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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한 장으로 ‘성경통독’ 완전가능!(feat 바울)
본문 - 사도행전 13장 14~15절
그들은 버가에서 더 나아가, 비시디아의 안디옥에 이르러서,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앉았다. 율법서와 예언자의 글을 낭독한 뒤에, 회당장들이 바울과 바나바에게 사람을 보내어 "형제들이여, 이 사람들에게 권면할 말씀이 있으면 해주시오" 하고 청하였다. (사도행전 13장 14~15절, 새번역)
예전에 대학교를 다닐 때 ‘성경을 누가 누가 많이 읽었나?’ 경쟁이 붙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에 가장 인기 있었던 여름과 겨울 수련회가 ‘통독캠프’였으니, 성경 통독에 대한 관심도가 높을 때였습니다. 속독부터 시작해서, 대독, 정독 등 다양한 성경 통독 방법이 선보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가장 중요했던 것은 ‘횟수’ 였습니다. 통독을 몇 번 했느냐에 따라 보이지 않는 서열이 나누어지기도 하였고, 아직 성경을 통독해 본 적 없는 친구들을 향해 ‘신앙 풋내기’라고 놀렸던 기억도 납니다. 지금으로 치면 ‘신앙+어린이’, ‘신린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괜시리 성경 통독을 많이 한 친구가 부럽고, 존경스러워 한참을 우러러 보기도 하였고, 나보다 많이 읽은 사람 때문에라도 성경을 더 열심히 읽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부끄럽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더 알기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그저 횟수를 늘이기 위하여 몇배속으로 빨리 녹음된 오디오 성경을 찾기도 하였던 때였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무의미한 경쟁이었습니다. ‘얼마나 많이 읽었나’ 보다 ‘얼마나 말씀대로 살고 있는가’ 가 훨씬 중요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실 성경을 많이 읽었다고 해서 성경 말씀대로 사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횟수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부분은 성경을 읽고, 묵상하면서 ‘얼마나 말씀을 삶으로 살아내는가’ 에 대한 문제일 것입니다. 대표적으로 율법학자들이나 대제사장들은 누구보다 말씀을 많이 읽었던 이들이었지만 그들의 삶은 예수님이 지적하신대로 ‘회칠한 무덤’이었습니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아! 위선자들아! 너희에게 화가 있다! 너희는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면서, 정의와 자비와 신의와 같은 율법의 더 중요한 요소들은 버렸다. 그것들도 소홀히 하지 않아야 했지만, 이것들도 마땅히 행해야 했다. <마태복음 23장 23절, 새번역>
오늘 사도행전 13장 강해를 함께 나누면서 다짐하며 기도해 봅니다. ‘하나님, 이 말씀을 나눌 때마다 이 말씀 앞에 제가 먼저 서서 하나님으로부터 듣게 하시고, 들려주신 이 말씀을 제가 먼저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와 함께 잠시 이렇게 같이 기도해 주시지 않겠습니까? 오늘도 저는 그저 대언하는 자일뿐 하나님이 친히 우리 모두의 심령에 말씀을 들려주시는 귀한 은혜가 있기를 소망해 봅니다.
그래서 오늘은 함께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서기 위하여 ‘성경 통독’을 해볼까 합니다. 혹시라도 ‘성경통독’ 이라는 말 때문에 걱정하지 마십시오. 자리를 뜨지 말아 주십시오. 오늘 사도행전 13장, 한 장으로 바울이 성경통독을 가능하게 해 주었습니다. 비시디아 안디옥 회당으로 하나님이 보내신, 일타강사 가말리엘 문하생 바울의 일목요연한 설명을 나누면서 우리도 함께 하나님이 정리해주시는 구약과 복음서 스토리를 배우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혹시라도 성경 전체를 읽지 않고 사도행전 13장 한 장만 보면 되는 것으로 오해하시지는 말아 주십시오. 바울이 한 장으로 성경통독을 가능하게 해야 했던 이유가 있었습니다.
