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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권도는 학업에 도움이 된다.
집중력, 체력, 자신감이 공부 뒷받침
민용태 박사의 태권도 예찬론
민용태 박사(고려대 스페인어문학과교수)라면 TV의 문화대담 등을 통해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여러권의 시집도 낸 민용태박사는 태권도 5단인 태권도인이다.
민용태박사는 태권도가 학업에 도움이 된다는 점을 이렇게 설명한다.
『태권도는 학업에 도움이 된다. 제아무리 오랜 시간 책상 앞에 앉아 있어도 집중력이
결여돼 있으면 공부는 진전되지 않는다. 태권도는 집중력을 키워주는데 안성맞춤인
스포츠다. 또 태권도 수련으로 강화된 체력은 석박사 학위논문작성 등 오랜시간의 공부에 견뎌내는데 큰 힘이 되어 준다. 그 뿐만이 아니다. 태권도를 익힘으로써 생긴 자신감은 적극적인 생활태도를 갖도록 해주어 긴 인생 역정에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광주고교 재학시절 태권도를 배우기 시작, 외국어대 스페인어과를 졸업하고 68년 스페인 유학길에 오른 민용태 박사는 그 곳에서 태권도를 가르치면서 공부했다.
『그때 현지에서 태권도를 가르치지 않았다면 10년 넘는 유학생활을 어떻게 극복 할
수 있었을지…』라고 민용태 박사는 돌이킨다.
태권도가 학업에 도움이 된다고 확신하는 민용태 박사는 고려대와 외국어대의 대학원생들에게도 태권도의 생활화를 권하고 있다.
사회 각 분야에서 활약 중인 태권도인
태권도와 학업을 양립시킨 사람도 적지 않다. KBS-TV「여의도 법정」(90-93년)의
사회자였고 94년부터 2년동안 MBC-TV「생방송 신변호사」의 진행을 맡아 얼굴이
널리 알려진 율사출신인 신기남의원은 어릴적부터 태권도를 익혀 경기고를 거쳐 서울대법대의 진학한 뒤 태권도부장을 맡았을 정도의 태권도인이다.
지금도 어릴적부터 가르칠만한 운동 가운데 태권도만한 스포츠가 없다는 판단아래 아들과 딸 모두에게 태권도를 가르치고 있다.
이 밖에 전현직 국회의원들 중 김형오의원과 이종률 국회사무총장도 서울대 태권도부
출신이다. 고려대 태권도부 출신의 국회의원도 꽤 된다.
프로복싱의 통괄기구인 한국권투위원회 회장을 지낸 구천서의원, 고려대 무회(武友會)회장 지낸 김범명의원, 이국헌의원, 박명환의원, 설훈의원 등이 고려대 태권도부
출신이다.
황학수의원, 김광일의원도 태권도인이다. 대한보디빌딩협회 김남학 회장(한화제약 대표이사)도 고려대 태권도부 출신이다. 문화관광부차관보를 지냈고 2002년 월드컵조직위원회에 몸담았던 최창신 사무총장도 경기고를 거쳐 고려대 재학 중 국가대표선수를 지낸 태권도인이다.
전대학태권도연맹회장인 전수신씨도 서울상대 재학시절 태권도를 열심히 익힌 태권도인이다.
이들 밖에도 많은 태권도인들이 사회 각 분야에서 없어서는 안될 중견 및 중진으로 활약하고 있다.
체육에 대한 올바른 가치관 가져야
황인수박사(미국 예일대교수)는『스포츠와 학업을 결코 분리시켜 생각해서는 안된다. 공부만 하루종일 계속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공부를 3시간 정도 한 뒤 1시간 가량의 운동을 하는 편이 두뇌의 피로도 풀리고 집중력도 흐뜨러지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한국사람들은 체육을 가볍게 보는 경향이 있으나 오랜시간 공부를 열심히 하려면 체력이 딸려서는 효율적인 공부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미국 스탠포드 의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센트루이스의 워싱텅 의대에서 조교수로 있다가 귀국한 고재영박사(울산의대교수·서울중앙병원 신경내과)도 황인수 박사와 같은 이야기를 한다.
『미국의 대학교수들 가운데는 학창시절 스포츠를 했던 사람이 많고 졸업 뒤에도 스포츠를 생활화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따라서 미국의 대학에는 우람한 몸집을 지닌
교수들이 적지 않다.』
어렸을 적에 태권도와 유도를 익히고 경기고를 거쳐 서울의대에 들어간 뒤 서울의·치대 역도부에 몸담았던 고재영 박사는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81년도의 미스터YMCA와 미스터코리아의 장려상을 받은 보디빌더이며 현재도 올림픽파크텔 헬스클럽에서
거의 매일 땀을 흘리고 있다.
