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세근 교수 (충북대학교 철학과, 제53대 한국철학회 회장)
철학끼리 만나듯 종교끼리도 만나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그 까닭은 자기 속에서 만족하기 때문이다. 술에 술 탄 듯 물에 물 탄 듯 버릇처럼 종교를 받아들이는 것은 종교학자의 길이 아닐뿐더러 깊이 생각하는 종교인의 길도 아니다. 종교라는 말이 뜻하는 대로 종교학자는 종교를 통해 ‘큰 가르침’을 찾아내야 한다. 기독교가 본 불교, 불교가 본 기독교가 중요한 연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정성민 박사가 집필한 책, 《인간 붓다와 신(神) 예수》의 장점은 기독교만의 세계관 속에서 안주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불교와의 만남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윤회를 버리고 연기로 돌아가라”라는 나의 저서 《윤회와 반윤회》의 학문적 입장에 동조하면서 기독교적 관점에서 원시 불교, 곧 붓다의 가르침을 명료하게 설명하고 있다. 더 나아가 저자는 불교에 관한 비판적 이해를 통해 기독교에 관 한 원숙한 설명을 이끌어 낸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느낀 것은 이제는 우리 사회가 비교종교 학이 가능해졌다는 희망이다. 적대적 종교가 아니라 서로의 좋고 나쁜 데를 말할 수 있는 너그러운 종교 말이다.
책 속으로
사실 초기 불교는 인간의 소원을 들어주는 그런 초월적 성격의 종교가 아니었다. 불교는 고타마 싯다르타(Gautama Siddhārtha)가 깨달음을 얻은 후에 제자들에게 자신의 가르침을 전한 것인데, 그의 가르침은 전혀 초월적이지 않았다. 오히려 종교의 초월적이고 신비한 성향을 배척했다. 이것이 바로 붓다의 근본 가르침이요 초기 불교의 성격이다. -21쪽
고타마 싯다르타는 평생 순수한 인간의 길을 가고자 했다. 이것이 다른 종교 창시자들과 전혀 다른 모습 중 하나다. 일반 종교의 창시자들은 자신이 신이거나 신의 계시를 받은 자라거나 아니면 신이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난 화신(化身)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에 반해 붓다는 자신이 인간이라고 주장했다. 즉 그는 어떠한 초월적인 계시나 영감을 받은 아주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왕족으로 태어나 부유한 생활을 하였으나 인생의 문제를 풀기 위해 고 행한 후 인생의 고귀한 깨달음을 얻은 한 인간이다. -24쪽
붓다가 살았던 당시 인도를 지배하고 있던 것은 브라만교였다. 브라만교는 수많은 자연신을 숭배하며 희생 제사를 드렸다. 브라만교의 제사장은 브라만 계급인데, 온갖 특혜를 누리며 백성 위에 군림하였다. 또한 내세를 주장하며 현세에서 고행하여야 사후에 더 좋은 조건으로 태어날 수 있다고 하면서 백성에게 지우는 고통을 정당화하였다. 붓다는 신의 존재나 사후 세계를 믿지 않았다. 따라서 브라만교의 신비적이며 초자연적인 신앙을 인정할 수 없었다. 그런 붓다의 입장에서 신과 윤회를 내세워 동물 희생 제사와 고행을 강조하는 브라만교의 가르침에 동의할 수 없었다. 특별히 가난하고 무지한 천민들을 윤회 사상에 가두어 불합리한 계급 사회의 현실에 순응하도록 하는 종교의 행태에 대하여 분노하였다. -31쪽
붓다는 ‘신의 존재’나 ‘우주’ 그리고 ‘사후 세계’에 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에게 최우선 관심사는 인간이 지닌 고통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실제적인 방법을 찾는 것이었다. 붓다는 고통 가운데 살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하면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지를 가르쳤다. 붓다가 생각하는 고통으로부터의 자유는 정신적인 고통, 즉 번뇌로부터의 자유를 말한다. 붓다는 정신적인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도덕적이며 거룩한 생활을 해야 한다고 믿었다. -33쪽
