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6월30일 시차의 피곤함도 잊은 채 새벽2시30분에 LA공항에서 페루에 수도 리마로 가기위해 파나마 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또 하룻밤이 새고 오전이 되어 다시 리마 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하늘에서 보는 파나마 시내는 엄청 크고 아름다웠다. 밀림 숲에 잘 닦여진 공항 활주로와 수많은 빌딩숲 그리고 무엇보다도 압권은 엄청난 배들이 어느 한 꼭지 점으로 향해 블랙 홀 처럼 빨려든다는 것이다. 이곳이 그 유명한 파나마 운하인 것이다. 3시간여를 다시 날아 리마에 입성하였다. 현지 교민이신 오문수 선배님께서 마중을 나오셨다. 세상에 한국사람 안사는 곳이 없음을 실감하며 오 선배님 댁에 가서 여장을 풀었다. 오 선배님 댁에는 인천 팀과 재미 연맹 팀이 먼저 와서 남미4위봉 와스카란을 등반 후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서로 간단하게 인사를 나눈 뒤 각자 2층 방으로 올라가 내일을 꿈꾸며 잠에 들었다. 7월1일이다. 사모님이 끓여주신 시원한 갈비탕으로 아침을 아주 빵빵이 먹고 터미널로 향했다. 오늘은 8시간동안 버스를 타고 후와라스 라는 도시로 가야한다. 버스는 계속 북으로 그리고 점점 내륙으로 고도를 높여 나갔다. 오후가 되어서 4100여 미터 까지 올라 서서히 고도를 낮추어 고원도시인 후와라스에 도착하였다. 물론 점심도 차안에서 도시락으로 해결하고 화장실도 버스 안에서 해결해야 했다. 벌써 오후 5시가 되고 고도 3000미터인 이 도시가 정겹다. 우리 에이전트 잔이란 친구가 마중 나와 호텔로 우리를 안내한다. 짐을 간단히 풀어놓고 시내로 나가 외식을 하였다. 느끼한 음식과 기름진 고기를 배불리 먹자니 맥주가 입에 착 달라붙는다. 늦게까지 호텔 옥상에서 과음을 하여 저녁에 잠자기가 여간 고통스럽다. 7월2일이다. 6시쯤 장닭이 우는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술 때문에 밤새 고통스러웠는데 몇 년 만인가 닭 우는 소리를 들으니 고향에 온 기분이다. 아침 햇살에 빛나는 저 멀리 와스카란이 너무도 영롱하고 하얀 살빛이 탐스럽기까지 해 손만 뻗으면 금방이라도 내손에 닿을듯 하다. 훗날 시간이 되면 꼭 한번 다시 와서 와스카란을 등반하고 싶어진다. 정말 맛있는 커피와 빵으로 아침을 먹고 짐을 꾸려 버스를 타고 카라반 기착지 까지 또 출발이다. 가는 도중 카라스 라는 도시에 들러 점심을 먹고 계속해서 산길을 구불구불 올라간다. 도중에 도랑이 나타나 차가 멈추면 포터들이 돌을 들어 날라 다시 길을 만들어가며 버스는 어렵게 마지막 마을인 카샤팜파에 도착했다. 마을에서 당나귀에 짐을 싣고 산타크루즈 계곡을 따라 카라반이 시작되었다. 시간은 오후1시 무척 더웠다. 그늘도 없고 땡볕에 성근형님이 내 뒤를 바짝 따라붙어 오더니 가슴이 답답 하시 단다. 천천히 오시라 말씀 드리고 가이드인 마르코스와 손짓 발짓하며 계곡을 걷는다. 참 아름답다. 딱히 할 말이 없다. 아름답다는 말밖에... 해질 무렵 오늘 막영지인 라마코랄(3700미터)에 도착했다. 해가지니 점점 바람이 불고 온도가 급속도로 떨어진다. 우리의 정 현 형님 스페인어를 능숙하게 구사 하신다. 남의 텐트에 무조건 밀고 들어가 따끈한 차 한잔 얻어 마시니 살것 같다. 