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음식 스팸 이야기
구형구
인터넷과 이메일 사용이 보편화하면서 누구나 귀찮은 스팸메일을 받아봤을 것이다. 그 이름의 내력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그중 가장 유력한 것은 미국 호멀식품((Hormel Foods)에서 생산하는 육가공품 ‘스팸’(Spam)이다. 이 회사의 광고가 워낙 극성스럽기 때문에 지나친 광고로 인한 공해를 스팸이라는 말로 표현했다는 것이다. 이게 정설인지는 확실치 않으나 묘하게 연관되는 지점이 있다. 스팸메일을 정크메일(Junk Mail)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육가공품 스팸도 정크푸드(junk food)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식품이기 때문이다.
스팸이라는 육가공품은 일반명사가 아니라 특정 상품의 고유명사다. 1937년 미국 호멀사에서 햄을 생산하고 남은 찌꺼기를 활용하기 위해 개발한 것이다. 그걸 버리자니 아까워서 갈아서 통조림으로 만든 것이 ‘스팸’이다. 쓰레기통에 들어갈 물건을 활용해서 만들었으니 탄생부터 정크푸드라는 이름에 어울린다. 영양성분이나 화학첨가물 등의 유해성으로 보더라도 가히 정크푸드 반열에 오를 만하다.
어쨌거나 다른 정크푸드와 마찬가지로 저렴하고 맛은 있어서 시판 초기부터 잘 팔렸다. 순식간에 이 회사의 주력 상품이 되었다. 원래의 주력 상품인 햄을 제치고 찌꺼기가 그 자리를 차지한 셈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세상에서 이런 일들이 드물지는 않다.
엄청난 행운도 따랐다. 스팸이 시판되고 얼마 안 되어 제2차 세계대전이 터졌다. 전쟁 덕분에 스팸은 전 세계적으로 보급되었다. C-Ration이라 부르는 미군 전투식량에 들어갔을 뿐만 아니라 연합국에 지원하는 물자에도 스팸이 필수적으로 포함되었다. 전통적인 우방인 영국은 물론이고 소련에도 대량 공급했다. 적진에 투하하는 폭탄보다도 많은 스팸이 연합국에 투하되었다는 농담이 나올 정도다.
호멀사는 이처럼 전쟁 덕분에 대박을 맞았을 뿐만 아니라 상까지 받았다. 전쟁이 끝난 후 유럽전선 총사령관 아이젠하워 장군이 호멀사에 전쟁 승리 기여에 대한 감사장을 보냈다는 것이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군납을 독점하여 떼돈을 벌었으면 오히려 호멀사가 정부에 감사장을 보냈어야 마땅할 것 같은데... 아무튼 세상에는 이런 이상한 일도 드물지는 않다.
전쟁에 따른 대박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 등 미군이 등장하는 전쟁에는 어김없이 스팸이 따라다녔다. 특히 한국에서는 전쟁이 끝난 후에도 인기가 식을 줄 모른다. 그 시작 또한 정크푸드라는 이름에 딱 어울린다. 미군부대에서 빼돌린 잔반을 재료로 죽을 끓여 팔았는데, 일명 ‘꿀꿀이죽’이라 부른다. 이름 그대로 음식물 쓰레기로 만들었지만, 고기 한 조각 먹기 어려웠던 그 시대 사람들에게는 괜찮은 음식이었다. 이게 좀 더 발전하여 쓰레기가 아닌 정품을 빼돌려서 한국인의 입맛에 맞게 김치를 넣고 끓인 것이 ‘부대찌개’의 시초가 되었다. 이런 과정을 거쳐서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빼돌린 음식이 아니라 정식으로 수입한 스팸이 여전히 한국인의 입맛을 사로잡는다.
한국은 세계적인 스팸 소비국이다. 영미권을 제외하고는 한국에서 유독 스팸이 잘 팔린다. 이유가 뭘까? 어떤 이들은 기름지고 짭짤한 스팸이 쌀밥에 어울리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일리 있는 말이지만 그게 다는 아닐 것이다. 한국인들의 몰개성적 취향도 작용한다고 본다. 예컨대 내가 미국에서 체험한 맥도널드 등 패스트푸드 업소는 일정 수준 이하의 저소득층이 저렴하게 끼니를 때울 수 있는 그런 공간 이상이 아니었다. 반면에 한국인들에게 맥도널드의 의미는 사뭇 다른 것 같다. 의미가 다른 만큼 가격도 매우 다르다. 스팸이 잘 팔리는 것도 대략 비슷한 이유 아닐까싶다.