일반적으로 열반이라고 하면 영적이거나 초월적인 경험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붓다가 말하는 열반은 영적이거나 초월적인 경험이 전혀 아니다. 열반은 사후 세계에 들어간다거나 사후 세계에 들어가서 경험하는 황홀경의 경험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붓다가 말하는 열반은 무엇일까? 열반은 우주와 자연의 이치, 즉 연기론을 깨달아서 연기론의 결론인 무아론을 마음속으로 받아들일 때 나타나는 평정심이다. 결국 열반은 만물은 실체가 없다는 무아론을 마음속으로 받아들이면서 인생무상(人生無常)을 인정하는 초탈한 마음 상태를 가리킨다. -42쪽
유신론적인 입장에서 만물을 보면, 만물은 신의 의도대로 창조된 것이다. 이와 반대로 무신론적 입장에서 만물을 보면, 만물은 우연히 혹은 아무런 이유 없이 저절로 형성된 것이다. 붓다의 연기론은 무신론적 입장에서 만물의 이치를 파악한 것이다. 그 이치란 만물은 변하고, 변하지 않는 사물은 없다는 것이다. 만일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만물이 변한다는 원리라고 말한다. 이처럼 붓다는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시각으로 우주와 자연을 관찰하여 변화의 법칙과 상호 의존성의 법칙을 발견했다. 즉 만물은 서로 원인과 원인이 되어서 어떠한 결과를 불러오고, 이러한 결과가 또 다른 원인이 되어 새로운 결과를 낳는 영원한 과정 속에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연기론은 이 세상에 변하지 않는 존재나 사물은 없으며 만물은 서로가 의존적인 관계에 있음을 말한다.-60쪽
기독교는 유신론, 유아론, 내세 신앙, 창조, 필연 등을 믿고, 영의 세계를 인정하는 신비주의 종교이고, 붓다의 사상은 무신론과 무아론이며, 내세 신앙이나 영적 세계를 부정하고 오로지 물질세계만을 인정하는 자연 과학적인 사상이다. 기독교와 붓다의 사상이 양립할 가능성은 전혀 없다. 두 주장 모두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그런 주제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기독교냐 붓다의 사상이냐의 문제는 선택과 믿음의 문제이지 과학적인 증명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250쪽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하는 Q자료나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은 예수의 열두 제자들의 제자들이 살아 있을 때 이미 완성되었다. 복음서 내용을 구전으로 전승한 기간이 40년 안팎으로 매우 짧다.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하는 신앙 고백은 예수가 죽은 후에 300-400년 정도 지나서 만들어진 신앙 고백이 아니라 예수의 열두 제자들이나 그의 제자들이 살아 있을 당시에 그들이 경험한 예수를 신앙으로 고백한 것이다. 니케아와 칼케돈 공의회에서 결정한 것은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교회가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에 대한 결정이었다. 유대교의 유일신 신앙에 의하면, 예수를 신적인 존재로 고백하는 것은 우상 숭배(출 20:3)요 신성 모독(요 10:33)이기에 이러한 불편한 사실을 모순되지 않게 사람들에게 이해시키려고 시도한 것이다. 이들 공의회를 통해 예수의 신성이 추가되거나 기독교 삼위일체론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예수의 정체성을 신학적 교리로 그렇게 묘사한 것이다. -271쪽
출판사 서평
[감수평]
김영한 원장(기독교학술원)
정성민 박사는 2022년에 《예수와 석가의 대화》(CLC, 582쪽)라는 종교학적으로 우수한 책을 저술하였다. 본인은 기독교인들이 붓다 와 불교를 이해하는 데 훌륭한 길잡이가 되는 이 책을 신학생, 대학 원생, 목회자, 대학교수까지 읽어야 할 필독서라고 적극 추천한 바 있다.
