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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남 12주차(남해고속도로 - 덕천 주유소)
2004년 7월 18일(일요일)
날씨: 약간 흐린 후 갬
*남해고속도로 - 125봉(09:20 ~ 11:54)
오늘도 예외 없이 서울산 나들목에서 경주대간 철자할머니(?)가 합류하니 애마는 거의 만차다.
남해고속도로와 대전 - 진주간 고속도로의 연결 나들목이 가까워지자
“여기쯤 이지 싶은데?”
“어! 그래 저기다”
왼쪽 차창 너머로 지난주 지나온 ‘장화석’님의 산불감시초소의 망루와 태극기가 지나간다. 다들 잠시 감회에 젖어 본다.
낙남 또 하나의 장점은 아침 들머리를 향하는 남해고속도로를 달려오면서 지나온 마루 금들을 감상하며 감회에 젖어보는 즐거움일 것이다.
아침 햇살을 받기 시작하는 물안개 피어나는 물금나루에서 부터 동신어산, 신어산 마루금에, 봉림산, 천주산, 무학산 마루금, 여항산까지.
조금 일찍 출발한 관계로 사천 나들목을 빠져나와 3번 국도를 이용하여 화원마을 입석에서 좌회전을 하여 들머리인 삼계탕집 주차장에 여유 있게 도착했다(09:00).
채비를 하며 몸을 풀고는 오늘 구간은 독도 주의 구간이 많아 다른 길로 빠질 위험이 많으니 특별한 주의가 요구 된다는 총무와 김내곤선생의 특별 당부를 듣고 출발이다(09:20).
아마 농장의 진입로 인지 시멘트 포장도로를 오르니 왼쪽으로는 감나무와 배나무가 자라기 시작하고 오른쪽에는 무덤이 한기 있다.
포장된 농로가 끝이 나고 오솔길로 접어더니 고추잠자리 때가 한 패거리 날고 있다. 가을은 아직도 저만치인 한여름의 초입인데, 그래서인지 빨간빛이 아직은 덜 익었다.
조림이 된지 오래되지 않은 소나무 사이로 등로는 또렷하다. 잠시 완만하게 오르막을 오르다 삼거리를 만나니 오른쪽 길 몇 십보 앞서서 오늘 처음 온 태영이란 청년이 망설이고 있다. 표지기들이 양쪽으로 다 달렸다. 많이 달린 왼쪽을 선택하여 가기로 하고 되돌아와 합류를 권하니 자기보다 먼저 간 대원들은 그길로 갔다며 걱정을 한다.
조금 가다 내리막을 내려서는데 오른쪽 길을 택했던 일행들의 고함소리에 삼거리로 뒤돌아오도록 맞고함을 소리쳐 보지만 대답은 없다. 선두와 잠시 서서 기다린다. 오른쪽 아래로는 대전-진주간 고속도로가 지나간다.
조금 후 인기척이 들려 회장님이 남아서 후미를 인도하기로 하고 다시 진행을 시작한다.
방향은 거의 서진에 가깝다. 여느 야산의 황토길 같다.
등로 주변에는 소나무들을 베어서 가지런히 쌓아 놓고 비닐을 완전히 덮어 둔 무더기가 간간이 있다. 겨울을 대비한 땔감도 아닌 것 같은데. 현자 아줌마가 숙제를 풀어준다. 병충해에 죽어가는 나무들을 골라 벌목을 해서 그 해충을 죽이고 전염을 막기 위해서란다.
무덤들을 몇 기 지나 서서히 경사를 더해 가는데 석제를 두른 무덤 3기가 잘 다듬어져 나란히 있다.
가운데 무덤이 완산 김씨고 그 양편에 서로 다른 성씨의 여자 무덤이라며 마눌이 둘인 그 양반 제주 좋다며 부러워하는 학순이 형님에게 그게 아니고 그 자식들이 서로 사이가 좋아서 그런 것 아닌가요? 라고하자 형님은 그러면 자기는 5기짜리 무덤을 만들어 보겠단다.
