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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의 뿌리를 찾아서(부산 부경대 원로초청 인문학 강의 개요)
고대 그리스의 사회, 사상, 문화
—신화의 인문학적 변용과 ‘비극’의 탄생
1. 머리말
고대 동방문명(메소포타미아 문명)이 페르시아에 의해 정치적으로 원숙기에 도달할 즈음, 에게(Aege)해 연안 반도에서는 새로운 문명이 일취월장하고 있었다. 그것은 BC 1200년 경 선착 ‘미케네(Mycenae)’문명이 사라지고 4백여 년의 암흑시대가 지나간 뒤, BC 600년대에 이르러 가장 창의적인 단계로 접어든 그리스 문명이었다. 그리스 사회는 고대 동방의 신정적(神政的)이며 전제 사회와는 다른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사회 조직은 소단위이며 정치적으로 자유로운 폴리스(Polis)로 구성되었다. 대표적인 도시 국가인 아테네(Athene)에서는 일찍이 왕정이 사라지고 시민이 직접 참여하는 민주정이 실현되었다. 개인의 개성 발휘가 전혀 제약받지 않은 이 사회에서는 창의성이 매우 높은 문화가 형성되어 갔다.
중세 이후 ‘서구적’인 모든 것은 이와 같은 고대 그리스의 문화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서양문명의 독특한 철학과 역사학과 문학(시와 연극)은 물론 건축과 조각, 그리고 자유로운 정치제도에 이르기까지 모두 그리스 시대에 뿌리를 둔 것이었다.
2. 폴리스의 기원과 사회
BC 1200~1100년 경, 미케네 세계가 파괴되고 사라진 이후 약 4백년간은 그리스 역사에서 ‘암흑시대’였다. 이 암흑시대가 끝나는 BC 8백년 경부터 그리스어를 사용하는 에게 해 연안 일대의 민족들이 각기 살아갈 터전을 향해 대규모 이주가 이루어졌다. 일찍이 아티카(Attika) 지방에 정착한 이오니아(Ionia)인이 다시 소아시아 연안으로 이주 정착하여 이곳은 ‘이오니아’라 불리게 되었다. 아카이아(Achaea)인은 남서쪽 ‘펠레폰네소스’ 반도의 미케네를 정복하고 다시 소아시아 북동쪽의 트로이까지 이동하였다.
그리스인은 대체로 이 무렵 씨족 공동체와 같은 혈연사회를 형성하고 있었다. 사회적 단위는 씨족(genos)→문족(phratria)→부족(phyle)이었다. 토지의 사회화가 시작되면서 종래의 혈연사회가 지연사회(地緣社會)로 바뀌었고 마침내 BC 9-8세기 경에는 국가 체제의 폴리스(Polis-Poleis)가 성립하였다. 폴리스를 ‘도시국가’로 번역해 사용하지만 정확한 역어는 아닌 것 같다. 도시국가 안에도 ‘농촌’이 존재했고, 도시가 국가를 통치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폴리스에는 수호신이 있는 신전이나 제단, 그리고 공공 기념물이 있는 ‘아크로폴리스’가 중앙 언덕 위에 있고 공공 광장이나 정치적인 집회 장소, 또는 시장 역할을 하는 ‘아고라(Agora)’를 갖추고 있었다. 이러한 폴리스는 그리스 세계의 거의 모든 지역에 산재해 있었다. 즉 그리스 본토(아테네가 있는 ‘아티카’ 지방)에는 아테네, 테배(Thebes), 메가라(Megara)등의 도시국가가 있었고 펠레폰네소스 반도에는 스파르타와 코린토스(Corinthos)가 있었다. 소아시아 해안에는 밀레토스(Miletos)가 있었으며, 에게 해의 섬 지방에도 사모스(Samos)와 레스보스(Lesbos) 등 여러 폴리스가 존재했다. 이들 많은 폴리스 중 고대 그리스를 대표하는 도시국가는 스파르타(Sparta)와 아테네(Athene)였으며, 특히 아테네야말로 고대 그리스 역사의 실상이었다.
(1) 아테네인의 이상과 문화
“우리는 아름다움을 사랑하지만 사치하지 않으며, 지혜를 사랑하지만 나약한 의지에
는 빠지지 않는다. 우리는 부를 개인적 과시의 수단이 아니라 공공의 봉사를 위한 도구로 생각한다. 우리는 가난을 수치로 생각하지 않으며, 다만 그것을 극복하려고 노력하지 않는 것을 수치로 생각한다. 우리는 사람이 개인적인 일 뿐만 아니라 공적 인 일에도 관여해야 한다고 믿거니와, 이는 우리가 정치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을 무 관심한 자로서만 아니라 쓸모없는 자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위의 글은 아테네를 통치하던 ‘10인 군사위원회’의 위원장직을 30년간이나 지내면서 아테네 민주주의 정치 환경을 완성시킨 페리클레스(Pericles)장군 연설문 중의 한 부분이다. ‘아테네인의 이상’에 관한 최고 통치자로서의 견해를 피력한 연설문이었다. BC 3세기 경 아테네의 전성기 당시 아테네 시민의 긍지를 가늠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고대 세계의 모든 문화들 중에서 서양 사회의 정신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 준 것이 아마도 이러한 그리스인의 이상적 성향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고대 세계에서 그리스 인 만큼 ‘자유’를 위해 헌신적이었던, 그리고 인간 업적의 고귀함에 대한 믿음을 그토록 굳건히 지켰던 민족은 없었다. 우주 만물 중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로서 인간을 찬양했다. 권력자의 명령에 복종하기를 거부했으며, 심지어 자신들이 믿는 신 앞에 굴복하는 것마저도 거부했다. 그들은 자유로운 탐구의 정신을 찬양하였으며, 지식을 신앙보다 우월하게 생각했다. 이러한 인간관은 앞으로 살펴보게 될 신화와 ‘비극’의 내면에도 면면히 스며들어 있다.
