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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왕봉 천 석 들이 종(千石鐘)을 울리다
20210513
양재역에서 6시 50분을 넘어서 산악회 버스가 출발, 9시에 금산 인삼랜드휴게소에 도착하여 20분 휴식을 취한 뒤 출발, 단성IC를 빠져나와 경남 산청군 시천면 중산리 지리산 중산리탐방안내소 앞 거북이 산장식당 옆에 도착하니 10시 50분, 하늘이 맑고 날씨가 쾌청하여 마음이 상쾌하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지리산에 오르는 날이면 고통의 숨가쁜 여정이 기다리고 있지만, 언제나 가슴은 벅차다. 천왕봉(天王峰) 천 석 들이 종(千石鐘)을 울리는 상상에 젖는다.
산악회 회원 27명 중 23명은 셔틀버스를 타고 순두류로 이동하여 그곳에서 로타리대피소-천왕봉 산행을 목표하고, 산악회 대장과 나를 포함하여 4명만이 중산리탐방안내소-칼바위-로타리대피소-천왕봉 산행을 결행한다. 주어진 시간은 6시간 30분, 서울 출발 시각은 오후 5시 30분이다. 지난 2월 4일 천왕봉에 오른 뒤 3개월 10일만에 이곳에 다시 와서, 똑같은 과정을 밟아 천왕봉에 오르려 한다. 산행 시간 6시간 30분이 두 무릎과 심장에 큰 부담을 지운다. 법계교를 건너 탐방안전센터 앞에서 야영장 방향 왼쪽으로 꺾어 통천길로 들어섰다.
1. 산행 과정
법계교를 건너면 탐방안전센터가 있는 삼거리, 직진하면 순두류, 왼쪽 야영장 방향으로 꺾어 통천길 출입구로 향한다.
천왕봉으로 통하는 통천길 출입구로 들어가며 지리산 천왕봉 산행을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이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가면 유암폭포를 거쳐 장터목대피소에 이르며, 직진하며 천왕봉에 곧바로 오르게 된다.
칼바위를 거쳐 걸어 올라오는 길과 셔틀버스를 타고 순두류까지 온 뒤 순두류에서 걸어오는 길이 로타리대피소에서 합류한다.
문창후(文昌侯) 최치원 선생이 함양태수로 있을 때 법계사을 왕래하며 올랐던 바위(오른쪽 바위)를 문창대라 이른다.
천왕봉 600m 아래 지점의 거대한 바위가 비석처럼 우뚝 서있다. 비석바위라고 명명하고 싶다.
예전에 남강의 발원샘이라고 표지판이 붙어 있었는데 이제 없어졌다. 낙석의 위험이 있으니 빠르게 지나가라고 한다.
천왕봉 남쪽 풍경. 경남 산청군 시천면 중산리와 멀리 끝에 남해 바다가 보이는 듯하다.
까마귀가 서쪽으로 날아간다. 아래는 경남 함양군 마천면 강청리 백무동계곡(왼쪽)과 추성리 칠선계곡(오른쪽)이다.
정면으로 멀리 가야산과 그 오른쪽으로 황매산을 가늠해 보지만 흐릿하다.
천왕봉에서 하산하며 천왕봉과 그 주변 풍경을 조망하는 전망바위이다. 바위 틈에서 피어난 참꽃의 생명력에 경외한다.
왼쪽 고리봉에서 바래봉으로 이어지는 지리산 서북쪽 능선과 멀리 덕유산. 아래 왼쪽은 백무동계곡, 오른쪽은 칠선계곡이다.
이곳에서 천왕봉으로 올라갔다가 장터목과 유암폭포를 거쳐 5시간 30분만에 다시 이곳에 돌아왔다.
통천길을 걸어올라서 천왕봉에 오른 뒤 통천길을 걸어내려와 통천길을 빠져나간다. 5시간 50분을 통천길에서 놀았다.