아니! 이 양반이. 그래서 맨날 꽃을 심는 남자 타령이가?
또 무덤들을 몇 기 지나고 밤나무 단지를 지나 방향을 여러 번 바꾸며 오른쪽으로 작은 과수원을 지나 갚아 오는 숨을 고르며 등성이에 올라서니 130봉이다(10:00).
오른쪽으로 휘어져 내려가다 평탄하게 잡초 길로 덜어 섰다가 마저 내려서니 자갈길을 사이에 두고 삼거리가 만나는 임도의 직진로에서 선두가 쉬고 있다(10:08).
진입로 입구에는 일반인들의 출입을 막고자 시멘트로 기둥을 만들어 쇠사슬을 느려 놓았고 오른쪽 나무에 ‘시루봉 두릅농원’이라고 양철 판에 쓰서 못을 박아 놓았다. 그러고 보니 오른쪽 산 사면에는 온통 두릅나무가 이제는 잎이 모두 펴서 자라고 있다.
고함소리로 왁짝지껄 시끄럽다. 아까 삼거리에서 오른쪽 길로 갔던 후미가 소로를 지나오다 벌집을 건드렸다며 옥순아줌마가 벌 떼에 놀라 내달려 온다.
"언니는... 벌 때를 만나면 뛰는 사람에게만 집중적으로 달려 던단다. 그러니 도망 가지 말고 살살 걸어서 피해가라”
뒤따라오던 만자 아줌마가 타이른다. 어디 그 간에 도망 안가고 배기겠나? 오늘도 학순이 형님은 벌침을 맞았단다. 요번엔 지난주 꼭 그 자리 반대편인 왼손이다. 이 영감탱이가 일부로 왼손을 내밀었구만.
잠시 쉬며 땀을 닦으며 숨을 고르고 시멘트로 포장된 농장 도로를 따라 오르니 오른쪽 사면에는 계속해서 두릅나무 밭이다.
산마루에 이르러 포장은 끝이 나고 널찍한 황톳길을 왼쪽으로 약간 휘어지며 내려가다 오른쪽의 두릅 밭이 끝나면 펑퍼짐한 봉우리(170봉)에서 다시 왼쪽으로 휘어져 오르막이다.
오르막을 지나 잠시 평탄한 길이 이어 지는데 바닥에 깔린 잎에서 대롱이 한줄기로 곧게 올라와 줄기를 중심으로 꽃의 뿌리 부분은 흰색이며 꽃잎의 끝부분으로는 분홍빛이 도는 꽃이 나사모양으로 줄지어 매달린 야생화 한 뿌리가 길가에 피어 있다. 형태와 꽃잎의 색상이 특이하여 한 컷으로 담아 본다.
연달아 무덤 2기와 1기를 지나 봉우리에 오른다. ‘진주 11 1991재설’ 삼각점이 있는 실봉산(186.3m)이다(10:38).
따가운 매미 울음소리를 들으며 오른쪽으로 휘어져 조금 가파르게 내려가다, 작은 안부를 지나 오솔길을 마저 내려서니 자갈이 깔린 임도 삼거리다(10:47). 오른쪽 소나무 아래에는 내동, 독산지구의 임도이며, 진주시 산림청에서 시설 했다는 대리석 시설비가 있다.
절개지를 올라 왼쪽으로 능선을 따라 오른 봉우리에서(140m) 왼쪽으로 살짝 방향이 바뀌면서 소로 오른쪽에는 전선이(군대식 문자로 삐삐선) 한줄 따라 간다. 서서히 경사를 더해서 올라가니 180봉이다(11:04).
왼쪽으로 휘어지며 내려가니 등로 오른쪽에 예비군 훈련장 이였는지 참호가 있다.