성령의 지시에 따라 안디옥교회로부터 파송을 받아 전도여행을 시작한 바울과 바나바는 ‘비시디아 안디옥’이라는 지방에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안식일이 되자 회당에 들어가 앉았습니다. 회당 안에서는 율법서와 예언서가 낭독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낭독이 끝나자 회당장들이 바울과 바나바에게 사람을 보내 왔습니다.
율법서와 예언자의 글을 낭독한 뒤에, 회당장들이 바울과 바나바에게 사람을 보내어 "형제들이여, 이 사람들에게 권면할 말씀이 있으면 해주시오" 하고 청하였다. <사도행전 13장 15절, 새번역>
생각지도 않았던 순간에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바울은 회당장의 요청에 응하며 자리에서 일어섰습니다. 바로 이런 때를 위하여 한정된 시간에, 가장 효율적으로, 핵심을 놓치지 않고, 복음을 전할 수 있는 방법을 바울과 바나바는 계속해서 연구해 왔던 것이 분명합니다. 무엇보다도 안디옥 교회에서 머물며 가르치면서 이 방법을 확립할 수 있었으리라 생각됩니다. 드디어 한 장으로 읽는 구약과 복음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제 1장. 이스라엘을 택하신 하나님(17~20절A)
바울은 가장 먼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선택하셨음을 선포합니다. 이집트 땅에서 노예생활을 하면서 고통 받던 자신들을 하나님께서 권능의 팔로 인도하여 내셨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노예생활’이라고 하지 않고, ‘나그네 생활’이라고 표현합니다. 좋게 포장한 것이 아닙니다. 실로 그들은 가나안 땅에 정착하기 위한 나그네 생활 중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열 가지 재앙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높여 주셨고, 이집트로부터 인도하여 내셨습니다. 그리고 광야 길에 도착합니다.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위한 준비로 무려 40년이나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인내하며 참아 주셨습니다. 그리고 가나안 일곱 족속을 몰아내신 후 그 땅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유업으로 주셨습니다. 이제 더 이상 그들은 나그네가 아니라 약속에 땅에 거하게 되었습니다. 그 약속의 땅에서 450년을 차지하며 살았습니다.
제 2장. 사사시대와 마지막 사사 사무엘(20절B~21절A)
450년이 지난 뒤에 하나님께서는 사사들을 보내셔서 이스라엘을 다스리셨습니다. 죄악과 고통 그리고 부르짖음, 하나님의 구원이 계속해서 반복되는 시기였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사사 사무엘 시대에 이르러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통치가 아닌 왕의 통치를 요구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베냐민 지파 사람 기스의 아들 사울을 그들에게 왕으로 주셨음을 바울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처음으로 왕이 생기게 된 지점을 바울은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이 분명합니다.
제 3장. 사울과 다윗(21절B~23절A)
사울은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이 되어 40년 동안 이스라엘을 다스렸습니다. 하지만 사울은 처음 마음을 유지하지 못하고 하나님을 떠남으로 인해 왕의 자리를 빼앗기게 됩니다. 하나님은 다윗을 두 번째 왕으로 세우시고 증언하여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찾아냈으니, 그는 내 마음에 드는 사람이다. 그가 내 뜻을 다 행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다윗의 후손을 통하여 구주를 세워 이스라엘에게 보내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현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너무나도 중요한 인물 ‘다윗’을 등장시키는 바울입니다. 그리고 ‘다윗’을 통해 주신 언약에 대한 잘못된 해석이 아닌 올바른 해석을 선포합니다.
제 4장. 세례요한(23절B~25절)
약속하신대로 다윗의 후손 가운데 구주가 오셨습니다. 그가 바로 예수입니다. 아마 이 부분에서 회당은 술렁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바울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어갑니다. 그런데 이 예수가 오기 전에 한 사람이 먼저 와서 회개의 세례를 모든 이스라엘 백성에게 베풀었는데 그가 바로 세례요한이라고 말합니다. 요한은 자기의 달려갈 길을 거의 다 갔을 때 말하기를 '여러분은 나를 누구로 생각하십니까? 나는 그리스도가 아닙니다. 그는 내 뒤에 오실 터인데, 나는 그의 신발끈을 풀어드릴 자격도 없는 사람입니다' 하였습니다. 실로 주의 길을 평탄케 하고 자기 임무를 다 마친 세례요한이었습니다.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들로부터 존경받던 세례요한의 고백을 선포함으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시선을 바꾸게 하는 바울입니다.
