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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이란 허구의 세계나 단순한 논리의 세계가 아니다. 모든 사상은 그 사상의 기초가 존재하며 그 기초는 실재이다. 진화론이나 만유인력의 법칙이 어떻게 나올 수 있었는가를 보면 그것을 잘 알 수 있다. 믿음의 세계조차 실재가 없이는 생기지 않는다. 그리고 이 실재는 역사적 실재이다. 실재는 인식됨으로써 비로소 우리에게 의미를 가지며, 그 인식 주체인 우리는 시간과 공간의 제약 위에서 살고 있다. 또 인식의 주체뿐만 아니라 인식하는 방법, 표현하는 방법, 그리고 표현 수단 역시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음양오행론이나 태극론, 이기일원론이나 기일원론 등은 모두 역사 속에서 이해해야 할 대상인 것이다. 따라서 사상의 역사적 현실을 이해하는 것이 사상을 이해하는 전제인 것이다.
최근 재미있게 읽은 책이 <<중국의 예치시스템>>(미조구찌 유조 외, 동국대동양사연구실 역, 청계, 2001. 5)이다. 저자는 도쿄(東京)대 미조구찌 유조(溝口雄三) 명예교수를 비롯해 이토 타카유키(伊東貴之: 도쿄대 교양학부 조수), 무라타 유지로(村田雄二郞: 도쿄대 교양학부 교수)로 세 명이지만 대표는 미조구찌 유조이다. 미조구찌 교수의 논문은 20여년 전 대학원 수업에서 읽은 적이 있지만 별로 관심을 갖지 못했다. 당시는 정말 내공이 부족하여 잘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 후 학회에서 미조구찌 교수의 강연도 들었고 글도 읽었으나 내 전공이 아닌 까닭에 지금도 그렇게 익숙하지는 않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서 현실과 사상을 긴밀하게 관련지어 분석하고 이해하는 저자의 모습을 재확인하고, 이제까지 상식처럼 여겨졌던 주자학과 양명학에 대하여 재검토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 책은 3부로 구성되었다. 간략히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제1부 중국 근세의 사상 세계>에서는 주자학과 양명학을 중심으로 기존의 연구를 비판하면서 구체적으로 천과 인, 천과 리, 군주관, 향촌 질서 관념 등 중국 근세 사상의 실체를 그려내었다. 우선 서장에서는 책 전체에 대한 문제의식을 명쾌하게 제시하고 있다. 일본의 주자학이나 양명학 연구자(주로 漢學者)는 심지어 옹호자·신도로서 행동했다고 보고, 이를 벗어난 학자로는 40-60년대를 대표하여 쯔다 소오키찌(津田左右吉), 마루야마 마사오(丸山眞男), 니시 쥰조(西順藏)를 꼽는다. 그리고 이들의 문제의식을 근대 의식, 자유·개인주의로 파악하였다. 아울러 50-80년대를 대표해서는 시마다 겐지(島田虔次) 등을 들었다. 그리고 미조구찌 교수는 앞의 학자들이 가진 서구적 기준을 극복하면서 개체, 내면, 자유 등의 중국적 존재형태를 추구하고자 하였으며, 주자학이나 양명학의 존재성, 즉 사실 인식에 대하여 살피고자 하였다. 덧붙이자면, 80년대까지 일본의 명청 사상사의 대표적인 논자는 교토대학의 시마다 겐지였으며 그의 대표적인 저작이 <<中國における近代思惟の挫折>>(東京, 筑摩書房, 1947)이다[그의 저작 중에서 국내에 번역된 것은 <<朱子學과 陽明學>>(시마다 겐지 저, 김석근․이근우 옮김, 서울, 까치, 1986)이 있다]. 시마다 교수는 이 책에서 서구의 기준으로 보아 중국에서 근대 사유가 좌절되었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이에 대하여 미조구찌 교수는 <<중국전근대 사상의 굴절과 전개>>(1980, 東京大學出版會; 김용천 옮김, 서울, 동과서, 1999)에서 굴절과 전개라는 관점으로 시마다 교수의 관점을 극복하고자 하였다.