이번에는 정성민 박사가 불교 창시자 붓다를 일반인들의 눈높이에 맞춰 쉽게 소개해 주려는 시도로서 《인간 붓다와 신(神) 예수》라는 책을 저술하게 되었다. 일반인들에게는 방대하고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수준의 책, 《예수와 석가의 대화》를 짧고 간결하면서도 이해하기 쉽게 풀어 쓴 책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책의 학문적 가치는 불교 창시자 붓다를 현대의 시각에서 소개해 주는 데에 있다. 이런 면에서 《인간 붓다와 신(神) 예수》는 앞으로 비교종교학의 고전이 될 것으로 여겨진다. 본서는 힌두교의 신, 우주적인 영으로서의 브라만의 존재를 부정하고 자립 해탈의 길을 연 붓다의 무신론적 원시 불교와 그 이후에 나타난 유신론적 대승 불교의 차이를 자세하게 설명해 주고 있다. 힌두교의 급진적 개혁자로서의 붓다를 조명하였을 뿐만 아니라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종교 사상을 보여 주기 위하여 무신론, 중도 사상으로 특징지어지는 붓다의 사상을 힌두교, 자이나교, 대승 불교 등과도 비교한다. 본서가 지닌 학문적 가치를 다음 세 가지로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저자는 불교의 창시자 석가모니 붓다가 신이 아니라 한 순수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밝힌다. 저자는 붓다가 힌두교의 개혁자로 도덕적이고 거룩한 생활을 가르치고 몸소 실천한 사람이라고 밝히고 있다. 붓다의 세계관은 사후 세계를 인정하지 않는 무신론적 세계관이다. 붓다의 깨달음은 연기론이다. 이 세상에 변하지 않는 존재나 사물은 없으며, 만물은 서로가 의존적인 관계에 있다. 연기론의 최종 결론은 무신론과 무아론이다. 실제로 존재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깨우치고, 욕망을 포기함으로써 해탈(열반)에 이른다. 윤회에서 벗어나 해탈에 이르는 길은 바로 연기론에 근거한 무아론이다. 저자는 석가의 본래 사상을 계승한 소승 불교와 대승 불교의 차이를 명확히 밝히고, 붓다의 중도 사상이 지닌 창의성을 지적하면서 붓다를 합리적인 종교 개혁자로 서술하고 있다.
둘째, 저자는 붓다의 사상을 당시 브라만교와의 차이 그리고 현대 철학의 맥락에서 설명한다. 저자는 붓다를 초월적인 신을 부정하고 스스로 인간 가치를 찾고자 하는 근대 계몽주의 사상의 원조로서 해석한다. 더 나아가 붓다를 현대 철학과 현대 교육의 원형이라고도 주장한다. 붓다는 신의 존재를 부정하고 인간의 이성을 중시하며 인간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하였다. 저자는 이 점에서 그를 계몽사상과 근대 철학의 원조로 본다. 그래서 현대 무신론의 진정한 시조는 붓다라고 본다. 이러한 초기 불교가 말하는 붓다는 몇 백 년 후에 등장한 대승 불교에 의해 신격화된 붓다와 전혀 다르다고 한다. 즉 초기 불교의 가르침은 힌두교로 되돌아간 대승 불교와 전혀 다르다고 설명해 준다.
