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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 형상화한 나눔의 모호함
- 어린이, 어른에 대한 -
이 혜 경*
1.
어린이가 잠을 잔다. 내 무릎 앞에 편안히 누워서 낮잠을 달게 자고 있다. 볕 좋은 조용한 오후다. 고요하다는 고요한 것을 모두 모아서 그 중 고요한 것만을 골라 가진 것이 어린이의 자는 얼굴이다. 평화라는 평화 중에 그 중 훌륭한 평화만을 골라 가진 것이 어린이의 자는 얼굴이다. 아니 그래도 나는 이 고요한 자는 얼굴을 잘 말하지 못하였다. 이 세상의 고요하다는 고요한 것은 모두 이 얼굴에서 우러나는 것 같고 이 세상의 평화라는 평화는 모두 이 얼굴에서 우러나는 듯싶게 어린이의 잠자는 얼굴은 고요하고 평화롭다. 마른 잔디에 새 풀이 나고 나뭇가지에 새 움이 돋는다고 제일 먼저 기뻐 날뛰는 이도 어린이다. 봄이 왔다고 종달새와 함께 노래하는 이도 어린이고 꽃이 피었다고 아비와 함께 춤을 추는 이도 어린이다 별을 보고 좋아하고 달을 보고 노래하는 이도 어린이요, 눈 온다고 기뻐 날뛰는 이도 어린이다. 산을 좋아하고 바다를 사랑하고 큰 자연의 모든 것을 골고루 좋아하고 진정으로 친애하는 이가 어린이요, 태양과 함께 춤추며 사는 이가 어린이다.
- 소파의 「어린이 예찬」 부분, 부분 인용
2.
청춘! 이는 듣기만 하여도 가슴이 설레는 말이다. 그들에게 생명을 불어넣는 것은 따뜻한 봄바람이다. 풀밭에 속잎 나고, 가지에 싹이 트고, 꽃 피고 새 우는 봄날의 천지는 얼마나 기쁘며, 얼마나 아름다우냐? 이것을 얼음 속에서 불러내는 것이 따뜻한 봄바람이다. 인생에 따뜻한 봄바람을 불어 보내는 것은 청춘의 끓는 피다. 청춘의 피가 뜨거운지라, 인간의 동산에는 사랑의 풀이 돋고, 이상의 꽃이 피고, 희망의 놀이 뜨고, 열락의 새가 운다. 이상! 빛나는 귀중한 이상, 그것은 청춘이 누리는 바 특권이다. 그들은 순진한지라 감동하기 쉽고 그들은 전염이 적은지라 죄악에 병들지 아니하였고, 그들은 앞이 긴지라 착목하는 곳이 원대하고, 그들은 피가 더운지라 현실에 대한 자신과 용기가 있다. 그러므로 그들은 이상의 보배를 능히 품으며, 그들의 이상의 아름답고 소담스러운 열매를 맺어 우리 인생을 풍부하게 하는 것이다. 우리 눈이 그것을 보는 때에, 우리의 귀는 생의 찬미를 듣는다. 그것은 웅대한 관현악이며, 미묘한 교향악이다. 뼈끝에 스며들어가는 열락의 소리다. 이것은 피어나기 전인 유소년에게서 구하지 못할 바이며, 시들어 가는 노년에게서 구하지 못할 바이며, 오직 우리 청춘에서만 구할 수 있는 것이다.
- 우보의 「청춘 예찬」 부분, 부분 인용
‘이상’에의 꿈꿈은 현실로 보는 기대이자 도피이다. 한 때 아이들에 대한 아무런 의식도, 자각도 갖지 못했던 우리들의 현실은 이제 성찰의 무대가 되었고, 역설적으로 동경으로의 디딤터가 되었다.
흔히들 신의 선물이라는 코코아의 고결체도, 지구촌 꿈의 축제에 쓰일 ‘자블라니’1)도 그 이름이 주는 아이러니에 덧대어진 아이들의 손끝에서 점점 진화되어 탄생된 결정체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아이들은 달콤한 환희의 무대에서 빠져나와 성장한다.
