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 구연: 이 은숙- 시 낭송: 설 동우-리라꽃 던지고/한하운 시 낭송: 정 미경-33세의 가을/신현림 시 낭송: 안정임-연어/정호승
2부 별자리 설명
3부 연 주: 김 영상-바이올린연주 시 낭송: 이 정숙-슬픔이 기쁨에게/정호승 시 낭송: 김 보성-자화상/윤동주 객석 시 낭송 (1인~2인)
시간:9월 03일 금요일 저녁 8:00~8:50
리라꽃 던지고/항하운
P 양, 몇 차례나 뜨거운 편지 받았읍니다. 어쩔 줄 모르는 충격에 외로와지기만 합니다.
양(孃)이 보내 주신 사진은, 얼굴은 오월의 아침 아카시아꽃 청초로 침울한 내 병실에 구원의 마스콧으로 반겨 줍니다.
눈물처럼 아름다운 양의 청정무구(淸淨無垢)한 사랑이 회색에 포기한 나의 사랑의 창문을 열었읍니다.
그러나 의학을 전공하는 양에게 이 너무나도 또렷한 문둥이 병리학은 모두가 부조리한 것 같고 이 세상에서는 안 될 일이라 하겠읍니다.
P 양 울음이 터집니다. 앞을 바라볼 수 없는 이 사랑을 아끼는 울음을 곱게 그칩니다.
그리고 차라리 아름답게 잊도록 덧없는 노래를 엮으며 마음이 가도록 그 노래를 눈물 삼키며 부릅니다.
G선의 엘레지가 비탄하는 덧없는 노래를 다시 엮으며 이별이 괴로운 대로 리라꽃 던지고 노래 부릅시다.
삼십삼 세의 가을
삼십삼 세란 무엇인가 아이하나, 둘 유아원에 보내거나 미리 죽어 목화솜 같은 바람으로 떠돌거나 우울의 강둑을 거닐며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은 마음 달래거나 좀더 넓은 아파트 좀더 안정된 살림을 위해 고되고 답답한 나날을 장승처럼 견디는 것인가
'돈을 모아 자유로울 수 있다면' '하고싶은 일로 밥을 먹을 수만 있다면' 성취와 만족은 얼마나 먼 등대인가 등대와 가을 태양을 보며 사무치는
나의 삼십삼 세란 무엇에든 용감해지는 일이다 바람 속 장작불처럼 거친 외로움은 죽음의 공포쯤은 커피 마시듯 넘겨주는 일
지금껏 사랑했는가 무얼 제대로 사랑했는가 슬프다면 대신 울어주마 불쾌하다면 기분을 바꿔주마 손을 내밀어 情人들을 편안히 맞이하고
내 안의 깊은 산책길을 따라 잊고 지낸 것을 생각하는 일이다 간소하게 사는 매력과 초조하게 들린 시계소리가 얼마나 어여쁜 노래인가 느끼는 일이다
연어 - 정호승
바다를 떠나 너의 손을 잡는다 사람의 손에게 이렇게 따뜻함을 느껴본 것이 그 얼마 만인가 거친 폭포를 뛰어넘어 강물을 거슬러올라가는 고통이 없었다면 나는 단지 한 마리 물고기에 불과했을 것이다 누구나 먼 곳에 있는 사람을 사랑하기는 쉽지 않다 누구나 가난한 사람을 사랑하기는 쉽지 않다 그동안 바다는 너의 기다림 때문에 항상 깊었다 이제 나는 너에게 가장 가까이 다가가 산란을 하고 죽음이 기다리는 강으로 간다 울지 마라 인생을 눈물로 가득 채우지 마라 사랑하기 때문에 죽음은 아름답다 오늘 내가 꾼 꿈은 네가 꾼 꿈의 그림자일 뿐 너를 사랑하고 죽으러 가는 한낮 숨은 별들이 고개를 내밀고 총총히 우리를 내려다본다 이제 곧 마른 강바닥에 나의 은빛 시체가 떠오르리라 배고픈 별빛들이 오랜만에 나를 포식하고 웃음을 터뜨리며 밤을 밝히리라.
슬픔이 기쁨에게 - 정호승
나는 이제 너에게도 슬픔을 주겠다. 사랑보다 소중한 슬픔을 주겠다. 겨울밤 거리에서 귤 몇 개를 놓고 살아온 추위와 떨고 있는 할머니에게 귤값을 깎으면서 기뻐하던 너를 위하여 나는 슬픔의 평등한 얼굴을 보여 주겠다. 내가 어둠 속에서 너를 부를 때 단 한 번도 평등하게 웃어 주질 않은 가마니에 덮인 동사자가 다시 얼어죽을 때 가마니 한 장조차 덮어 주지 않은 무관심한 너의 사랑을 위해 흘릴 줄 모르는 너의 눈물을 위해 나는 이제 너에게도 기다림을 주겠다. 이 세상에 내리던 함박눈을 멈추겠다. 보리밭에 내리던 봄눈들을 데리고 추워 떠는 사람들의 슬픔에게 다녀와서 눈 그친 눈길을 너와 함께 걷겠다. 슬픔의 힘에 대한 이야길 하며 기다림의 슬픔까지 걸어가겠다.
자화상/윤동주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 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읍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 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읍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첫댓글 이 밤에 저 시들을 읽으니... 무언지 울컥 해지는데요?
아... 그만 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