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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누가복음 24장 13-17절, 시편 51편 12절, 시편 80편 7절
마침 그 날에 그들 가운데 두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한 삼십 리 떨어져 있는 엠마오라는 마을로 가고 있었다. 그들은 일어난 이 모든 일을 서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들이 이야기하며 토론하고 있는데, 예수께서 가까이 가서, 그들과 함께 걸으셨다. 그러나 그들은 눈이 가려져서 예수를 알아보지 못하였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물으셨다. "당신들이 걸으면서 서로 주고 받는 이 말들은 무슨 이야기입니까?" 그들은 침통한 표정을 지으며 걸음을 멈추었다. <표준새번역>
주님께서 베푸시는 구원의 기쁨을 내게 회복시켜 주시고, 내가 지탱할 수 있도록 내게 자발적인 마음을 주십시오. <표준새번역>
만군의 하나님, 우리를 회복시켜 주십시오.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도록, 주님의 빛나는 얼굴을 나타내어 주십시오. <표준새번역>
2019년 마지막날입니다. 하나님께서 인도해주시고 함께 해주신 한 해를 돌아보면그저 감사한 것 밖에 없습니다. 그 분의 영향력을 아래 있었던 2019년, 다가오는 2020년은 더욱 더 깊어지는 한 해 되시길 소망합니다. 오늘은 특별히 삼행시로 시작해볼까 합니다. 바로 ‘나그네’로 삼행시를 할 텐데 한 글자씩 운을 띄워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나 : 나는 여러분을 사랑합니다.
그 : 그대도 나를 사랑하십니까?
네 : 네. 감사합니다.
그 사랑 받고 무럭무럭 자라서 2020년에는 더욱 귀한 하나님의 일꾼이 되겠습니다.
2019년에서 2020년으로 넘어가는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저마다 해결했으면 하는 중요한 여러가지 화두가 있을 것입니다. 저는 그 중 하나가 바로 “피로회복”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매일매일 바쁜 일상 속에서 제대로 쉬지 못하고, 일에, 생활에, 이것저것들에 쫓겨 살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피로감에 빠져 살고 있습니다. 전 세계에서 우리 대한민국 사람들이 가장 바쁘게 산다는 것은 익히 들어 알고 계실 것입니다.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못 쉬는 사람들도 대한민국 사람들입니다. 오히려 집에서 며칠씩 쉬고 있자면 무언가 게을러진 것 같고, 특별히 하는 것은 없는데 몸은 더 아픈 거 같고, 그래서 ‘역시 나는 일해야 하는 체질인가봐’ 하면서 생활전선에 다시 나오시는 모습도 많이 뵈었습니다. '워커홀릭'이라고 들어보셨습니까? 일 중독에 빠진 사람들도 한국에 가장 많이 있다고 합니다. 이러니 자연스럽게 가장 피곤한 나라 1위가 한국이 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평생공부, 평생노동, 평생경쟁이 숙명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취업난, 경제난, 출산율저하, 노인복지 이렇게 말만 들어도 피곤한 세상에서 현재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피로감' 다음에 나오는 행동들이 더 문제인 것 같습니다. 몸이 피로하면 만사가 다 귀찮아 집니다. 몸이 피곤해지면 괜시리 짜증도 나고, 누군가 툭~하고 손대면 ‘버럭’하고 터질것만 같은 그대가 됩니다. 얼마나 피곤함이 커지면 ‘만성피로’란 말이 있겠습니까? ‘만성피로’란 단어 그 자체로 정말 피곤합니다. 또한 이 만성피로가 수많은 질병을 유발합니다. 만성피로가 우리를 운동과는 담을 쌓게 하고, 건강을 찾게 하는 것에서 점점 멀어지게 만듭니다.
