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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창세기 32장 28절, 창세기 35장 10절, 호세아 12장 3절, 마가복음 8장 33절
그가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 <창세기 32장 28절, 개역개정>
하나님이 그에게 말씀하셨다. "너의 이름이 야곱이었지만, 이제부터 너의 이름은 야곱이 아니라 이스라엘이다." 하나님이 그의 이름을 이스라엘이라고 하셨다. <창세기 35장 10절, 새번역>
야곱이 모태에 있을 때에는 형과 싸웠으며, 다 큰 다음에는 하나님과 대결하여 싸웠다. 야곱은 천사와 싸워서 이기자, 울면서 은총을 간구하였다. 하나님은 베델에서 그를 만나시고, 거기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셨다. <호세아 12장 3~4절, 새번역>
그러나 예수께서는 돌아서서, 제자들을 보시고, 베드로를 꾸짖어 말씀하셨다.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마가복음 8장 33절, 새번역>
요즘 들어 생각보다 하나님을 이기고 싶어 하는 사람이 참 많이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하나님이 주인되시는 삶이 아니라 내가 주인이 되는 삶에 하나님을 종으로 부리고 싶은 것까지는 아닐지 몰라도, 하나님보다 소위 '위'에 있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꽤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나 계획이 아니라 나의 뜻과 계획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 더 좋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방법은 구태의연하다고 생각하며 자신이 생각하는 참신하고 합리적인 방법을 신봉합니다. 그리고는 이야기합니다. 자신의 이름이 '이스라엘'이라고 말입니다.
야곱은 얍복강에서 하나님의 천사와 힘겨루기를 진행합니다. 하나님의 천사는 도저히 야곱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고서, 야곱의 엉덩이뼈를 쳤고, 야곱은 부상을 입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날이 새려고 하니 놓아달라고 야곱에게 말하였지만, 야곱은 축복을 요구하며 한사코 떼를 부리며 놓아주지 않게 됩니다. 이 때 야곱이 바란 축복은 '에서'로부터의 안전 밖에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미 그것은 하나님께 약속해주신 내용이었습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서,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켜 주며, 내가 너를 다시 이 땅으로 데려 오겠다. 내가 너에게 약속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내가 너를 떠나지 않겠다." <창세기 28장 15절, 새번역>
야곱이 이 약속을 기억해 내기만 한다면, 믿기만 한다면 될텐데 무지와 불신으로 흔들리고 있는 그 때 하나님의 천사가 아주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그가 야곱에게 물었다. "너의 이름이 무엇이냐?" 야곱이 대답하였다. "야곱입니다." <창세기 32장 27절, 새번역>
기억하십니까? 창세기 25장에 보면 살결이 붉은데다가 온 몸이 털투성이였던 쌍둥이형은 '에서'가 되었고, 형의 발뒤꿈치를 잡고 있어서 쌍둥이동생은 '야곱'이 되었습니다.
먼저 나온 아이는 살결이 붉은데다가 온몸이 털투성이어서, 이름을 에서라고 하였다. 이어서 동생이 나오는데, 그의 손이 에서의 발뒤꿈치를 잡고 있어서, 이름을 야곱이라고 하였다. 리브가가 이 쌍둥이를 낳았을 때에, 이삭의 나이는 예순 살이었다. <창세기 25장 26절, 새번역>
그런데 이 야곱이라는 이름은 '발뒤꿈치를 잡다'라는 뜻을 가진 듯 하지만 사실상 뜻은 '속이다'를 뜻하는 '야아케브'라는 히브리어에서 파생된 이름입니다. 그러니 태어나면서부터 형의 발뒤꿈치를 잡는 존재로 태어났다는 것은 그의 이름처럼 누군가를 속이며 살아가는 인생이 된다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누군가의 발뒤꿈치를 잡으며 살아갈 것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나라로 치면 태어날 때 이름을 '사기꾼'이라고 지은 것과 비슷하게 이해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이름대로 야곱이 얼마나 '속이'는 삶을 살았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속임 당한 삶'이기도 했습니다. 그런 야곱의 이름을 들은 하나님의 천사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그 사람이 말하였다. "네가 하나님과도 겨루어 이겼고, 사람과도 겨루어 이겼으니, 이제 네 이름은 야곱이 아니라 이스라엘이다." <창세기 32장 28절, 새번역>
여기에서 바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이름 '이스라엘'이 등장하게 됩니다. '이스라엘'이란 이름의 뜻은 '하나님과 겨루다' 또는 '하나님이 겨루시다'입니다. 야곱이 하나님과 겨루었고, 또한 하나님이 야곱과 겨루어주셨다는 뜻을 동시에 가지면서 야곱은 이제 하나님을 만나 '이스라엘'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 이름을 바꾸어 주실 때 야곱은 상대가 하나님의 천사라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할아버지 아브라함으로부터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아브람이었던 이름이 왜 '아브라함'으로 바뀌었는지, 사래 할머니가 왜 '사'라가 되었는지, 왜 아버지의 이름이 '이삭'인지..모두가 하나님이 직접 지어주신 이름들이었습니다. 그리고 바꾸어주신 이름처럼 살게 되었고, 하나님이 그렇게 인도해 주셨다는 것도 들었습니다. 