완만한 경사를 따라가다 밤나무 단지를 지나 갑자기 등로가 왼쪽으로 급하게 꺾기며 내려간다. 두런두런 사람소리가 들린다. 먼저 가는 선두그룹의 쉬는 소리 인가보다. 도로 공사가 한창인 버들재다(11:12).
오른쪽 아래 골자기로는 경전선 철로가 달린다. 방금 열차가 지나갔는데 사진 촬영을 했으면 좋았을 덴데 라며 임 선생이 아쉬워 해준다.
한두 차례 비가 올 것이라는 예보가 있었는데 비켜가나 보다. 햇살은 점점 따가워 지고 기온도 여간 아니다.
기압계상의 온도를 측정해 보니 37.4도다. 간밤에도 열대야로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는데. 금번 여름에 와서 처음 맛보는 폭염이다.
조금씩 자주 휴식을 갖기로 하고 일어서서 공사 중인 도로를 약간 따르다 오른쪽 능선으로 오르나 표지기 들이 없다. 과수원으로 난 희미한 산길을 잠시 헤매다 왼쪽으로 내려와 다시 도로로 나서니 아스팔트로 포장이 되어있고 한겻에 있는 도로 공사현장의 컨테이너 이동사무실의 현수막을 보고서야 임도였던 버드골재가 확포장 되면서 유동, 모산 간을 잇는 도로가 되며, 방금 지나온 구간이 그 현장임을 안다.
지도상으로는 버드골재를 내려서기 전의 봉우리 까지가 진주시 이고 이곳부터는 사천과 진주의 경계선이다. 아스팔트 도로를 버리고 왼쪽으로 농장의 진입로 입구 작은 나무에 매달린 표지기들로 다시 낙남의 원류를 따라 오른다.
왼쪽으로는 감, 배나무가 조림을 시작한지 얼마 되자 않은 것 같고 오른쪽에는 살림집과 양계장인지 한 동 있고 고추밭에는 고추의 초록빛깔이 좋다.
사유지가 끝이 나고 솔밭 길로 접어 덜어 잠시 진행을 하다 125봉에 이르러 점심을 먹기로 하고 행장을 풀고 나니 평소보다 조금 이른 시간이다(11:54).
*125봉 - 덕천주유소(13:00 ~ 16:53)
1시간의 점심시간이 꿀맛과도 같다. 바람도 없는 폭염 속에 산행을 하다보니 모두들 많이 지쳐있다. 그래도 어찌하랴! 지리산 영신봉까지의 기나긴 여정 중 한편의 시련인 것을. 그렇게 싶게 우리에게 마음을 열 것으로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더위와의 또 다른 싸움에 지친 몸과 마음을 추서리 고는 오후 무더위와의 전쟁에 돌입한다.
한 봉우리에 올랐다 내려서 ‘여양 진씨’ 비석이 서있는 무덤을 지나 정원수 같은 전나무며 소나무, 단풍나무가 가지런히 자라는 묘목밭 같은 평지를 내려서니 1002번 지방도로가 지나가는 유수재다(13:11).
진주시 나동면과 사천시 측동면을 알리는 도로 표시판이 있고 콘크리트 물탱크 같은 것이 한쪽에 있고 수도관이 연결돼 있다.
도로를 가로질러 오르막 입구가 협소하여 정체다. 그 아래 자연적으로 자라고 있는 들깨들의 고소한 내음이 후각을 자극하자 연자 아줌마는 하산주 안주 마련에 보탠다며 기다리는 동안 여린 잎들만 골라 따 담는다.
초입을 올라서니 오른쪽으로 산 사면을 계단식으로 만들어 감나무 단지를 조성해 놓았으나 가꾸지 않아서 인지 잡초가 무성하다. 서서히 경사를 더해서 오르니 왼쪽으로는 소나무가 무성하고 오른쪽에는 넓은 과수원이 만들어져 있다.