여러분들은 어떠십니까? 여러분들도 많이 피곤하시진 않습니까? 새벽부터 주님의 제단을 지키시는 분들도 계실 것이고, 각 예배마다 정성을 다해 참석하시는 모습, 그렇다고 집안 일이 없으신 것도 아닐테고, 직장생활을 안하고 계시는 것도 아니고, 젊은 저부터 교회의 성도님들을 뵈면서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다보니 피로감이많으시지요? 계속해서 피로하다보니 짜증나실 일도 생기고, 만사가 귀찮고, 답답하고 그럴 때가 있지는 않으신지 궁금합니다. "아이라도 지치고 피곤해 하며, 젊은이라도 넘어지고 쓰러진다고" 성경 말씀처럼 아직 젊은 저도 피로감을 느낄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 피로감은 결코 저에게 좋은 영향을 주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육체의 피로감을 해결하는 방법은 생각보다 아주 간단합니다. 충분히 푹 쉬면 사라집니다. 바쁘지만 하고 있는 일을 잠시 내려놓고, 편안한 침대에 갑니다. 따뜻하게 불을 넣고 두 다리 쭈~~욱 뻗고 누워서 누가 깨우지 않도록 이야기한 후 내가 자고 싶을 때까지 원 없이 자고 나면 피로감이 많이 사라집니다. 또 마사지를 받아도 좋고, 피로 회복에 좋은 맛난 음식을 먹으며 쉬어도 좋고, 좋은 곳으로 구경 가서 좋은 공기 마시고, 눈이 호강하고 오면 피로감이 사라질 수가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건강을 위해서 이 '만성 피로'를 우리에게서 멀리 떠나보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응당 잘 쉬고, 잘 먹고, 잘 자고, 잘 지내야 기본적으로 건강한 삶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알고 계십니까? 우리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피로감'도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찾아와 우리를 쓰러뜨립니다. 바로 오늘 함께 말씀으로 나누고자 하는 ‘영적 피로감’입니다. 영적으로 너무 피곤해져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올바로 성립되지 못하는 상황이 생기게 되는 것이 '영적피로감'입니다. 이런 영적 피로감은 물론 바쁜 일상 때문에 찾아오기도 합니다. 너무 바빠서 기도하지 못하고, 신령과 진리의 예배를 드리지 못하고, 생명의 양식인 말씀 읽지 못하다보면 당연히 영적 피로감은 빠르게 우리를 찾아옵니다. 무엇보다도 근본적으로 영적 피로감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찾아옵니다. 또 영적 피로감은 우리가 죄에 민감하지 못할 때, 세상에 점점 빠져들 때,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으로 만족하게 될 때, 하나님의 뜻이 아닌 내 생각으로 행할 때 아주 빠르게 우리를 찾아오게 됩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자신의 거처를 떠나 믿음으로 하나님을 따라나섰을때 그의 나이는 75세였지만 몸은 피곤했을지언정 영적으로는 건강했습니다. 마침내 백세에 아들 이삭을 선물로 받았을 때는 비록 몸은 쇠약할지언정 그의 영은 독수리날개침 같이, 청춘같이 강력하게 날아올랐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과 매일 대화하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으로 살았기에 당연히 영적인 피로감은 찾아올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에게 언제부터 영적 피로감이 찾아왔습니까?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아들 이삭을 받고 나서부터였습니다. 아브라함의 입장이 생각해보면 이해가 갑니다. 100살이나 되어 얻은 아들 이삭이 아브라함은 정말 좋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이란 존재가 그런 것일까요? 점점 세월이가면 선물을 주신 하나님과 더 가까워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선물로 주신 이삭과만 더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아들 이삭이 좋을 수 있습니다. 오히려 그럴수록 하나님께 더 감사하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깊어져야 할텐데 그 반대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점점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은 그렇게 영적인 피로감에 빠졌습니다. 이제는 다 이루었다 착각했을 것입니다. 자신의 아들 이삭을 통해 이어가실 하나님의 계획에 대한 원대한 꿈을 꾸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 하나님과의 1:1 친밀한 대화가 필요치않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 한 분 만이 아닌 아들 이삭으로도 충분히 만족했기 때문입니다.
