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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스크랩 천안함7분미스테리
空山 추천 0 조회 34 10.04.21 20:55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 천안함 사고의 전말 - 7분간의 미스테리 [15]
  • 소중한 사람 enky**** 소중한 사람님프로필이미지
  • 번호 944564 | 10.04.10 12:36
  • 조회 2142 주소복사

먼저 천안함 사고로 숨진 고 남기훈 상사와 고 김태석 상사,  구조작업중에 순직한 고 한주호 준위, 수색작업을 돕다가 실종, 사망한 금양호 선원들의 명복을 빕니다. 그리고 44명의 실종자들이 기적적으로 생환해 오길 마지막까지 빌어 봅니다.  사망자와 실종자, 그리고 고 한주호 준위와 금양호 실종/사망자  가족분들에게도 위로의 말씀을 올립니다.

 

본 글은 언론에 공개된 정보를 토대로 천안함 사고의 전후 과정을 추론해 본 것으로 실제 사실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 사고와 관련된 어느 누구의 명예를 훼손하고자 하는 의도는 추호도 없음을 미리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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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분간의 미스테리 - 천안함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는가


                                                                           


천안함 사고의 원인을 규명하는데 있어 대부분의 사람들이 천안함 선체가 두동강 난 시점에만 초점을 두고 있으나, 사고 원인의 열쇠는 그 전에 천안함에 일어났던 상황이 가지고 있음을 놓치고 있다.

4월3일 MBC 9시 뉴스에서 밝힌 상황보고서를 보면 2함대사령부가 작전사령부에 천안함의 긴급상황을 보고한 시간은 3월 26일 오후 9시 15분으로 나온다. 그리고 9시 22분 천안함은 선체가 두 동강 나면서 KNTDS에서 사라진다. 9시 15분(긴급상황 발생)에서 9시 22분(선체 두 동강)까지 천안함에는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1. 천안함에 긴급상황이 발생한 것이 언제일까?


천안함은 침몰(선체 두 동강) 되기 전에는 어떠한 문제도 없었고, 9시 22분 갑자기 순간적으로 사고(외부로부터의 피격, 내부 폭발)를 당한 것일까? 국방부나 해군은 MBC 뉴스의 내용을 부인하고 9시 19분에 천안함과의 교신에서 특이상황이 없었다면서 천안함은 침몰 전에는 어떤 긴급한 상황도 발생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과연 그럴까?

해경의 발표는 국방부와 전혀 다르다. 해경이 처음 발표한 내용을 보면 해군으로부터 구조 요청을 받은 시간은 9시 15분이라고 했고, 상황일지에도 그렇게 되어 있다.

국방부도 긴급상황 발생시간을 9시 15분이라는 것을 보여 주는 내용을 본의 아니게 드러냈다. 국방부가 29쪽에 걸쳐 공식입장을 발표한 문건의 7쪽을 보면 긴급상황 발생이 9시 15분임을 이야기하는 명백한 증거가 있다. 


국방부 발표문 전문

7쪽의 “2. 탐색 및 구조전력 현장 도착 및 구조작업 지원 현황”을 보자.


“해난구조대(71명)는 상황발생 40분만인 21:55에 비상 소집되어 3시간 동안 출동준비를 실시한 후 버스 2대에 분승하여 01:00에 육로로 출발, 평택까지 이동하였고 다음날 아침 일찍 헬기를 이용 하여 백령도에 10:00경 도착, 현장 수색 및 작업 위치를 선정 후 15:00부터 구조작업을 시작하였음.”


상황발생 40분만인 21:55에 비상 소집했다면, 상황 발생시점은 21:15분이라는 것을 역산할 수 있다.

국방부와 해군은 사고 원인과 시각을 은폐하고자 많은 노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초기에는 모든 상황을 짜 맞추지 못하고 많은 허점을 노출한 것이다.


9시 15분에 천안함에 긴급상황이 발생했다고 볼 수 있는 정황들은 이것 말고도 또 있다.

백령도의 해병 6여단 33방공진지 초병은 9시 15분경 폭음(소음)을 들었다는 보고를 했다. 이 폭음(소음)은 천암함이 전속력을 내기 위해 가스터빈을 가동하기 시작할 때 났던 소리로 추정된다.

실종자 가족과 애인들은 9시 15~16분경 실종자들이 전화 도중에 긴급상황이 발생했다며 전화를 끊거나, 문자 메시지를 주고 받던 중 갑자기 문자가 중단되고 그 이후 통화도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것 역시 천안함에 9시 15분경 무슨 중대한 상황이 발생했음을 방증한다.


해경의 발표, 국방부가 은폐하는데 실패하고 허점을 보인 해난구조대 비상소집 시간, 실종자 가족들의 증언, 백령도 초병의 폭음 탐지 등을 종합해 보면 천안함에 긴급상황이 발생한 시간은 9시 15분이 확실하다.


2. 국방부의 최초 긴급상황 발생시점이 9시 15분이 아니라는 말은 사실일까?


9시 15분경 천안함에 이상이 생긴 것을 증명하는 많은 증거들이 드러남에도 왜 국방부는 이를 부인할까?

국방부는 천안함이 침몰하기 3분전(9시 19분)에 2함대사령부와 천안함이 한 차례 교신이 있었지만 일상적이고 평범한 내용이기 때문에 군 기록에는 남아 있지 않았고 국제상선 통신망에 기록돼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천안함에 기록이 남아 있을 수 있지만 침몰한 상황이라 확인이 안되고 있다고 말했다.

먼저 국방부에 한가지 확인을 하고 가자. 2함대 사령부와 천안함의 교신 내용을 국제상선 통신망을 통해 알 수 있다는 말인가? 이것이 사실이라면 우리의 군사기밀이 그대로 민간에 노출된다는 뜻인데, 해군의 통신 보안 상태가 이 지경이라는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천안함 침몰 당시의 교신 내용을 공개하라고 요구해도 군사기밀이라 공개할 수 없다고 말해 놓고 교신 내용은 국제상선 통신망에 노출시키고 있다니 말이 되는가?

2함대사령부와 천안함이 9시 19분에 교신 한 것은 사실일 것이다. 아니 9시 15분부터 9시 22분까지 엄청난 량의 교신을 했을 것이다. 9시 15분 천안함은 이상이 생겼고, 그에 따른 대책을 협의하고 위치를 확인하려면 평소보다 수십 배의 교신을 했을 것이다. 국방부가 이야기하는 9시 19분 교신이 있었다는 사실은 천안함이 문제가 없었다는 증빙이 절대 될 수 없다. 9시 19분 교신 내용을 구체적으로 적시하여 진짜 평온한 내용임을 증명하지 않는 한 아무 의미가 없다.