셋째, 예수와 붓다의 차이점과 공통점을 잘 드러내고 있다. 기독교의 유신론, 유아론, 신본주의 그리고 사후 세계에 대한 믿음 등의 초월적인 세계관은 붓다의 사상인 무신론, 무아론, 인본주의 그리고 사후 세계의 부정 등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사고 체계와는 대조적이라는 것이다. 평안(열반)을 성취하는 방법에서 둘은 다르다. 특히 에필로그에서 저자는 붓다의 사상인 자력 구원과 열반 및 인생무상 사상, 스스로 삶의 주인이 되려는 인본주의, 도덕주의, 욕망을 절제하는 깨달음의 삶, 중도의 삶과는 다른 기독교의 은총 구원과 신적 평안, 영생 사상,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존하는 신본주의를 대조적으로 잘 설명하고 있다. 예수와 붓다의 공통적인 가르침은 욕망이 고통의 원인이라는 것이다. 고통에서 해방되는 것을 기독교는 구원, 불교는 해탈이라고 말한다. 둘은 마음의 문제를 다룬다는 면에서 전적으로 일치한다. 예수와 붓다는 마음을 지키지 못할 때 고통이 따른다고 가르쳤다. 무욕과 무소유, 도덕적이고 거룩한 삶, 계급이나 차별이 없는 사회, 비폭력 무저항주의, 삶의 괴로움에서 벗어나 마음의 내적 평안에 이 르는 길을 공통적으로 제시했다고 설명한다. 본서는 기독교 신학자의 관점에서 불교의 창시자 석가모니 붓다의 사상과 힌두교 및 후기 불교의 사상을 비교종교학적 관점에서 설 명하고 있다. 본서는 오늘날 많은 비교종교학 저서 가운데 기독교 신학자가 붓다를 객관적으로 그리고 현대 철학적인 관점에서 소개한다는 점에서 그 학문적 가치가 크다.
마지막으로 본서는 타 종교에 관심을 가지고 기독교 신앙에 입문하는 청소년들과 기독교적 관점에서 힌두교, 불교, 근대 서양 철학 사상에 관해 알고자 하는 지성 인들에게 길잡이가 되는 비교종교학 교과서다.
[서평]
이성청 교수(서울대학교 종교학과)
정성민 박사가 새롭게 집필한 책, 《인간 붓다와 신(神) 예수》는 기독교 신학자가 불교를 심도 있게 연구하여 내어놓은 걸작품이다. 이 책을 통해 불교 사상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통찰력과 지혜, 그리고 비판적 사고를 접목함으로써 기독교가 생각하는 인간의 문제와 구원에 대한 이해의 지평이 확장된다. 저자는 인도 종교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 특히 알기 쉬운 언어로 다양한 종교적 및 철학적 주제를 다루고 있다. 저자의 불교에 대한 접근 방식과 주제 선택은 세련되며, 복잡한 인도의 종교 철학을 쉽고도 균형 있게 제시하고 있다. 이 책의 초점은 붓다의 핵심 사상과 기독교 신앙과의 연관성을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를 통해 풀어 나가는 데 있다. 저자는 불교가 발생한 역사적이고 종교적인 상황에 대한 종합적인 설명을 통해 이러한 논의의 출발점을 성공적으로 마련한다. 저자는 불교를 힌두교와 자이나교를 포함한 풍부한 인도 종교 및 인도 철학과의 관계 안에서 이해하려고 하는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다. 붓다가 가르친 중요한 형이상학적 개념들, 곧 연기론, 무아론, 인생무상론, 윤회론, 업 사상 등을 논의함으로써 붓다 사상의 뿌리가 되는 브라만교 사상과 어떻게 다른 지를 훌륭하게 설명하고 있다. 불교 발생에 관한 이러한 역사적이고 종교적인 배경에 관한 설명은 뒤에 이어질 후대 대승 불교의 신앙과 붓다의 본래 사상을 대조하는 데 아주 좋은 기반이 된다. 이 책에서 가장 가치 있는 측면은 타 종교인 불교와 저자 자신의 종교인 기독교 사이에서 의미 있는 연결점을 찾기 위한 정성민 박사의 성실하고 진지한 노력에 있다. 붓다의 가르침을 예수의 가르침과 대조함으로써, 그는 악의 문제, 구원론 및 윤리학과 같은 기본적인 종교적 관심사의 유사점과 차이점을 깊이 파고들었다. 더 중요한 것은, 그가 종교 간 대화를 구성하는 제안이 유용하고 영감을 주며, 여러 가지 대화의 가능성을 제시하면서도 자신의 종교인 기독교에 대해 객관적이고 때로는 비판적인 관점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결론적으로 정성민 박사의 《인간 붓다와 신(神) 예수》는 불교를 더 잘 이해하고, 불교 신자들과 의미 있는 대화를 나누기를 바라는 기독교인들에게 가치 있는 통찰력을 제공할 아주 훌륭한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