기존의 견해에서는 주자학을 정적 낙관주의, 봉건적 사유이며 정체적이어서 沒近代의 세계라는 인식, 양명학에 대해서는 주자학에 대응하는 해방적 의의를 강조하였다. 즉 天은 ‘천의 권위’ ‘천명’ ‘절대적 존재’ ‘영원불변의 질서’ ‘초월자’ 등을 뜻하고, 人은 이성·의지·作爲에 의한 주체적 질서 형성을 뜻한다. 그러므로 천과 인의 관계는 흡사 중세 유럽의 神-人과 같은 관계로 보았다. 또 주자학에서는 인간 내면의 道德的 理와 외계의 事事物物의 理가 연속하고 있는데, 이 경우에 사사물물의 리는 유교의 경전에 기록된 성인의 언행이고, 내면의 도덕은 그러한 권위를 가진 사사물물의 리에 따르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주자학에서는 ‘內’가 ‘外’의 권위에 종속적이지 않을 수 없다. 인간은 봉건적 신분의 상하 질서를 마치 자연 질서처럼 불변적인 것으로 간주하고는 동시에 그것에 따르는 것이 도덕적이라고 보았다. 한편 양명학을 ‘定理’의 선험적 속박에 대한 ‘절대주체’의 자기 발로·주장으로 묘사되고, 주자학은 거꾸로 그 ‘절대주체’의 자유를 빼앗는 선험적인 틀로 규정함으로써 양명학을 주자학의 극복자로 높이 평가하였다.
이러한 기존의 인식에 대해서 天은 유럽의 신에 비해서 많은 뜻(天命의 천, 譴責의 천, 天運의 천)을 가지고 있으므로 초월, 절대라는 이름으로 전체를 포괄할 수 없다고 하였다. 그리고 천을 理로 대체하게 된 것은 긴 역사적 과정을 거쳤는데, 송대에도 여전히 天變(각종 災異나 異常現象)을 天의 譴責으로 간주하는 상황에서 朱子가 천을 理로 대체함으로써 이러한 비이성적인 행위로부터 해방될 수 있었다고 하였다. 이렇게 객관적 법칙성의 측면에서 천을 파악함으로써 인간이나 우주 만물은 초월적 주재자에 의해서 아니라 바로 자신에게 내재하는 법칙성에 기초하여 존재한다는 사실을 새롭게 주장하게 되었다. 이 부분에 대하여 저자는 “역사의 추이에서 살펴본 결과론이지만 중국이 이 시기에 주자학의 도덕적 노선, 즉 통치 원리를 무력이나 종교, 마술적인 주재신의 힘, 법의 위력이나 공리에서가 아니라 도덕적 노선을 취한 것은 올바른 선택이었다.”고 높이 평가하였다.
주자학의 규범은 고정적이라는 것이 기존의 인식이었다. 이에 대하여 저자는 주자가 군신관계를 순서의 첫째로 삼음에 비하여 왕양명은 부자관계를 맨 앞에 두는 사례를 통하여 시대적 차이나 입장의 차이로 인한 가변성을 제시하였다. 즉 주자는 관료로서 결국 황제를 정점으로 하는 피라미드의 구조 속에서 백성과 대면하여 민중 교화를 담당하는 입장 그리고 관료와 사대부를 교화의 우선 대상으로 삼아야 하는 남송대의 상황을 들었으며, 양명은 향촌질서를 구축한다는 향촌의 입장에서 민중 교화를 담당한다는 점에 따른 것이라고 하였다.
읽으면서 흥미 있던 몇 가지만 들어보자. 자본주의 사회에서 무한한 욕망을 발전의 전제로 삼고 있다. 이 무한한 욕망은 인권의 형태로 표현되기도 하고 재산권 절대주의를 낳기도 한다. 그 결과 만들어진 세계는 아름답다고 할 수 있는가? 이에 대하여 朱子는 “먹고 마시는 일 자체는 천리이다. 맛난 음식을 요구하는 것이 인욕이다”고 하여 天理와 人欲을 구분하였다. 그리고 옳은 것은 천리이고 그른 것은 인욕이다고 하여, “손에 닥치는 대로 아무 것이나 먹고, 먹을 수 없는 경우에도 태연히 욕심 부려 먹는 따위는 모두 천리에 어긋나는 것이다”고 하였다. 당시 생산력이나 분배구조로 볼 때 욕망을 억제하는 것이 사회가 안정되고 지속 가능한 평화를 얻는 길이었다. 특히 저자는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은 옳다. 그러나 끝없이 애정을 가지고 반드시 자식이 어떻게 되기를 바라는 것은 잘못이다. 이것은 천리와 인욕이 구분되는 점이니, 마땅히 살려서 분별해야 한다.”고 하는 예를 들었다. 그리고 주자가 부모의 강한 에고이즘을 비판한 이것은 오늘날에도 적용될 수 있다고 지적하였다. 현재 일본이란 살인적인 입시경쟁 사회를 보고 살아가는 원로학자의 충고를 남의 나라 이야기로 여겨지지 않는다.
