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자씨 한 알을 만나다♧
모처럼 이른 시간에 길을 나섰다
시작지점을 적량마을로 잡았기에 창선시장에서 8시40분 버스를 타야했다.
창선면사무소에 주차를 하고 다시 걸어서 창선시장 옆에 있는 정류장으로 길을 재촉했다.
우리에겐 이른 시간이었으나 벌써 많은 이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정류장에 도착할 무렵, ‘기원’ ‘다방’ 간판의 상호가 과거의 어느 순간을 떠올리게 했다.
30여년전? 40여년전? 그러나 페인트칠해진 거리는 산뜻했다.
흑백사진을 수정해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탄생시킨 손길의 정교함에 잠시 그자리에 머무르게 만들었다.
바래길 앱에 기록된 버스시간과는 차이가 있어 더 기다리는 동안 시장을 둘러보았다.
생선과 먹음직스러운 감이 싸고 싱싱했다.
기다리던 버스에 올랐다.(9시7분)
버스로 해비치마을 적량에 도착하니 따뜻한 햇살이 마을을 비추고 있었다.
바래길을 다니면서 새삼 느끼지만, 이곳 역시 거리가 깨끗하고 햇살에 반짝거렸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의 대대로 내려오며 몸에 배인 좋은 습성은 아닐까?
첫 번째 언덕을 올라 허리를 펴보니 눈에 들어오는 등대와 방파제와 바다는 완만한 산세를 배경으로 본래의 모습을 드러냈다. 가다보면 바다는 녹색의 너머로 푸르게 빛나고 은빛의 길은 끝없이 펼쳐졌고 그 너머에는 또 신기루처럼 섬들이 나타났다 사라지곤 했다.
길은 외지고 인적도 없지만 사철 푸른 나무가 벗이 되고 낙엽활엽에는 단풍이 들어 풍요롭고 따뜻했다. 숲길로 비치는 빛과 산들바람이 어울려 숲은 살아 움직인다. 호흡한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처음 창조된 저의 본디 모습으로...
한 구비 돌면 소나무 길이 나서고 또 한 구비 돌면 상수리 무성한 길이 맞아주며 또 모퉁이를 돌면 어떤 길이 펼쳐질까? 한 치 앞만 보고 사는 우리가 어찌 그 다음을 알 수 있으랴! 다만 저들이 태초부터 순응하며 살아온 방식으로 우리도 순종하며 완전함보다 불완전함으로, 명확함보다 부족함으로 어설픔으로 의지할 수 있으니 참으로 감사할 일이다.
3번 동대만길에서 아쉬웠던 벤치가 이곳에서는 전망 좋은 곳에 잘 만들어 놓았다. 멀리 삼천포가 보인다. 바다는 청명한 하늘빛이다. 고사리 밭으로 만들어진 바로 앞의 산은 몹시 가파르다. 집중호우라도 만나면 산사태라도 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시원하게 트여 보기는 편안했다. 오르막이 끝나고 다시 내리막길이 시작되었다. 푸른 초원은 마치 목장인 줄 착각할 것도 같다. 경사가 점점 가팔라 스틱에 많이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가인마을에 도착했다. 아름다운 사람들이 사는 곳이어서 가인마을 일까? 그렇지만 인적이 없다. 멀리 포구의 노인 한 분이 걸어온다. 그 뒤를 강아지 한 마리가 따른다. 한가로운 작은 포구의 바다는 더없이 푸르고 잔잔했다. 한 쪽에 낚싯대를 드리우고 고기를 혹은 세월을 낚는 낚시꾼을 바라보면서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사리밭길이 힘들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지만 이제 3분의 1을 지나는데 생각보다 어려운 길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더 가보아야 하겠지만 역으로 걷고 있어서 좀 나은지도 몰랐다.
집이 눈에 띠었다. 전통적인 틀을 유지하면서도 섬세하고 세련된 리모델링을 거쳐 너무 아름다운 가옥, 정갈한 잔디와 돌길, 얼마간의 세월이 묻은 미닫이 창 , 황토색 담의 굴곡이 부드러웠으며 특히 온실과 그 안의 작은 정원이 인상적이었다. 어떤 이가 살고 있는 지도 궁금했지만 갈 길이 멀었다.
흰 민들레가 다시 피고 있는 걸 보면 다시 봄이 오는가! 이 푸른 초원에 펼쳐진 녹색의 향연은 다시 봄인가 하는 착각을 일으켰다. 가까이의 고사리가 펴서 넘어진 모양새는 사나웠으나 멀리 펼쳐진 부드러운 능선의 고사리는 보석처럼 빛났다. 그렇다. 이곳 사람들에게는 아마 보석일 것이리라.