9시 16분 해병 6여단 방공진지 초병이 폭음(소음)을 들었다는 보고도 국방부는 초병이 폭음 청취시간을 10시 16분으로 적어 보고한 것을 정정하면서 나온 해프닝일 뿐이라고 둘러댄다. 그런데 상황병이 보고한 시간은 9시 45분이다. 즉 그 폭음은 백번 양보하더라도 9시 45분 전에 있었다는 이야기이다. 9시 22분 천안함이 두 동강 나던 위치나 시점의 폭음이 아니다. 이 초병은 천안함 사고 지점과 다른 수 Km 떨어진 곳에서 난 폭음(소음)을 청취하고 보고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 폭음(소음)은 무엇일까? 9시 16분부터 9시 45분 사이에 백령도 앞바다에 천안함 외에 다른 물체들이 일으킨 폭음이란 말인가? 그 폭음이 천안함이 가스터빈을 가동할 때 낸 소리가 아니라면 그 실체를 국방부는 밝혀야 한다.


긴급상황 발생 시점부터 침몰 시점 사이에 천안함의 사정을 알고 있는 유일한 민간인이 있다. 9시 20분에 실종자 차하사와 통화한 어머님이다. 차하사는 9시 16분까지 애인과 문자 메시지를 주고 받다가 더 이상 응답을 하지 않았던 바로 그 사람이다. 차하사는 애인과 문자 메시지를 중단하고 9시 20분경 어머님과 통화를 했다. 그런데 이 어머님의 신병은 정부가 확보하고 있는 것 같다. 정부가 그 어머님과 연락하고 있고, 소재지도 파악하고 있단다. 이 분은 본인이 책임의식이 있어서 그런지 공개적으로 말씀을 하기를 꺼린다고 정부측은 이야기한다.(조선일보 4/5일자 참조) 차하사 어머님은 실종자 가족과 함께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모처에 있다는 것이고, 말씀을 꺼린다는 것은 정부측이 발표한 내용과 다른 이야기를 차하사한테 들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9시22분 전까지 천안함에 아무런 일이 없었다면 차하사 어머님이 9시 20분에 차하사와 통화한 내용을 공개하지 않을 이유도 없다. 정부도 공개를 막을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공개하게 하여 정부측 발표의 신빙성을 증명할 수 있는데 이런 호재를 왜 활용하지 않을까?

 

천안함 사고 지점이 백령도에서 1.8km 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인데 왜 해군은 코 앞의 백령도 해병대에 구조 요청을 하지 않은 것일까? 백령도 해병대에는 해병수색대가 있어 구조 요청 즉시 10분이면 사고 현장에 도착할 수 있다고 한다. 1.8km 거리이면 1분 30초면 갈 수 있어 출동준비시간을 감안하더라도 10분이면 족하다고 백령도 해병수색대 출신은 말하고 있다.

해군이 해병대에 구조요청을 하지 않은 이유를 필자가 짐작해 보면 다음과 같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9시 15분 천안함에 긴급상황이 발생한 지점은 대청도 인근이고, 그 때에 해경 1002함은 대청도 남쪽에, 해경 501함은 대청도의 남동쪽에 위치해 있었다. 해경이 해군으로부터 구조요청을 받을 때 천안함의 위치는 백령도에서 약 10km 남쪽인 위도 37도55, 경도 124도36이었다. 긴급상황이 발생한 시점(9ㅣ15분)에는 백령도 해병대보다는 해경 1002함과 501함이 구조가 쉬웠을 것이라고 판단하고 해경에 구조 요청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천안함은 1,200톤급이 접안할 수 있는 시설이 대청도에 없음으로 급히 백령도로 피항하려고 북쪽으로 전속 항진했다. 긴급상황 발생후 선체 절단 사고까지 7분간 천안함이 북쪽으로 이동함으로써 막상 사고가 난 지점은 백령도와 가깝게 되었지만, 이미 해군은 해경에 구조 요청을 해 놓은 상태라 굳이 해병대에 구조 요청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것이 아닌가 한다. 그러나 이러한 해군의 판단은 못내 아쉽다. 사고가 발생하자마자 해병대에도 구조요청을 했더라면 1명의 실종자도 더 구조할 수 있었을텐데.....


이상에서 살펴본 대로 9시 22분 천안함이 두 동강 나기 전까지 천안함에는 아무런 일이 없었다는 정부의 해명은 설득력이 전혀 없다. 


*추가(4/6) : 국방부는 9시15분에서 9시20분 사이 생존자 중 가족과 통화한 사람이 4~5명이 있다고 하면서 이것은 9시22분 사고 직전까지 천안함에는 특이사항이 발생하지 않은 증거라고 말하고 있다. 사실여부를 떠나 그 시간대에 통화한 사람이 있다는 것이 천안함에 아무런 일이 없었다는 증거는 되지 못한다. 천안함은 그 시간대에 적군의 공격을 받거나 적함을 추적하는 전투 모드에 돌입했던 것이 아니라 선체의 결함 때문이었음으로 기관부를 제외한 파트는 별다른 할 일이 없어 가족과 통화할 시간이 있었던 것뿐이다. 이는 대체적으로 일이 많았을 선미 부분의 기관 파트에 근무했던 사람들(나중에 대부분 실종) 중 그 시간대에 가족과 통화한 사람은 차하사 한 사람 뿐이고, 생존자들이 가족과 통화한 사람이 4~5명으로 상대적으로 많다는 것은 함수에 있던 생존자들은 선체의 문제에도 불구하고 별다르게 할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실종자 중 차하사도 어머니께 전화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던 것으로 볼 때, 선체 결함(침수, 균열)에 따른 조치에 직접 참여한 것은 아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생존자들이 실종자들의 위치를 거의 정확하게 그려낼 수 있었던 것도 선체에 이상이 생겨 함장이나 부사관들이 각자의 임무를 부여했고 장병들은 부여 받은 위치에서 임무를 수행중이었던 것으로 보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그리고 실종자의 대부분이 사고 처리를 담당하는 보수, 내연, 기관, 내기, 외기 등 기관부 파트 소속이라는 점과 생존자 다수가 작전부와 포갑부 소속이라는 것도 비상 상황이 전투 모드가 아니라 선체의 이상에서 발생한 것이라는 반증이 된다. 생존자들의 구조 당시의 복장이 전투복 뿐 아니라 평상복, 체육복, 내복이었던 것도 비상 상황이 전투와는 무관하다는 것으로 유추할 수 있다.


만약 9시15분에서 9시22분 사이 천안함이 아무 일 없이 편안한 상태라면 생존자들이 후타실에 5명이 있을 것이라고, 그리고 그 5명의 이름도 정확히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 시간대는 장병들이 휴식을 취하거나 취침에 들어갈 시점으로 천안함이 평온한 상태라면 결코 후타실에 있었던 장병수와 그 이름을 알 수 없다. 그것도 기관부 소속의 사람들의 위치를 포갑부나 작전부 소속의 생존자들이 알 수는 더더구나 없다고 본다. 9시 22분 급작스럽게 선미가 떨어져 나갔다면 함수의 생존자들이 함미의 실종자들의 위치를 안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실종자들의 위치를 알 수 있었던 것은 선내에 무슨 일인가 일어났고, 함장이 이에 대처하기 위해 승조원 각자에게 임무와 위치를 부여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천안함이 긴급 상황이 발생하여 승조원이 각자의 임무와 위치를 부여받고 행동하고 있었다는 또 하나의 증거가 있다.