제 5장. 예수 그리스도(27~31절)
하지만 세례요한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에 사는 사람들과 그들의 지도자들이 이 예수를 알지 못하고, 안식일마다 읽는 예언자들의 말도 깨닫지 못해서 예수를 정죄하였습니다. 앉아서 바울의 말을 듣던 사람들의 마음이 뜨끔했을 것입니다. 바울은 가장 중요한 부분에서 더욱 차분하게 전하기 시작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예언자들의 말을 그대로 이루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쳤습니다. 사실 그들은 예수를 죽일만한 아무런 까닭도 찾지 못하였지만, 빌라도에게 강요하여 예수를 죽이게 하였습니다. 그렇게 예수를 가리켜 기록한 것을 다 행한 뒤에, 아리마대 요셉이 예수의 시체를 나무에서 내려다가, 무덤에 두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예수를 죽은 사람 가운데서 살리셨습니다. 부활은 거짓말이 아닙니다. 예수는 자기와 함께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간 사람들에게 여러 날 동안 모습을 나타나 보이셨습니다. 예수를 본 사람들은 지금 백성에게 예수의 증인입니다. 바울 자신이 바로 그 증인입니다. 자신이야말로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는데 앞장섰던 인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자신에게도 찾아오신 예수님을 이 자리에 앉아 있는 모든 이들이 만나기를 소망하는 마음이 가득했을 것입니다.
제 6장. 복음 선포(32~39절)
바울은 본격적으로 자신이 이 자리에 서서 성경통독을 진행했던 이유를 설명합니다. 하나님께서 조상들에게 하신 그 약속을 지금 회당에 있는 모든 이들에게 전합니다. 바로 ‘복음’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예수를 일으키셔서 이스라엘의 후손인 우리에게 그 약속을 이루어 주셨다고 선포합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를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리시고, 다시는 썩지 않게 하셨습니다. 이 약속을 처음 받았던 다윗은 사는 동안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섬기고 잠들어서 조상들 곁에 묻혀 썩고 말았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은 다윗에 대해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다윗의 후손으로 오는 예수에 대해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살리신 예수님은 썩지 않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 예수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죄 용서가 선포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모세의 율법으로는 의롭게 될 수 없던 그 모든 일에서 풀려나게 된 것입니다. 믿는 사람은 누구나 다 예수 안에서 의롭게 됩니다. 율법에 억눌려 하루 하루 정죄 받고, 죄책감에 시달리던 많은 이들에게 ‘자유함’을 허락하는 복음을 선포한 것입니다. 앉아 있던 사람들은 ‘누구나’ 라는 말에서 많이 놀랐을 것입니다. 지금 회당이라고 하는 제한된 공간에 있기에 더욱 그랬습니다.
제 7장. 주의사항(40~41절)
하지만 이 예수를 믿지 않았을 때 일어날 일에 대해서 조심해야 한다고 바울은 주의사항도 알려줍니다. 예언서에서 말한 일이 여러분에게 일어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고 친절하게 말해 줍니다. 자신의 권면이 아니라 이미 성경에 기록된 대로 하박국 1장 5절 말씀처럼 '보아라, 너희 비웃는 자들아, 놀라고 망하여라. 내가 너희 시대에 한 가지 일을 할 터인데, 그 일을 누가 너희에게 말하여 줄지라도 너희는 도무지 믿지 않을 것이다.' 이 기록대로 혹시라도 여러분이 예수를 믿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을 가져야 할 것을 요청한 바울이었습니다.