<제2부 중국 근세사상사에서의 동일성과 차별성> 우선 주자학이 성공할 수 있는 요인으로 송대 신흥사대부층의 성장과 긍지, 성인이 될 가능성의 보편성, 체계적인 수양론, 고도의 적응 가능성과 유연성, 황제에서 천한 아랫사람까지의 개방성 등을 들었다. 반면에 양명학은 주자학적 실천=수양론의 번쇄한 단계를 제거한 것, 즉 타고난 인간의 마음(心) 그 자체를 문제의 도마 위에 올리는 일이라고 규정하여, 양명학의 대중화 가능성을 단순화와 관련지었다. 또한 양자의 차이를 접근 방향의 차이로 정리하였다. 즉 주자학이 내향적인 실천(敬)을 통해 인격 변용의 계단을 올라가 일상적 경험의 장에서 초월해 나가는 과정을 중시한다면, 양명학은 초월적 自己性의 영역에서 심적인 에너지가 흘러넘치고 일상적 경험의 장에서 내재해 나가는 과정을 중시한다고 하였다.
기존에는 양명학이 근대적 요소로 보이는 전통 타파와 개인 부각에 초점을 둔 ‘해방사관 이데올로기의 전제’에 매몰되었지만, 역사를 보면 그런 방향으로만 진행된 것이 아니며 여전히 주자학적 전통이 중심이란 면에서 전통 타파와 같은 특성은 오히려 일탈적인 현상에 불과하다고 하였다. 또 주목할 것은 청대가 되면 內에서 外로의 거대한 흐름이 뚜렷해지는데 이것은 객관적이고 검증가능성이 필요해졌기 때문이며, 그 구체상은 禮이이고 학술사조는 고증학이라고 하였다. 이 禮는 그것을 수용하는 개인에 의해 보다 일상적이고 구체적인 행동 규범(孝, 悌, 忠 등)을 규정하는 것으로, 17세기 후반에서 18세기 중엽 청조의 최전성기에 완성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것을 저자들은 ‘예치시스템’이라고 하였다. 구중국의 최종형태는 이 예치시스템이 사회의 구석구석, 향촌의 방방곡곡까지 침투한 상태와 같았으며, 이것은 “세계사적으로 보아도 전근대의 사회 가운데 시스템으로서 가장 성숙한 형태였다”고 평가하였다.
저자는 현재의 중국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민주주의와 인권의 내실을 풍요롭게 만드는 일은 본래 인류 공동체의 과제이다. 독자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중국의 전통적 ‘인간’관의 검증은 단순히 역사적인 문제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분명히 현재 ‘중국’의 문제이기도 하다. 중국의 입장에서는 그러한 ‘인간’관의 역사적 내실이 갖는 긍정적 측면을 계승하면서 외적인 규제(틀)=보증으로서의 정치적·제도적 인‘권’을 확립하는 것이 가장 긴요한 과제이다. 하지만 필자가 생각하기에 현지의 ‘개혁개방’ 노선의 토대에서 분출되는 일부 인사들의 경제적 ‘욕망’이 ‘개개인의 사사로움이 없는 인간’이라는 인상보다는 ‘해방’된 ‘욕망’ 분출이라는 明末的 현상에 가까워 보인다고 평가한다면 현대 중국인에게 실례가 되는 것일까? 아무튼 ‘주체’ ‘자유’ ‘욕망’이라는 일련의 문제는 현재의 민주화가 안고 있는 문제점과 이른바 ‘사회주의 시장경제’라는 전에 없던 실험을 원리적·철학적으로 깊이 생각할 때 현재에도 역시 형태를 달리하며 계속 살아남을 것이다.(pp.223-224)”
<제3부 중국 근대 혁명과 유교 사회의 반전> 유교사회의 기본적 특징은 일반적으로 부계 원리의 엄격한 적용에서 찾을 수 있다. 집안에서 아버지의 권위가 절대적이며, 가장으로서 아내와 자녀 그리고 손자를 수직적·일원적으로 지배하는 것이 바로 가부장적 부계 원리이며, 이를 구체화한 것이 禮로 불리는 정밀한 행위 규범 체계였다. 이런 의미에서 예의 교화와 예의 실천을 중시한 명청시대 역시 禮敎가 지배하는 시대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한 유교=예교가 성문화된 형태인 <<朱子家禮>>와 향약을 통해 향촌의 기층 사회까지 널리 침투하였다.