천안함의 함수에 있던 장병들의 구조를 마치면서 더 이상의 구조가 필요한 사람이 있는지 해경 501 함장이 천안함 함장에게 물었을 때, 최원일 함장이 말했던 부분이다.

“이제 다 된 것 같다. 내가 마지막인 것 같다.”

최 함장이 승조원들이 선체가 두 동강 나는 시점에 함수와 함미 어디에 위치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하고서는 할 수 없는 말이다. 즉 최 함장은 선체가 두 동강 나기 전에 비상상황이 발생하여 승조원에게 임무와 위치를 부여해서 이미 승조원의 위치를 파악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추가(4/7) : 국방부가 사건 발생 1주일 후인 4월1일 국회에 제출한 언론 쟁점 대응 보고서에 따르면 합동참모본부, 해군작전사령부, 2함대사령부 등의 상황일지에 사건 발생 시간은 모두 3월 26일 오후 9시 15분으로 기록되어 있다. 해경이 발표한 바로 그 시간이다. 그러나 국방부는 4월7일에 “지난 26일 오후 9시 16분 백령도 방공진지에서 청취된 미상의 큰 소음을 해군작전사령부는 천안함과 관련된 것으로 추정해 상황발생시간을 오후 9시 15분으로 보고했다”며, ”그 소음은 천안함과 관련된 것이 아니었다“고 발표했다. 합참과 해작사, 2함대사령부가 사건 발생 1주일 후 보고에서는 9시 15분이라고 했다가 또 6일이 지난 4/7에 이를 부인하고 9시 22분이라고 한 것이다. (동아일보 4/8 A2면 참조)

국민들을 호구로 알거나 바보 천치로 보지 않는 이상 이런 말도 안되는 거짓말을 할 수가 없다. 아니면 우리 해군은 유치원생이 골목대장하면서 동네 아이들을 데리고 전쟁놀이하는 것보다 못한 수준이던가. 사고(사건)이 발생한 지 1주일이 되었는데 사고 발생시간을 확인못했다는 것을 믿으란 말인가? KNTDS에 천안함이 9시22분까지 멀쩡히 나타나 있었을 것이고, 위성통신체계에 신호가 잡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백령도의 TOD 촬영분에도 나타났을 것이고, 9시19분에 교신도 했다면서 사고 발생시간을 9시 15분으로 알고 있었다고? 더 말도 안되는 것이 최원일 함장을 비롯한 생존자가 58명이 버젓이 있는데 이들에게 물어봐도 단번에 알 수 있는 것을 사고 발생 1주일 뒤에도 9시 15분이라고 잘못 알고 있었다고 사기를 치다니....  이것을 우리 보고 믿으라고 하나?


해경의 첫 공식 발표에 따르면, 해군으로부터 구조 협조를 요청 받은 때를 9시 15분이라고 했고 구조 요청 지역도 천안함이 절단 사고를 당한 지점과 9km 남쪽에 있는 곳이었다. 해경은 그 시각과 구조 요청 지역 좌표를 임의로 상황일지에 기록했다는 이야기인데 이것이 가능한 이야기인가? 그리고 해경도 공식 발표 당시 이미 백령도 해병대로부터 9시 15분에 소음이 있었다는 정보를 입수했기 때문에 착각을 하고 구조 요청 접수시간을 9시 15분으로 발표했다는 말인가? 차라리 9시 22분에 천안함이 사고가 일어날 것을 예견한 인당수의 심청이가 해경에게 9시 15분에 미리 알려주었다고 말하는 것이 낫겠다.


4/7 국방부는 세 번째로 TOD 촬영분을 추가 공개했다. 천안함이 정상적으로 이동하는 장면(오후 9시 4분 6~9초, 3초간)과 함수와 함미가 분리되어 함미가 가라앉는 장면(오후 9시 24분 18초~25분 19초, 1분1초간)이 담겨있다. 최초 장면에는 천안함이 백령도 남쪽 해역에서 동남쪽으로 6.3노트 속도로 이동하고 있었다.

그런데 국방부는 왜 9시 4분 9초부터 9시 24분 17초 사이의 장면을 보여주지 않는가? 그 시간대에는 특이사항이 없어 TOD 관측병이 딴 곳을 촬영하고 있었다고 국방부는 변명한다. 내 참, 이걸 믿으란다. 하필 천안함의 절단 사고의 원인의 비밀을 갖고 있는 이 시간대의 촬영분만 없는 것일까? 이걸 우연이라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

관측 지역에 적함이든 아군의 함정이든 운항중에 있는데 이것을 관측하지 않고 딴 곳을 촬영했다고? 그것도 초계함이 정상 항로를 이탈하고 해안으로 급속히 다가오고 있는데 말이다. 만약 그 함정이 적함이었다면 어떻게 할려고 시야(TOD)에서 그것을 놓친단 말인가? 좋다. 그렇다면 천안함을 촬영하는 대신 촬영했다던 그 시간대의 촬영분 영상을 공개해 봐라. TOD의 운용 목적이 무엇이며, 군의 TOD 매뉴얼은 어떻게 되어 있는가? TOD가 관측해야 할 지역은 정해져 있을 것이며, 항상 그 지역은 특이사항이 있든 없든 관측해야 하는 것이고, 이를 게을리 한 경계병(관측병)은 영창을 가야 한다.


국방부와 해군은 9시 15분 발생한 첫 번째 천안함의 긴급 상황(선체 균열과 침수가 시작된 것으로 추정)을 철저하게 숨기려 하고 있다. 이는 앞에서도 말했지만 9시 22분에 발생한 천안함 피로 파괴(선체 두 동강난 것)의 원인을 앞의 9시 15분 긴급상황이 설명해 주기 때문이며, 긴급 상황(9시 15분)의 발생 원인이 선체 노후화, 수리 부실, 함정 운용 잘못으로 드러날 것을 해군이 두려워 하기 때문이다.

특히 9시 15분 긴급 상황에 잘못 대처하여 결국 9시 22분 선체 절단의 결과를 초래했다는 비난을 면키 어려운 점도 함장과 군(2함대 사령부, 작전사, 합참)이 9시 15분~22분 상황을 끝까지 숨기려고 하는 이유이다.  만약 9시 15분 긴급 상황이 발생했을 때, 백령도 쪽으로 피항을 위해 전속 항진하지 말고 승조원 전원에게 퇴함 명령을 내리고 구명정으로 옮겨 타게 하여 구조를 기다리게 했으면 전원 생명은 보전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천안함은 예인하여 수리를 받게 했더라면 어떠했을까 생각해 본다. 물론 함장이나 해군 입장에서 설마 선체가 두 동강 날 것이라고 상상은 못했을 것이라고는 인정되지만 결과적으로 최악의 상황을 맞은 것에 대한 책임은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3. 천안함은 언제 사고(선체 두 동강)를 당했는가


이것은 논란의 여지가 없는 것 같다. 국방부나 해군도 9시 22분경이라고 최종 확인하였고, 이를 증명해 주는 여러 사실들이 나왔다.