(2) 왕정에서 귀족 과두정(寡頭政)으로.
BC 7세기 중엽까지 아테네는 그리스의 다른 폴리스와 마찬가지로 왕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후 ‘귀족회의’가 점차 왕의 권력을 박탈하고 귀족의 ‘과두체제’로 이행해 갔다. 귀족과두제 시대에는 대규모 해외 식민이 조직적으로 행해지고 무역과 산업은 크게 발전되었다. 그러나 체제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소 농민들은 경제적으로 너무 피폐해져만 갔다. 부가 귀족들에게 편중되어갔기 때문이다.
(3) 혁명의 위협과 ‘솔론’(Solon)의 개혁
이제 농민들의 절규가 하늘에 사무쳤다. 도시 중간계급은 농민을 지지하면서 정치적 자유를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마침내 BC 594년에 모든 당파는 귀족 출 신인 ‘솔론’을 집정관으로 임명하는 데에 합의하고 그에게 개혁을 수행할 절대 권을 부여했다.
(4) 참주정(僭主政)의 등장
솔론의 개혁은 중대한 의의를 가진 것이었지만 아테네 시민의 불만을 무마하지 는 못했다. 귀족들 또한 그들의 특권 중 일부가 상실된 데 대해 불만을 품었다. 이어지는 혼란과 환멸 가운데 기원전 560년에 아테네 최초의 참주인 ‘페이시스 트라토스’(Peisistratos)가 집권하게 되었다. 그는 자애로운 군주로서 문화를 후 원하고 귀족의 권한을 축소시켰으며, 시민의 생활을 향상시켰다. 그러나 그를 계승한 아들 ‘히피아스’의 무자비한 전횡으로 귀족들에 의해 전복되었다.
(5) 클레이스테네스(Kleisthenes)의 등장과 민주정의 정착
참주정이 전복된 후 귀족 출신의 지적인 인물 ‘클레이스테네스’(Kleisthenes)가 민중의 지지를 얻어 통치를 위임 받아 급격한 개혁 작업을 단행했다. 이리하여 그후 그는 아테네 민주주의의 아버지로 알려지게 되었다.
①모든 자유민에게 시민권
②오백인회, 민회의 권한 확대(법안 채택 결정권, 예산 편성권, 전쟁 선포권) ③도편(陶片)추방제도 제도(BC 487)
(6) 페리클레스(Pericles)와 아테네 민주주의의 완성
아테네 민주주의는 ‘페리클레스’ 시대에 완성되었다. 이 시기에 ‘10인 군사위원 회’가 최고 통치기구였는데 군사위원회 장군들은 1년 임기로 민회에서 선출되 었고, 무제한 제선이 가능했다. 페리클레스는 최고 군사 위원, 또는 군사위원장 의 지위를 30년이 이상이나 유지했다.
(7) ‘페르시아 전쟁’ 의 승리와 ‘펠레폰네소스 전쟁’의 패배
아테네는 영토가 최대로 팽창되고 문화 창조력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두 차례 에 걸친 크고 중요한 전쟁을 치렀다.
①아테네와 페르시아의 전쟁 (1차: BC 490년/ 2차: BC 480년)
②아테네와 스파르타의 30년 전쟁(BC 431~404년)
(8) 마케도니아의 정복과 그리스의 쇠퇴
필리포스 2세/ 알렉산드로스 대왕/ 헬레니즘 시대 (BC 336~BC 31)
3. 그리스의 사상과 문화
그리스 문화의 기본 특성은 휴머니즘, 이상주의, 합리주의에 있었다. 먼저 인간성을 높이 평가하는 휴머니즘이 지적될 수 있다. 신화에서 일상생활에 이르기까지 인간중심적 사고가 지배적이었으며 세속성과 인간 존엄성이 강조되었다. 다음으로 철학적 사고에서나 미의 추구에서나 이상적 세계를 탐구하려는 경향이 강하였다. 예컨대 소크라테스의 끊임없는 진리 추구, 플라톤의 관념 세계와 이상국가론, 조각 작품에 나타난 미의 추구는 모두 이싱주의의 표현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리스 인의 지적 특성은 합리주의였다. 고대 아테네인의 정신세계는 대체로 합리적 사고에 의해 지배되었다. 신화의 문학적 변용이 창조해낸 연극(비극)의 탄생과 더불어 다음과 같은 고대 그리스 철학의 진화는 인문학의 뿌리이자 출발점이었다.
(1) 밀레토스 학파 (BC 600년~BC 500년 경)
자연철학의 기원은 지중해 연안 소아시아의 밀레토스를 중심으로 한 ‘밀레토스 학파’(이오니아 학파)에 있었다. 이 학파의 창시자 탈레스 Thales(BC 625~545)는 일식(日蝕) 등 모든 천체현상이 일정한 법칙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자연현상에 대한 인간관계를 논하였다. 그는 공기가 희박해지면 불이 되고 응축되면 바람, 증기, 물, 흙이 된다고 주장하였다.
(2) 피타고라스 (Pythagoras)학파 (기원전 6세기 초)
그리스 철학이 전환기를 맞이한 것은 BC 6세기 초, 수학자이자 종교 지도자이며 철학자인 피타고라스 (BC580~500)에 의해서였다. 이 학파는 사물의 본질이 물질적인데 있지 않고 하나의 추상적 원리인 수(數)에 있다고 주장하였다. “모든 것은 숫자이다”라고 말하면서 자연현상을 수학적 비례관계로 보려고 했다. 또 그는 남부 이탈리아로 이주하여 종교단체를 창설하고, 명상생활이 최고선이라고 설파하였다.
