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인터넷에서 재밌는 이야기를 봤습니다.
한 중소기업의 상담 창구에서 일하던 직원이 하루에 보통 두세통의 전화를 받는데,
회사가 너무 바빠져 이 직원에게 추가적인 업무를 더 부담시키려 했답니다.
그러자 이 직원이 연봉 인상을 요구했고,
일이 별로 없는 것 같아서 일 좀 더 주려 했더니 연봉 인상을 요구하는 게 괘씸했던 회사 측에서 이를 거부,
직원은 퇴사를 결정했고, 후임자에게 인수인계를 하며 주의할 점을 이야기했습니다.
"온라인에서 고객들의 문의에 즉답을 하지 않으면 전화가 많이 올 겁니다."
이 직원이 퇴사 후에,
아니나 다를까 후임자가 온라인 문의에 제대로 대응을 하지 못해 상담 전화가 빗발치기 시작했고,
고객 서비스 부분에서 구멍이 나니 회사의 매출에도 타격이 오게 되어
회사에서는 급하게 전 직원에게 연락하여 연봉을 올려줄테니 제발 다시 와달라고 부탁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S급 직원은 이미 다른 회사에 취업한 후였죠.
사람들은 보이는 것만 믿는다.
인간의 두뇌는 인지적으로 에너지를 덜 쓰게끔 진화하였습니다.
이를 두고 심리학에서는 인간을 "인지적 구두쇠"라고 표현하는데,
가령,
눈에 보이는 것만 믿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은 신경을 안 쓴다거나,
우리가 평소에 고정관념이나 편견 등에 사로잡히게 되는 이유도
우리의 뇌가 인지적 에너지를 최대한 아끼려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일들입니다.
위기 상황이 왔을 때 에너지를 쥐어짜 내야 하기 때문에
평상시에는 구두쇠라고 비칠만큼 에너지를 쓰지 않으려 하는 것이죠.
※ 사회 생활을 하면서 정치를 잘한다는 것의 의미는
눈에 보이는 부분들만 최대한 집중적으로 공략해서 자신의 이미지를 좋게 만드는 것을 뜻한다.
실체는 상대적으로 중요치 않다. 왜? 사람들의 눈에 보이지 않으니까.
즉, 겉으로 보이는 이미지만 좋게 포장할 수 있으면 성공인 것이다.
달콤한 말이나 행동은 눈에 보인다.
하지만 당신의 진심이 아무리 크고 깊더라도 표현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사탕발림 같은 말들만 늘어놓는 사람들보다도 못하게 된다.
앞선 이야기의 상담 직원 이야기를 좀 더 해 봅시다.
이 직원은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는 이미지와 실체 사이의 괴리가 굉장히 큰 사람이었습니다.
사내 정치를 잘하는 사람들은 이미지 >>> 실체의 부등호를 갖게 되지만,
묵묵히 일을 잘하는 사람들은 실체 >>> 이미지의 부등호를 갖게 되며,
상담 직원이 바로 이 후자의 케이스였죠.
물론 가장 좋은 사례는 훌륭한 실체가 이미지에 그대로 반영이 되는 케이스겠지만,
이게 가능하려면, 다른 사람들 앞에 나서서 자기 어필을 굉장히 능숙하게 잘 해내야 합니다.
일도 묵묵히 잘하는데다, 자기 이미지와 평판도 잘 챙기는 그런 사람을 우리는 슈퍼맨이라고 부르죠.
즉, 이미지와 실체 두 개를 다 챙기기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겁니다.
상담 직원이 나이를 먹고 후배들에게 이러한 이야기를 해 줄지도 모르죠.
"일을 열심히 하는 건 중요하지.
그런데 내가 열심히 한다는 걸 나만 알아선 안 돼.
모두가 다 알아야지 내가 한 걸 정당하게 인정받을 수 있으니까."
그렇다면, 내가 열심히 일한다는 걸 어떻게 모두에게 알릴 수 있을까?
내가 화려한 자기 어필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괜히 나서서 공치사하는 걸 꺼리는 성격이라면
어떻게 해야 내가 일한만큼 정당하게 인정받고 보상받을 수 있는 것일까?