제 8장. 축복(43절)
바울은 유대 사람들과 경건한 개종자들을 포함하여 이 권면에 귀를 기울이고 더 많은 말씀을 듣고 싶어 하는 이들에게 늘 하나님의 은혜에 머물러 있어야 할 것을 권면하며 축복해 주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축복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축복입니다. 형식적이고 율법적인 신앙이 아니라 오늘도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로 그 시작이 ‘말씀’으로부터, 올바른 복음에 대한 이해로부터 시작될 것입니다.
이렇게 구약과 복음서에 이르기까지 한 장짜리 ‘성경통독’이 끝이 났습니다. 아마 바울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요약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래서 ‘하나님의 택한 그릇’으로 바울을 선택하셨던 것입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한정된 시간에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바울’이라는 인물이 전하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복음은 더욱 많은 이들에게 ‘반전’을 전하며 각인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이 복음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바나바와 바울을 따르기 시작하였습니다. 가장 놀라운 반응은 바로 이것입니다.
그 다음 안식일에는 온 동네 사람이 거의 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모여들었다. <사도행전 13장 44절, 새번역>
진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이들에게 나타나는 당연한 결과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기대하게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자연스럽게 말씀 앞으로 초청합니다. 하지만 유대 사람들은 이 무리를 보고 시기심이 가득 차서 바울과 바나바가 한 말을 반박하고 비방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반박과 비방은 오히려 더욱 더 복음이 아름답게 꽃피게 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유대 사람들에 반응을 본 후 이렇게 결단하며 선포합니다.
그러나 바울과 바나바는 담대하게 말하였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당신들에게 먼저 전해야 하였습니다. 그러나 지금 당신들이 그것을 배척하고, 영원한 생명을 얻기에 합당하지 못한 사람으로 스스로 판정하므로, 우리는 이제 이방 사람들에게로 갑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명하시기를 '내가 너를 뭇 민족의 빛으로 삼았으니, 그것은 네가 땅 끝까지 구원을 이루게 하려는 것이다' 하셨습니다." <사도행전 13장 46~47절, 새번역>
여기 하나님의 방법으로 지혜롭게 해결해 나가는 이들을 보십시오. 이사야서 49장 6절의 말씀을 인용하며 이제 본격적으로 이스라엘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뭇 민족의 빛이 되어 땅 끝까지 구원을 이루게 하려는 결심을 나타낸 것입니다.
이 결심에 이방사람들은 기뻐하며 주님의 말씀을 찬양하였고, 영원한 생명을 얻도록 정하신 사람은 모두 믿게 되는 역사가 나타납니다. 그리고 이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회당을 방문했던 바울과 바나바의 전도여행의 결과를 성경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이렇게 해서 주님의 말씀이 그 온 지방에 퍼져 나갔다. <사도행전 13장 49절, 새번역>
물론 이런 상황을 보며 너무도 배가 아팠던 유대인들은 그들이 가장 잘하는 방법 ‘선동’을 통하여 경건한 귀부인들과 성의 지도층 인사들을 부추겨 바울과 바나바를 박해하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바울과 바나바를 그 지방에서 내쫓았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그 핍박은 바울과 바나바는 비시디아 안디옥에 머무르지 않고, 다시 다른 지방을 다니며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발의 먼지를 떨어버리고 다시 기쁨의 여행을 떠나는 바울과 바나바의 얼굴을 한 번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의 다음 행선지는 ‘이고니온’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소식이 제자들에게 전해졌습니다.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으로 가득 차 있었다. <사도행전 13장 52절, 새번역>
하나님의 일하심이, 말씀의 역사가, 이토록 놀랍습니다. 끝까지 하나님의 방법을 의지하고, 오직 그 방법으로, 우리도 역시 일해야 함을 성경은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도행전 13장은 막을 내리게 됩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바울과 바나바를 파송했던 안디옥 교회의 이야기로부터 시작해서 기쁨과 성령으로 가득 차 있는 제자들의 이야기로 끝이 납니다.