(3) 소피스트(Sophist)의 지적 혁명 (BC 500~400년 경)
페르시아 전쟁에서 승리한 그리스 사회는 자신감에 넘쳤고, 인간 중심적 사고가 널리 퍼져 BC 5세기 중반에 지적 혁명이 일러났다. 이들 철학자들은 자연의 본질에 관한 문제보다 인간 자신과 관련된 문제를 탐구하였다. 동시에 이들의 생각은 주관적이며 상대적이었다. 이 철학자들이 ‘소피스트’였다. 소피스트의 뜻은 원래 ‘앎을 사랑하는 사람’ 또는 ‘현자(賢者)’였으나 후에는 “언변으로 상대를 누르는 사람”이라는 경멸의 의미로 쓰이게 되었다. 따라서 그들은 특정한 철학 학파라기보다는 일종의 전문직 종사자들이었다. 소피스트의 철학적 기여는 인간과 사회에 관한 문제를 중요시한 데에 있었다. 그러므로 사회사상의 대두는 전적으로 이들 소피스트들의 덕분이었다. 그리고 실용성 있는 지식을 강조하여 청소년에게 전반적 계몽과 교양을 통해 진리 자체보다는 그것을 이요하는 ‘영리함’만을 가르쳤다. 소피스트의
대표적인 인물은 프로타고라스 Protagoras(BC 485~410)였다. 그는 줄곧 “인간은 만물의 척도다”라고 가르쳤다.
(4) 고전철학의 확립
①소크라테스(Socrates); BC 469~399
②플라톤(Platon); BC 427~347
③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BC 384~322
4. 고대 그리스 문화의 창의성
그리스 문화의 창의성은 오랜 진화의 결과였다. 미케네 문화는 크레타 섬에서 형성된 미노스(Minos)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것이었으나 이른 바 ‘암흑기’(기원전 1200년경~800년경)에 소실되었다. 그리스 문학 최초의 형식은 서사시(敍事詩)였다. ‘호메로스’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는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는 문학사상 가장 오래된 서사시의 전범이다. 이와는 달리 서정시(抒情詩)는 격렬한 애정이나 증오심 같은 개인적인 감정을 당시의 악기 리라(lyre)의 음률에 맞추어 표현하는 형식이었다. 에게 해 레스보스(Lesbos)섬 출생의 사포(Sappho)와 테베 출신의 핀다로스(Pindaros)가 대표적인 서정시 시인으로 전해온다.
5. 그리스의 연극과 ‘비극’의 탄생
그리스 문학은 연극, 특히 ‘비극’에서 최고의 업적을 냈다. 많은 위대한 작품에 서 확인할 수 있듯이 ‘비극’은, 당초 종교적 행사에 그 기원을 두고 있었다. 비 극은 재생의 신이며 포도주의 신인 ‘디오니소스’(Dionysos) 숭배를 위해 봉헌 된 제전(祭典) 의식(儀式)에서 시작되었다.
‘사티로스’(Satyros)로 분장하고 등장한 남성 합창단(Colos)은 제단 주위에서 노래하고 춤을 추었으며, 신의 활동과 관련된 주신(酒神) 찬가(또는 합창 서정시)의 여러 대목을 무대 위에서 공연했다. 시간이 경과하면 수석 가수 한 명이 합창단에서 떨어져 나와 그 이야기의 주요 부분을 낭송했다. 진정한 연극은 한 세기가 지난 BC 5세기 초에 ‘아이스킬로스’ 의 연극에서 두 번째 배우를 등장시키고 합창단을 무대 배경으로 물러나게 함으로써 탄생하였다.
이 연극에 붙여지게 된 ‘비극’이라는 명칭은 앞서 말한 숲의 신 ‘사티로스’가 염소로 분장했기 때문에 ‘염소’를 의미하는 그리스어 ‘트라고스’(tragos)에서 나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비극을 뜻하는 영어 ‘tragedy'도 이 염소의 트라고스에 어원을 둔 것으로 보고 있다.
6. 그리스 3대 비극 작가와 작품
①아이스킬로스(Aischylos)
그리스 연극예술의 발달은 BC 5세기에 그 원숙기로 들어섰고, 이 시대의 주 역으로서 세계의 가장 위대한 비극작가들이 민주주의 국가 아테네에서 나왔 다. 그 최초의 작가는 ‘아이스킬로스’(BC 525~456)였다. 그는 합창대를 무대 배경에 배치하고 합창단 이외의 배우를 등장시켜 대본(시)를 낭송하게 함으로 써 비로소 연극 형식을 갖추게 되었다. 그는 약 80~90여편의 작품을 썼다고 알려져 있으나 현재 완전한 형태로 전해지는 것은 7편뿐이며, 그중 「결박된 프로메테우스」와 3부작 「오래스테이아」(Oresteia)가 대표작이다. ‘결박된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에게 불을 주었다는 죄 때문에 제우스로부터 벌을 받고 온갖구박과 고문을 견디는 이야기를 통해 고귀하고 명예로운 행위란 가혹한 대가를 지불해야 하며, 또 꺾이지 않는 정신으로 그것을 지킴으로써 진정한 가치가 있다는 주제를 담고 있다. 한편 3부작 ‘오레스테이아’는 미케네의 왕 아가멤논 일가의 친족 살해 운명을 다룬 작품으로서 죄의식과 도덕적 책임 등 삶의 여러 문제를 다루었다. 이 외에 페르시아의 왕 ‘크세르크세스’의 페르 시아 전쟁 패전을 그린 「페르시아인」도 대표작 중 하나다.
②소포클레스(Sophocles)
그리스 비극 작가 중 가장 위대한 인물로 추앙받는 작가는 단연 ‘소포클레스’ 다. 그의 문체는 다른 선배 작가들보다 더욱 세련되었고, 철학은 한층 심오했 다는 평가를 받았다. 소포클레스(BC 496~406)는 그리스의 다른 어떤 작가들 보다 ‘절제’의 그리스적 이상을 잘 표현한 작가다. 100편 이상의 작품을 썼다고 알려져 있으나 역시 7편만이 전해진다. 그의 작품 경향은 조화와 평화에 대한 사랑, 민주주의에 대한 지성적인 존중, 인가의 연약함에 대한 심원한 동정 등으 로 특징지어진다. 그의 대표작은 널리 회자되어 오는「안티고네」(Antigone)와 「오이디푸스 왕」(Oedipus Tyrannos)이다.
