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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둘레길(아! 碧松寺) (2009-11-03 05:40:12 sfm홈피) * 벽송사편은 소개한바 있으나 둘레길은 잇는 길이므로 다시 싣습니다.
아! 벽송사의 아린 상처여... 소나무가 많은 절, 또는 푸른 솔로 둘러싸인 절이란 이름 일게다.
碧松路에 푸른 솔은 어데 있는고?
핏빛 단풍 핏빛 울음
이도 '길'이라쿠네!
역사를 거꾸로 돌이켜 보자. 무슨 이념논쟁이나 하자는 말이 아니다. 모르고 있는 역사는 차라리 낫다. 하지만 잘못된 역사는 바로잡는 노력이 반드시 따라야 할 것으로 믿는다. 말 그대로의 뜻은 "공산비적을 싸그리 때려잡는 길"이다. 씨가 되는 말이 씨가 되어 돌아온다. 울나라 운동선수들은 "악으로 깡으로"라는 구호에 익숙하다. 어릴때부터 지도자나 선배들로부터 계속해서 물려 받는 구호가 바로 이 구호다. 지금에 이르러서는 곳곳에서 사회적인 물의가 불거져 흉한 결과물로 나타나는 것이다. 내주변에 빨치동무들이 많기 때문이다. 동무들과 산에 가면 빨치들이 내닫고 나면 난 항상 뒤쳐진다. 그럼 난 항상 투덜거리고... 무시무시한 빨간놈들 이란다. 빨갱이의 실체를 알아보자. 실제 빨간놈들 인지?
해방되고 난후, 미군정은 남한에 정부수립과 치안유지가 가장 급선무였다. 그들 자신 코쟁이들로만 질서유지와 치안을 담당하기란 턱없이 부족한 숫자였다. 그렇다고 조선인으로 급조하는 데는 너무나도 시간이 촉박하였다. 그래서 손쉽게 구한 놈들이 훈련되고 조직화되어 있던 일제에 부역한 개들이었다. 패망한 주인이 물러가고 새세계에서 응분의 처분만 기다리며 꼬리를 내리고 있던 일제앞잡이 똥개들에게 다시 완장과 호각을 채워 준 것이다. 어떠했겠는가 를... 민초들을 치안유지라는 명목으로 더욱 더 물어 뜯는 결과로 나온다. 개가 어디 지 잘못을 알던가? 國難을 피해 미국으로 도망간 이승만은 거기에서 호위호식하며 마누라도 양코배기를 얻어서 잘 살았다. 무신 독립운동이라도 하는 것마냥 몇차례의 성명서 낭독한 것이 전부다. 해방되어 귀국한 이승만은 권력욕에 사로잡힌다. 상해시절부터 자기를 수반 안시켜준다고 삐쳐 달아난 농감태기 아니던가? 꼭둑각시 역할을 잘 해 낼테니까 말이다. 그리하여 수많은 독립지사, 투사들을 배제한채 이승만에게 남한 단독정부의 권력을 넘긴 것이다. 물론 남한단독정부도 이승만의 작품이었슴은 주지의 사실이다. 여기에다가 정부 주요관리들과 말단 면서기들에 이르기까지 일제에 부역한 충직한 일제개들에게 다시 한번 충성의 맹세를 받고, 죄를 사함은 물론 갖가지 이권들을 민초들에게서 뺏아서 개들에게 넘긴 것이다. 자신들만의 권력욕에 사로잡혀 이들(개)에게 富와權力을 고스란히 넘겨준 것이다.
45년 해방이 되고서 부터 정부수립 전까지 온 나라는 좌우대결이란 이념논쟁에 빠져들었다. 좌익세력의 근간이 되어 온 나라에 들불처럼 퍼져나갔다. 여기서 민중은 민초와 다른개념이다. 중요한 것은 민초가 개인적인 초기개념이라면, 민중은 무리를 이루어 세력화하고 의식화한다는 점이다. 미군정이나 새로 수립된 정부(이승만)의 입장에서 볼때 실로 두려운 일이다. 게다가 북한에는 이미 소비에트연방의 사주를 받은 김일성 공산정부가 들어서지 않았는가? 이에 위협을 느낀 미군정은 이승만과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져 남한만의 우익정부를 수립하기에 이르른다. 하지만 바로 여기서부터 '빨갱이'란 말이 생겨나고 함양땅 벽송사까지 영향을 주는 결과로 자리매김한다. 주둔중인 경비대내의 좌익군인 지창수와 김기회등이 제주도 투입을 거부하고 세력을 동조하여 반란을 일으킨 것이 "麗順事件"이다. 이들이 바로 초기 빨치산이다. 지창수는 49년에 사살되기 전에 후기빨치산 남부군의 이현상을 반란당시와 여기에서도 만났다고 한다. 북한군과 남로당의 잔존세력들이 태백산에서 백두대간을 타고 가장 은신이 용이한 지리산으로 피해서 들어 온 세력들이다. 이현상이 남부군의 총사령이 된다. 대한민국 빨치산의 역사다.
푸른솔이 우거진 벽송사는 3조 서산스님이 주석했던 곳이다. 주지하다시피 서산스님은 상좌인 사명스님과 더불어 임진란때 승병으로 출군해 혁혁한 전공을 올린 僧將이다. 그래서 벽송절은 옛날부터 護國사찰로서 이름이 드높았다. 앞녘은 천왕봉이 마주 보이는 칠선계곡이요, 왼녘은 중봉으로 향하는 광점동 쑥밭재며, 오른녘은 한신계곡을 통해서 오르는 세석평전이다. 국방군과 교전하여 발생한 부상병의 치료소가 된 것이다. 여기에 200여명이 넘는 빨치부상자들이 은거하여 치료를 받은 것이다. 말그대로 "몰살시킨다"는 뜻이다. 부상자들과 치료관계자들 모두가 일시에 부처님 법당 아래에서 싸그리 몰살된 것이다. 이것이 벽송사가 안고 있는 민족상잔의 씻지 못할 쓰라린 비극이다.
산중병원 - 불타 없어지고 탑과 미인송 뎅그러니 서 있다. 원통전(관세음보살님이 계신 곳) - 벽송사 볍당. 벽송사에는 부처님을 모신 법당 즉 대웅전이 따로 없다. 부처님이 아니 오실려고 했는지... 아니면 부처님께 차마 비극의 역사현장을 뵈드리지 못해서인지??? 원터에 서있는 삼층석탑.. 도인송과 미인송. 미인은 몰라도 도인은 알테지... 비극의 현장에는 대만 무성하다.
불에 탄 절집은 이후에 지금의 벽송사로 다시 태어난다. 관세음보살이 주재하시는 원통전이란 작은 전각이 대웅전을 대신한다. 요란한 규모의 전각이 아니고, 관세음의 大慈悲를 간구하는 절집의 의미는 무엇을 말하고자 함인가? 아픈 기억 저너머로 부처님의 말씀이 들려온다.
단풍은 왜 이리도 핏빛으로 선연한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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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벽송사..!!
몽이의 설명대로
동족상잔의 비극을 지켜보며
스스로를 불살라 아픔을 함께 했구나.
억울하게 숨져간 원혼들을 위로하며
한국 불교의 큰 도량으로 거듭 나길 바란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아프지 않은 역사가 어디 있으랴
지나간 사랑은 가슴에 묻고
아물은 상처는 그대로 두자
비 개인 맑은 하늘은
지난 밤 폭풍우에 괴로워 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