성숙기의 완성보다 아름다운 유년 시대를 바라봄으로써 훨씬 더 큰 즐거움을 찾아낼 수 있는 매력의 근원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2) 우리가 한 사람의 인간을 보면서 진정한 기쁨을 맛보는 것은 언제일까? 그것은 그 사람의 행동의 기억이 우리에게 그 사람의 생애를 돌아보게 하여 우리의 눈에 그 사람의 젊은 모습이 비쳤을 때이다.3)
3.
문학이 보여주는 어린이의 성장은 지극히 환상적이거나 추상적이다.4) 어린이문학과 성장소설은 바로 이런 모습을 보여주는 양대 산맥이라 할 수 있다.
어린이 문학, 흔히 아동문학이라 불리기도 하는 이 장르는 분명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문학이며, 지은이가 이를 목적으로 창작하는 문학이다. 주지하다시피, 아동문학은 원시적인 종합예술에서의 신화나 전설, 민화 같은 이야기와, 민요나 구전 가요 같은 노래, 다 같이 펼쳐 보이는 놀이-우리의 굿, 산대놀이, 탈춤 등- 등에서 유래한다. 다시 말하면 굳이 장르를 나눌 필요 없이 다른 문학과 함께 하다가 분화되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당연히 동시나 동화, 아동극 등도 이와 같은 분류에 의해 얼마든지 그 기원을 찾을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어린이 문학은 어린이들의 특성을 고려하여, 뭔가 신비스럽고 놀라운 것을 소재로 삼아 이야기를 펼쳐나가기 마련이다. 때로는 동물과 식물을 의인화하기도 하고, 보이지 않는 사물이나 혼령 등을 소재의 밑천으로 삼기도 했다. 물론 여기에도 하나의 작품이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플롯이나 개연성이 잠재되어 있다. 어린이만이 가지고 있는 감성이나, 표현은 어른들이 이해하는 그것과는 다를 수 있다. 더불어 그것을 수용하려는 지은이의 이야기 개입이 온전히 작자의 몫이라는 강박도 작용할 수 있다. 따라서 작품 속의 주인공들은 늘 착한 가운데 역경을 극복하며 뭐든지 할 수 있었고, 세상 모든 만물의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던 것이다. 물론, 이것은 앞서의 언급처럼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문학이기에 일정 부분 추상화한 합리성이 전제될 수 있는 여지는 있을 것이다.
늘 새로운 설정을 요구받고, 그러면서 어린이의 세계를 그려내는 일이야말로 작품 내적으로 획득될 수 없는 매혹적인 이야기의 창출을 요구한다. 반복되면서도 같은, 있는 것들에 대한 재해석은 그것이 일상이라는 순간에 머무르면서 유기적이 되지 못하고 서술이 설명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때때로 유년기의 회상에 주목하며 그것이 곧 구조적인 틀에 맞춰져 작중 인물들의 대화에 의존하게 되고, 또 때로는 아이들이 갖는 긴장감이나 호기심보다는 생생한 안정감에 치우쳐 현실을 놓치게 되는 경우도 있다.
여기에 하나가 덧붙여질 수 있다면, 그것은 상상이다. ‘현실에서 획득되지만 지금 현재에는 실재하지 않는 인상을 바탕으로 또는 사고에 의해 의식에 새로운 감각적인 심상을 만드는 것’5), 상상에 대한 철학적 정의다. 부연하면 사람들을 실재하는 것으로부터 분리시키는 몽상으로서의 공상과 구별되는 건전한 상상은 일반적인 사회적 요구와 결부된 것으로 그것은 사람들에게 현실에 대한 인식을 가능하게 해주고 그것을 변화시켜 나갈 수 있는 힘을 준다. 일례로, 예술가는 예술적으로 의미가 있는 상(象)을 생생하게 그려, 그들의 실재하는 것에 대한 인식의 능력을 표현하기도 한다. 생활에서도 존재해야 하는 것에 대하여 마음속으로 만들어 낸 이상이라는 것 또한 상상의 산물이며 이것은 사람들을 전진시키는 힘이 된다.6)
그리고 이런 모습들이 그림이나 소리로 엮여지면서 그 같은 글을 읽은 아이들이 커 나가게 되고, 그 과정은 또 하나의 소재가 되는 하위 장르를 탄생케 하는 원동력이 된다.