체력이 떨어지면 학업성적도 떨어져
황인수 박사는 미국에 이민간 교포자녀들이 중·고생 시절에는 성적이 뛰어나지만 대학에 들어가서는 학업이 뒤지게 되는 까닭은 체력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미국의 중·고생들이 놀이와 스포츠에 오랜시간을 충당하고 있는 동안 교포학생들은
한국에서 하던식대로 공부만 열심히 해서 성적을 올려 놓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학에 가서도 교포학생들이 전반적으로 좋은 성적을 마크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대학교육에서 필요로 하는 수준 높은 어학실력도 문제지만 중·고시절에 스포츠, 신체활동, 레크레이션 등으로 다져진 강한 체력을 바탕으로 밤샘에도 끄덕없이 열심히 공부하는 미국인 학생들을 따라잡기 힘들다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최고지도자로부터 시작해서 모든 간부들이 거의 모든 스포츠를 했었고
또 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사물을 차분히 정확하게 보고 상황판단을 내리는 데에는 스포츠로 단련된 몸과 마음이 필요하다. 미국사회는 체육을 받아들이는 이해도가 무척
높다. 머리도 영리해야 되지만 건강도 해야 큰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사회가
시급히 깨달아야 하는 것은「왜 체육이 필요하냐」는 점이다.』
청소년들이 맞이한 건강 위기
요즘 우리나라에서는 성장기에 있는 청소년학생들의 신장이나 체중이 지난날에 견주어 현저히 늘어나 체격은 커지고 있으나 체력은 오히려 저하되고 있다는 충격적인 통계가 제시되고 있다.
또한 비만아들의 증가는 어린 나이에 성인병에 걸릴 우려마저 증대시키고 있다. 이러한 현상을 현재 온 세계의 선진국과 선진국대열에 진입하고 있는 많은 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다.
어른들처럼 청소년들도 실생활 속에서 여러 가지 스트레스를 받는다.
어린이들도 긴장하고 걱정하고 낙심한다. 이런 상태에서는 공부가 잘될 까닭이 없다.
어른들의 경우처럼 이러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데도 스포츠가 도움이 된다는 것이
밝혀지고 있다.
기계문명 물질문명의 발달이 가져온 엄청난 부작용인 청소년들의 건강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세계각국은 여러 가지 대책을 세워 나가고 있다.
독일은 ①많은 사람들이 손쉽게 이용할 수 있는 스포츠 놀이시설을 마련했고 ②수준
높은 선수가 아닌 건강을 위해 스포츠를 즐기기 바라는 사람들을 친절히 이끌어 줄 수
있는 지도자를 많이 키워 냈으며 ③나이, 성(性), 체력에 알맞는 여러 가지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해냈다.
미국은 1956년에 체력강화를 위한 대통령직속평의회가 구성된 이래 청소년을 대상으로 삼은 체력강화운동에 힘을 기울여 YMCA, YWCA, BOY S CLUB(소년 클럽),
YOOTH SERVING GROUPS(청소년봉사그룹)등 민간단체 그리고 행정기관, 커뮤니티센터 등이 이 운동에 참여하고 있다.
일본은 민간단체와 정부기관으로 이루어진 체력만들기 국민회의라는 협의체를 1965년 만들고 ①공민관에 배구코트를 비롯한 스포츠시설 마련 ②어린이 놀이터 마련 ③자전거도로 마련 ④산책도로 마련 ⑤학교 체육시설 개방 ⑥지역사회의스포츠시설 마련 등을 추진하고 있다.
태권도를 비롯한 스포츠 권장해야
일본 국립소아병원 정형외과 과장인 무라가미 박사는 알맞는 놀이와 스포츠가 어린이의 신체건강 뿐 아니라 지능발달에도 도움이 된다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대뇌생리학적으로 보아도 손의 움직임과 두뇌의 움직임은 밀접한 관계가 있으니 어린이들에게 손을 쓰는 놀이나 운동 더 나아가서는 온몸을 쓰는 놀이나 운동을 시켜야
한다. 입시전쟁을 피할 수 없다면 더욱 몸을 단련하고 정신력을 강화해야만 한다. 입시에 실패하는 어린이 가운데는 스태미너가 달리고 집중력 부족인 경우가 적지 않다.