③에우리피데스(Euripides)
위대한 비극 작가들 가운데 마지막 인물인 에우리피데스(BC 480~406)의 작품 은 앞서의 작가들과는 다른 정신세계를 담고 있다. 그는 고대의 신화와 ‘금기’ 를 즐겨 조롱한 회의주의자이자 개인주의자였다. 에우리피데스의 두드러진 작 가적 특징은 거지나 농민 같은 하층 평민에게까지 배역을 준 최초의 작가였다.
그는 또한 노예를 동정하고 여성의 사회적 지적 생활에서의 소외에 대해 강하 게 항의한 것으로 도 유명하다, 그의 희곡들은 개인의 성격 발전이나 자아의 갈등이라는 점에서 아이스킬로스나 소포클레스의 작품들 이상의 것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평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우리피데스는 현실 생활과 비슷한 상황 을 다루었기 때문에 가장 비극적인 작가로 불린다.「메데아」(Medea)와 「트 로이의 여인들」등이 대표작이다.
# 그리스 비극 읽기 보조자료 메모
*비극: 보통을 뛰어넘는 위대한 인물이 ‘운명의 힘’에 맞서다가 장중한 최후.
→Katharsis(아리스토텔레스의 비극 이론)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 그 시대의 기본 질서/ 권력의 문제→<안티고네>
* 그리스 비극의 ‘비극적 운명’의 무대는 아테네를 제외한 미케네, 아르고스, 테 배, 코린토스 등의 도시국가의 왕가.
〇 신화와 비극 (현존 3대 작가 작품 33편 모두 그리스 전래 신화가 모델)
* Hesiodos의 신통기(1022행의 서사시); 300명이 넘는 신들의 복잡한 계보를 정 리한 작품. 예로부터 전해오는 신화와 전설을 그리스인의 세계관과 우주관에 비추어 체계화. 메소포타미아 지역 후르르인(Hurrian)들의 ‘신통기’ 참조한 듯.
* 카오스→에레보스(어둠, 암흑의 신), Nyx(밤의 여신)→hemera(낮의 신) ↳가이아(Gaea)와 에로스(Eros)
* 가이아→우라노스(Uranos/하늘)와 폰토스(Pontos/바다)
* 가이아와 우라노스→크로노스를 포함한 티탄(Titans/거신족)12신을 낳음.
* 올림포스 시대 신의 세계; 제우스 천상, 지상, 지하 세계의 새로운 질서 부여.
* 제우스→‘하늘’ 포세이돈→‘바다’ 하데스→‘저승’
* 제우스와 헤라→올림포스 12신 (주신 제우스, 결혼의 신 헤라, 태양신 아폴론, 숲과 달의 신 아르테미스, 지혜와 전쟁의 신 아테나, 미와 사랑의 신 아프로디테, 통신 무 역의 신 헤르메스, 지하의 신 하데스, 바다의 신 포세이돈, 불의 신 헤파이토스, 가정 보호 의 신 헤스피아, 전쟁의 신 아레스)
* 그리스 3대 남신; 우라노스, 크로노스, 제우스
* 거신(Titan)족과 싸워 이긴 제우스가 최후의 지배자가 되어 올림포스 12신들을 통치함.
〇 그리스 신들의 Text
헤시오도시의 ‘신통기’ 이외에도 호메로스를 비롯한 여러 시인들에 의해 새로운 신들이 등장해 옴.
# Hesiodos의 신통기(神統記)
#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아
# 3대 비극작가
# Herodotos의 ‘역사’
# Platon의 ‘대화’편
# 고대 그리스에 새겨진 도자기의 그림
(BC 8-9세기부터 AD 3-4세기까지 그리스어를 사용하는 여러 지방에 널리 퍼 져있던 온갖 불가사의한 설화와 전설과 고대 이집트와 인도 유럽어족의 신화, 그리고 메소포타미아, 소아시아로 이주한 그리스 선주민의 신화 등)
〇 3대 비극 작가
* 아이스킬로스(Aischylos)/ BC 525~456
<아가멤논>, <제주를 바치는 여인들>, <자비로운 여신들>
<결박된 프로메테우스>
<페르시아인들>, <테베를 공격한 일곱장수>, <탄원하는 여인들>
* 소포클레스(Sophocles)/ BC 496~406
<오이디푸스 왕>, <안티고네>,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
<엘렉트라>
<아이리스>, <트라키스 여인들>, <필록테테스>
* 에우리피데스(Euripides)/ BC 480~406
<헬레네>, <오레스테스>, <엘렉트라>, 등 총 19편
〇 그리스 비극의 공연
주신(酒神) 디오니소스 숭배 제전에서 ‘Satyros’ (숲의 신/디오니소스 종자)로 분장한 남성합창단의 디오니소스 찬가(디티람보스). 수석 한 사람이 나와 ‘이야 기’의 주요 부분 낭송. *사티로스; 상반신은 사람, 하반신이 염소임.
* tradegy(비극)의 어원→'tragos(염소)
〇 극장의 3부분(theater⤌theatron,관람석)
① skene(소도구 장소) ② proskeneion(배경 장치/ 신들의 등장)
<proskeneion→무대와 orchestra(합창과 춤의 반원형 무대)>
③ theatron(관람석)
*극장의 3부분; 무대(skene와 proskeneion)/ 오케스트라, 관람석
〇 극의 구성
① prologos; 연극의 ‘주제’와 ‘상황’
② parodos; 등장가 (코러스)
③ episodion(삽화);노래와 노래 사이의 대화 장면→근대극의 ‘막(幕)’
④ stasimon(停立歌);코러스가 오케스트라에 자리잡고 부르는 노래.
각 ‘삽화’에 대한 성찰, 막간의 곡으로 변화.
⑤ exodos(떠남);배우와 코러스간의 대화, 코러스가 무대에서 떠남.