지진파가 감지된 시점도 이 때였고, 천안함이 KNTDS에서 사라지고 위성통신체계에 신호가 잡히지 않은 시점도 이 때였다. TOD에 두 동강 난 영상이 잡힌 시간을 볼 때도 선체가 두 동강 난 것은 9시 22분경이 확실한 것 같다.

선체가 두 동강난 사고 시점이 9시 22분경이라는 것에는 아무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해군과 국방부는 마치 이 시간이 핵심이며, 사건(사고)은 9시 22분에 일어난 것(선체 절단) 외에 없다는 점을 계속 강조하고 있다. 우리는 9시 22분의 선체 절단 사고 전에 천안함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가 궁금한데 말이다.


* 지진파는 다소 논란의 여지가 있다. S파가 작다고 하여 인공 지진파로 보았는데, 해양에서는 S파가 없고, 짧은 거리에서는 S파가 잡히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있어 이것이 폭발 시(혹은 선체 절단이나 암초에 부딪힐 때 났던) 인공지진파가 아니라는 반론도 있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2.0 정도의 지진은 하루에 한번 정도 일어나기 때문에 3/26 백령도에서 관측된 지진파가 특이하다고 볼 수도 없다고 한다. 1차 지진파 이후 31초 뒤에 2차 지진파가 나타났는데 이것을 1차는 선체 절단 혹은 어뢰 폭발 때, 2차는 함미가 해저에 침몰할 때 일어난 것으로 보았다. 하지만 TOD 촬영분을 보면 선체가 함수와 함미로 절단된 이후 3분 넘은 후에야 함미가 가라앉은 것을 보면 이러한 해석도 맞지 않다.


4. 긴급상황이 발생한 위치와 선체가 두 동강이 난 위치는?


해군으로부터 구조 요청을 받은 해경의 첫 발표를 보면 천안함이 이상이 생긴 위치는 위도 37도50, 경도 124도36이며, 군 당국이 발표한 사고 위치는 위도 37도55, 경도 124도37로 긴급상황 발생 지점과 사고 발생 지점이 9km 정도의 거리가 있다. 천안함이 9시 15분 ~ 9시 22분간 7분만에 9km를 이동한 것이다. 무려 시속 77km/h의 최고 속력으로 항진한 것이 된다. 천안함의 최고 속도는 32노트(59km/h)이고 평상시에는 5노트(9.3km/h), 작전시에는 12노트(22.2km/h)로 운항하는데 이 때는 디젤엔진만 사용하고, 전속으로 운항할 때는 가스터빈을 가동한다고 한다.

천안함의 행적을 추적해 보면 9시 15분경 이상이 발생했고, 그에 대한 대책으로 가스터빈을 가동하여 전속력을 다해 백령도 해안으로 항진했음을 유추할 수 있다. 백령도 해병 초병이 들었다는 폭음이 이 가스터빈이 가동될 때 났던 것으로 추측된다.


* 추가(4/7) : 4/7 함미의 절단면 기관조정실에서 김태석 상사의 시신이 발견되었다. 김 상사는 함정의 가스터빈 정비 및 보수유지를 담당하는 내기 부사관으로 발견 당시 상하의 얼룩무늬 해군 작업복(연합뉴스, 조선일보는 전투복이라고 함)을 입고 있었다고 한다.

사고 당시 가스터빈 담당 부사관이 작업복(전투복)을 입고 기관조정실에 있었다는 것은 무얼 의미할까? 국방부 발표처럼 사고 당시 천안함이 6.3노트로 운항중이었다면 함정은 디젤엔진만 가동하고 가스터빈을 가동하지 않았을 것이다. 가스터빈은 함정이 전속력을 낼 때에 가동하는 것이다. 통상 9시 22분경은 당직자 외에 다른 승조원은 취침이나 휴식시간이었을 것이고, 더구나 가스터빈이 가동되지 않은 상황이라면 가스터빈 담당인 김상사는 취침이나 휴식을 취할 확률이 높았을 것이다. 그런데 김 상사는 사고 당시 작업복(전투복)을 입고 기관조정실에 있다가 변을 당했다. 과연 김상사는 그 때 거기서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물론 그 시간에 당직을 설 수도 있겠지만, 확률적으로는 가스터빈 가동을 하고 있었다고 보는게 타당하지 않을까?


5. 천안함은 왜 백령도 1.8km까지 근접 운항을 했을까?


천안함이 사고가 난 지점은 백령도에서 1.8km 떨어진 곳으로 통상적으로 1,200톤의 초계함이 운항하지 않는 곳이다. 백주 대낮에도 운항하지 않는 곳을 천안함 함장은 왜 어둑컴컴한 야밤에 이 곳을 운항했을까? 그것도 전속으로 말이다. 암초에 의한 좌초의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운항하지 않으면 안되는 무언가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 사정이 무엇이었을까? 북한의 함정, 잠수함(정)을 추격하러? 9시 15분에 피격되어 회피기동하여 백령도로?



6. 7분간 천안함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이 부분은 필자의 상상력에 의존한 것이며 실제 사실과 다를 수 있음. 소설로 보아주길 바람)

천안함은 9시 15분경 긴급상황이 발생했고, 그것의 대책으로 급히 백령도로 전속으로 항진하다 9시 22분경 선체가 두동강이 나는 사고를 당한다. 과연 이 7분 동안 천안함에는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9시 15분 : 노후화된 천안함 선체에 균열이 생기고 선저 후타실에 침수가 발생.

함장은 장교와 부사관들을 함수로 불러 대책회의를 하고, 함대사령부에 긴급상황을 보고, 구조를 요청함. 천안함으로부터 상황을 보고 받은 해군은 즉시 해경에 구조 요청을 함.


9시15분~9시22분 : 전장병에게 비상상황을 알리고, 후타실 침수를 막으러 5명의 장병을 보냄. 전 장병들은 적의 공격이 아니라 선체 결함에 따른 비상 상황임으로 전투태세가 아닌 긴급상황 발생 시점의 복장으로 대처함. 함대사령부와 계속 교신하면서 대책을 협의함. 함장은 백령도로 피항하기로 결정(가까운 대청도에는 1,200톤급 선박이 접안할 수 있는 시설이 없는 것으로 생각됨-필자 생각), 가스터빈을 가동하여 전속으로 항진. 후타실 침수가 심해져 선미로 물이 차올라 선수와 선미의 균형이 깨어짐, 균열이 시작된 선체는 함정의 가속으로 인해 점점 피로도가 심해짐. 백령도 1.8km까지 근접.