다윗도 그랬습니다. 무슨 일이든 하나님과 더불어 행동했던 다윗의 행적들을 우리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다윗의 믿음이야 두 번이야기하면 입이 아플 정도로 성경에서 수도 없이 많이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까? 다만 다윗의 아픈 이야기인 사무엘하 11장에서만 빼고 말입니다. 사무엘하 11장에서 다윗은 철저히 하나님과 멀어져서 범죄하고 있습니다. 간음과 살인, 거짓과 탐욕에 빠져서 하나님을 순간 잊어버린듯 보입니다. 눈 앞에 나타난 밧세바의 아름다움 때문이었을까요? 늦잠을 자고 일어나 아직 잠이 덜 깬 탓이었을까요? 다윗에게서 도무지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이것 또한 영적 피로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보내신 나단선지자를 통해 강하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말씀을 업신여기고 나 보기에 악을 행하였느냐”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지고 하나님의 은혜 안에 거하면서 말씀 안에 순종했다면 사무엘하 11장은 기록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렇듯 영적인 피로감이 나타나면 우리의 죄악된 모습이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고 있는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 역시 마찬가지의 모습입니다. 두 제자는 예수님과 함께 이적과 기적을 체험하면서 행복한 시간을 보냈을 것입니다. 하지만 자신들의 예상과는 정반대로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자, 그들이 생각했던 예수님이 아니라고 생각을 굳히고선 고향으로 발걸음을 돌립니다. 슬픈 빛을 띄게 되고, 눈은 가리어지게 되었습니다. 당연히 자신들이 바라는 왕이 되어줄 줄 알았던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자, 그들은 더 이상 예수님에게 희망을 찾지 못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부활하실 것이라는 약속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자신들의 생각에 갇힌 그들에게 영적 피로감이 찾아들기 시작했습니다. 엠마오로 내려가면서 그들은 불평했을 것입니다. 마치 예수님과 함께했던 날들이 신기루였던 것처럼 그 은혜를 잊어버리고, 그 뜨거운 제자의 시절들을 잊어버리고, 패배감과 절망감에 젖어들어 한숨을 내쉬면서 걸어오고 있었을 것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해결되지 못하는 답답함이 있었습니다. 이젠 무엇을 하면서 살아가야 할까 깊은 고민에 빠졌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영적 피로감이 찾아들면 하나님과 멀어집니다. 당연히 지금도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게 됩니다. 하나님 앞에서 범죄 하게 됩니다. 더 이상 말씀 앞에 설 수 없게 되고, 더 이상 하나님 앞에서 깨어 근신할 수가 없게 됩니다. 우는 사자들이 나를 둘러싸고 놓아 주지를 않기에 암흑 천지에서 그저 주저앉아 포기하게 됩니다. 그리고 사탄은 우리 귓속에 속삭입니다.
‘그 정도면 충분해!’, ‘하나님이 어디계셔 안보이지?’,
‘거봐, 니가 열심히 해봐야 아무 소용도 없지?’, ‘어차피 다 사람이 하는거야!’,
‘그냥 적당히 하자구!’, ‘이제 그만 좀 쉬어도 돼!하나님이 다 이해하실거야’,
‘요즘 세상에 재미있는 게 얼마나 많던데 그것도 좀 관심 가져봐’,
‘기도 안해도 하나님 다 아셔’, ‘지겨운 성경 또 읽고 싶어?’,
‘어차피 조그마한 죄 짓는건데 하나님께 회개하면 되지. 괜찮아!!’,
‘감사하라고? 불평할게 이렇게나 내 주변에 많은데, 감사하라구?’,
‘하나님 믿어도 답답하지? 그래 그런거야 그러니깐 믿을 필요가 없는거라구!’
등등 우리를 유혹해서 넘어뜨리려고 합니다.
평소 들리지 않고 관심도 없던 유혹들이 이 영적피로감에 빠지게 되면 아주 빠르게 우리를 찾아옵니다. 마치 육체적인 피로감이 강하면 쉽게 짜증나고, 쉽게 화내고, 쉽게 답답해지면서 평소와 달라지는 것처럼 영적 피로감이 찾아오면 우리의 마음도 달라지는 것입니다. 이게 아닌데, 이러면 안 되는데 하면서도 나도 모르게 하나님과 멀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쉽게 원망하고, 쉽게 불평하게 되고, 기도하지 않게 되고, 말씀과 멀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낯을 피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혹시 지금 '영적피로감'에 깊이 빠져 계시지는 않습니까? 아니면 영적으로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고 계십니까? 가장 쉽게 알아볼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예배’입니다. 지금 내가 어떻게 예배를 드리고 있는가를 살펴보시면 영적피로감에 대해서 쉽게 파악할 수 있을 것입니다. 즉 ‘예배’ 앞에서 지금 내가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지를 살펴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예배 가운데 하나님과의 교통이 있습니까?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계십니까? 깊이 하나님을 만나고 계십니까? 예배가운데 하나님이 주시는 감동이 있는지 우리는 돌이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지금 내가 예배를 드리고 있는지, 예배를 보러 온 것인지에 대해서는 하나님과 나는 가장 잘 알고 있습니다.
