉽다.
문제는 통치세력들이지 북한 동포들이야 선비정신을 공유해야할 우리의 형제자매들이 아닌가?
한민족의 얼과 대한민국의 역사와 전통을 온몸을 던져 지키고 계승해온
선비의 행위를 수구라 하는 자도 검증해보아야 한다.
뿌리의식, 양심, 도덕, 인륜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실제 주권자들인 인민들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도 없이 3대째 대잇기하는 행보가 있겠는가?
개인 우상을 위해 한민족의 얼과 역사마져 왜곡하는 자들이 아닌가?
외신기자들과 북한 출입 인사들의 공통된 보도 내용에 의하면
인민들이 굶어 죽어가고 또한 질병으로 죽어가고 있는 건 안중에도 없고
오로지 자신의 아들에게 권력을 세습하기 위해 중국에 가서 엎드리는 모습은
마치 이조시대 대잇기 위해 중국에 사신을 보내 황제의 윤허를 받아내는 것과 너무나 닮았다.
해도 너무하다.
지금 수해로 죽어가는 인민들을 외면한 채 26량의 특별열차에 수행원을 가득 태우고
새벽 미명에 잠행을 왜 해야 하는지?
동선을 감추고 숨어 다니는 모습도 남부끄럽다.
그것도 카터를 불러놓고 한민족의 자존심을 무너뜨리는 행동을 그토록 급히 해야하는지!
이것이 북한식 인민민주주의인가?
민주주의 국가라면서 왜 인민들의 직접선거를 통해서 선출하지 않는가?
뭐가 그리 캥기고 불안한 건지!
비밀리에 승인을 받아야 하고 인민들에게는 쉬쉬하는지!
주체사상이 사대주의 집에 살기 위해 간 꼴이다.
전에는 한국과 미국의 관계에서 사대주의적이라고 북쪽은 물론
남쪽 좌파와 일부 정치인들이 합세하여 떠들더니
요즈음은 이 상황을 뭐라고 변명할까?
지금 북한의 이런 모습을 보고는 쥐 죽은 듯이 조용하다.
입에 자물통을 채워 놓은 것 같이.
북한 학생들에게도 역사 바로 세우기와 참 인격 만들기를 위한
교육의 장이 속히 마련되어 북한의 미래,
아니 통일 한국의 미래를 선비정신으로 이끌어 갈
꿈나무들을 키울 방법을 철저히 준비해 놓아야 한다.
통일이든 개방이든 어떤 형태로든 급변하는 국제사회에서 한민족의 정체성을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
대학 교수였던 나로서는 후배들이 들려준 대화 내용들이 새로웠고
교육관에 대한 보다 폭 넓은 시야를 갖게끔 했다.
명분과 정의와 박애가 없는 집단은 모래위의 집처럼 창수가 나면
그 결과가 어떻게 될 것인지는 성경이 가르쳐 주고 역사가 증언한다.
우선 근대사에서 1차대전과 2차대전의 주범들이 그러했고
더 거슬러 올라가면 수많은 집단과 개인들이 그렇게 되었다.
1990년대 ‘고난의 행군’ 때 200만 명이상이 굶어 죽었다.
견디다 못한 탈북행렬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체제유지만 하려다 보니 경제는 펴질 리가 없고 천안함과 북ㆍ미 관계가 계속 꼬여가므로
경제적 정치적 지원을 구걸하러 갔다는 보도가 들린다.
그렇다 하더라고 김정일을 비호하는 중국 지도부 또한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나라를 파멸로 몰아가고 있는 독재 3대 세습을 용인하는 행위는
국제사회의 지도국으로 결코 걸맞는 일이 아니다.
나라마다 자국의 이익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중국의 눈치를 보고 있지만
경제의 급성장을 이유로 세계 도처에서 이권을 독식하려는
교만스런 졸부로 언젠가는 낙인찍힐지도 모른다.
선비는 함부로 약자를 억누르지 않았다. 질서와 법과 도덕을 지켰다.
당시 환경법이야 없었겠지만 양심의 법으로 지켰다.
단순한 지식인이 아니라 도덕적인 인격을 갖춘 지정인으로서
정의를 실천하는 시대의 주역들이요 행동하는 양심이었다.
한때 불량 선비들이 욕심을 부리고 야합한 결과 당파싸움으로
나라를 어지럽히고 얼마나 많은 모함으로 선량하고 유능한 자들의 목숨을 죽였는가?
엄청난 국가적 손실이었다.
나만이 옳다고 하는 고집스런 집착에 순수성을 잃어버렸던 때였다.
선비정신을 다시금 회복하자. 건전한 주장은 하되
그 어떤 것도, 생명체이든 무생물이든 파괴는 안된다.
우리나라 시위문화를 보면 끔찍하다.
살상할 수도 있는 사제 무기를 비밀리에 만들어 사용하는 세력들이
합리적인 논리를 앞세우고 양의 탈을 쓴다.
두 개의 혀를 가진 뱀의 지혜를 이용한다.
뒤에서 부추기고 조정하는 세력이 누군가 있다.
분명코 과거 용기 있는 선비들은 글로 말로 정의를 부르짖었지 무기를 든 적이 없다.
무기를 든 세력은 그 어떤 사람들이든 선비를 가장한 불순한 세력이다.
미국 위싱톤에서 한국계 교육감 미셸 리의 교육개혁을 눈여겨보아야 한다.
학생은 학생답고 교사는 교사다운 교육 분위기를 만들어 가는 도중
교원노조로부터 갖은 압력과 소송을 당하면서도
미국과 세계의 미래를 위해 경쟁력 있는 교육을 강행해 왔다.
중앙부처 교육당국과 수요자인 학부모로부터는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품성 개발과 경쟁력 있는 교육을 위해 국가의 정체성과 교육원칙에 근거하여
자신의 목숨을 걸고 개혁해 나가는 미셸 교육감을 우리나라 교육감들이 좀 배웠으면 좋겠다.
정치색깔이 다분히 들어있는 무상급식이니 자율화니 하는 것 말고
교육의 본질과 내용에 대해서 과감하게 개혁하란 뜻이다.
교사의 수준만큼 학생들은 큰다.
강단에 서는 한 시간을 위해서 수십 시간을 준비하는 마음이 진정으로
학생을 사랑하는 교사의 마음임을 우린 알고 있다.
이 마음이 바로 선비의 마음이다.
그 품으로 우리 자녀를 맡길 것이다.
‘정치란 무엇인가’의 저자이자 하버드대 교수인 마이클 샌델은
국내에서 얼마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정의로운 사회 건설에서 교육이 차지하는 부분은 중요하다.
학생 교육도, 교육자의 교육 실천도, 선비의 끊임없는 글공부도 절대 필요하지만
기초나 골격에 해당할 만큼 보다 중요한 요소는 품성 또는 성품이다”라고 확답을 내렸다.
많은 지식보다도 품성 개발로 단련된 인격이 더 중요하다는 뜻이다.
옛 선비들이 엄격한 가정교육과 공중도덕 등 예절교육을 통한
품성 교육에 중점을 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선비다운 인격자가 자연환경을 아껴주고 보호한다.
그럴 때 자연환경 또한 생명영위에 필요한 요소들을 아낌없이 되돌려준다.
이것이 상생을 위한 공존관계이다.
매미와 선비도 바로 이런 관계 속에서 벗이 되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