9시 22분 : 높은 파고와 너울, 급한 조류로 피로 한계에 다다른 선체는 더 이상 지탱하지 못하고 두 동강이 남. 혹은 전속으로 항진하던 함정이 암초에 부딪혀, 그 충격으로 선체가 두 동강 남.


7. 천안함 사고의 원인을 선체의 노후화, 높은 파고/너울/급한 조류, 암초라고 보는 이유


1) 천안함의 상태

실종자 가족의 증언에 따르면 천안함은 침수도 자주 되고, 수리도 제대로 되지 않아 위험하다고 승조원들이 승선하기를 꺼려했다고 한다. 침몰되기 몇일 전에도 작전 중에 수리를 위해 귀항했다가 이틀만에 작전에 투입되었다고 한다.

1989년 건조되어 21년 밖에 되지 않았다고 하나, 기준 출항 회수보다 훨씬 많은 작전 참여로 연식 이상의 노후화가 진행되었다고 한다. 건조 후에 선미에 하푼 미사일 4기(2톤)를 장착하는 등 적재 중량보다 많은 화기와 설비들이 추가로 적재되었다.


2) 생존자들의 상태

생존자들의 상태는 국방부가 발표한 자료를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미입원인원 : 함장 등 6명, 사고현장 수색작업 지원  

* 수도병원 환자(52명) 대상, 특이사항 없음(3.30)

* 중환자실 환자(2명)은 경과관찰 후 진료 예정

?신체적 증상에 대한 응급진료결과 : 생명 지장 없음.

* 중환자(2) : 골절로 인한 수술(2)

* 경환자(50) : 염좌(22), 타박상(8), 골절(6), 뇌진탕(3), 인대파열(2), 기타(9) 

출처 : [29쪽 자료 전문] 천안함 침몰 관련 국방부 공식 입장 - 오마이뉴스

국방부가 발표한 자료만 보더라도 생존자 58명 모두 생명에 지장은 없으며, 부상자들도 염좌, 골절 등 외상이다. 외부의 피격이나 내부 폭발이라면 필히 발생해야 할 화상 환자나 내장 파열, 청각 손상, 파편에 의한 부상 등은 한 건도 없다. 그리고 생명이 위독한 중환자도 없으며, 직접 타격을 받은 사람은 사망에 이르렀을 것인데 사망자도 없다.

피격이나 내부 폭발이라면 거대한 물기둥(버블 젯트)이 발생하고 그로 인해 생존자들이 물과 진흙(뻘)을 뒤집어 썼을 것인데 모두 얼굴에 물기도 없고 피복에도 그런 흔적이 없다.

복장도 전투복 외에 근무복, 체육복, 내복으로 사고 전에 전투상황은 아니었던 것임을 알 수 있다. 해경 501 함장의 증언에 따르면 구조 당시 생존자들은 대체로 침착하고 담담했다고 한다. 사전에 위험을 감지하고 사고를 당한 것으로 보인다. 이들의 태도를 보면 사고 전에 긴급 상황이 발생했다고 볼 수 있다.



3) 부유물이 없고 폭발 흔적이 없다.

사고가 난 지역에는 폭발로 발생하는 부유물이 별로 없고, 사망자도 없다. 함수에서 발견된 부유물에는 불에 탄 흔적이 없다. 함미를 탐색한 결과 연료 탱크와 탄약고도 온전한 상태이다. 잠수부의 말에 따르면 함미와 함수의 절단면이 대체적으로 매끈한 상태라고 한다. 이는 폭발에 의한 절단면의 형태가 아니다. 함장을 비롯한 생존자들 중에 버블 젯트(물기둥)를 목격한 사람도 없으며, 백령도 주민이나 해병 초소에서도 이를 보았다는 보고도 없다.

최원일 함장은 최초 증언에서 폭발이나 폭음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고, 소음, 충격음이라는 표현을 썼다. 그리고 화약 냄새는 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사고 지역은 어초를 많이 넣어 놓아서 물고기들이 많은 지역이고, 까나리 철이 4월이긴 하나 3월 26일에도 그 지역은 까나리가 많았을 것이라고 백령도 주민은 말하고 있다. 천안함을 절단낼 절단의 폭발이라면 당연히 그 주변에는 대량의 물고기 사체가 떠올라야 하는데 이런 현상이 보이지 않았다. 또 사고시간이 9시22분이고 9시47분이 그 날의 간조 때라 물고기 사체가 조류에 의해 휩쓸려 갔을 가능성도 없다고 한다.

 

사고 당시가 키리졸브 훈련과 독수리 훈련 중이었다는 이유로 미군이나 한국군의 오폭일 가능성이 있다는 일부 생각없는 좌파측 의견도 있으나, 이는 정황과 사실을 무시한 망상에 불과하다. 북한의 스텔스 잠수함(정)이 소리 나지 않는 추진체로 소나에도 탐지되지 않는 어뢰를 발사하여 천안함을 격침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랑 별반 다를 바 없다.


* 추가(4/7) : 4/3 함미의 절단면에 끼인 채  발견된 고 남기훈 상사를 수습한 SSU 대원의 이야기로는 시신에 별다른 상처는 없었다고 하고, 국방부도 골절상과 근육이 찢어졌으나 화상을 입었거나 파편이 박힌 흔적에 대한 언급은 없다. 4/7일 함미 절단면 기관조정실에서 발견된 고 김태석 상사의 시신의 상태는 아직 알려진 바는 없으나 화상과 파편에 의한 상처 이야기는 나오지 않고 있다.

폭발이라면 가장 직접적으로 타격을 받았을 절단면에 있던 두 사람의 시신에서 폭발 흔적이라곤 찾을 수 없다. 이는 어뢰, 기뢰 등의 폭발물에 의한 사고가 아니다는 증거이다.

 


추가(4/9) : 4/9자 한겨레 신문에 국방부가 역V자로 꺽이는 천안함과 버블젯트(물기둥)응 보았다는 백령도 초병의 증언을 확보했다는 기사가 나왔다. 이제 북한의 어뢰나 기뢰 공격으로 몰아갈려고 작정했나 보다. 사고가 발생한 지 2주가 지난 지금에 와서 물기둥을 봤다는 초병의 증언을 확보했다는 이야기도 웃기거니와 천안함 생존자들의 물기둥을 보지 못했다는 증언에는 캄캄한 밤이라 보지 못했을 수 있다고 억지를 쓰던 국방부가 1.8~2.5km나 떨어진 백령도 초병이 물기둥과 역 V자 침몰 장면을 보았다는 초병의 말은 왜 그렇게 신뢰하는지 모르겠다. 그 거리에서 캄캄한 밤에 육안으로 보이면 고가의 TOD 장비는 왜 쓰는지도 알 수 없다.  