100% 충전된 스마트폰을 가지고 나가 열심히 사용했습니다. 그러다보면 언젠가 스마트폰은 방전이 될 것입니다. 그러면 그 스마트폰을 그만 쉬라고 책상 깊은 곳에 넣어두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방전이 되면 무엇을 해야할까요? 네! 바로 충전을 합니다. 다시 사용할 수 있도록 충전을 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피곤함을 느낄 때는 쉬는 것이 맞습니다. 하지만 영적 피로감은 쉬는 것으로 해결 되는 것이 아니기에 다른 충전방식이 필요합니다. 어떤 분들은 영적피로감이 찾아올 때 잠시 교회를 떠나 있는 분들도 계시고, 영적 잠수를 타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또 기도의 자리를 멀리합니다. 잘 읽던 성경을 책꽂이에 꽂기 시작합니다. 가장 중요한 예배에 더 이상 우선순위를 두지 않습니다. 그렇게 내려놓아야 할 것들은 내려놓지 않고, 내려놓치 않아야 할 것들을 다 내려놓고 오히려 쉬려고 합니다. 바로 그 순간부터는 계속해서 하나님과의 관계도 쉬게 되는 안타까운 역사가 나타나게 됩니다.
이 '영적피로감'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영적인 충전으로 회복되어야 합니다. 영적인 충전을 통한 회복은 곧 '예배의 회복'입니다.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예배를 회복한 후에, 하나님이 그토록 찾고 계시는 그 외침에 순종해서 나아가야 합니다. 예배의 회복은 곧 "예수님과의 관계회복"을 말합니다. 영적피로감 해결을 위해 예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다시금 가장 기본적이면서 가장 근본적인 믿음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대신 죽으시고, 보혈 흘려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고 다시 오실 예수님에 대한 관계 회복이 필요합니다. 다른 그 어떤 것보다 가장 중요한 사실이 바로 예수님이 나를 위해 피 흘려주셨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1장 7절은 말씀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그의 보혈로 자유함을 얻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로 죄사함도 받았습니다." 아멘! 이 보혈을 통해 자유함을 얻고, 죄사함을 받아야 하나님과의 관계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바로 "영적인 피로회복"은 피로! 회복!되어 지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보혈 공로를 새삼 다시금 깨닫고, 그 보혈 공로를 통해서만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온전해짐을 깨달아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다시금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산에 갔을 때 어린 양의 보혈에 대한 체험을 했습니다. 먼저 어린 양을 준비하셨던 여호와이레의 하나님을 통하여 그 어린양의 피로 인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다시 회복되었습니다. 놀라운 것은 그 모리아 산이 바로 예수님이 피 흘리신 신약의 골고다언덕과 동일한 곳이라는 것에서 큰 감격을 느낍니다. 모리아산에서 아브라함이 예배를 회복했듯이 골고다 언덕에서 보혈을 흘리신 예수님의 그 피로 우리가 예배를 회복하길 간절히 소망해봅니다. 그 보혈공로가 없었다면 우리는 누구도 예배를 드릴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또한 예배를 올바로 드리지 않는다면 우리의 영적피로감은 결코 해결될 수없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가 나음을 받았도다"라고 선포하고 있는 이사야 53장의 말씀을 우리들은 다시금 새삼스럽게 주목해야 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우리는 회복될 수 있습니다. 다시금 그 사랑에 대한 감격함이 있고, 믿어짐이 있고, 나를 위한 보혈이었음을 깨달아야 하는 것입니다.
