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츠 퓌만 / 박신자 / 183쪽)
북유럽 중세문학의 최고봉이라 평가받는 영웅문학 <니벨룽겐의 노래>는
4행 長行의 운문 형식으로, 총 2부 2,379연, 9,516행에 이르는 대서사시였습니다.
중세 고지독일어로 남겨진 필사본까지 연구해가며 평생을 거기에 천착해 온 허창운 교수,
그의 <니벨룽겐의 노래>는 운문의 묘미와 옛스러운 맛까지 잘 살린 또 하나의 작품이었습니다.
그러나 20세기 이후 비약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한 과학의 힘은,
그리고 그 과학의 성과들로 외형상 풍요로운 삶을 살고 있는 세대들에게는
그런 고리타분한 옛 이야기는 더 이상 고무적으로 먹혀들지 않습니다.
<니벨룽겐의 노래>에 대한 현대적인 판본이 나오게 되는 대목입니다.
1971년 프란츠 퓌만이 원전을 기초로 해서 산문으로 축약 개작한 버전,
그리고 그것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자질구레한 궁정의식, 병렬적인 전투장면 등을
또 한 반쯤 줄여서 2년전 우리말로 소개된 <니벨룽겐의 노래>입니다.
당초 개작자인 프란츠 퓌만이 독일의 청소년층을 주요 독자층으로 가정했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의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버전이었습니다.
차.포 다 떼고 전체적인 흐름에 촛점을 맞추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거기에다가 번역과정에서 40%는 잘라먹고 산문축약 개작판의 60% 수준이라고 하니
이야기의 빈곤함과 뼈대의 앙상함은 능히 짐작하고도 남을 일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그너 선생의 <반지>에 접근하기 위한
선행학습으로서는 일면 유용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원전과 산문축약형...두 버전의 엄청난 문학적 간극에도 불구하고
<니벨룽겐의 노래>에서 바그너 선생이 <반지>에 인용한 포인트는
<원전>이나 <산문축약형>에서나 고스란히 지켜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두 가지를 다 읽어 본 사람의 입장에서는
산문축약형보다는 허창운 교수의 <니벨룽겐의 노래>의 일독을 권합니다.
이 바쁜 시대에 전체적인 흐름 정도만 알고 있어도 살아가는데 아무런 어려움은 없겠지만
오래도록 뇌리에 남는 그 향기는 비할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