4.
‘성장소설’에는 주인공의 개인적 성장사와 그 주인공의 교양에 영향을 주는 그 시대의 본질적인 문제에 대한 작자의 비판과 통찰이 스며들기 마련이다. 성장소설에는 이 모두가 융합되어 있어서 이것이야말로 흥미로운 주인공의 정신적인 성장의 내력은 물론이고, 동시대의 문명 비판서이기도 한 것이다.7) 지금까지 우리가 보아온 많은 성장소설들이 나름대로의 위치에서 이러한 역할에 충실한 것은 이 때문이다.
최첨단의 과학세계, 현란하고 화려한 색체시대, 온갖 공간적·시간적 넘나듬이 자유롭고 제멋대로인 시대에서 문학이 문학이기 위한 장치는 인물에 대한 너그러운 묘사와 주위의 자연과 사물에 대한 유연한 스토리가 될 것이다. 상처와 고통도 필요하고, 또 설령 거기에 안주하는 이야기가 나와 세계에 대한 무의미한 침묵으로 가정된다 할지라도 의도적으로 위로받고 치유되는 과정조차 생략될 필요는 없다.
이러한 작업 속에 소설이 부여한 ‘현실적 상상의 획득’이란 소중한 몫을 찾는 일 또한 아울러 포함되어 있음도 알 수 있다. 장면의 전환과 주변 환경의 기술은 알게 모르게 주인공인 ‘나’의 성장을 암시하고 스토리를 이끌어 가는 단초가 된다. 이러한 주관은 한편 어린 주인공에게 주변세계나 자기 자신에 대한 인식이나 성격, 또는 이 두 가지에 다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이니시에이션 소설’적8) 기반을 어느 정도 엿볼 수 있게 하는 시사점이 된다.
모자란 듯하면서 채워지고, 처음 떠났던 그 곳으로 다시 되돌아오는 과정에서 간간이 곁들여지는 주인공의 일탈과 모순을 향한 몸부림은 그 자체가 하나의 경험으로 이어지고, 그 경험은 어느 새 성장 모티프의 근간을 이루게 되며, 그 속에서 자연스런 사람다움의 모습으로 승화된다. 아무 것도 그려지지 않은 백지상태로 구현되는 삶의 모습이 어느 덧 시간의 추이에 따라 더러는 구겨지기도, 더렵혀지기도 하면서 삶의 경험이라는 채색의 효과를 가미시켜 바람직한 -오랜 시간이 흘러 되돌아 볼 때- 모습으로 전사되는 것이다. 보기에 따라서는 상상적 시간 경험의 사고가 사적 의미체로도 공감을 얻을 수 있는 구조적 요체가 되는 것이다.
여기에서 한 가지 의미 있는 일은 그것이 아동문학이 됐든, 성장소설이 됐든 그 속에 내재된 사회적인 환경이 그들 주인공이 작품 속의 다른 인물들과의 관계 맺기나 관계의 변화에 영향을 주면서 스스로의 발달에 큰 영향을 주게 되는 것을 독자들이 쉽게 알아차리게 된다는 점이다. 이렇듯 그것이 이야기의 전개나 구성에 지은이의 의도에 의한 것이라 할지라도 감정 이입의 수용성이 어른보다 크고 강한 그들 독자들에게는 이야기 상상화에의 제약이자 전제라는 어른들의 구도가 쉽게 드러난다는 사실이다.
물론 이와 같은 서사의 흐름과 병렬화한 내면화한 기억 속의 상상은 인간적인 의지의 소산으로 어느 면에서는 시간적인 이야기 전개에 필수적인 요소가 될 수도 있다. 가령, 많은 문학작품 속에서 주인공인 ‘나’의 기억이 화자로 서술화 하여 이야기를 끌고 가는 토대가 될 때 주인공의 성장 속에 내재한 상상력의 시간 경험은9) 바로 또 다른 ‘나’의 성장을 이야기하는 구름판이 되는 것이다.