사실, 묵묵히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들에게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아무런 사고도 문제도 발생하지 않도록 사전에 모든 것들을 조율하고 통제한다는 것이죠.
상담 직원 역시,
온라인 상에서 모든 잠재적 문제 건들을 기민하게 처리해 왔기 때문에,
막상 전화가 매일 두세통밖에 안 올 수 있었던 건데,
문제는 전화벨이 울리질 않으니, 다른 사람들이 볼 땐 아무 일도 안하는 것처럼 보인단 겁니다.
즉, 인간은 문제가 발생하지 않으면, 아무 일이 없는 것처럼 느낄 뿐이지,
누군가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열심히 예방 활동을 했다는 생각은 좀처럼 하지 못합니다.
왜? 눈에 보이지 않으니까.
사나운 이민족들과 맞닿아있는 국경 지역에 두 명의 장군이 있었습니다.
A 장군의 지역에서는 근 10여년간 손에 꼽을 만큼만 전투가 벌어진 반면,
B 장군의 지역에서는 하루가 멀다하고 매번 인근의 이민족들과 싸움이 벌어졌죠.
조정에서는 당연히 수없이 많은 전투를 승리로 이끈 B 장군의 공로를 더 치하했으며,
더 많은 녹봉과 더 높은 벼슬을 주었어요.
하지만 말입니다.
이민족들과 쓸데없는 분쟁이 일어나지 않게끔
A장군이 사전에 모든 걸 기획하고 통제한 것이라면,
그래서 국경 마을의 백성들이 전투에 희생되지 않고 평화롭게 살 수 있었던 것이라면,
더 많은 녹봉과 더 높은 벼슬은 누구에게 주어져야 맞는 것일까요?
그리고,
이러한 이치를 가려낼 수 있는 사람들이 조정의 높은 곳에 있을 확률은 과연 얼마나 될까요?
티가 안나도 내가 열심히 일해서 아무런 문제가 일어나지 않는 것으로 만족한다면,
지금처럼 예방 활동에 전념하시면 됩니다.
이런 분들 가운데, 문제가 일어나면 그걸 수습하는 게 더 빡세고 힘이 드니
아무리 몰라주더라도 문제 없이 지나갈 수 있도록 나 혼자 열심히 일하는 게
차라리 낫다고 하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하지만, 열심히 일한만큼 정당하게 인정받고 보상받고 싶으신 분들이 계시다면,
이제부터라도 전략을 바꾸시는 편이 좋습니다.
화려한 쇼맨쉽이 없어도 되고, 멋쩍은 자기 어필을 할 필요도 없어요.
문제를 예방하지 말고, 해결하시면 됩니다.
문제 예방 능력이 있는 사람들은 문제에 대한 예측력이 있으니,
일을 하다 보면 어떤 사고가 터지겠구나 하는 것에 대한 촉이 좋습니다.
그럴 때, 문제를 예방하기 위해 노력하는 대신에,
그 문제가 터졌을 때 어떻게 해결할 지를 고민하고 계획한 다음,
실제로 문제가 터졌을 때 누구보다도 빠르게 대응해서 기민하게 해결하는 것이죠.
똑같은 노력을 해도,
눈에 보이지 않는 예방 활동을 하느냐?
vs
눈에 보이는 해결 활동을 하느냐?
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은 천지 차이입니다.
상담 직원도 예방 활동을 조절하여 하루에 열다섯통의 전화만 받았어도
회사에서 일을 추가 배당하려 하지 않았을 수도 있겠죠.
이처럼 인간의 심리를 활용할 수 있다면,
우리의 사회 생활도 불리함보다는 유리함을 조금이라도 더 확보할 수 있을 겁니다.
※ 무명자 블로그 : https://blog.naver.com/ahsune
첫댓글 와..제가 문제예방 스타일이라 공감이 너무 많이 갑니다..끙끙앓고 힘들어해야만 일하는줄 아는사람들이 너무 많더라구요..
대우 받으려면 징징거리란 말이 있죠 습슬한 현실입니다
야구 수비수로 비유하자면 상대 타자의 타구방향을 미리 읽고 위치선정잘해서 쉽게 잡는 수비수보다 위치못잡아서 다이빙캐치 많이 하는 수비수가 팬이나 코칭스탭 눈에 더 들어오는거랑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