그렇게 할아버지와 아버지처럼 자신의 이름도 지어주셨습니다. 그렇게 야곱은 이스라엘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언뜻 보면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고, 사람과도 겨루어 이겼으니' 라는 말을 들으면 정말 좋은 뜻 같아 보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마치 야곱이 하나님을 이긴 존재로 생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오해하지 맙시다! 하나님은 지금 야곱에게 져주신 것입니다. 어찌 하나님의 천사가 한낱 인간 야곱과의 힘겨루기에서 질 수 있겠습니까? 아직 질 마음도, 포기할 마음도 없는 야곱이었기에 하나님이 져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더이상 누군가의 발뒤꿈치나 잡으며 속이는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과 겨루었다는 자부심으로 살아가는 삶이 되도록 오히려 축복해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너무도 재미있는 기록이 하나 더 있습니다. 이렇게 똑같이 이름을 바꾸어주신 것을 기록한 곳이 한 군데 더 등장합니다. 그것도 시기적으로 오늘과 정반대인 상황에서 등장합니다. 아직 에서를 만나지 않은 얍복강에서 이 조우를 통하여 에서와도 화해하는 듯 보입니다. 하지만 야곱은 여전히 불안해 하고, 여전히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이라고 이름이 바뀌긴 하였어도 여전히 '야곱'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창세기 35장, 드디어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베델로 올라간 야곱을 만나주신 하나님께서 그 때에는 천사가 아니라 직접 나타나셔서 다시 한 번 말씀해 주십니다.
야곱이 밧단아람에서 돌아온 뒤에, 하나님이 그에게 다시 나타나셔서 복을 주셨다. 하나님이 그에게 말씀하셨다. "너의 이름이 야곱이었지만, 이제부터 너의 이름은 야곱이 아니라 이스라엘이다." 하나님이 그의 이름을 이스라엘이라고 하셨다. <창세기 35장 9~10절, 새번역>
다시 한 번 명확하게 야곱에게 말씀하십니다. 얍복강에서 하나님의 천사를 만나 '브니엘'이라고 하면서 하나님을 만났다고 이야기했고, 에서와도 화해했지만 여전히 그는 야곱이었지 이스라엘이 되지 못했습니다. 다른 사람의 발뒤꿈치를 잡지는 않았지만, 야곱은 스스로의 발뒤꿈치를 잡으며, 스스로를 속이면서, 계속해서 믿음이 있는척하며 살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야곱에게 말씀하셨다. "어서 베델로 올라가, 거기에서 살아라. 네가 너의 형 에서 앞에서 피해 도망칠 때에, 너에게 나타난 그 하나님께 제단을 쌓아서 바쳐라." <창세기 35장 1절, 새번역>
이 때에야 비로소 야곱은 자신뿐 아니라 가족과 거느리고 있는 모든 사람에게 이방 신상들을 버리라고 명령한 후 베델로 올라가서 제단을 쌓게 됩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에 하나님이 나타나 다시 한번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처음에는 하나님과 겨루었다는 그 사실만 생각했고,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기에 에서와도 화해했고, 다시금 고향에서 자리를 잡을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야곱의 착각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과 겨루어 반드시 져야만 했다는 것을 훗날 여러가지 일들을 겪고 나서야 알게 된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이스라엘이 아니고 여전히 야곱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창세기 35장에서는 이제 이스라엘이 된 것입니다. 진짜 하나님과의 겨루기가 가지는 '의미'를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의 겨루기, 그것은 실로 '축복'입니다. 맞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과 맞잡고 씨름을 하듯 힘겨루기를 해볼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그것 또한 하나님을 체험하는 좋은 방법입니다. 하지만 그 겨루기에서 이기고 있다면, 그 겨루기는 이제 내게 '시험'이 됩니다. 유은성 전도사님의 찬양 가사가 바로 이 사실을 잘 전달하고 있습니다. '오해'라는 찬양의 가사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너무 사랑하심으로 나의 모난 부분을 깍으실 때
나는 그것을 '고난'이라 부르지만 그는 그것을 '사랑'이라 부르죠
하나님이 나를 너무 사랑하심으로 나를 좁은 길로 인도하실 때
나는 그것을 '연단'이라 부르지만 그는 그것을 '은혜'라고 부르죠
사탄이 나를 하나님과 멀어지게 하기위해 내게 물질의 부와 즐거움을 주었을때
하나님은 그것을 '시험'이라 부르시지만 나는 그것을 '축복'이라 부르죠
세상의 기준과 세상의 시선으로 하나님의 일들을 바라보기에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한 채로 그렇게 그의 뜻과 계획을 오해하며 살았습니다
그의 시선으로, 그의 기준으로 그의 계획하심과 뜻을 깨닫도록