김 춘 섭 (전남대학교 명예교수/국문학)
1. 머리말
고대 동방문명(메소포타미아 문명)이 페르시아에 의해 정치적으로 원숙기에 도달할 즈음, 에게(Aege)해 연안 반도에서는 새로운 문명이 일취월장하고 있었다. 그것은 BC 1200년 경 선착 ‘미케네(Mycenae)’문명이 사라지고 4백여 년의 암흑시대가 지나간 뒤, BC 600년대에 이르러 가장 창의적인 단계로 접어든 그리스 문명이었다. 그리스 사회는 고대 동방의 신정적(神政的)이며 전제 사회와는 다른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사회 조직은 소단위이며 정치적으로 자유로운 폴리스(Polis)로 구성되었다. 대표적인 도시 국가인 아테네(Athene)에서는 일찍이 왕정이 사라지고 시민이 직접 참여하는 민주정이 실현되었다. 개인의 개성 발휘가 전혀 제약받지 않은 이 사회에서는 창의성이 매우 높은 문화가 형성되어 갔다.
중세 이후 ‘서구적’인 모든 것은 이와 같은 고대 그리스의 문화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서양문명의 독특한 철학과 역사학과 문학(시와 연극)은 물론 건축과 조각, 그리고 자유로운 정치제도에 이르기까지 모두 그리스 시대에 뿌리를 둔 것이었다.
2. 폴리스의 기원과 발전
BC 1200~1100년 경, 미케네 세계가 파괴되고 사라진 이후 약 4백년간은 그리스 역사에서 ‘암흑시대’였다. 이 암흑시대가 끝나는 BC 8백년 경부터 그리스어를 사용하는 에게 해 연안 일대의 민족들이 각기 살아갈 터전을 향해 대규모 이주가 이루어졌다. 일찍이 아티카(Attika) 지방에 정착한 이오니아(Ionia)인이 다시 소아시아 연안으로 이주 정착하여 이곳은 ‘이오니아’라 불리게 되었다. 아카이아(Achaea)인은 남서쪽 ‘펠레폰네소스’ 반도의 미케네를 정복하고 다시 소아시아 북동쪽의 트로이까지 이동하였다.
그리스인은 대체로 이 무렵 씨족 공동체와 같은 혈연사회를 형성하고 있었다. 사회적 단위는 씨족(genos)→문족(phratria)→부족(phyle)이었다. 토지의 사회화가 시작되면서 종래의 혈연사회가 지연사회(地緣社會)로 바뀌었고 마침내 BC 9-8세기 경에는 국가 체제의 폴리스(Polis-Poleis)가 성립하였다. 폴리스를 ‘도시국가’로 번역해 사용하지만 정확한 역어는 아닌 것 같다. 도시국가 안에도 ‘농촌’이 존재했고, 도시가 국가를 통치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폴리스에는 수호신이 있는 신전이나 제단, 그리고 공공 기념물이 있는 ‘아크로폴리스’가 중앙 언덕 위에 있고 공공 광장이나 정치적인 집회 장소, 또는 시장 역할을 하는 ‘아고라(Agora)’를 갖추고 있었다. 이러한 폴리스는 그리스 세계의 거의 모든 지역에 산재해 있었다. 즉 그리스 본토(아테네가 있는 ‘아티카’ 지방)에는 아테네, 테배(Thebes), 메가라(Megara)등의 도시국가가 있었고 펠레폰네소스 반도에는 스파르타와 코린토스(Corinthos)가 있었다. 소아시아 해안에는 밀레토스(Miletos)가 있었으며, 에게 해의 섬 지방에도 사모스(Samos)와 레스보스(Lesbos) 등 여러 폴리스가 존재했다. 이들 많은 폴리스 중 고대 그리스를 대표하는 도시국가는 스파르타(Sparta)와 아테네(Athene)였으며, 특히 아테네야말로 고대 그리스 역사의 실상이었다.
(1) 아테네인의 이상과 문화
“우리는 아름다움을 사랑하지만 사치하지 않으며, 지혜를 사랑하지만 나약한 의지에
는 빠지지 않는다. 우리는 부를 개인적 과시의 수단이 아니라 공공의 봉사를 위한 도구로 생각한다. 우리는 가난을 수치로 생각하지 않으며, 다만 그것을 극복하려고 노력하지 않는 것을 수치로 생각한다. 우리는 사람이 개인적인 일 뿐만 아니라 공적 인 일에도 관여해야 한다고 믿거니와, 이는 우리가 정치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을 무 관심한 자로서만 아니라 쓸모없는 자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위의 글은 아테네를 통치하던 ‘10인 군사위원회’의 위원장직을 30년간이나 지내면서 아테네 민주주의 정치 환경을 완성시킨 페리클레스(Pericles)장군 연설문 중의 한 부분이다. ‘아테네인의 이상’에 관한 최고 통치자로서의 견해를 피력한 연설문이었다. BC 3세기 경 아테네의 전성기 당시 아테네 시민의 긍지를 가늠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고대 세계의 모든 문화들 중에서 서양 사회의 정신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 준 것이 아마도 이러한 그리스인의 이상적 성향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고대 세계에서 그리스 인 만큼 ‘자유’를 위해 헌신적이었던, 그리고 인간 업적의 고귀함에 대한 믿음을 그토록 굳건히 지켰던 민족은 없었다. 우주 만물 중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로서 인간을 찬양했다. 권력자의 명령에 복종하기를 거부했으며, 심지어 자신들이 믿는 신 앞에 굴복하는 것마저도 거부했다. 그들은 자유로운 탐구의 정신을 찬양하였으며, 지식을 신앙보다 우월하게 생각했다. 이러한 인간관은 앞으로 살펴보게 될 신화와 ‘비극’의 내면에도 면면히 스며들어 있다.
(2) 왕정에서 귀족 과두정(寡頭政)으로.