택시 기사분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지금 같은 고사리 밭이 언제 형성되었냐는 물음에 자세한 이야기를 해주셨다.
한 15년은 되었을 거라면서 어떤 귀농인에 의해서 고사리 밭이 퍼지기 시작했는데, 그가 벌목을 하고 밤나무를 심었더니 많은 고사리가 올라왔다고 한다. 번식도 잘 되고 수확도 해마다 늘어나 많은 수익을 안겨줬다는 것이다. 그렇게 주변으로 급속도로 퍼지면서 많은 농가가 고사리 밭을 넓혔고 농가의 주 수입원이 되었다고 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지금처럼 많은 영역으로 확대되었으며 창선면의 고사리 밭이 이처럼 장관을 이루게 되었다고 한다.
한편으로는 어느 정도만 해야 하는 것은 아니었을까? 남해의 울창하고 오래된 숲들이 그 자체로 천혜의 비경이 되고, 관광자원이 되고 있는 가운데 너무 무분별한 벌목이 이루어진 것은 아닌지.
겨울이 오면 고사리 잎이 지면서 마치 화마의 흔적처럼 펼쳐지기도 하는데 그때는 보기에도 좋지는 않았던 것 같다.
더 이상의 무분별한 훼손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면서도, 삼천포대교의 동쪽으로 산자락과 바다는 웅장한 교향악처럼 펼쳐지고 있어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늘 눈에 보이는 것에 현혹되지 않으려 해도 인간인지라 어쩔 수가 없다.
보기 위함이 아니었던가. 아름다움에 넋을 잃고 바라보고 그 순간에 젖어 감동하고자 했음이 아니었던가. 무거웠던 것들을 그렇게 내려놓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던가. 그렇지만 그 다음의 어떤 것이 자꾸 시선을 떨구게 만들었다.
정말 아무도 돌보지 않고 신경도 쓰지 않는 이 들 풀, 쑥부쟁이, 꽃향유의 꽃이 어떻게 이런 빛깔과 향기와 부드러움을 가질 수 있단 말인가. 어떤 예술가가 이들을 온전히 표현할 수가 있을까! 연약한 두 손으로 하늘을 찬양하기라도 할 것처럼 손을 벌리며 노래하고 있었다.
모퉁이를 돌며 길은 이어졌다.
거침없는 걸음 위로 동대만의 바다가 모습을 드러냈다.
물 빠진 바다는 잔잔한 호수였다. 고운 비단으로 엮은 삼색의 고운 치마라고 할까?
잘 조성해 놓은 언덕 위의 쉼터에서 한 참을 머무르며 풍광에 취했다.
아마도 이제 산 비탈을 넘으면 평지를 걷게 될 것이라는 생각에 좀 더 머무르고 싶었는지도 몰랐다. 한 곳을 바라보다가 더 올라서보니 동대만에서 삼천포 앞바다까지 한 눈에 들어왔지만 또 너무 넓은 시야는 또 집중이 되지 않기도 했다.
여봉산의 능선을 거쳐 가파른 고사리밭길을 내려오다가 고구마를 캐고 있는 할머니가 눈에 띠었다. 늦은 추수인지 적기의 추수인지는 알 수 없으나 작은 땅에서 제법 튼실한 고구마를 수확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작은 이 마을에서도 젊은 사람을 보기가 어려웠다.
또 하나의 고갯길을 넘어서 포장도로를 걷다가 콩을 줍고 있던 할머니를 보았다.
유심히 바라보니 바닥에 떨어진 콩을 한 알 줍고 검불을 불어 날리고, 또 한 알을 줍고 불고 있었다. 귀하고 소중하게 갈무리하는 저 손길, 그 느린 움직임으로 어떻게 저렇게 넓은 밭을 저렇게도 잘 정돈해 놓을 수 있었을까? 삶의 지혜는 꼭 속도와는 상관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몸은 늙어 속도는 느려도 영은 점점 맑고 지혜로워져가는 생은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가. 저 손으로 씨를 뿌리고 그들이 싹을 틔우고 키를 키우며 비와 바람과 빛을 받으며 자라는 전 생명의 과정을 지켜보았을 것이다. 어떤 씨보다도 작은 겨자씨 하나가 커져서 모든 새들이 깃들 수 있는 나무가 된다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느리지만 차곡차곡 쌓으며 오랜 시간 동안, 한 소망을 품고 기다린다면 온전한 나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힘든 길이었지만 늘 길의 끝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더 깊이 들이마시지 못한 호흡, 더 긴장하지 못한 몸,
더 부드럽게 저 바람에 내어 맡기지 못한 순간들,
그러나 내일은 또 다른 길을 만나러 간다.
그래, 다시 설레임으로, 끝이 아닌 시작으로...
2022년11월07일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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