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가끔 후회한다 그때 그 일이 노다지였을지도 모르는데 그때 그 사람이 그때 그 물건이 노다지였을지도 모르는데 더 열심히 파고들고 더 열심히 말을 걸고 더 열심히 귀 기울이고 더 열심히 사랑할걸
반벙어리처럼 귀머거리처럼 보내지는 않았는가 우두커니처럼 더 열심히 그 순간을 사랑할것을
모든 순간이 다아 꽃봉오리인 것을 내 열심에 따라 피어날 꽃봉오리인 것을
--정현종, <모든 순간이 꽃봉오리인 것을> 전문 |
문제는 우리의 생각이 세상의 꽃들이 가장 찬란한 한때를 보내기 위하여 꿈을 꾸고 있는 ‘꽃봉오리’에 머무르는 순간, 갑작스런 혼돈이 거대한 쓰나미처럼 밀려올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꽃봉오리’가 아니라 ‘꽃봉우리’가 맞지 않나 하는 생각이 바로 그것이지요.
‘꽃봉오리’를 ‘꽃봉우리’로 혼동하는 데는 뭔가 그럴듯한 이유가 없지 않습니다. 다름 아닌 ‘산봉우리’ 때문입니다. 그러나 두 단어는 형태적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그 어원과 의미가 전혀 다르므로 분명하게 구별해서 써야 합니다.
우선, 두 단어의 의미가 어떻게 다른지 《표준국어대사전》의 정의를 통해 제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단어 |
의미 |
(꽃)봉오리 |
망울만 맺히고 아직 피지 아니한 꽃. |
(산)봉우리 |
산에서 뾰족하게 높이 솟은 부분. |
이와 같은 사전의 정의를 통해 알 수 있듯이, ‘봉오리’와 ‘봉우리’는 상당한 의미 차이가 있습니다. 즉, ‘봉오리’ 혹은 ‘꽃봉오리’는 “망울만 맺히고 아직 피지 아니한 꽃.”을 의미한다면, ‘봉우리’ 또는 ‘산봉우리’는 “산에서 뾰족하게 높이 솟은 부분.”을 의미하는 것이지요.
‘봉오리’와 ‘봉우리’의 의미 차이는 태생적으로 두 단어가 각기 다른 어원을 가지고 있는 데서 비롯된 것입니다. 다음을 보기로 하시지요.
▶ 봉오리: 葩 곳으리 파 <훈몽자회(1527)> ▶ 봉우리: 그 묏보리 머리 牛頭旃檀 香이라 니 <월인석보(1459)> |
위의 기록을 토대로 하면, ‘봉오리’는 ‘으리’에서, ‘봉우리’는 ‘보리’에서 비롯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으리’는 1527년에 간행된 <훈몽자회(訓蒙字會)>에, ‘보리’는 1459년에 간행된 <월인석보(月印釋譜)>에 기록된 것이 최초의 기록이니 ‘으리’보다 ‘보리’가 더 오랜 역사를 갖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상이한 어원을 지닌 두 단어는 서로 다른 역사적 발달을 경험함으로써 현대국어에 이르러서도 서로 구별해서 써야 하는 단어로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꽃봉오리’를 ‘꽃봉우리’로 쓸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바, 결과적으로 ‘꽃봉오리’와 ‘산봉우리’를 잘 구별해서 쓰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