봉우리에 이르러 오른쪽으로 휘여 지며 잠시 내려서다가 오르막을 오르니 오른쪽 과수원에는 파란 지붕의 살림집에 개한마리가 우리에서 놀고 있다. 봉우리에 마저 올라서니 파란 물통이 있다. 115봉이다(13:24).
왼쪽으로 휘어지며 사면을 약간 내려간다. 오른쪽에 밤나무가 몇 그루 자라고 있으나 밤송이가 열리지 않았다. 지난봄에 꽃이 만발하여 수정할 시기에 비가 많이 내린 결과이리라.
다시 오른쪽으로 휘어져 내려가니 등로를 온통 잡초와 칡넝쿨이 가로 막고 있다. 하늘에는 장렬 하는 붉은 태양이 우리의 발길을 더디게 하고, 땅에서는 칡넝쿨이 발목을 걸고넘어진다. 짜증을 달래며 145봉을 올라섰다 내려서니 학순이 형님이 쉬고 계신다(13:45). 옆에 앉아 함께 쉰다.
과수원의 유실수가 좀 색달라 보인다. 자두나무 비슷한데 열매는 하나도 보이지 앉는다.
형님이 투들 된다.
“오늘같이 더운 날 산에 와서 땀을 흘렸으면 ‘거풍’을 해야지 머하는 기고?”
“네? 형님 그런데 거풍이 멈미까?”
놀란 듯 눈을 끄게 부라리며
“ 어이 차 기자! 니 진짜로 거풍도 모르나!”
“예! 무슨 말인가 모르겠는데요."
“거시기, 머냐하면 그~거를 시원하게 자연풍에 말리는 것 아이가”
“야! 그라만 억수로 시원하겠는데요?”
“그렇지 그 맛에 여름 산행한다 아이가”
히히히.... 좋은 것 하나 배웠네.
서서히 오르막이다. 고도차이는 크게 없으나 폭염과 땀 내음에 쉬 지쳐진다.
168봉에 올라섰다가(14:05) 완만하게 내려서는데 왼쪽 녹음 사이로 바닥을 덜어낸 가화강이 보인다. 강폭은 제법 너른데 물은 말라있고 모래만 보인다.
이제부터는 방향을 북서진으로 바뀌며 행정구역상으로 진주시 나동면 만을 지나간다.
다시 한 구비 돌아서 내려서서 오른쪽을 뒤 돌아보니 오전에 지나온 녹음 사이로 버드골재의 도로 공사장과 그 아래로 경전선 철로가 굽어지며 돌아가는 철길이 보인다.
또 잠시 내려서 안부에 이르니 오른쪽 아래 평지에 민가가 몇 채 보이고 유수역사가 따가운 해살을 받고 있다. 보이진 않지만 해바라기가 졸고 서있겠지? 봉숭아, 채송화, 나팔꽃도 있는 작은 화단도 상상해 본다. 사람과 기차는 보이지 않지만 평화롭다.
방향을 자주 바꾸며 내려오니 초록의 철망으로 사방을 울타리 친 무인 남강 홍수 통제소가 등로를 가로 막는다. 울타리를 왼쪽으로 돌아가니 등로는 왼쪽으로 휘어지며 내려간다.
잠시 내리막 인가 했는데 인공의 물이 흐르지 않는 가화강을 가로 지르는 유수교와 그 넘어 철교가 모습을 덜어낸다.
곧장 내려가야 할 등로는 오른쪽으로 휘어지며 내려서니 민가가 한 채 있고 나무그늘 아래 풀밭에 선두가 쉬고 있다.
지독한 땀 냄새에 모기떼 들이 파티를 만난 듯 달려 던다. 그들로 인해서 그리 오래 쉬지 못하고 폭염에 달아 이글거리는 유수교를 걸어서 가화강을 도강 한다(14:31).