하나님의 시선 맞추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이 가사 안에 하나님과의 겨루기를 하고 있는 이스라엘들의 모든 모습이 녹아져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이겼다고 생각하는 모든 이스라엘들에게 오늘 간절히 고하고 싶은 것입니다. 하나님을 오해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하나님을 이기고 있는 것은 축복이 아닙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져주시는 것이지 결코 여러분에게 질 수 있는 분이 아니십니다. 여러분이 고집부리기에, 여러분이 땡깡부리며 떼 쓰기에 어쩔 수 없어 져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승리'라고 표현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히려 그것은 '시험'의 시작입니다.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부여받았지만 이스라엘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면 우리는 다시 야곱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신이 의지했던 모든 것을 다 버리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기쁨으로 겨루기에서 기꺼이 지는 것을 선택했을 때, 그때서야 비로소 진짜 '이스라엘'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겨루기가 진짜 은혜였음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 무릎꿇고, 하나님 앞에 자신을 내려놓을 수 있게 되는 '신앙'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또 하나님을 오해해서는 안 될 부분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져준 척, 포기한 척 하기를 바라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의 겨루기를 통하여 '자원하는' 마음으로 자신의 위치를 파악하고, 자기 스스로 기쁨으로 기꺼이 하나님 앞에 무릎꿇는 자원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자원이 아니라면, 스스로가 기쁨으로 하나님께 드린 패배가 아니라면, 결코 하나님은 '우리의 패배'라고 생각하지 않으시고, 여전히 '우리의 승리'라고 생각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전히 하나님과 겨루어 이긴 존재들로 살게 내버려 두시는 것입니다. 지는 것은 연기가 아닙니다. 그것은 게임을 조작하는 것입니다. 정정당당하게 하나님과 힘겨루기를 하십시오. 그리고 기쁨으로, 자원으로 포기하십시오. 하나님이 하나님이심을 발견하십시오. 여러분을 축복하시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겨 보십시오.
사랑하고 존경하고 축복하는 예배자 여러분, 혹시 요즘 하나님과 힘겨루기 중이십니까? 하나님을 이기고 싶으십니까? 내 뜻대로, 내 맘대로 되었으면 좋겠습니까? 그런데 그것이 '힘겨루기'라고 느껴지십니까? 그렇다면 이제 선택하셔야 할 때입니다. 창세기 32장의 이스라엘인지, 창세기 35장의 이스라엘인지 말입니다. 하나님을 오해하지 않으신다면 창세기 35장의 이스라엘을 선택하실 것이고, 하나님을 오해한다면 창세기 32장의 이스라엘을 선택하며 여전히 야곱으로 살게 되실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예수님의 제자 중에서도 이런 이스라엘이 있어서 소개해 드리면서 짧은 글을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예수님의 12제자 중 수제자였던 이스라엘, 바로 '베드로'입니다. 소위 지옥과 천당을 오고 갔던 그 날을 함께 묵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빌립보의 가이사랴에 있는 여러 마을로 길을 나서셨는데, 도중에 제자들에게 물으셨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제자들이 예수께 말하였다. "침례자 요한이라고 합니다. 엘리야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고, 또 예언자 가운데 한 분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물으셨다.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베드로가 예수께 대답하였다. "선생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엄중히 경고하시기를, 자기에 관하여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하셨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인자가 반드시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고 나서, 사흘 후에 살아나야 한다는 것을 그들에게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예수께서 드러내 놓고 이 말씀을 하시니, 베드로가 예수를 바싹 잡아당기고, 그에게 항의하였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돌아서서, 제자들을 보시고, 베드로를 꾸짖어 말씀하셨다.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그리고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무리를 불러 놓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오려고 하는 사람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하고자 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구할 것이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이득이 있겠느냐? <마가복음 8장 27~36절, 새번역>
https://www.youtube.com/watch?v=s5C6uicbyJU
https://www.youtube.com/watch?v=QlMTfpTmOjM
https://www.youtube.com/watch?v=zNqvVThMgF0
https://www.youtube.com/watch?v=sGyeewlYWQc
https://www.youtube.com/watch?v=vzhkixBgqN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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