슬픈 낯빛으로 터덜터덜 엠마오로 돌아가는 두 제자가 다시 가슴이 뜨거워지게 된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들의 눈이 어두워졌다가 다시 밝아진 계기가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그들에게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고 물으시면서 자신에 대해서 이야기해주셨습니다. 바로 주가 이 땅에 오신 이유, 우리를 위해 십자가 보혈을 흘려주기 위함을 설명해주자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는 회복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6장 56절을 통하여 말씀하십니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의 안에 거하는 것"이라고 선포하고 계십니다. 오직 보혈공로를 의지하여 구원함을 얻을 때 우리 모두에게 회복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도 희미해져가는 구원의 감격이 다시금 새로운 일로 우리에게 다가와 회복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 그 보혈의 공로를 통해서 하나님께로 갈 수 있는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잊지 마십시요. 바로 그 보혈의 공로를 통해서만 우리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 아니고서는 우리는 올바로 설 수가 없고, 어떤 믿음의 길로든 행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영적피로감을 그냥 방치하지 마십시요. 무관심하지 마십시요. 영적피로감에 대해서 민감하여 피로회복에 대한 중요성을 알고 해결해야 겠다는 갈급한 마음이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회복!되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 보혈로만 회복될 수 있습니다. 예수 보혈을 지나야만 아버지께로 갈 수 있습니다. 보혈을 지나 드디어 하나님이 원하시는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다. 피로! 회복! 되어지면 우리들의 영적피로감은 싹 물러가고 영적인 눈이 밝아져 다시금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볼 수 있게 되고, 다시금 주님의 세밀한 음성을 듣게 되고, 다시금 하나님의 은혜, 그 깊은 은혜의 바다에 과감히 뛰어들 수 있으며, 다시금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게 되는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미문이라는 성전 문 앞에 나면서부터 못 걷게된 이가 있었습니다. 그랬던 그 사람을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걷게 했던 베드로와 요한 역시도 영적이 피로감에 빠져있던 제자들이었습니다. 허나 영적 피로했던 모습에서 온전히 보혈로 회복 되어졌기에 사도행전 4장을 통해서 공회 앞에 서서 성령이 충만하여 이렇게 선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너희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 깊은 병에 신음하고 포기한 인생이었던 그 앉은뱅이도 피로! 회복! 되었을 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건강을 회복하게 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영도 매일매일 새로워지면서 강건해질 수 있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인해 그것은 가능한 것입니다. 오직 영적피로감에서의 회복은 바로 보혈로 인한 회복, 피로! 회복!으로 시작되어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가 있는 예배를 통해 피로감에서 벗어나 건강한 신앙생활이 가능한 것입니다.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약국이든 슈퍼든, 편의점이든 수많은 피로회복제를 판매 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 작은 병 하나로 모든 피로들이 싹 사라지기는 어려울 것이라 생각하면서도 왠지 한병을 마시면 힘이 나는 것 같지 않으십니까? 육적인 피로 회복을 위해서 적당한 쉼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충전도 필요합니다. 그래서 육적으로 피로감을 느끼시지 않고 매 순간순간 건강하셨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우리의 영이 영적피로감을 극복해 하나님과 멀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결코 영적피로감이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가로막는 벽이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 그것을 다시금 온전히 붙드시길 소망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 다시금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깊은 사랑의 감격에 빠지시기를 기도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 그 공로를 온전히 힘입어서 영적피로감에서 벗어나고, 예배가 회복되어지길 소망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그 보혈, 그 은혜를 묵상하며, 기도하며, 사모할 때에 우리의 어두워진 눈이 밝아지고, 냉랭하고 무관심하고 무기력했던 심령이 뜨거워지기를 소망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 그 피의 능력으로 모든 것이 온전케 되는 것을 경험하기를 소망합니다.
사랑하고 축복하는 여러분 2020년에는 이 영적피로감에서 벗어나서 피로회복을 한 후 전진하고 승리하길 원하십니까?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회복되시길 간절히 원합니다. 피로!! 회복!!
잠시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우리에게 귀한 하루를 허락해 주셨습니다.
혹여나 저희가 영적 피로감에 빠져 눈이 어두워지고, 슬픈 빛을 띠고,
냉랭해진 가슴이고, 하나님에 대해서 무관심하고, 더 이상 하나님의 일에
관심 없이 무기력한 모습들을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 피로감에서 벗어나고 싶은데 좀처럼 벗어날 수가 없는 연약한 저희들의
모습입니다. 회복시켜 주시옵소서.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보혈, 그 피로 회복의
길이 시작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이 우리를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까지도 아끼지 않고 내어주신 그 사랑으로부터 회복되어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피로 회복되어져서 이제 하나님과의 깊은 만남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온전한 감사가 회복되어지게 하시고
무엇보다도 예배가 회복되어지는 역사로 이어지게 하시옵소서.
새삼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무심함을 내려놓고 뜨겁게 감사드립니다.
죽어야 할 우리를 위해 대신 십자가 지신 예수님..감사합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을 사랑하시는 그 은혜 감사합니다.
죽어가는 저희를 다시금 살려주신 것을 믿고 미리 감사드립니다.
각 교회 위에 흐르는 주 보혈의 은혜가 여전히 변함없음을 감사합니다.
요나처럼 바다에 뛰어들겠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저희를 받아주시옵소서.
또한 이것들을 구할 때 우리가 구하지 않았던 육적인 강건함과 삶의 평안함을
주셔서 영과 육이 모두 강건하여 하나님의 큰 용사로 살아가는 저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드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