예가 정치·사회의 조직 원리에 편입되어 여러 사회관계를 서열화·등급화한 것이 바로 예치 시스템으로, 명청시대에는 국가 관료제와 손잡으면서 왕조 지배를 밑에서부터 지탱하는 강력한 사회 안전 기반으로 기능하였다. 본래 가족 도덕이었던 유교 사상이 경쟁 상대인 도교와 불교를 물리치고 국가의 정통 교학이 되었던 것은 그러한 ‘예치 시스템’에 교묘하게 자신을 적응시킴으로써 개인·가족과 국가를 매개로 하는 사회 편성의 장치를 작동시키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청대 가부장제 사회의 동요 현상이 나타났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여성적·모계적 권력이 유교적 가부장제를 침해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구체적인 예로 백련교의 반란에 보이는 無生老母, <<홍루몽>>에 보이는 가모의 모권적 힘이나 가보옥의 소녀 숭배, 경화연의 전족 비판, 태평천국의 전족금지, 결혼하지 않고 여성들만 모여 사는 고파옥 등 많은 사례를 들었다. 다른 한편에서 국민 혁명기 농민세력의 등장과 지방엘리트의 무능력, 토호열신의 등장, 그리고 공산혁명, 토지개혁, 혼인법 제정, 국민국가 건설 등으로 가부장제가 종식되었다. 그러나 가부장제는 ‘위대한 아버지’ 모택동의 등장(가정에서 조상의 위패를 모셨던 자리에 모택동의 초상이 걸렸던 것이 한 예이다.)으로 변질되었다고 할 수 있다. 종족의 ‘성스런 공동체’를 국가란 ‘성스런 공동체’가 대체했으며, 이 공동체는 바로 ‘예치=인치’의 공동체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저자는 “예=인”의 공동체를 일률적으로 전근대적 형태로 간주하고 무조건 부정할 수 없다고 한다. 현재 중국에서 거민위원회가 분쟁이나 사회적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하고 있는 예와 같이 긍적적인 기능이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민간의 ‘人治’가 개인 사생활의 침해나 권력기관의 말단으로 기능하며 잔혹성을 발휘할 위험성이 있음도 지적하였지만, 다른 한편으로 만약 ‘법치’의 시스템이 확립된다면 그 ‘인치’가 ‘법치’의 무기물 같은 냉혹성을 보완하여 ‘人’과 ‘人’의 공동체 사회에 유연성을 보증하리라는 것도 충분히 기대할 수 있다고 하였다. 이러한 태도는 자연과 인간의 분리 즉 천과 인의 분리가 환경 파괴와 같은 문제점을 낳았음을 지적하고, 양자의 연계성을 통해 환경문제나 개발문제를 극복하여야 한다고 강조한 1편의 주장과 맥을 같이하는 것이다.
워낙 시간이 없었고 간략히 요약하다 보니 생략한 부분이 적지 않다. 첨부한 신문의 소개 글 두 편을 읽으면 보충이 되리라고 생각된다. 일반적으로 사상사 책이 어렵고 딱딱하지만 이 책은 최근에 내가 가장 재미있게 읽은 책이다. 특히 한국 사상사를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봐야 될 책이라고 생각된다. 한 번씩 읽어보길 권한다. [元]
동아일보 : 이 책의 원제목은 '중국이라는 시좌(中國という視座)'. 여기서 시좌란 복합적이고 종합적인 시각이나 관점을 의미한다. 이 책은 바로 일본에서 중국학 연구가 서구 인문학의 관점에 의존하던 경향을 벗어나서 새롭고 독자적인 관점을 취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저술이다.
