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우연이 아니라 인연이야
-기수 형의 네 번째 전시회에 붙여-
김제복
한 우물만 파는 사람처럼 고집스런, 그러나 따스하고 순박한, 우리들의 영원한 '형'(김기수 화백), 이번에도 독특한 <목소리)로 상큼한 세계를 보여주시는군요. 질금질금 신맛을 돈우는 복숭아와 싱싱한 꽃, 펄펄 살아 숨쉬는 바다와 산, 불타는 구름과 함께 이국의 정취도 섞인 다채로움으로 우리를 또 감동시키고, 영원히 떠날 수 없는 넉넉한 인연의 품으로 우리를 불러주시는군요.
지난 9월초, 통영의 아침 해안 도로에서 우연히 만나,
"이건 우연이 아니라, 인연이야",
아무런 약속도 암시도 없었는데 외지에서 깜짝 만난 것은, 더구나 같은 콘도에서 묵었으니 분명한 우연인데도, 인연이라고 외치던 순박한 목소리.
'해안선에서 만난 것이 우연이 아니라 인연' 이라고 한 것은, 7년 전 예술의 전당 3층, 200평이 넘는 전시장에서 130여점의 작품으로 펼친 한국 최초의 '해안선 테마전' 에서 '내가 해안선을 따라가는 것은 운명이야,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야' 라고 처렁처렁하게 외치던 그 말 아니던가요.
통일전망대에서 강화도로 이어지는 바닷가 일주, 다시 남쪽의 마라도까지 샅살이 뒤지고도 북쪽의 해안선을 함께 펼치지 못함을 아쉬어하면서, 한반도의 불행한 숙명적 인연을 기어이 완성하는 다음 전시회를 해야 한다고, 기염을 토하던 그날의 함성을 듣는 것 같아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오.
광주의 한 화가가 서울에다 그렇게 대담한 기획전을 펼쳐 놓고 소리 지르던 분방함을 다시 보는 듯해서 어깨가 으쓱해지고 산뜻하기까지 했다오.
통영의 해안에서 본 희끗희끗한 갈색 머리카락과 거침없이 뿜어져 나오는 일성은 너무 멋있었답니다. 누가 이 젊고 패기에 넘치는 <목소리>와 펄쩍펄쩍 숨 쉬는 활력과 정열의 소유자인 영원한 젊은이의 <자유>를 부러워하지 않을 것인가.
항상 누구에게나 따스하고 너그럽고 빛나는 눈길로 맞이하고, 덥석 두 손을 마주잡는 훈훈한 형의 <마당>에 들어서면, 자신만의 터치와 빛과 색채로 일구어 놓은 텃밭에서 싱싱하게 자라고 있는 활기찬 생명들의 순박한 숨결과 더불어 <자유>와 <순수>를 만날 수 있어서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오.
독창적인 <목소리>에서 풍기는 소박함이, 오직 한 길을 지키며 사랑해 온 사람의 산뜻하고 신선한 세계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감동이랍니다.
그래서, 수채화의 거장 배동신 선생님은 형의 첫 전시회에 붙이는 글에서 <남의 흉내를 내지 않고 자기 세계만을 꾸준히 추구하는 소박하고 겸손한 인성, 정직하게 열심히 그림만 그리는 사람>이라고 말하지 않으셨던가요.
형이 소중하게 찾아낸 아직 남아 있는 원초적 자연의 구석구석을 우리는 가보고 싶은 것이며, 그곳에서 함께 소리쳐 보고 싶은 것이라오. 형의 그림은 그래서 친근하고 편안하며 이 시대에 찾아보기 힘든 신선함이라 생각합니다.
한국의 해안선을 비롯한 국토의 구석구석은 물론, 세계의 어디라도 아름답고 의미 있는 곳이라면 찾아다니며, 잃어져가는 원초와 자연에 대한 소박한 꿈을 생명력 넘치는 수채로 담아 보여줌으로, 우리들은 함께 즐겁고 풍성해지고 값지게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친구 우제길은 형의 두 번 째 백송화랑 전시를 <원초적인 순수 감성이 출렁이는 메아리>라고 말하면서 <항상 웃음으로 생명력 넘치는 신선한 작품, 겉으로는 유연한 듯, 내면엔 강인한 창작에의 소망으로 가득 찬, 마음 깊은 곳에서 스며나온 필연의 소산. 맑고 훈훈한 정감이 넘치는 분위기, 우직스러울만큼 변덕 없이 가고 있는 생활 방식이 오히려 순수의 생명력이 될 수 있습니다. 인간의 마음속에서 가식 없이 솟아나는 감성은 누구에게나 감동을 줄 것입니다>라고 말하지 않았던가요.
평생을 외길로 가꾸어 온 한 길, 본인은 힘들고 외로우면서도 강인한 인내와 꿈을 찾는 집념으로 이겨, 오늘의 이 거들막한 판을 벌일 수 있는 순수함과 패기,
우리는 그래서 형을 부러워하고 존경하고 형의 그림을 좋아한다오.
우연히 만난 통영의 숙소 로비에서, 금방 아침에 그린 작품을, 접혀진 신문지 사이에 끼어 아직 물감이 덜 마른 채로 전해주던 따뜻한 손길, 가슴에 안고 환성을 지르며 토끼뜀을 하던 아내가 받은 인연의 선물을 보면서, '50년이 넘는 그리움과 우정은 우연이 아니라 운명이야, 인연이란 말이세' 그날의 정겨운 <목소리>를 다시 듣고 있습니다.
아직 못 가 본 북녁의 해안선이 형의 붓끝에서 펄펄 살아나는 '인연'을 찾는 날이 어서 오기를 기다리면서, 언제나 신선하고 소박한 웃음과 <목소리>로 우리를 상쾌하게 해 주고 있는 형을, 우리는 '사랑합니다'.
첫댓글 어찌 그리도 알맞게 기수형을 글로 그려놓았는지. 부럽습니다. 기수형은 그림으로 우리의 해안을 그려 놓았다면 김형은 글로 기수형을 그려 놓았습니다그려. 그것도 아름답고 진실된 모습을 그대로 그렸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인간미와 따스한 정감이 철철 넘쳐나는 명수필입니다. 역시 다년간 국어 분야를 전공해오셔서
내공이 쌓인 님의 글 솜씨는 격조 높고 탁월한 그림언어식 묘사가 단연 돋보입니다.
우리 동창생 중 걸출한 저명 화가 2명을 탄생시킨 점도 이 글에서 상기할 기회가 됩니다.
여행지에서 그런 우연이 확률적으로 거의 불가능한데 그런 인연의 기억을 추억 담으로 쓰신
님의 글에 깊은 감명을 느낍니다. 우리 인 생에서 인연은 알 수 없는 하나님의 섭리로 엮어진다고
저도 믿습니다. 그래서 우연이 인연이 되겠지요. 주옥 같은 수필에 거듭 큰 박수를 보냅니다.
파이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