운동신경이 발달되어 있는 어린이의 예로 알 수 있듯이 놀이야말로 지적(知的)이고 창조적인 것이다. 어린이들은 놀이가 지적인 것이기 때문에 좋아한다. 놀지 않는 어린이란 과보호 속에서 키워졌기 때문에 놀이의 방법도 그 재미도 모른다.』는 무라가미 박사의 말에 학부모들은 귀를 기울여야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생활체육협의회가 동호인 클럽의 활동을 지원하고 있긴 하나 청소년을 대상으로 삼은 조직적이고 효율적인 체력강화운동이 펼쳐지지는 않고 있다.
문화관광부와 국민체육진흥공단은 이제 몸집을 커지고 체력을 약화되어가는 우리 청소년들에 대한 체력강화대책을 서둘러야 한다.
물론 태권도만이 아니라 모든 스포츠의 알맞은 프로그램이 건강과 학업에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청소년 체력강화 대책을 세우는데 이미 전국에 5200군데가
넘는 도장과 이들 도장에서 청소년들을 가르치고 있는 지도자가 확보된 태권도를 큰
기둥으로 삼아야 될 것은 다시 말할 나위도 없다.
더구나 태권도는 성장기의 청소년들에게 바람직한 신근(伸筋)운동이 근간을 이루고
있는데다 예의범절, 무도정신 등의 정신교육까지 곁들여져 있어 다른 어느 종목보다
청소년들에게 권하고 싶은 스포츠다.
태권도가 학업에 도움이 된다는 점을 학부모들은 깨달아야 한다.
스포츠와 학문에서 함께 뛰어난 이상백 박사
서울대 교수로, IOC 위원으로서 눈부신 업적
다음은 노산 이은상이 이상백 박사(1903~1966)의 회갑을 축하해서 지은 시다.
그대 천년은 올라가 / 신라 사람이었다면 / 높은 마음씨 / 맑은 모습이기에 / 모두들
기리고 우러러 / 국선(國仙)으로 받들었으리라 / 달구벌에 풀 한포기도 / 신라냄새가
풍기느니 / 하물며 그 혈통 받은 / 후신이사 더 말하겠나 / 별나비 꽃향기 찾아들 듯 /
낭도제자(郎徒弟子)들 모여들고 / 60년 쌓아 올린 탑이 / 층층이 학(學)과 덕(德)일레
/ 저 상륜(相輪) 우뚝한 기개 / 송백(松柏)가지랑 마주 솟았네 / 봄바람 가을달 아래 /
날이 갈수록 더 빛나리 (1964년 8월 15일)
1903년 대구에서 태어난 이상백은 1924년 와세다대학 문학부에 들어가면서 농구부를
창설해 주장을 맡았고 27년에 동대학 농구팀을 이끌고 주장겸 감독으로 미국원정을
떠나 일본스포츠계의 기린아로 떠오르게 된다.
1903년 일본농구협회 창설을 주도하고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 농구가 정식종목으로
채택되도록 구제적인 활동도 벌였다.
1932년 로스엔젤러스 올림픽에 농구가 정식종목으로 채택되도록 국제적인 활동도 벌였다.
1932년 로스엔젤러스 올림픽에 마라톤의 권태하, 김은배, 복싱의 황을수가 참가할 수
있도록 뒷받침했고 4년뒤 베를린 올림픽에 마라톤의 손기정, 남승용, 축구의 김용식,
농구의 이성구, 장이진, 염은현, 복싱의 이규환등이 참가할 수 있었던 것도 일본대표선수단의 총무를 맡은 이상백의 영향력에 힘입은 바 컸다.
광복 후에는 대한체육회와 KOC(대한올림픽위원회)의 탄생에 이바지했고 48년 런던
올림픽과 54년 마닐라 아시안게임에 한국팀 첫 출전의 길을 열었고 IOC(국제올림픽위원회)위원으로도 활약했다.
1945년부터 서울대학교에 사회학과 교수로 몸담은 이상백박사는 한국사회학회 창립하고 사회학을 우리나라에 도입하는데도 선구자적인 역할을 했다.
이상백박사는 학자, 교수, 체육인, 문화인이었으며 특히 세계의 흐름을 긴안목으로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녔던 위대한 인물이다.