BC 7세기 중엽까지 아테네는 그리스의 다른 폴리스와 마찬가지로 왕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후 ‘귀족회의’가 점차 왕의 권력을 박탈하고 귀족의 ‘과두체제’로 이행해 갔다. 귀족과두제 시대에는 대규모 해외 식민이 조직적으로 행해지고 무역과 산업은 크게 발전되었다. 그러나 체제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소 농민들은 경제적으로 너무 피폐해져만 갔다. 부가 귀족들에게 편중되어갔기 때문이다.
(3) 혁명의 위협과 ‘솔론’(Solon)의 개혁
이제 농민들의 절규가 하늘에 사무쳤다. 도시 중간계급은 농민을 지지하면서 정치적 자유를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마침내 BC 594년에 모든 당파는 귀족 출 신인 ‘솔론’을 집정관으로 임명하는 데에 합의하고 그에게 개혁을 수행할 절대 권을 부여했다.
(4) 참주정(僭主政)의 등장
솔론의 개혁은 중대한 의의를 가진 것이었지만 아테네 시민의 불만을 무마하지 는 못했다. 귀족들 또한 그들의 특권 중 일부가 상실된 데 대해 불만을 품었다. 이어지는 혼란과 환멸 가운데 기원전 560년에 아테네 최초의 참주인 ‘페이시스 트라토스’(Peisistratos)가 집권하게 되었다. 그는 자애로운 군주로서 문화를 후 원하고 귀족의 권한을 축소시켰으며, 시민의 생활을 향상시켰다. 그러나 그를 계승한 아들 ‘히피아스’의 무자비한 전횡으로 귀족들에 의해 전복되었다.
(5) 클레이스테네스(Kleisthenes)의 등장과 민주정의 정착
참주정이 전복된 후 귀족 출신의 지적인 인물 ‘클레이스테네스’(Kleisthenes)가 민중의 지지를 얻어 통치를 위임 받아 급격한 개혁 작업을 단행했다. 이리하여 그후 그는 아테네 민주주의의 아버지로 알려지게 되었다.
①모든 자유민에게 시민권
②오백인회, 민회의 권한 확대(법안 채택 결정권, 예산 편성권, 전쟁 선포권) ③도편(陶片)추방제도 제도(BC 487)
(6) 페리클레스(Pericles)와 아테네 민주주의의 완성
아테네 민주주의는 ‘페리클레스’ 시대에 완성되었다. 이 시기에 ‘10인 군사위원 회’가 최고 통치기구였는데 군사위원회 장군들은 1년 임기로 민회에서 선출되 었고, 무제한 제선이 가능했다. 페리클레스는 최고 군사 위원, 또는 군사위원장 의 지위를 30년이 이상이나 유지했다.
(7) ‘페르시아 전쟁’ 의 승리와 ‘펠레폰네소스 전쟁’의 패배
아테네는 영토가 최대로 팽창되고 문화 창조력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두 차례 에 걸친 크고 중요한 전쟁을 치렀다.
①아테네와 페르시아의 전쟁 (1차: BC 490년/ 2차: BC 480년)
②아테네와 스파르타의 30년 전쟁(BC 431~404년)
(8) 마케도니아의 정복과 그리스의 쇠퇴
필리포스 2세/ 알렉산드로스 대왕/ 헬레니즘 시대 (BC 336~BC 31)
3. 그리스의 사상과 문화
그리스 문화의 기본 특성은 휴머니즘, 이상주의, 합리주의에 있었다. 먼저 인간성을 높이 평가하는 휴머니즘이 지적될 수 있다. 신화에서 일상생활에 이르기까지 인간중심적 사고가 지배적이었으며 세속성과 인간 존엄성이 강조되었다. 다음으로 철학적 사고에서나 미의 추구에서나 이상적 세계를 탐구하려는 경향이 강하였다. 예컨대 소크라테스의 끊임없는 진리 추구, 플라톤의 관념 세계와 이상국가론, 조각 작품에 나타난 미의 추구는 모두 이싱주의의 표현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리스 인의 지적 특성은 합리주의였다. 고대 아테네인의 정신세계는 대체로 합리적 사고에 의해 지배되었다. 신화의 문학적 변용이 창조해낸 연극(비극)의 탄생과 더불어 다음과 같은 고대 그리스 철학의 진화는 인문학의 뿌리이자 출발점이었다.
(1) 밀레토스 학파 (BC 600년~BC 500년 경)
자연철학의 기원은 지중해 연안 소아시아의 밀레토스를 중심으로 한 ‘밀레토스 학파’(이오니아 학파)에 있었다. 이 학파의 창시자 탈레스 Thales(BC 625~545)는 일식(日蝕) 등 모든 천체현상이 일정한 법칙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자연현상에 대한 인간관계를 논하였다. 그는 공기가 희박해지면 불이 되고 응축되면 바람, 증기, 물, 흙이 된다고 주장하였다.
(2) 피타고라스 (Pythagoras)학파 (기원전 6세기 초)
그리스 철학이 전환기를 맞이한 것은 BC 6세기 초, 수학자이자 종교 지도자이며 철학자인 피타고라스 (BC580~500)에 의해서였다. 이 학파는 사물의 본질이 물질적인데 있지 않고 하나의 추상적 원리인 수(數)에 있다고 주장하였다. “모든 것은 숫자이다”라고 말하면서 자연현상을 수학적 비례관계로 보려고 했다. 또 그는 남부 이탈리아로 이주하여 종교단체를 창설하고, 명상생활이 최고선이라고 설파하였다.