어느 면에서 아직 어른이 아닌 이들은 자기중심적일 수밖에 없다-물론 모든 어른이 이러한 틀에서 벗어난다는 말은 아니다-. 그 자체가 동화적인 모티프였다손 치더라도 하나의 일화나 풍속을 그려내는 일이 주인공과의 유기적 관련성 속에서 얻어지는 것이라면 이러한 상황에서 벗어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자아의 내면적 성장에 초점이 맞추어진 작품들은 역으로 세계에 대한 총체적 형상화가 그만큼 빈곤해질 수 있다는 면도 주의할 필요가 있다. 주변의 환경을 성장하는 주인공에게만 집중케 하다보면 주변 환경에 대한 형상화는 고정되고 정적인 것으로 제시된다는 것인데, 사건의 진행을 늦추는 수동적인 존재로서의 주인공과, 그 주인공에 의해 추상적으로 인식되는 세계와, 일종의 성장 목표와 같은 이념의 탐색과정과, 이 모든 것이 작가에 의해 반어적 거리로 유지되는 성장소설10)이라면 바로 여기서 두 가지, 즉, 작품 속의 ‘나’는 주위의 환경에 몰아되어 정체성을 발견해 가는 양상을 보여주게 된다는 점, 또 하나는 발전하는 문화가 그렇듯이 원환적이면서 직선적으로 전진하는 형성과정을 거치며, 그 목표는 더욱 높아진 차원에서의 가기 자신에의 복귀, 혹은 자기 자신과의 일치인 바, 그럼으로써 그의 본래의 개성과 잠재능력이 개화된다는 점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5.
문학 작품이 의도적으로 읽는 대상을 설정하여 생산되는 경우도 있다고 할 때, 어린이 혹은 청소년을 그 대상으로 상정한다면 성인 독자와 구별되는 수용자로서의 아직은 미성숙한 독자를 염두에 둘 수밖에 없을 것이고, 그 소재나 내용 또한 교훈성이나 긍정적인 결말 같이 그에 걸맞은 쪽으로 눈을 돌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여기서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하나의 문학 작품에는 누군가의 깊은 이해와 끝이 없는 몰입을 필요로 하기 마련인데, 어린이나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작품들에서 특히 이러한 점이 더욱 여실히 필요하다는 것이다.11) 이 같은 몰입이야말로 문학 작품의 설자리를 뚜렷하게 제시해 주는 지표가 된다. 외형에 매몰되어 바로 그 ‘나’ 또한 외형에 머물게 한다면 그건 하나의 문학적 수단에 불과하다. 문학 작품이 주장하는 목적을 실현키 위하여 다양한 매개를 끌어들일 수는 있어야 하되 그것은 어디까지나 부수적인 장치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의 청소년문학이 목적이라는 외형에 치중할 때 독자들은 이미 몇 걸음 더 앞으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부지불식 간에 이야기를 벗어나, 인물을 만들고 장치를 설정한다면 그것은 청소년문학의 목적에만 의미를 부여하려는 시도에 그칠 따름이다. 상징적인 질서를 깨뜨리고 조금 더 특이한 설정과 인물을 만들어 내는 일은 바로 동시성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전제로 하는 작업이다.
그들의 이야기가 때로는 단순한 상식에 변주되는 현실의 탈주를 전제하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우리의 과거는 아무 것도 확실하지 않은 시대였다. 그만큼 한계도 뚜렷했지만, 안과 밖이 분명함으로 말미암아 안정을 추구할 수 있는 시대이기도 했다. 무엇이든 사회적으로 고정된 틀은 존재하지 않았고, 오랜 동안 지속된 만만치 않은 질서가 고정되어 있는 시대였다. 사회는 어지러웠고 아이들은 어른이 되기 전의 소외자였다. 그래서 바깥세상이 더욱 매혹적이었는지도 모른다.