이 초병의 증언도 과학적으로도 신빙성이 없다. 초병과 천안함 사고 지점과는 1.8km~2.4km 정도의 거리가 있다. 이 초병은 꽝 하는 폭음을 듣고 사고 현장을 보니 천안함이 역V자로 꺽이고 있었다고 했다. 그런데 초병이 폭음을 들은 순간에는 천안함은 이미 V자든, 역V자든 꺽이는 현상은 이미 진행되어 버려 초병은 그 장면을 절대 볼 수 없다. 소리의 속도는 1초에 340m이다. 초병과 천안함의 거리가 1.8km라고 하더라도 초병은 버블 젯트가 일어나 천안함이 꺽이는 시각으로부터 약 5초 후에 폭음을 듣게 된다. (1,800m/340m/sec = 약 5sec) 번개가 친 것을 본 후 수 초 뒤에 우리가 천둥 소리를 듣듯이 말이다. 호주의 버블젯트 실험 장면을 보면, 폭발 후 곧바로 선체의 중앙부가 들여올려지는 역V자 현상이 일어난다. 불과 1~2초 사이이다. 그런데 초병은 폭발후 5초 뒤에 이 장면을 보았다는 뜻이 되는데, 이것이 과학적으로 맞는 말이겠는가?

어뢰로 몰아가려는 국방부나 군당국은 그렇다 치고, 도대체 이 말을 기사화하는 한겨레는 또 무엇인가? 국방부나 군당국의  장단에 맞춰 아무 생각 없이 기사나 올리고....  완전 맛이 갔다.


4) 북한 해군 화기 수준

만약 북한의 어뢰가 수중에서 폭발한 것이 원인이라면 북한의 해군 전력은 우리가 파악하고 있는 훨씬 이상의 기술력을 가진 것이 될 것이다. 30노트 이상의 속도로 항진하는 함정의 중앙 하부 밑에서 어뢰가 정확히 폭발하려면 어느 정도의 기술력이 필요할까? 과연 한국 해군도 이런 어뢰를 보유할 수 있을까? 지금 북한의 사정과 북한 해군의 전력으로 이런 어뢰를 갖고 있을까?

 

또 어뢰 공격이라는 어떠한 흔적도 천안함의 소나에는 관측되지 않았다. 북한이 스텔스 기능을 갖춘 어뢰나 프로펠러 대신 소음이 나지 않는 어뢰 추진체를 개발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 없다. 보수 신문에서는 인간 어뢰 운운하는데, 차가운 바다와 급한 조류, 높은 파도에 고압의 수압을 견디며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북한 특수요원들이 슈퍼맨이 아닌 이상 불가능하다.


북한이 설치한 부유기뢰가 유실되어 부딪힌 것이라고 보기에는 조류 흐름상 가능하지도 않다. 설사 천안함에 부딪혔다 해도 진행 방향상 충돌 부위는 함수여야 하고, 또 해저가 아니라 해면에서 폭발했을 것이다.

북한이 이 지역에 부설기뢰를 설치한다는 것도 말이 안된다. 통상 이 지역은 초계함이 다니는 곳도 아닌데 힘들여 들어와서 이 곳에 설치하겠는가? 우리 어선 잡자고 그 짓을 했을리야 없지 않겠는가? 


5) 북한 동향과 미국의 입장

정부도 그 당시 북한의 특이상황은 없었다고 했으며, 미국은 선체 자체의 문제 이외의 어떠한 요인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 없다고 발표했다. 한반도 상황을 손바닥 같이 들여다 보고 있으며, 한국보다 월등한 감시체계와 장비를 보유한 미국은 거의 단정적으로 외부의 공격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6) 결국 남는 것은 함정 자체의 문제와 자연 조건이다.

위에서 살펴본 대로 천안함의 사고 원인은 어뢰, 기뢰, 폭뢰, 내부 폭발은 절대 아니다.

그렇다면 남는 것은 외계인의 짓이 아니면 자연의 힘 밖에 없다.

노후화 된 선체가 높은 파고, 너울, 급한 조류와 만나고, 또는 암초에 부딪히자 종강도가 약해져 피로 파괴가 일어나면서 용골이 절단되었다고 밖에 할 수 없다.


* 피로 파괴가 원인이라면 생존자들이 사고 당시 20~30cm 정도 공중에 붕 떴다거나 그런 느낌을 받았다는 것을 설명할 수 없다는 반론이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증언은 오히려 피로 파괴로 선체의 중앙부가 절단되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선체 중앙부가 절단되면 중앙부는 아래로, 선수와 선미는 반대로 위로 솟았을 것이다. 이런 현상이 일어나면 중앙부 쪽에 있던 사람들은 선체는 아래로 내려가지만 사람들은 관성에 의해 그 위치(높이)를 유지함으로 순간적으로 붕 뜨는 느낌을 받을 것이고, 선수나 선미 쪽에 있던 사람들은 선체의 솟구침의 힘에 의해 사람도 따라 공중으로 올라가게 된다. 시이소의 올라 갈 때의 느낌을 연상하면 되겠다.

만약 어뢰 등의 폭발에 의한 것이었다면 사람들이 20~30cm(함장은 50cm라고 증언)만 공중으로 붕 뜨는 정도가 아니라 이것의 10배인 2~3m 이상 공중으로 날아갔을 것이며, 이로 인해 심각한 부상자와 사망자가 나왔을 것이다.


8. 속초함의 발포 의미


속초함은 천안함이 두 동강 난 시점(9시 22분) 이후 약 1시간 38분이 지난 11시에 북으로 올라가는 물체에 76mm 함포 130여발을 발사했다. 천안함을 피격하고 도주하는 북한의 함정이나 잠수정 혹은 비행체일 수가 있어 발포하였으나 나중에 이 물체가 새 떼로 밝혀졌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속초함은 대공 레이더가 없어 비행체를 확인할 수 없고 수면의 물체(함정이나 잠수정)를 파악할 수 있는 기기는 갖고 있다고 한다. 3월에 수면 위를 저공으로 북쪽으로 나는 새 떼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천안함을 어뢰로 공격하고 수면 위로 갈 수 있는 물체는 잠수정 밖에 없다고 본다면 사고 발생 1시간 40분이 지난 시점에 북한의 잠수정이 NLL 남쪽에 있을 확률이 얼마나 될까? 천안함 사고 지점과 NLL과의 거리는 20~30km 정도가 될려나, 백령도에서 북한의 비파곶 해군기지까지가 80km되니까 많이 잡아도 30km는 되지 않을 것이다. 북한의 잠수정이 1시간 38분 동안 갈 수있는 거리가 얼마나 될까? 북한 잠수정의 최고 속도가 50노트 정도인데 30노트 정도로 도주하였다 하여도 거의 100km는 가고도 남았다. 그 시간에 이미 NLL을 넘어 비파곶 기지에 도착하고도 남는 시간이다. 그런데 속초함은 북한 잠수정일 가능성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130발의 함포를 쏘아댔다. 왜 그랬을까? 진짜 그 때 그 곳을 비행했던 새 떼는 있었을까?