(3) 소피스트(Sophist)의 지적 혁명 (BC 500~400년 경)
페르시아 전쟁에서 승리한 그리스 사회는 자신감에 넘쳤고, 인간 중심적 사고가 널리 퍼져 BC 5세기 중반에 지적 혁명이 일러났다. 이들 철학자들은 자연의 본질에 관한 문제보다 인간 자신과 관련된 문제를 탐구하였다. 동시에 이들의 생각은 주관적이며 상대적이었다. 이 철학자들이 ‘소피스트’였다. 소피스트의 뜻은 원래 ‘앎을 사랑하는 사람’ 또는 ‘현자(賢者)’였으나 후에는 “언변으로 상대를 누르는 사람”이라는 경멸의 의미로 쓰이게 되었다. 따라서 그들은 특정한 철학 학파라기보다는 일종의 전문직 종사자들이었다. 소피스트의 철학적 기여는 인간과 사회에 관한 문제를 중요시한 데에 있었다. 그러므로 사회사상의 대두는 전적으로 이들 소피스트들의 덕분이었다. 그리고 실용성 있는 지식을 강조하여 청소년에게 전반적 계몽과 교양을 통해 진리 자체보다는 그것을 이요하는 ‘영리함’만을 가르쳤다. 소피스트의
대표적인 인물은 프로타고라스 Protagoras(BC 485~410)였다. 그는 줄곧 “인간은 만물의 척도다”라고 가르쳤다.
(4) 고전철학의 확립
①소크라테스(Socrates); BC 469~399
②플라톤(Platon); BC 427~347
③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BC 384~322
4. 고대 그리스 문화의 창의성
그리스 문화의 창의성은 오랜 진화의 결과였다. 미케네 문화는 크레타 섬에서 형성된 미노스(Minos)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것이었으나 이른 바 ‘암흑기’(기원전 1200년경~800년경)에 소실되었다. 그리스 문학 최초의 형식은 서사시(敍事詩)였다. ‘호메로스’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는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는 문학사상 가장 오래된 서사시의 전범이다. 이와는 달리 서정시(抒情詩)는 격렬한 애정이나 증오심 같은 개인적인 감정을 당시의 악기 리라(lyre)의 음률에 맞추어 표현하는 형식이었다. 에게 해 레스보스(Lesbos)섬 출생의 사포(Sappho)와 테베 출신의 핀다로스(Pindaros)가 대표적인 서정시 시인으로 전해온다.
5. 그리스의 연극과 ‘비극’의 탄생
그리스 문학은 연극, 특히 ‘비극’에서 최고의 업적을 냈다. 많은 위대한 작품에 서 확인할 수 있듯이 ‘비극’은, 당초 종교적 행사에 그 기원을 두고 있었다. 비 극은 재생의 신이며 포도주의 신인 ‘디오니소스’(Dionysos) 숭배를 위해 봉헌 된 제전(祭典) 의식(儀式)에서 시작되었다.
‘사티로스’(Satyros)로 분장하고 등장한 남성 합창단(Colos)은 제단 주위에서 노래하고 춤을 추었으며, 신의 활동과 관련된 주신(酒神) 찬가(또는 합창 서정시)의 여러 대목을 무대 위에서 공연했다. 시간이 경과하면 수석 가수 한 명이 합창단에서 떨어져 나와 그 이야기의 주요 부분을 낭송했다. 진정한 연극은 한 세기가 지난 BC 5세기 초에 ‘아이스킬로스’ 의 연극에서 두 번째 배우를 등장시키고 합창단을 무대 배경으로 물러나게 함으로써 탄생하였다.
이 연극에 붙여지게 된 ‘비극’이라는 명칭은 앞서 말한 숲의 신 ‘사티로스’가 염소로 분장했기 때문에 ‘염소’를 의미하는 그리스어 ‘트라고스’(tragos)에서 나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비극을 뜻하는 영어 ‘tragedy'도 이 염소의 트라고스에 어원을 둔 것으로 보고 있다.
6. 그리스 3대 비극 작가와 작품
①아이스킬로스(Aischylos)
그리스 연극예술의 발달은 BC 5세기에 그 원숙기로 들어섰고, 이 시대의 주 역으로서 세계의 가장 위대한 비극작가들이 민주주의 국가 아테네에서 나왔 다. 그 최초의 작가는 ‘아이스킬로스’(BC 525~456)였다. 그는 합창대를 무대 배경에 배치하고 합창단 이외의 배우를 등장시켜 대본(시)를 낭송하게 함으로 써 비로소 연극 형식을 갖추게 되었다. 그는 약 80~90여편의 작품을 썼다고 알려져 있으나 현재 완전한 형태로 전해지는 것은 7편뿐이며, 그중 「결박된 프로메테우스」와 3부작 「오래스테이아」(Oresteia)가 대표작이다. ‘결박된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에게 불을 주었다는 죄 때문에 제우스로부터 벌을 받고 온갖구박과 고문을 견디는 이야기를 통해 고귀하고 명예로운 행위란 가혹한 대가를 지불해야 하며, 또 꺾이지 않는 정신으로 그것을 지킴으로써 진정한 가치가 있다는 주제를 담고 있다. 한편 3부작 ‘오레스테이아’는 미케네의 왕 아가멤논 일가의 친족 살해 운명을 다룬 작품으로서 죄의식과 도덕적 책임 등 삶의 여러 문제를 다루었다. 이 외에 페르시아의 왕 ‘크세르크세스’의 페르 시아 전쟁 패전을 그린 「페르시아인」도 대표작 중 하나다.
②소포클레스(Sophocles)
그리스 비극 작가 중 가장 위대한 인물로 추앙받는 작가는 단연 ‘소포클레스’ 다. 그의 문체는 다른 선배 작가들보다 더욱 세련되었고, 철학은 한층 심오했 다는 평가를 받았다. 소포클레스(BC 496~406)는 그리스의 다른 어떤 작가들 보다 ‘절제’의 그리스적 이상을 잘 표현한 작가다. 100편 이상의 작품을 썼다고 알려져 있으나 역시 7편만이 전해진다. 그의 작품 경향은 조화와 평화에 대한 사랑, 민주주의에 대한 지성적인 존중, 인가의 연약함에 대한 심원한 동정 등으 로 특징지어진다. 그의 대표작은 널리 회자되어 오는「안티고네」(Antigone)와 「오이디푸스 왕」(Oedipus Tyrannos)이다.