마음껏 사회와 환경을 진술하고 묘사하고, 그에 따른 인물을 서술하면서 지금의 시작은 누군가의 예전이었다는 사실을 떠올릴 때 이야기는 물줄기를 거스른다. 그래서 어린이를 위한 문학작품이건, 그것이 성장소설이든, 청소년문학이든 젊어야 하고, 젊다는 것은 경계가 모호하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 아닐지!
* 대전 출생, 문학박사, 문학평론가, 건양대 교수, verygoodlee@hanmail.net
1)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월드컵에 쓰일 공인구 이름.
2)루소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유한한 존재는, 지극히 가련하고 한정되어 있는 것이기 때문에, 있는 그대로의 상태밖에 보지 못할 때에는 결코 감동하는 일이 없다. 현실의 사물을 장식하는 것은 공상이다. 따라서 만약 상상력이 우리의 감각에 와 닿는 사물들에 매력을 더해 주지 않는다면, 사람들이 그에 대해 느끼는 공허한 쾌감은 그 감각 기관에만 한정되어, 마음은 여전히 차갑게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가을의 보물에 의해 장식된 대지는, 풍요로운 부를 차례로 펼쳐 사람의 눈을 감탄시킨다. 그러나 그 감탄은 마음에 와 닿지 못한다. 감동은 감정으로부터 보다는 오히려 반성으로부터 생겨난다. ……(중략)…… 부드럽게 싹트는 것을 눈이 확인하면, 상상은 거기에 꽃이나 과일이나 나무 그늘을 그리고, 때로는 그 나무 그늘이 감추게 될 비밀스러운 정경까지도 그린다. 상상력은, 뒤를 이어 계속해서 올 계절을 한 점에 모아 놓고, 그 대상들을 미래의 모습으로 보기보다는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본다. 그것을 선택하는 것은 상상의 자유이니까. 그런데 가을에는, 거기에 있는 것밖에 볼 수가 없다. ‘봄이 되면……’하고 생각해도, 겨울이 앞길을 가로막아, 상상은 눈과 서리 위에 얼어붙어 숨이 끊어져 버린다. 성숙기의 완성보다 아름다운 유년 시대를 바라봄으로써 훨씬 더 큰 즐거움을 찾아낼 수 있는 매력의 근원은 이런 것이다.’ J.J 루소 / 민희식 옮김,『에밀』(육문사, 1988), 199-200쪽 줄여서 인용.
3)위 같은 곳.
4)따라서, 이런 어린이 문학을 통한 교육 방법도 다양하게 일찍부터 발달되어 왔다.
5)이광모 편저,『철학대사전』(한국이데아, 1994), 522쪽.
6)위 같은 곳.
7)이보영, 「성장소설의 중요성」, 이보영․진상범․문석우,『성장소설이란 무엇인가』(청예원, 1999), 15쪽.
8)모르데카이 마르쿠스,「<이니시에이션>소설이란 무엇인가」, 김병욱 편 / 최상규 역,『현대 소설의 이론』(대방출판사, 1986),
463-464쪽 참조.