두류산(頭流山) 양단수(兩端水)를 예 듣고 이제 보니/ 도화(桃花) 뜬 맑은 물에 산영(山影)조차 잠겼어라./ 아희야, 무릉(武陵)이 어디뇨? 나는 옌가 하노라. -南冥 曺植(1501~1572) 선생의 시조
남명 선생은 61세 되던 1561년 지리산 기슭 지금의 경남 산청군 시천면 사리로 옮겨와서 산천재(山天齋)를 짓고 죽을 때까지 10여 년 동안 그곳에서 학문 연구와 후학 양성에 진력하였다. 두류산(頭流山) 양단수(兩端水) 지역은 지리산 천왕봉에서 흘러내리는 시천(矢川)과 지리산 대원사 계곡을 흘러내리는 살천(薩川), 두 갈래 물이 합류하는 지역으로 산천재가 있는 곳을 이른다. 남명 선생은 자신의 거처가 있는 곳이 무릉도원이라 생각하고 이 시조를 지었다.
2. 나도 어찌하면 저 두류산처럼 될까 - 천왕봉, 천 섬 들이 종(千石鐘)
지리산 천왕봉에 3개월 10일만에 다시 왔다. 어머니의 품 같은 산, 언제나 그리움으로 나를 부르는 산, 그 품에 잠시 안겼다가 돌아가지만 내 가슴 속에서 내 정신을 다잡아주는 지리산 천왕봉에서 나는 복받치는 사랑에 가슴이 벅찼다. 내 아내와 자식들, 내 형제자매, 내 이웃, 이 땅에 살아가는 사람들, 이 세계의 구석진 곳까지 생명 지닌 모든 생명체들, 그들의 삶에 무한한 사랑이 물밀려왔다. 그 사랑에 뒤이어 일어서는 것, 어떻게 살 것인가?
천왕봉에 오르니 남명 조식 선생이 우뚝 서서 내게 말을 건넨다. "두류산처럼, 두류산 천왕봉처럼, 하늘이 울어도 울지 않고 서있는 천 섬 들이 종(千石鐘) 같은 천왕봉처럼 너를 단련하고 있는가?" 천왕봉에 오른 감격에 뜨거워졌다가 내 마음은 싸늘해진다. "선생님, 그러하지 못합니다. 방만하고 우쭐하고 사소함에 감정 휘몰리고 올바름에 뒤처지고 이해타산에 약삭빨랐습니다."
지리산의 정신은 어디에 있을까? 그 정신은 남명(南冥) 조식(曺植, 1501~1572) 선생과 매천(梅泉) 황현(黃玹, 1855~1910) 선생이 품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지리산 동쪽 천왕봉의 남명, 지리산 서쪽 노고단의 매천, 이 두 분이 지리산의 정신을 온전히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남명(南冥) 조식(曺植, 1501~1572) 선생은 경상남도 합천군 삼가면 토동에서 태어났다. 이순(耳順)을 넘긴 나이인 1561년 61세 때 지리산(智異山, 頭流山, 方丈山) 자락인 산청군 덕산으로 옮겨왔다. 그곳에서 천왕봉이 바라보이는 자리에 산천재(山天齋)를 짓고 별세할 때까지 살며 14번이나 지리산에 올랐다고 한다. 그러니까 산천재(山天齋)는 남명(南冥) 조식(曺植) 선생이 노년을 보낸 곳으로 그의 사상이 압축된 곳이라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산천재의 의미는 무엇인가? 산천재(山天齋)의 산천(山天)의 의미는 山과 天이 하나로 합한 것으로 '강건(剛健)하고 독실(篤實)하고 휘광(輝光)하여 날마다 그 덕을 새롭게 한다'는 의미라고 한다. 남명이 덕산으로 들어온 궁극적인 이유는, 자신을 더 강건하고 독실하고 빛나게 갈고 닦아 날마다 그 덕을 새롭게 만들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그 수양의 본보기가 천왕봉이었다고 할 수 있다.