사도행전 13장 강해를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는 사도행전 13장을 보면서 바울이 구약과 복음서를 한 장으로 요약해 준 성경통독을 해 보았습니다. 우리도 이제 누군가를 말씀으로 권면해야 할 때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습니다. 이제 복음을 전해야 할 때가 찾아오면 이 사도행전 13장을 사용해 보면 좋을 것입니다. 사도행전 13장이 복음을 전하기 좋은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바울은 오로지 말씀만 전하였습니다. 복음은 곧 말씀입니다. 전하는 자는 그저 통로일 뿐입니다. 전하는 자의 생각과 방법과 느낌과 독후감을 전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로지 말씀으로부터 시작하여 말씀으로 끝이 나면 됩니다. 반응에 대해 기뻐하거나 안타까움을 토로할 필요도 없고, 비방이나 반박에 항변할 필요도 없고, 설득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로마서 10장 17절, 새번역>
바울은 오직 말씀을 기초로 하여, 말씀을 통하여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바울이 말씀만을 전할 때, 하나님이 친히 말씀하게 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처럼 보이는 것들의 홍수에 살고 있었지만, 진짜 말씀에 대해서 목마름을 느끼던 이들에게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를 전하자, 많은 사람들이 그 말씀에 반응하게 된 것입니다. 미사어구 가득한 유려한 설교가 아니었습니다. 바울 자신이 어떻게 회심하였는지 연설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담백하게, 오로지 말씀만 전하였습니다. 그러니 우리도 복음을 전할 기회가 생긴다면 ‘말씀’을 전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평소에 ‘하나님의 말씀’을 먼저 잘 이해하고 간직하며 품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때가 찾아 왔을 때 품고 있던 그 말씀이 그대로 우리를 통하여 흘러가게 될 것입니다. 말씀 그대로의 말씀이 가장 중요합니다. 말씀 그대로를 전할 때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둘째, 제한된 시간에, ‘핵심’을 놓치지 않으며, 효율적으로 전할 수 있습니다. 오늘 바울이 들려준 이야기를 오늘 주일 오후 시간을 내어 꼭 깊게 묵상해 보십시오. 놓치지 말아야 할 것들, 반드시 전해야 할 것들에 대해서 빠짐없이 잘 요약하여 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하나님의 언약에 대해서 분명하게 선포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과 죽으심과 부활,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초청하는 하나님의 마음을 전해야 합니다. 바울은 중언부언하지 않았습니다. 역사의 흐름에 따라 하나님의 역사를 효율적으로 선포한 바울입니다. 바울은 시간을 더 달라고 요청하지 않았습니다. 쓸데없는 말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더 듣고 싶은 사람은 자연스럽게 다시 초청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먼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핵심’을 놓치지 않고 잘 묵상해야 합니다. 그래서 질문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계획을 알고 계십니까?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과 죽으심과 부활과 다시 오심에 대한 확실한 믿음이 있으십니까? 늘 하나님의 은혜에 머물러 있는지 스스로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도 충분히 바울처럼 충분히 제한된 시간에, 핵심을 놓치지 않고 효율적으로 전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한 주가 시작되었습니다. 우리도 바울과 바나바처럼 다시 믿음의 여행을 떠납니다. 우리를 통하여, 바로 당신을 통하여 누군가 복음을 듣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허락해주신 기회를, ‘하나님의 때’에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 때마다 당황하지 않고, 피하지 않고 바울과 바나바처럼 말씀의 통로가 되어 주시길 기도합니다. 혹여라도 아직 스스로가 복음을 들어야 하는 분들이 계신다면 이번 한 주 동안에는 바울이 요약했던 사도행전 13장의 성경 이야기에 대해서 묵상하면서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지 않으시겠습니까? 당연히 내가 먼저 살아나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살리는 사역을 감당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바울이 살아나서, 이젠 살리는 교회가 된 것처럼, 아직 스스로가 살아나지 못했다면 하나님이 살려주시는 은혜를 경험하는 귀한 한 주가 되시고, 살아나셨다면 이제 살리기 위한 교회로 살아주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살아나는 교회로, 살리는 교회로, 살아나서 살리는 ‘교회’로 기쁨과 성령으로 가득 찬 여정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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