낙남의 마루금을 기준으로 북쪽으로 흘러 남강으로 흐르던 물길과 남쪽으로 흘러 사천만으로 흐르던 물길을 남강의 상류에 진양호 댐 공사를 하면서 댐의 홍수 때 수위 조절을 위해 북쪽으로 흐르던 물길을 남쪽으로 돌리기 위해 마루금을 뚫어 사천만으로 흐르는 강으로 만들어 생긴 인공의 강줄기가 되었다.
작은 자연의 파괴로 많은 인간의 혜택을 생각한 건설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다리를 건너 왼쪽으로 도로를 따르니 오른쪽으로 난 농장 진입로 입구에 표시기 들이 달려 있다.
농장을 덜어서니 감나무가 자라고 폐가가 흉물스럽게 방치돼 있다. 등성이를 찾아 오르막을 오르는데 태영이가 주저앉는다. 얼굴이 붉게 상기되어 매우 힘들어한다. 더위를 먹을 것 같다. 이대로 산행은 무리로 다른 일행에게도 폐를 끼칠 것 같은데 다행히 본인이 탈출을 결심한다. 유수교로 되돌아가 기다리면 차편을 인도하기로 하고 돌려보낸다.
한발 앞서던 현자 아줌마가 야생화 무리를 발견하고는 기다렷다가 일러준다. 야생화 꽃밭이다.
등성이로 올라서니 오른쪽으로 휘어지며 소나무들과 과수원이 경계를 이룬다. 감나무아래 일구어 놓은 도라지 밭에서 먼저 가던 회장님과 학순이 형님, 강 사장이 도라지를 캐고 있다. 오늘도 하산주는 즉석 도라지주가 되나보다. 합류하여 같이 서리를 하려다 지쳐서 먼저 간다.
잘 가꾸어진 무덤을 지나 밭길을 따라 올라서니 솔밭 그늘에서 선두가 쉬고 있다. 진주로 가는 2번 국도와 가화강의 철교, 유수교가 바라보이는 쑥골재다(14:45). 왼쪽으로 보이는 작은 마을이 쑥골 인가 보다.
막 자리를 잡고 앉으려는데 경전선 철로 위로 기차가 노란 탱크로리 한 칸을 달랑 매달고 달려온다. 어! 사진기를 꺼내 준비를 하는 사이 지나가 버렸다. 디카의 단점이다. 파워를 ON하여 촬영준비가 되는 수초의 시간이 이럴 때는 수분이 되는 것 같다. 아쉽다. 오늘 큰차를(내 어릴 적에 경북 상주가 친정이신 할머니는 기차를 이렇게 불렀다) 촬영할 수 있는 두 번의 기회를 놓쳤다. 시원한 바람도 약간 불고 하니 졸음이 온다. 만자 아줌마가 주는 복숭아 한쪽이 꿀맛이다. 도라지 서리조가 합류를 하여 일어나려니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포도당 소금을 두알 먹고는 총무의 얼마 남지 않은 오늘의 노정 설명과 격려에 힘을 내 본다.
그늘진 솔밭 길을 따라 얼마간 직진을 하다 봉우리에 올랐다 오른쪽으로 휘어지며 내려가니 대나무 밭이다. 지난주 동주형님이 남자에게 대나무 정기가 참 좋다고 했는데......
경전선 유수 터널이 보이고 마저 내려서니 2번 국도의 확장 공사를 하고 있고 공사장 한쪽으로 물이 졸졸 흐르고 있다. 땀에 저린 손수건과 손이라도 담가 본다. 뒤미처 당도한 이수형수가 오늘따라 더위에 지친 신랑이 걱정 되는지 머리라도 감아 보라며 일러 준다. 도로를 횡단하여(15:22) 오솔길로 접어더니 이곳 소나무들은 지금까지의 소나무들과는 종류가 다르다.