春山底處無芳草(춘산저처무방초)
봄 산 어느 곳엔들 향기로운 풀이 없겠는가마는
只愛天王近帝居(지애천왕근제거)
(내가 이곳으로 이사를 온 이유는)
천왕봉이 상제 있는 곳에 가까운 것을 사랑하기 때문.
白手歸來何物食(백수귀래하물식)
맨손으로 왔으니 무엇을 먹고 살 것인가?
十里銀河喫有餘(십리은하끽유여)
은하 같은 저 십리 물 아무리 퍼마셔도 오히려 남으리.
-德山卜居(덕산복거, 덕산에 살면서)
이 시는 남명이 자신이 덕산으로 이사한 이유를 밝히고 있다. 천왕봉이 상제(上帝)가 사는 하늘에 가까이 다가가 있는 것을 사랑하기 때문, 곧 천왕봉 때문에 덕산으로 이사 왔음을 밝히고 있다.
請看千石鐘(청간천석종)
청컨대, 천 섬 들이 종을 보시게.
非大扣無聲(비대구무성)
북채 크지 않으면 쳐도 소리 없다네.
(크게 치지 않으면 소리 없다네.)
爭似頭流山(쟁사두류산)
나도 어찌하면 저 두류산처럼 될까.
(어떻게 하면 두류산처럼)
天鳴猶不鳴(천명유불명)
하늘이 울어도 오히려 울지 않고 서 있는.
(하늘이 울어도 울지 않을 수 있을까?)
-題德山溪亭柱(제덕산계정주, 덕산 시냇가 정자 기둥에 쓰다)
남명(南冥) 선생이 지리산으로 옮겨와 산천재(山天齋)의 시냇가 정자에 써 붙인 시로서 남명 선생의 정신세계가 잘 나타나 있다. 하늘이 울어도 울지 않을 두류산 같은 그의 넓고 큰 그릇됨을 이 시에서 읽을 수 있다.
이 시에서 천석종(千石鐘, 천 섬 들이 종)은 산천재에서 눈앞에 보이는 지리산 천왕봉을 비유하는 말일 것이다. 그의 머릿속에 있던 천석종(千石鐘)은 현실에서는 지리산 천왕봉이라 할 수 있다. 자신은 거대한 지리산 같은 천석종(千石鐘)이 되고 싶음을 이렇게 읊었다.
남명 선생은 학문의 근본을 敬義에 두고 그것을 실행하는 것을 강조하였다. 그의 학문을 敬義學이라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敬이란 안에서 바른 마음을 갖는 것이요, 義란 밖으로 사물을 올바르게 처리하여 실천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에게는 알고서 올바르게 실행해야 된다는 점이 가장 중시되었다. 이와 같은 선비의 의지를 바탕으로 한 가르침은 모든 제자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그래서 임진왜란이라는 민족의 위기에서 많은 의병장이 그의 문하에서 배출된 것은 이러한 그의 교육적 영향이라 할 수 있다.
高山如大柱(고산여대주)
큰 기둥 같은 높은 산이,
撑却一邊天(탱각일변천)
한 쪽 하늘을 지탱하고 있네.
頃刻未嘗下(경각미상하)
잠시도 내려놓은 적 없지만
亦非不自然(역비불자연)
또한 자연스럽지 않음이 없네.
-우음(偶吟, 우연히 읊다)
이 시에서 高山은 천왕봉일 것이다. 이 高山이 하늘 한 쪽을 떠받치고 있는데, 잠시도 내려놓은 적이 없지만, 자연스럽지 않음이 없다. 이는 한 순간도 仁을 어기지 않지만, 억지로 노력해서 그런 것이 아니고 자연스럽게 어기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곧 天道와 합한 경지를 말한다. 즉 천왕봉을 天道와 하나가 된 것으로 보고, 자신도 천왕봉처럼 되고 싶다는 심경을 노래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최석기의 『남명과 지리산』 및 산청군청 문화관광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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