이들은 주로 코카차를 설탕에 타서 즐긴다. 코카가 고소에 좋다고 한다. 우리나라 같으면 마약의 일종이다. 여자가이드인 맬리나는 아예 코카잎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등반 내내 씹어 먹기까지 한다. 하늘에 반달이 꺾여가고 산에서의 첫날밤은 이렇게 저물어간다. 7월3일이다. 8시가 되니 햇살이 따가워진다. 다시출발이다. 오늘은 베이스까지 가야한다. 부지런히 발품을 팔았다. 커다란 호수를 지나 풀밭을 한없이 걷자니 삼거리 그늘진 아주 소풍하기 좋은 나무그늘이 나타난다. 이곳이 갈림길이다. 이곳에서 과일과 주점부리를 먹으며 휴식을 취한 후 좌측 계곡을 따라 급경사의 오르막을 올랐다. 300미터정도 오르니 평평한 초원이 나오고 그 앞으로 펼쳐지는 알파마요와 키타라주의 위용이 내 마음을 엄청 설레이게 만든다. 12시가 되어 베이스캠프(4300m)에 도착했다. 처음 맞는 고소인지 형님들의 심기가 불편하신가보다. 약간의 언성이 오가다가 밤이 되니 다시 평온을 찾는다. 포터들이 잡은 닭과 감자튀김이 어느 호텔음식 못지않다 .맥주한잔 마시고 잠을 청한다. 또 미치도록 아름다운 하룻밤이 간다. 7월4일이다. 일성형님이 김치 찌게를 끓이셨다. 멸치를 넣고 신 김치를 볶아 맛깔나게 끓였다. 정말 감히 나도 내기 힘든 맛이다. 아침을 늘어지게 먹고 오전엔 나무그늘을 따라 부족한 잠을 청한다. 점심때가 되어 라면으로 간단히 요기를 하고 짐을 챙겨 캠프1(4900)으로 향한다. 풀밭을 지나 나무숲을 건너니 자갈밭이 나온다. 바위틈 사이로 수많은 꽃들이 피어있다 .내가 아는 꽃은 알프스에서 본 에델바이스 밖에 없다. 정말 흐트러지게 많이도 피어 있다. 베이스를 출발한지 2시간 만에 마르코스와 캠프1에 도착했다. 텐트를 좋은 자리로 골라 쳐놓고 후미를 기다린다. 이제부턴 텐트가 두동이기에 낑겨서 자야한다. 현수형님이 우리 텐트로 오신다. 저녁은 스테이크다. 맛이 없다면 거짓말인데 성근형님이 두통을 호소하시며 식사를 못하신다. 낼 아침이 되어 봐야겠다. 7월5일이다. 고소 적응차 오늘 하루 여기서 더 머물기로 한다. 그동안 너무 빨리 고도를 올린감이 있다. 건너편 산에서는 밤새 커다란 세락들이 엄청 무너진다. 소리가 지진 나는거 같다. 성근형님이 아침을 못 드시고 끝내 베이스로 내려가시겠단다. 어린애도 아닌데 눈물을 글썽이시는 거 보니 얼마나 많이 억울 하신가를 금방 모든 대원들이 짐작 할수 있다. 성근형님 내려가시는 길에 마르코스를 따라 보내기로 했다. 형님에게 미안한 마음이드나 어찌할 도리가 없다. 하루 종일 텐트에서 호박도 말리고 장비만 만지작 거린다. 그렇게 지루한 하루가 간다. 7월6일이다. 오늘부턴 진짜 등반시작이다. 30분정도 모레인을 가로질러 설원에 도착했다. 아이젠을 차고 밸트를 찼다. 설벽 등반이 시작됐다. 살인적으로 빛나는 태양열과 하얀 설원에서 빛나는 복사열 이 모든 것이 나를 위협하려 덤벼드는 것 같다. 군데군데 사진을 찍으며 계속 콜(5600m)을 향해 숨찬 발걸음을 옮긴다. 콜 밑의 커다란 세락 앞에 다달아 포터들이 멈춰서 있다. 이곳은 경사도가 심해 고정 로프를 설치한다. 나는 바일 두 자루가 있었기에 혼자서 좌측 홈 깊게 파인 얼음 기둥 속으로 등반해 올라갔다. 경사도가 약해지고 하늘을 본 순간 위쪽에서 다급한 목소리들이 들린다. 하늘위에서 눈 벼락이 쏟아진다. 내 눈동자가 하늘을 고정하는 찬라 눈덩이들 뒤쪽 에서 아주 새캄한 물체가 밑으로 내려온다. 생각할 겨를이 없다. 