③에우리피데스(Euripides)
위대한 비극 작가들 가운데 마지막 인물인 에우리피데스(BC 480~406)의 작품 은 앞서의 작가들과는 다른 정신세계를 담고 있다. 그는 고대의 신화와 ‘금기’ 를 즐겨 조롱한 회의주의자이자 개인주의자였다. 에우리피데스의 두드러진 작 가적 특징은 거지나 농민 같은 하층 평민에게까지 배역을 준 최초의 작가였다.
그는 또한 노예를 동정하고 여성의 사회적 지적 생활에서의 소외에 대해 강하 게 항의한 것으로 도 유명하다, 그의 희곡들은 개인의 성격 발전이나 자아의 갈등이라는 점에서 아이스킬로스나 소포클레스의 작품들 이상의 것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평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우리피데스는 현실 생활과 비슷한 상황 을 다루었기 때문에 가장 비극적인 작가로 불린다.「메데아」(Medea)와 「트 로이의 여인들」등이 대표작이다.
# 그리스 비극 읽기 보조자료 메모
*비극: 보통을 뛰어넘는 위대한 인물이 ‘운명의 힘’에 맞서다가 장중한 최후.
→Katharsis(아리스토텔레스의 비극 이론)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 그 시대의 기본 질서/ 권력의 문제→<안티고네>
* 그리스 비극의 ‘비극적 운명’의 무대는 아테네를 제외한 미케네, 아르고스, 테 배, 코린토스 등의 도시국가의 왕가.
〇 신화와 비극 (현존 3대 작가 작품 33편 모두 그리스 전래 신화가 모델)
* Hesiodos의 신통기(1022행의 서사시); 300명이 넘는 신들의 복잡한 계보를 정 리한 작품. 예로부터 전해오는 신화와 전설을 그리스인의 세계관과 우주관에 비추어 체계화. 메소포타미아 지역 후르르인(Hurrian)들의 ‘신통기’ 참조한 듯.
* 카오스→에레보스(어둠, 암흑의 신), Nyx(밤의 여신)→hemera(낮의 신) ↳가이아(Gaea)와 에로스(Eros)
* 가이아→우라노스(Uranos/하늘)와 폰토스(Pontos/바다)
* 가이아와 우라노스→크로노스를 포함한 티탄(Titans/거신족)12신을 낳음.
* 올림포스 시대 신의 세계; 제우스 천상, 지상, 지하 세계의 새로운 질서 부여.
* 제우스→‘하늘’ 포세이돈→‘바다’ 하데스→‘저승’
* 제우스와 헤라→올림포스 12신 (주신 제우스, 결혼의 신 헤라, 태양신 아폴론, 숲과 달의 신 아르테미스, 지혜와 전쟁의 신 아테나, 미와 사랑의 신 아프로디테, 통신 무 역의 신 헤르메스, 지하의 신 하데스, 바다의 신 포세이돈, 불의 신 헤파이토스, 가정 보호 의 신 헤스피아, 전쟁의 신 아레스)
* 그리스 3대 남신; 우라노스, 크로노스, 제우스
* 거신(Titan)족과 싸워 이긴 제우스가 최후의 지배자가 되어 올림포스 12신들을 통치함.
〇 그리스 신들의 Text
헤시오도시의 ‘신통기’ 이외에도 호메로스를 비롯한 여러 시인들에 의해 새로운 신들이 등장해 옴.
# Hesiodos의 신통기(神統記)
#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아
# 3대 비극작가
# Herodotos의 ‘역사’
# Platon의 ‘대화’편
# 고대 그리스에 새겨진 도자기의 그림
(BC 8-9세기부터 AD 3-4세기까지 그리스어를 사용하는 여러 지방에 널리 퍼 져있던 온갖 불가사의한 설화와 전설과 고대 이집트와 인도 유럽어족의 신화, 그리고 메소포타미아, 소아시아로 이주한 그리스 선주민의 신화 등)
〇 3대 비극 작가
* 아이스킬로스(Aischylos)/ BC 525~456
<아가멤논>, <제주를 바치는 여인들>, <자비로운 여신들>
<결박된 프로메테우스>
<페르시아인들>, <테베를 공격한 일곱장수>, <탄원하는 여인들>
* 소포클레스(Sophocles)/ BC 496~406
<오이디푸스 왕>, <안티고네>,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
<엘렉트라>
<아이리스>, <트라키스 여인들>, <필록테테스>
* 에우리피데스(Euripides)/ BC 480~406
<헬레네>, <오레스테스>, <엘렉트라>, 등 총 19편
〇 그리스 비극의 공연
주신(酒神) 디오니소스 숭배 제전에서 ‘Satyros’ (숲의 신/디오니소스 종자)로 분장한 남성합창단의 디오니소스 찬가(디티람보스). 수석 한 사람이 나와 ‘이야 기’의 주요 부분 낭송. *사티로스; 상반신은 사람, 하반신이 염소임.
* tradegy(비극)의 어원→'tragos(염소)
〇 극장의 3부분(theater⤌theatron,관람석)
① skene(소도구 장소) ② proskeneion(배경 장치/ 신들의 등장)
<proskeneion→무대와 orchestra(합창과 춤의 반원형 무대)>
③ theatron(관람석)
*극장의 3부분; 무대(skene와 proskeneion)/ 오케스트라, 관람석
〇 극의 구성
① prologos; 연극의 ‘주제’와 ‘상황’
② parodos; 등장가 (코러스)
③ episodion(삽화);노래와 노래 사이의 대화 장면→근대극의 ‘막(幕)’
④ stasimon(停立歌);코러스가 오케스트라에 자리잡고 부르는 노래.
각 ‘삽화’에 대한 성찰, 막간의 곡으로 변화.
⑤ exodos(떠남);배우와 코러스간의 대화, 코러스가 무대에서 떠남.
김 춘 섭 (전남대학교 명예교수/국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