국방부의 최초 발표는 천안함의 사고 시간을 9시 45분이라고 했다. 실제 사고 시간보다 무려 23분이 차이가 난다. 사고 시간은 이미 알았을 것인데 왜 23분 뒤로 발표했을까? 혹시 속초함의 발포시간과의 차이를 줄이기 위함이 아닐까? 천안함 사고 시간과 속초함 발포 시간이 너무 차이가 나면 북한의 잠수정은 이미 NLL을 넘어 간 것으로 보아야 함으로 북한의 잠수정으로 생각하고 발포했다는 것이 말이 되지 않기 때문에 시간 차이를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그렇게 한 것이 아닐까?


76mm 함포 130발을 쏜 것은 결코 경고 사격이 아니다. 만약 나중에 새 떼로 밝혀진 물체가 한국, 북한 중국 어선이었다면 어떤 결과가 초래되었을까? 사후 어떤 후폭풍이 올지 모르는데 미확인 물체를 조준하여 무리하게 함포 사격을 할 수 있을까? 미확인 물체가 북한 함정이었고, 속초함의 포격에 피격되었다면 그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천안함이 두 동강 난 이유가 명확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어선이나 북한 함정이 속초함의 포격에 박살이 났다면 그 감당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따라서 결론은 속초함의 포격은 뻥 포였다는 것이다. 새 떼도 없었고 미확인 물체도 잡힌 것이 없었으나, 무엇인가(?) 다른 이유로 날린 포격이라는 것이다.

속초함이 미확인 물체에 함포 사격을 한 곳은 NLL 인접으로 백령도 해병대가 경계를 게을리 할 수 없는 지역이다. 만약 이상 물체가 나타났다면 해병 TOD에 촬영되거나 경계병에게 관측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이야기는 들리지 않는다.


9. 국방부와 해군은 왜 최초의 긴급 상황 발생을 숨기려 할까


국방부와 해군은 9시 22분 발생한 천안함의 사고 전에 그 사고와 연계된 징후가 사전에 있었다고 한다면 사고의 원인을 그 동안 알면서도 모르는 척 갖은 거짓말을 해왔던 것이 백일하에 드러나게 된다. 그리고 구조작업이 사고의 원인에 맞게 제대로 되었는지를 추궁 받게 될 것이고, 심지어 사소하게라도 구조작업이 지연된 흔적이 보이면 고의성을 의심받게 될 것이다.

그리고 금양78호의 수색 참여후 참사, 한 준위의 죽음도 사전에 사고의 원인을 공개하였다면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여론의 뭇매를 맞게 될 것이다.

따라서 사고의 원인을 규명해줄 천안함의 최초의 긴급 상황, 그리고 침몰 전까지의 천안함의 행적을 철저히 숨기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10. 만약 정부가 사고 원인을 왜곡한다면


1) 해경/해병대와 해군의 대립과 갈등

2) 어뢰를 원인으로 몰아갈 경우의 한반도 정세

3) 미국과의 관계

4) 은폐에 따르는 국제적 댓가

5) 정부의 불신이 가져오는 사회적 비용

6) 공을 세운 해경과 철저한 경계를 한 해병 초병들이 당할 불이익


위 6개항에 대해서는 별도로 설명을 생략하겠다. 독자들 나름으로 예상해 보기 바란다.


11. 구조작업은 잘 진행되었는가


천안함 사고 당시의 인명 구조 작업은 해경의 신속한 대처로 잘 된 듯하나, 그 이후의 선미 탐색, 선미의 실종자 구조, 한 준위의 사망, 금양78호의 실종 등 일련의 구조작업은 석연치 않은 부분도 있을 뿐 아니라, 한 국가의 위기관리가 이 정도 밖에 되지 않는가라는 회의를 낳게 하였다.


1) 함미 침몰 위치 확인

침몰한 함미를 얼마나 빨리 찾느냐는 실종자의 구조에 결정적이다. 사고후 초기의 시간은 실종자의 생존기간이 일정 시간 밖에 없다는 것을 생각하면 1분 1초라도 아껴야 한다. 그런데 사고후 3일째 되는 날에야 침몰한 함미를 찾았다. 그것도 해군이 아니라 어선이 250만원 짜리 어군 탐지기로 찾아낸 것이다. 해경에 따르면 해군이 선미의 위치를 확인한 전날에 해경은 해군에 선미의 위치를 알려주었다고 하는데 해군은 왜 바로 찾지 못했을까? 해경이 지정해 준 위치와 선미가 실제 발견된 위치가 같은 곳이었다고 하니 해군의 행동을 이해할 수가 없다.


소해함인 옹진함도 사고 발생 10시간이 지난 후에야 늦장 출항한 것을 보면 해군이 함미를 빨리 찾을 생각이 있었는지 모르겠다. 또 기뢰를 찾는 소해함을 몽땅 진해에다 모아 놓는 바람에 정작 백령도에 사고가 났을 때는 곧바로 투입되지 못하고 이틀씩이나 소요하게 만드는 전략적 배치는 일반인인 필자도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겠다. 그래 놓고 한다는 변명이 걸작이다. 우리 나라의 수송, 공급이 주로 울산, 부산, 여수 등 남해안이기 때문에 북한이 유사시 이 지역을 해상(항구) 봉쇄할 가능성이 높아 몽땅 진해에 모아 놓았단다. 우리 나라의 인구의 절반 이상이 수도권에 몰려 있으며, 수도권의 물자 공급 항구는 평택이나 인천이다. 유사시 가장 중요한 항구가 어디가 될 것 같으며, 북한이 기뢰를 부설한다면 어디에다 먼저 하겠는가? 2함대 사령부(평택)에는 1대도 배치하지 않는다는 게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있겠는가? 군사적 전략은 아예 상식 밖에 존재하는가? 


2) 감압 쳄버

함수와 함미가 침몰한 지점 간의 거리는 5km가 넘는다. 두 곳에서 동시에 구조 작업을 하는데 감압 쳄버를 1대만 준비하였단다. 잠수부들을 아예 사지에 몰아 놓고 구조작업을 강행한 것이다. 최소한 양 쪽에 1대씩은 준비했어야 하지 않는가? 해군에 사용 가능한 것이 1대 밖에 없었다고? 보유한 쳄버 중 몇 대는 수리 중이고 몇 대는 고정식이라서 동원을 못했다고 변명하면 끝나는가? 해군의 이 변명도 사실이라고 치자. 민간이 보유한 감압 쳄버(이동식)가 적어도 7~8대는 있었다고 하는데 왜 이것을 이용하지 못했는가?

4/7자 뉴스 (한주호 준위 살릴수 있었다)를 보면 고 한주호 준위도 이 감압 쳄버가 함수의 구조를 지원하던 양양함에는 없어 감압 쳄버를 찾아 이리저리 시간을 허비하는 바람에 고귀한 생명을 잃게 되었다고 한다. 실종자 가족들에 따르면 한 준위는 보트와 헬기로 4차례 옮겨 다니면서 30분을 허비한 후에야 감압쳄버가 있는 실보함에 갔으나 이미 늦었다고 한다. 함미를 구조하고 있던 광양함에 감압 쳄버가 있었으나 그 때에 이미 두 사람이 감압 쳄버를 이용하고 있어 실보함으로 갈 수 밖에 없었단다. 해군은 한 준위를 16분만에  실보함에 옮겼다고 변명하고 있지만, 만약 양양함에 감압 쳄버가 있었다면 한 준위가 소중한 생명을 잃지 않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진짜 무척 아쉽고 안타깝다.