곧게 자라지 않고 가지가 많은 키 작은 소나무 들이다. 솔잎은 초록으로 윤이 난다. 무덤들을 여러 기 지나며 완만하게 오르막을 올랐다 안부를 지나 다시 올라서니 낯선 두 분과 우리 일행들이 쉬고 있다. 부산에서 오신 분들로 낙남을 역주행하고 있다. 코스를 반대에서 오다보니 오늘도 등로를 찾느라 힘들었단다. 우리가 낙남을 시작해서 얼마간 만에 만난 역주행 팀들이 그렇게 부러웠는데, 이제는 저분들이 종주가 얼마 남지 않은 우리가 무지 부럽겠지? 돌로 담을 두른 무덤을 지나 오르막을 오르니 너들 지대다. 돌들의 생김새로 보아 여기도 성터의 잔해 같다. 마저 봉우리에 올라서 오른쪽으로 조금 진행하니 태봉산이다(190.2m 15:52). ‘진주 313 1986 재설’ 삼각점이 있다.
오른쪽으로는 나무 가지들 사이로 진양호와 호수에 갇힌 섬들이 보인다. 오른쪽에 진양호를 끼고 가던 등로가 밭 같은 공터에서 왼쪽으로 휘어져 내려간다.
등로는 방향이 남진으로 바뀌며 오른쪽으로 사천시 곤명면과 왼쪽으로 진주시 나동면이다.
잡목사이로 햇빛이 가려지며 매미들의 울음소리가 다소 위안이 된다. 안부를 지나 오르막을 올라서니 가족 공동묘소인지 무덤들이 층층이 있고 그 아래 있는 무덤에는 석상 공사가 하다말고 있다(16:13). 아마 수몰지구에 있던 묘들을 이장 했나 보다.
선두가 쉬고 있다가 먼저 내려간다. 혼자 남아 오늘 배운 거풍이나 해볼까? 이것저것 다 귀찮아 진다. 체력이 바닥을 들어낸다.
잠시 혼자 쉬다 무덤 위쪽이 아닌 조금아래 왼쪽으로 내려간다. 경사가 가파르다.
포장된 도로가 나타나고 양옥집이 한 채 있고 느티나무 아래 "愛鄕"이라고 새긴 돌비석이 있다.
"연화봉, 옥녀봉, 국사봉이 병풍을 두르고 덕천강이 흐르며 ........" 진양호로 인해서 수몰된 고향을 잊지 않고자 실향민들이 만들어 놓았다.
연전에 설날을 하루 앞두고 눈 덮인 가지산에 올랐다가 쌀바위 아래에서 만난 아저씨 한분이 생각난다.
방한모를 깊숙이 눌러쓴 나를 보더니
“나이도 지긋해 보이는데 고향이 어디요?”
“경남 거창입니다”
“그런데 왜 설 인돼 고향엔 가지 않고 산이요?”
"예, 회사 당직이 걸려서 집사람과 아이들만 보내고 다음에 조용하면 다녀 올라고요”
지금 사는 곳과 나이를 이야기 하다 보니 나보다 세살이 연배시다.
그러면서 자기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여기 쌀바위에서 눈 덮인 정상 쪽을 바라보면 어릴 적 자기 동네 뒷산과 너무 닮아 고향 생각이 나면 자주 오신단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부산으로 유학을 오면서 방학 때면 놀러 가던 고향이 진양호가 생기면서 수몰로 실향민이 되어 고향사람들도 뿔뿔이 흩어지고 없지만 무엇보다 고향산천을 볼 수 없다는 것에 가슴이 아프단다. 지금도 그때 같이 입학했던 초등학교 동무들이 부산을 와서 만난 다른 도회지 동무보다 더 좋아 그들을 만나서 작은 위안을 주고받으며 마음속으로만 고향의 모습을 그린다며 눈가에 이슬이 맺힌다.
그분들 같으신 분들이 이런 애향비라도 새워 마음을 달래나 보다.
모든 이들에게 고향이란, 이렇케 큰 의미를 가진다 말인가?
길 건너 산등성이에서 고함소리가 들린다. 광율이 목소리 같다. 내가 너무 처져 있나보다.