'주희에서 등소평까지'라는 부제를 단 이 책은 일본 도쿄(東京)대 미조구치 유조(溝口雄三) 명예교수를 비롯해 이토 타카유키(伊東貴之), 무라타 유지로(村田雄二郞) 등 도쿄대 출신 학자들의 공동 저작이다.
중국학에 대해서 이들이 목표로 하는 것은 '근대', '자유', '개체', '내면' 등을 중심으로 삼는 서구 인문학 관점으로부터 벗어나서 중국 문화의 구조 양식, 그 자체의 민족적 독자성에서 나타난 실상 그대로 중국을 이해하자는 것이다. 그 방법은 보다 분석적이면서도 종합적이지 않으면 곤란하다.
그 핵심적 방법은 다름 아닌 '시스템'이란 개념에서 시사된다. 번역서의 제목인 '예치(禮治) 시스템'은 이 저서의 핵심 주제어이기도 하다. 예치 시스템이란 근대로부터 현대에 이르는 중국 사회를 구성하고 운영했던 주축이 곧 예치의 방법이었다고 파악하는 것이고, 특히 중국사회를 도덕질서 공동체로서의 정치와 사회가 도덕과 유기적으로 얽혀서 운영되어 온 것으로 바라보자는 관점을 제시하는 개념이다.
이 관점은 철학과 윤리는 물론 정치와 사회까지 포괄할 뿐 아니라, 근세 중국(송나라)으로부터 최근 마오쩌둥과 덩샤오핑에 이르기까지 중국 사회의 전개를 함께 관찰하고 사색할 수 있는 담론의 체계를 시사한다.
역자들이 서문에서 지적했듯이 예치 시스템이라는 개념 혹은 연구방법은 이전에는 없던 새로운 것이다. 더구나 예치의 개념을 인치(人治)의 개념과 동일시하는 한편, 근세 중국의 주자학의 가부장제에서 그 연원을 찾고 있다.
그것이 오늘날 중국 공산당과 마오에 의한 국가 통치권자의 유사 가부장제적 인치로 이어짐을 입증하면서, 현대에 보편화한 서구적 의미의 법치에 대해 지니는 장단점을 논하는 데까지 나아가고 있다. 저자들의 이런 태도에서 새롭게 발전된 중국학 연구의 관점을 볼 수 있다.
이는 근현대의 일본 학계가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기대어 온 서구 인문학적 관점이 중국의 진정한 이해의 방법이 될 수 없다는 자각적 반성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중국학은 중국 자체의 사회적 실상과 그것을 지배했던 그들의 삶의 체계로써 파악해야 한다는 관점에 입각한 엄밀한 실증과 추론이 돋보이는 것이 이 저작이다.
이 저작은 오늘날 한국에서의 중국 연구이든, 아니면 예송(禮訟), 향약과 계의 확대 및 종족적 집성촌의 강화, 성리학의 확산과 심화, 예학의 성행 등으로 관찰되는 조선 후기 사회의 역사적 전개과정에 대한 이해에 있어서든 하나의 좋은 참고가 될 것이다. - 유권종(중앙대 교수·철학)(2001-06-02)
문화일보 : 성리학(주자학)이 우리의 모든 의식을 지배했던 조선후기 사회에서 여성의 존재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혼인을 통해 다른 집안의 성원이 되므로 처음부터 ‘자식’으로 여기지 않았을 뿐 아니라 아버지·남편·아들에 대한 3단계의 복종을 강조한 ‘삼종지도(三從之道)’의 가르침에 따라 가부장에 대한 일방적인 순종만 요구받았다.
이에 따라 집안에서 자식이 없거나 남편이 먼저 죽은 아내의 지위는 매우 불안정해 일방적으로 종족 공동체에서 배제될 위험조차 있었다. 과부들의 경우 순절을 택하도록 강요받고 이를 정당화해 ‘열녀문’을 세워주는 극단적인 형태의 일까지 발생했던 것이다. 물론 이는 조선에만 국한된 상황은 아니었다. 주자학의 종주국인 중국의 상황도 다름없었다. “이(理)로 사람을 죽이는 명교(名敎)”란 청대 고증학자 대진(戴震)의 비판이 이를 설명해준다.