험악한 조건에서 잠수에 필수불가결한 감압 쳄버를 달랑 1대만 준비하고 잠수부를 투입하는 과감성(?)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한시가 급한 구조에 다수가 동시에 잠수할 수 있도록 감압 쳄버를 다량으로 준비할 생각을 정말 못한 것인가? 아니면 안한 것인가?


* 추가(4/7) : 4/7 KBS는 한주호 준위가 탐색한 곳은 함미도 아니고 함수도 아닌 제3의 장소였다고 한다. 한 준위는 신속히 구조해야 할 실종자가 있는 함미도 아니고, 사고 원인을 파악하기 위한 함수도 아닌 제3의 장소를 수색했을까? 제일 시급했던 실종자 구조 말고  한주호 준위가 했던 임무는 무엇이었을까? 언론도 모르는 비공개 장소에서 한주호 준위가 잠수하면서 수색을 하는데 감압 쳄버를 비롯한 제대로 된 구조장비가 준비되었을 리 없다. 그리고 그 위험한 곳에 왜 나이가 많은 최고참을 잠수하게 했을까? 한주호 준위가 구조대장도 아닌데 수색(잠수)위치를 자기 마음대로 지정할 수도 없었거니와 수색장소에 투입되는 인원 배치도 한 준위 임의로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결국 상부의 지시로 감압 쳄버 뿐 아니라 다른 구조 장비도 제대로 준비 안된 제3의 장소에서 수색작업을 하다 순직한 것으로 보인다. 이 부분은 철저한 규명이 필요할 것 같다.


3) 금양78호의 실종

사고 원인의 단서가 될 수 있는 천안함의 파편과 폭발물의 잔해를 찾기 위해 어선을 동원하여 쌍끌이식 수색을 하였다. 백령도 어민들은 사고 지역이 자갈이 많아 쌍끌이를 할 경우 그물이 찢어질 우려가 있어 이런 방식의 수색을 반대했다고 한다. 그래서 어민들도 이 지역은 쌍끌이는 하지 않고 낚시를 한다고 한다. 그런데 해군은 무리하게 금양호의 협조를 받아 쌍끌이식 수색을 하였다. 예상대로 그물만 찢어지고 소득은 전혀 없었다. 이것으로 끝났으면 다행인데, 수색을 마치고 돌아가던 금양78호가 캄보디아 선적인 화물선과 충돌하여 침몰하고 어민 8명이 사망, 실종하는 변을 당했다. 그러자 국방부는 금양호의 침몰과 해군은 무관하다고 선을 끗는 파렴치한 발표를 했다. 참 양심도 없지. 자기들 도와주다 변을 당했는데 한다는 소리가 정말.......

만약에 해군(국방부)이 천안함 사고의 원인을 피로 파괴나 암초에 의한 좌초로 이미 알고 있었다면, 저런 식의 어선을 이용한 쌍끌이 수색이 필요했을까? 물론 어떤 원인이더라도 수색은 필요하겠지만, 저렇게 서둘러 무리하게 할 필요가 있었을까? 원인을 알면서도 저런 무리한 수색을 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구조작업을 위해 차디찬 바다 속에서 급한 조류에 맞서 불철주야 수고하신 UDT, SSU 대원, 그리고 민간 구조자 여러분들께는 감사한 마음 그지 없습니다. 특히 53세의 많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동료들을 구하여야겠다는 일념과 후배들의 안전 걱정으로 솔선수범하여 잠수작업을 하다 순직하신 고 한주호 준위님께는 참 군인의 표상으로써, 무한한 존경의 뜻을 보냅니다. 


12. 천안함 함장과 생존자는 진실을 말하라


천안함 함장과 생존자들은 자기들만 살아남았다는 죄책감과 사고 당시의 정신적 외상으로 누구보다도 힘든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들에게 많은 위로와 격려가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사고의 경위와 원인을 가장 잘 알고 있는 당사자로서 지금 그 진실을 말하여야 한다. 차디찬 바다에서 서서히 질식해 죽어갔을(살아있기를 간절히 바라지만 현실적 가능성 측면에서) 동료들의 죽음과 그 가족들의 아픔을 생각한다면 어떠한 상황(?)에 놓였더라도 솔직하게 진실을 말해야 한다. 진실을 말하는 것만이 함께한 동료들과 그 가족들의 응어리를 풀어주고, 온갖 루머와 불신을 한꺼번에 해소하여 사회적 혼란과 그에 따르는 비용을 최소화 하는 길이다.

만약 여러분들이 진실을 외면한다면 여러분들은 평생 그것이 인생의 족쇄로 남아 괴로워 할지도 모른다.

생존자들이여!

진실을 밝히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 


*추가(4/7) : 4/7 생존자들의 기자회견이 있었다. 이들의 말을 들어보면 천안함 사고는 외계인의 짓이거나 인당수의 용왕이 노해 일으킨 것 같다. 아니면 북한 특수공작원들이 천안함이 해안으로 접근하는 것을 기다려 쇠톱이나 면도날로 깔끔하게 절단하고 도주한 것이든가. 있었던 그대로를 이야기해 주어야 말하는 그대로 믿어주지, 상식적으로 도저히 앞뒤가 맞지 않는 이야기를 어떻게 그대로 믿어줄 수 있겠는가? 


* 이번 사고의 진실을 아는 사람들은 생존자들뿐만이 아니다. 구조를 했던 해경과 501함 관계자, 9시15분~9시22분 사이 생존자와 실종자들과 통화를 했던 가족들, 백령도의 TOD 관측병과 33 방공진지 초병, 그리고 해병대 6여단 지휘부 등 많은 사람들이 있다. 결코 은폐한다고 은폐될 수 있는 사고가 아니다.

 

 

국방부와 해군은 북한과 연계된 듯한 뉘앙스를 풍기면서 시간을 벌려고 하는 것 같다. 국민들의 뇌리에 잊혀지기를 바라고 있다가 미제 사건으로 마무리하는 수순으로 갈 듯하다. 국민들은 사고 발생후 2주가 지나 어느 정도 식상해 있거나, 당장의 먹고사는 것에 보탬이 되는 것도 아니어서 사고 원인 규명에 관심이 차츰 덜해지는 것 같다. 정부가 의도했던 대로 진행되는 것 같아 무척 안타깝다.

거기다 한겨레마저도 헛다리를 짚고 있는 것 같고, 언론들의 치열성도 보이지 않는 것 같아 진실이 밝혀질 수 있을까 심히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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