최대한 오른쪽으로 몸을 날려 바일두개를 던져 박고 업드렸다. 꽈광! 금방 내가 지나온 틈새로 집채만한 얼음이 떨어져 산산히 부서진다. 오!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밑의 대원들이 괜찮아야 될텐데... 얼른 정신을 차리고 안전지대까지 등반하며 올라갔다. 정말 죽을 뻔 했는데 하늘이 또 날 살려 주신다. 두피치정도 더 등반하여 콜에 다다르니 사진에서 보던 알파마요가 하얀 속살을 드러내며 내 눈앞에 나타났다. 정말 아름다웠다. 어떻게 산이 저렇게 생겼을까? 수많은 의문점이 남지만 계속해서 사진으로 박아두는 수박에 별다른 일이 없다. 대원들이 다 올라왔는데 현수형은 다리를 절룩거리고 일성형은 등허리에서 피가 나고 재호형 주마는 엿가락처럼 휘어져있고 아까 밑에서 파편에 맞은 흔적들이다. 그래도 저 아름다운 산을 두 눈으로 끝내 보겠다고 아픈 몸들을 이끌며 올라오신 거다. 벽을 보니 많이 섰다. 당초 계획했던 페라리 루트는 등반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수많은 눈사태 흔적만 보일뿐이다. 중앙으로 길게 뻗은 프렌치 다이렉트만이 등반이 가능할 것 같다. 걱정이다 인원은 많고 길은 멀고 최종적으로 마르코스와 내가 가기로 했다. 7일 자정이 되어 코카차 한잔 마시고 내가 앞서가며 마르코와 줄을 묶었다. 대략 300미터정도 설벽을 걸어 내려가 다시 100여미터를 가파르게 올라 치니 스타트지점인 베르그슈른트가 나온다. 벌써 새벽1시가 되어가고 크레바스 밑은 캄캄해서 깊이를 헤아릴 수도 없고 숨고르기를 한참 한후 정신을 가다듬었다. 이제 출발이다. 첫 피치는 마르코스가 가고 내가2피치 우리는 스윙으로 등반할 계획이었다. 한참을 두리번 거리던 마르코스가 등반을 시작한다. 오버행 눈 처마가 만만해 보이지 않는다. 계속해서 시도를 하던 마르코스가 되돌아온다. 자기는 안 되겠으니 나보러 해보란다. 에라 이놈아 네놈이 가이드 맞냐? 스타트에서 신중에 신중을 다했다. 여기서 떨어지면 지옥이다. 저놈이 확보도 안했겠다. 나도 눈밭이라 아무것도 박을 수가 없었다. 스타트가 무척 어렵고 살벌했다. 전체 코스중 가장 어렵고 긴장된 순간이었다. 베르그 슈른트를 넘어 20미터 정도 올라 설벽 등반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무렵 스노우바 두 개를 눌러 박고 짧게 첫 피치를 끊었다. 마르코스의 불빛이 보이지 않고 나도 너무 긴장한 탓 일거다. 마르코스를 두름박질 하여 겨우 올리고 꼴상을 보니 나보러 계속 가란다. 나중에 내려와서 안 일이지만 마르코스도 이 길이 초행길 이었다. 위쪽에선 총알 같은 작은 낙빙 들이 무수히 떨어진다. 바람에 날리는 것들이다. 스크류 박다가 장갑벗은 손등에 하나 맞았는데 어지나 아프던지. 얼굴에 맞을까 걱정이 돼서 의식적으로 밑에만 바라보게 된다. 위쪽으로 갈수록 경사가 더욱더 가파르다. 대략 50미터씩 10마디를 끊고 나니 정상능선이 나온다. 하늘에 달은 어느새 손톱만큼 야위여져 있다. 시계를 보니 5시53분 이다. 날이 밝아지길 기다린다. 갈증을 달래기 위해 파워 젤 하나를 꺼내 빨아 본다. 정상에서 보는 안데스 파노라마가 여명에 물들어 장관을 이룬다. 이 아름다운 광경을 오래 기억하기위해 멍하니 한곳을 주시하며 뇌세포에 여러 번 각인시켜 복사를 해두었다. 알파마요! 정말 아름다운 산임이 틀림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