유교사상을 통해 중국의 근세부터 현대에 걸친 사상문화사를 개괄한 신간은 중국 못지않게 유교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한국을 이해하는데도 중요한 분석의 틀을 제공해준다. 중국 근세의 유교사상이 주자학과 양명학을 축으로 전개돼 오다가 청대에 들어와 고증학으로 대치됐다는 종전의 학맥 중심의 관점에서 벗어나 ‘예치(禮治) 시스템’이라는 새로운 틀 속에서 중국사회를 돌아보고 있기 때문이다.
책의 공저자인 중국사상사를 전공한 미조구치 유조(溝口雄三) 도쿄대 명예교수와 그의 제자인 이토 다카유키(伊東貴之)·무라타 유지로(村田雄二郞) 도쿄대 교수 등은 바로 이 ‘예치 시스템’을 ‘시각’으로 삼아 ‘중국이라는 세계’를 이해하고, 동시에 ‘중국이라는 시각’으로 오늘날의 세계를 바라보고 있다. 주자(송대)에서부터 등 샤오핑(현대)까지 근 1000년동안 중국사회를 움직여온 동인(動因)은 물론 현대 중국의 향방과 관련해 많은 통찰을 제시해주고 있는 것이 이 책의 미덕이다.
저자들이 제시한 ‘예치 시스템’이란 발상은 루쉰(魯迅·1881~1936)의 작품 ‘광인일기’에 나오는 ‘사람을 잡아먹는 예교(禮敎)’라는 말에 기초한 것이다. 여기에서 루쉰이 말한 ‘예교’는 삼강오륜을 핵심으로 하는 가부장적 종법사회의 이데올로기로, 근대 중국에서 ‘공가점(孔家店)’으로 타도의 대상이 됐던 전통을 말한다. 이기론·심성론 같은 철학이론이 아니라 ‘예교’ 또는 ‘예치 시스템’ 같은 하드웨어적 시각에서 중국 유교를 분석하고자 한 것은 유교이론의 내적 구조보다는 그 사회적인 존재 양태나 기능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저자들의 의도 때문이었다.
‘예교’란 관점에서 기존의 주자학·양명학·고증학을 새롭게 해석한 책은 기존에 우리가 알고 있던 통설과는 다른 새로운 내용을 많이 전하고 있다. 주자학을 ‘예치 시스템’의 이론적인 기초로 파악한 저자들은 주자학에서 양명학으로의 전개를 유교의 민중화란 측면에서 이해했다. 송대에 시작해 명·청대를 거치면서 확산된 유교의 민간침투는 다름 아닌 ‘예교화(禮敎化)’의 과정이었다는 것이다. 책에서는 ‘예교 시스템’이 이 체제의 아웃사이더였던 백련교 등의 비밀결사와 피억압자였던 여성들의 도전을 받아 해체·붕괴되고 이 시스템의 기반이 되는 종법사회가 마오쩌둥(毛澤東)의 혁명에 의해 괴멸되는 과정까지 상세하게 설명된다.
그렇다면 중국의 공산화로 가부장제는 과연 종식됐을까. 아니다. 저자들은 중국의 농촌사회에서 종족 공동체가 일소된 뒤에 이를 국가의 새로운 가부장인 ‘마오쩌둥’이 대체했다고 지적했다. 마오가 추진한 사회주의 혁명은 옛 종족 공동체를 대신해 또 하나의 신성한 국가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시도였을 뿐이라는 것이다. 국가의 부성(父性)이 부여돼 ‘성인(聖人)’의 지위에 오른 마오는 중국 역사상 명초 주원장(朱元璋)이나 청대 옹정제(雍正帝)보다도 강력한 독재권력을 구축하는데 성공하는데, 이는 결국 ‘예치 시스템’이 중국 현대사회에서 관철된 한 변형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책의 내용은 최근 들어 한국에도 활발해진 예학(禮學)연구에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중국 명·청대 유교의 민간침투가 이뤄지면서 전개된 족보의 간행을 비롯한 제반 현상들은 조선후기 사회의 여러 현상들과도 유사점이 많아 우리 역사를 이해하는 데 중국사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임을 알 수 있게 해준다. - 최영창 기자 (2001-05-23) 문화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