9)우리가 익히 들어 온 이야기들이나 읽고 본 작품들을 떠올려 보라. 양의 동서를 막론하고, <일리아드>와 <오딧세이>, <이솝 이야기>, <아라비안 나이트>, <바보 온달>, <서유기>, <홍길동전>, <심청전>, <흥부전>, <가르강뛰아와 빵따그뤼엘>, <돈키호테>, 라 퐁텐느의 <우화시집>, 샤를르 빼로의 <어미 거위의 동화>, 그리고 <신데렐라>, <잠자는 숲 속의 공주>, <장화신은 고양이>, <로빈슨 크루소>, <걸리버 여행기>, <세익스피어 이야기>, <베니스의 상인>, <로미오와 줄리엣>, 그림 형제의 수많은 개작 <그림 동화>, 또 수도 없는 <안데르센 동화>, 찰즈 디킨즈의 <크리스마스 캐럴>, 스토우 부인의 <톰아저씨의 오두막집>, 그리고 <80일간의 세계 일주>, <15소년 표류기>, <보물섬> 같은 모험 작품들, <플란더즈의 개>, <마지막 수업>, 어린이용 <파브르 곤충기>, <동물기>, <톰소여의 모험>, <허클베리 핀의 모험>, <바보 이반>, <사랑의 학교> 같은 책과 이야기들을. 그 상상과 시간 경험, 그리고 그 속에 담겨 있는 도덕적 교훈들, 그리고 반전들. ‘성장’이라는 말이 주는 뉘앙스는 참으로 다양하다. 성장소설에서 보이는 시간적 추이에 따라 상정된 사회상이나, 구도적 시각에서의 주인공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환경적 변화는 분명 그 스토리의 전개에 필요한 부차적 장치라 할 수 있다. 성장소설에는 성장의 주체와 함께 이와 같은 구조적 요소가 서로 교차적으로 결합되고 분리되는 양상을 띄는 경우가 흔히 있다. 주체가 객체로 전이되기도 하고 함몰되기도 하면서 양자가 번갈아 담론 주체의 자리를 찾으며 동시에 예속되어 자아의 발전과 그 과정에 이어지는 주변세계의 변화를 상정한다. 따라서, 성장소설의 논의에 필연적으로 수반하는 당시 사회의 문화수용과 의식발전의 상관관계는 결국 이러한 특성을 마련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 된다고 할 것이다.
10)신희교,「성장소설과 상상력의 빈곤」, 한국현대소설학회,『현대소설연구』제6호 (1997.6), 60, 70쪽 참조.
11)사실 이 점은 상당한 의미를 갖는다. 분명한 독자층을 염두에 두었음에도 그러한 독자층에게서 외면 받는다면 이는 지은이의 잘못된 계산이거나 뭔가 읽는 이들과는 동떨어진 세상을 그려냈기 때문이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예사로이 들리지 않는다. “청소년 문학의 딜레마는, 정작 그들을 위한다는 이름으로 탄생한 청소년 문학이 그들의 자생적 독서 목록에서 배제되어 있다는 것이다. 대개의 학생들이 책을 읽지 않는다고 위안하려 하지만, 심지어 책을 즐겨 읽는 학생들에게도 ‘청소년 문학’이란 서둘러 벗어던져야 할 ‘굴레’처럼 받아들여지는 현실은 씁쓸하다. (……) 학원물뿐만 아니라, 청소년 소설이라는 범주 자체가 어쩌면 ‘장르 문학’적 성격을 가지고 있을지 모른다. 그것은 청소년 소설이라는 더 넓은 바다로 이어지는 ‘지중해’와 비슷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역할을 할 수 있기 위해서는 분명 ‘이제 자야 하는데’라는 초자아의 명령을 어기고 이야기의 끝을 보려는 욕망을 따라가게 만드는 ‘유혹의 기술’을 구비한 문학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김성진, “청소년 소설 2% 부족한 그 무엇”, 계간『논』2009년 봄호, 부분, 부분 인용. “책을 읽고 우울해지고 뭔가 찜찜한 것은 그 책이 재미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청소년 소설은 그렇게 재미가 없다. (……) 먼저 이 청소년 소설이 재미가 없는 첫 번째 문제는 주인공에게, 그리고 그 소설의 배경에 전혀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기 때문이다. (……) 재미가 없는 더 중요한 이유는 청소년의 묘사가 잘 되지 않기 때문이다. (……) 청소년 소설이 재미없는 세 번째 이유이자 가장 중요한 문제는 청소년이 자신의 문제를 주체적으로 풀어 가지 않을 때 나타난다. (……)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책에서는 성장하는 인물이 없다. (……) 청소년 소설은 그렇게 써야 한다. 독자가 주인공에게 공감을 느끼도록 하여, 독자가 자신이라고 느끼는 그 주인공이 힘든 일을 자신의 힘으로 넘어서고, 그리고 거기서 독자가 삶의 이정표를 발견할 수 있도록.” 이리예, “청소년이 청
소년 소설에게”, 계간『논』2009년 봄호, 부분, 부분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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