등성이로 오르는데 폰이 울린다. 아마 대답이 없자 광율이가 전화를 하나 보다. 전화소리 보다 사람 육성이 더 가깝게 덜린다.
마저 올라서니 등로가 독도주위 구간이라 길을 잃을 가봐 기다리다 전화까지 했단다.
허긴 총무는 내가 제일 못 믿음지?
등로가 양쪽으로 또렷하지만 왼쪽으로 꺾어서 내려간다. 등성이를 내려서니 ‘인동 장씨’ 무덤이 꼭 왕릉 같다. 그 아래 있는 하얀 대리석의 납골당도 규모하며 대단하다. 아주 잘되어있는 후손이 많은가 보다.
무덤 지를 내려서니 포장된 소로를 가로질러 작은 봉우리를 올라야 하나 땡땡이치기로 하고 왼쪽으로 난 도로를 따라 내려가니 2번 국도를 따라 앞섰던 일행이 지나가고 있다.
도로를 횡단하여 왼쪽으로 올라가니 애마가 보이고 먼저 도착한 일행들이 도라지 하산주에 여름철 더위에 좋다는 이수형님이 부산 기장까지 가서 아주 수고스럽게 마련한 고동무침 장만에 여념이 없다(16:53).
*산행후기
땀을 흘리며 다른 날 보다도 고생한 보람이 있어 즉석 도라지 하산주가 더욱 달다. 고등무침을 곁들인 비빔밥은 또 다른 별미였다.
효영이 짝꿍이 가져온 독한 중국 빽알 한 입은 목에서 불이 났다.
사천 나들목으로 가기위해 2번 국도를 따라 진주 쪽으로 가다보니 가화강의 발원점이 큰 수문으로 진양호와 연결되어 있다. 일태면 꼭 운하의 수문 같다. 저 수문을 열어 개방하면 가화강에 물이 흐를 것이다.
사천 시가지에 당도 하였으나 지난번 그 목욕탕을 찾을 수 없어 다른 목욕탕에 이르러 목욕탕 접수의 달인 이수 형님이 단체 활인요금으로 흥정을 하고는 사우나로 피로를 푼다.
다음주에 또 온다고 하면서, 그러나 본의 아니게 두 번간 목욕탕은 없었다. 목욕 후 갈증을 푸는데 는 시원하게 히야시(?)된 맥주가 제격이리라.
목욕탕 바로 옆 조그마한 슈퍼에서 한잔씩으로 목을 축이나 분위기가 달아오른다.
갈 길을 재촉하던 회장님과 총무가 대형 마트에 들려 캔 맥주를 공수한다. 흐흐흐 갈 길이 멀어도 지루하진 않겠구먼.......
박수치며 발바닥 장단에 신명 좀 풀 수 있겠지?
“전무님(애마의 기수) 차 좀 세워주소! 요강 좀 비웁시다!”
달리는 고속도로에서 우짜라꼬 이라노!
오늘은 회장님이 먼저 취했다. 도라지주, 빽알, 맥주에 무엇보다도 우리 산악회 분위기에...........
*참고 : 지금까지 총 도상거리 : 172.4km
첫댓글 차기자 산행기 잘읽었소이다.. 지난 월욜(7/19)부터 하루2번이상 참고래 거시기에 들어갔다 나왔다(?)하다가 금일에야 산행기를 보았소이다.. 너무늦게 올리는거 아이가?? 펜들 생각도 해야지... 이제 갈수록 필력에 기교와 힘이 넘치고 맛을 더해가니 머지않아 직업변경을 고려해 봄직할만 하구려.. 이상끝.
더위를 먹었던지(?) 영 맥이 탁 풀리고.....형님은 더위에 별고 없으신지? 여러 모임도 생기는 바람에 좀 늦었읍니다. 핑게고요 게으름이 자꾸 늘어 나나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