이상백박사는 학업과 스포츠를 양립시키고 이 두 가지가 서로 좋은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입증한 대표적인 인물로 꼽히고 있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의사, 변호사
프로레슬러였던 대학교수, 변호사
태극기를 가슴에 달지 못하고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우리 핏줄은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우승자인 손기정 뿐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우리 핏줄인 미국인 2세 새미리(李)는 48년 런던 올림픽과 52년 헬싱키 올림픽에서 미국대표선수로 올림픽 사상 최초인 하이다이빙 2연패를 이룩했다.
USC(남가주대학) 의대에 재학 중인 첫 금메달을 따고 군의관복무시절에 두번째 금메달을 차지했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두개나 딴 것도 놀랍지만 그 선수가 이비인후과 전문의라는데
더욱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학업과 스포츠를 양립시킨 훌륭한 케이스인 셈이다.
72년 뮌헨 올림픽에서 금메달, 76년 몬트리얼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차지한 미국의 마라톤 선수 프랭크 쇼터는 변호사다.
64년 도쿄 올림픽의 수영 4관왕 숄랜더는 명문 예일대학을 졸업했다.
미국의 올림픽 출전사를 돌이켜보면 하버드, 스탠포드, 예일 등 명문대 출신의 국가대표선수들이 많다. 그들은 모두 공부도 열심히 하고 스포츠에서도 뛰어나 대표선수가
된 사람들이다.
미국 프로야구에 관한 책을 여러권 싸낸 우찌무라는 명문 도쿄대학 야구부의 황금시대를 실현시켰던 명투수로 의학박사다.
일본 축구계의 원로였던 다께노고시도 도쿄대학 출신이다.
60년대까지 프로레슬러로 활약했던 한스허만은 은퇴한 뒤 캐나다의 맥길대학에서 공학박사학위를 따고 그 대학의 교수가 됐다.
스킬(해골)이라는 끔찍한 별명이 붙었던 프로레슬러 머피는 아일랜드의 명문 더블린
대학의 법과를 졸업, 변호사 자격을 지니고 있었다.
「학업과 스포츠의 양립은 어렵다」는 우리의 그릇된 생각은 이들을 거울삼아 고쳐져야 할 것이다.
조병화 예술원 원장은 럭비선수 출신
전 서울음대학장 김성태 교수는 축구
<새출발>
꼭 저 산에 올라서야 / 황홀한 해돋이를 / 보겠기에 / 나도 미투리 삼아신고 / 신작로에 나섰다 / 머나먼 길에 / 조그만 가슴이 / 기다림에 조바심 쳐도 / 새롭게 굳세게 /
나는 걸어가련다.(1948년 여름 어느날)
이 글은 시인이자 교육자인 조병화 교수가 1948년 인천중학(당시 6년제) 1학년 1반을
담임하고 있을 때 제자들의 면학을 격려해 주기위해 지은 시다.
뒷날 경희대에 몸담고 인하대 부총장 그리고 현재 예술원장인 조병화 교수는 인천중학에서 물리와 수학을 가르치고 있던 시절 때때로 자신의 수업시간 중에 미술시간처럼 좋은 그림을 보여 조고 교장 몰래 운동장에 학생들을 끌고 나가 럭비를 즐기기도
했다.
도쿄 고등사범 다닐 때부터 이름난 럭비선수였던 조병화 교수는 늘『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해야 된다』고 학생들에게 강조했다. 서울대 음대학장을 지닌 김성태 교수는 연희전문(연세대의 전신) 다닐 때 뛰어난 축구선수였다.
그가 축구를 할 때에는 바이올린 켜는 손을 다칠까봐 흰장갑을 끼고 뛰었던 이야기는
유명하다.
의사이면서도 여러 가지 예술분야에 관여했던 고(故) 유한철 대한아이스하키협회 회장도 학생시절에는 뛰어난 아이스하키선수다. 김원기 전 부총리도 보성전문(고려대의
전신) 다닐 때는 수구선수로 활약한 일이 있어 뒷날 대한수영연맹회장을 맡기도 했다.
홍익대총장을 지낸 이대원 교수는 학생시절 농구선수로 뛰었고 서울음대학장을 지낸
전봉초 교수는 복싱을 익혔다고 한다.
체육특기자를 뽑지 않은 서울대 출신의 국가대표선수도 있었다. 70년대초 일본, 소련
등과 함께 세계 3강의 한 모통이를 이룩했던 한국여자배구 대표팀의 에이스 스파이커
박인실은 서울대학교 사범대출신이다.
우리나라에도 학업과 스포츠를 양립시킨 인물은 적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